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문화·연예 대중문화·연예일반

속보

더보기

[변상문의 風流 여행기] 비 그치고 바람 멈춘 대(竹) 숲속 해와 달

기사입력 :

최종수정 :

※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더 작게
  • 작게
  • 보통
  • 크게
  • 더 크게

※ 번역할 언어 선택

 

여행 마지막 밤이 찾아왔다. 까맣게 내려앉은 땅 끝 바다 위 어둠을 바라보며 이틀간에 걸쳐 만나 본 다산 정약용과 고산 윤선도와의 인연을 생각해 보았다. 우리들은 하나의 생명으로 이 세상에 나투우는 순간부터 무수한 업(業)을 짓고, 그 업에 따른 보(報)로 만난다. 

아버지 어머니와의 만남, 형제자매와의 만남, 학교에서의 은사 및 친구와의 만남, 사회에서의 이해관계를 맺는 만남, 이성과의 만남을 통한 부부의 인연 등 성격과 유형이 하나도 같은 것이 없는 만남을 만난다. 새로운 것을 만난다는 것은 늘 설레임을 동반한다. 이 설레임은 일종의 기대와 대리 만족일 수도 있으며, 내용에 따라서는 소망의 결과일 수도 있다.

이번 다산과 고산과의 만남은 소망이 이루어진 만남이었다. 삶의 깊이 뿐 아니라, 마냥 잘 나갈 것만 같던 삶이 하루아침에 곤두박질 쳐 유배와 낙향을 당하는 상황에서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지 않은 채 평상심을 유지하며 오히려 격을 한 차원 높게 끌어 올린 두 분의 풍류 있는 삶에서 성자의 모습을 보았다.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땅 끝 황토빛 등대 밑에서 하늘이 휘도록 매달린 미리내 별들를 헤아리며 다산의 향기를 갈무리했고, 슈퍼마켓 파라솔 의자에 앉아 고산의 속살을 들여다 보며 까만 밤을 하얗게 새웠다. 식도를 타고 싸하게 흐르던 맥주와 입안에서 너적너적 대며 짭쪼름했던 새우깡 맛은 내가 살아가는 동안 두고두고 펼쳐 보고 만져 볼 고산과 다산과의 추억여행을 더욱 감칠 맛 나게 해줬다.

이생에서 만나보고 싶은 사람에게 만나자고 용기 있게 말하지 못해 만나지 못하는 인연으로 이생이 끝난다면, 2500년 후에 다시 만나자는 말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어는 소설가의 말이 남도 여행 마지막 밤을 보내는 내 귓전을 계속 울렸다. 속 뜰에 북 소리가 둥둥 울렸다.

아침은 맑고 화사했다. 남도의 가을색이 제대로 번지고 있었다. 머물던 하얀집을 떠날 땐 마치 몇 십 년 살던 집을 떠나는 심정이었다. 내 인생의 한 쪽을 풍요롭게 쓸 수 있도록 편안한 공간을 제공해 준 방문을 닫고 아침식사 장소에 들어서니 꼴찌에서 두 번째였다. 맛깔스럽게 차려진 전복죽 한 그릇을 다 비우고 걸죽한 자판기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나니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이게 바로 '등따시고 배부르다.'는 말인가 싶었다.
 
버스 차창 밖으로 뭉턱뭉턱 지나가는 연한 개나리색 아침 햇살을 받은 남도 들녘은 평화로웠다. 고개를 잣바듬하게 제치고 옅은 선잠에 든 동반 답사 객들의 얼굴에도 남도 가을빛이 묵은 한지처럼 편안하게 슴배고 있었다. 길가 코스모스는 유행가 가사처럼 한들거렸다.

담양 소쇄원에 도착하니 해가 서석산(무등산의 또다른 이름) 귀밑말에 걸려있었다. 소쇄원은 정암 조광조의 제자 양산보가 지은 원림으로서 전남 담양군 남면 지곡리에 위치해 있다. 지곡리 일대에는 소쇄원, 식영정, 환벽당, 취가정, 명옥헌이 냇물 좌우 언덕에 자리 잡고 서로가 서로를 마주보고 비껴보면서 풍류의 물감을 풀어 헤치고 있었다.

울울창창한 대 숲을 마치 미로 빠져 나가듯 밀고 나가니 초가(草家) 정자 ‘대붕대’가 우릴 맞이해 주었다. 시골 원두막 같은 정자였다. ‘대붕대’ 마룻바닥에 큰대자로 누워 간밤에 설친 잠을 보상받고 싶은 심정이 굴뚝같았다.


음양 오행사상에 맞춰 건물을 배치한 소쇄원의 맛과 멋은 이런 것들이다. 흙돌담 밑으로 계곡물이 흐르도록 한 것. 양산보가 어린 시절에 미역을 감으며 뛰놀았다는 너럭바위 위로 폭포가 떨어지도록 한 것. 못을 이루는 중심 부분에 '광풍각'을 짓고, 그 위쪽 양지 바른 언덕 위에 사랑채와 서재를 겸한 '제월당'을 지어 처사(處士)의 기풍을 당당하게 한 것. 그리고 제월당 밑에 매화와 꽃가지를 심는 '매대(梅臺)'를 만들어 신선도 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광풍각(光風閣)과 제월당(濟月堂) 당호는 중국 송나라 때 명필인 황정견이 주무숙의 인물됨을 '가슴에 품은 뜻의 맑고 맑음이 마치 비 갠 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과도 같고, 맑은 날의 달빛과도 같다.'고 평한 글귀에서 따온 말이다.

나의 작은 소망중 하나가 제월당 같은 정면 세 칸에 측면 한 칸짜리 고즈넉한 사랑채를 갖는 것이다. 그 곳에서 뜻 통하는 친구들과 삼현육각 치며 우리 소리 부르고
싶다. 소리하다 지겨우면 시 한 수 짓는 ‘글 풍류’도 하고 싶다. 소쇄원 대숲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다. 대숲 바람에 소망의 꿈을 실어 보냈다.

남도를 떠날 시간이 되었다. 마지막 답사 코스인 명옥헌에 들어서니 온 천지가 붉었다. 몇 백 년은 족히 돼 보이는 배롱나무 끝에서 포도송이 같은 꽃송이가 바람에 가녈가녈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 풍광을 눈앞에 두고 명옥헌 누마루에 올랐다. 남도의 가을빛, 다산의 형형한 학문, 땅 끝 바다위에 무수히 떨어지던 꽃가루 같던 별빛, 고산의 풍류, 녹우당 종손의 너그러움, 제월당 품은 뜻이 고음반에서 들려오는 노래 가락처럼 울려왔다. 가을이 또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더질 더질 돌돌(咄咄)

변상문 전통문화연구소장 (02-794-8838, sm2909@hanmail.net)

[관련키워드]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새 법원행정처장에 노경필 대법관 [서울=뉴스핌] 김영은 기자 = 조희대 대법원장이 넉 달 넘게 공석이던 법원행정처장에 노경필 대법관을 임명했다. 대법원은 10일 "조 대법원장이 오는 14일자로 노 대법관을 신임 법원행정처장에 임명했다"고 밝혔다. 10일 대법원에 따르면 조희대 대법원장이 넉 달 넘게 공석이던 법원행정처장에 노경필 대법관을 임명했다. 노 대법관. 법원행정처장은 대법원장의 지휘를 받아 전국 법원의 인사·예산·조직 등 사법행정 사무를 총괄하는 자리로, 대법관 가운데 1명이 맡는다. 노 신임 처장은 사법연수원 23기로, 1997년 법관으로 임용됐다. 이후 대법원 재판연구관과 서울고법 고법판사, 광주고법 부장판사, 수원고법 부장판사·수석부장판사 등을 거쳐 2024년 8월 대법관에 임명됐다. 대법원은 노 신임 처장이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5년간 근무하면서 헌법·행정법 관련 분쟁을 심도 있게 검토해 국민의 기본권과 행정절차 참여권, 조세 정의를 실현하는 데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또 전문적인 법률 지식과 합리적이고 공정한 판단 능력, 도덕성과 인품을 두루 갖춰 법원 안팎의 신망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날 "노 신임 처장은 경청과 포용의 리더십으로 법원 구성원은 물론 사회 각계와 소통해 국민을 위한 신속하고 공정한 사법제도를 구현하고,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높이는 데 헌신할 적임자"라고 말했다. 법원행정처장 자리는 박영재 대법관이 지난 2월 27일 사의를 표명한 뒤 4개월 넘게 공석이었다. 박 대법관은 올해 1월 16일 취임했으나 법왜곡죄·재판소원·대법관 증원 등 이른바 '사법개혁 3법' 입법에 반발하는 뜻으로 취임 42일 만에 물러났다. 이후 기우종 법원행정처 차장이 처장 직무를 대행해왔다. 대법관 공석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현직 대법관을 법원행정처장으로 임명한 만큼, 향후 후임 대법관 제청 논의가 재판 인력 공백 문제와 맞물려 속도를 낼지도 주목된다. yek105@newspim.com 2026-07-10 14:50
사진
"국정농단" 한학자 총재 13년 구형 [서울=뉴스핌] 이바름 기자 = '정교유착' 의혹의 중심 인물인 한학자 통일교 총재에게 민중기 특별검사팀이 징역 13년을 구형했다. 특검팀은 10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재판장 우인성) 심리로 열린 한 총재의 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 결심 공판에서 징역 13년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정원주 천무원 부원장에게는 징역 10년, 윤영호 전 세계본부장에게는 징역 3년 6개월, 이신애 전 재정국장에게는 징역 3년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서울=뉴스핌] 사진공동취재단 = 윤석열 정부와의 '정교유착' 혐의로 기소된 한학자 통일교 총재가 1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리는 결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6.07.10 photo@newspim.com 특검팀은 이 사건에 대해 "대한민국의 헌법 질서를 혼란하게 하고, 교인들의 헌금을 사금고처럼 사용하면서 국정을 농단한 사건"이라며 "다시는 이와 같은 종교단체들에 대한 정교유착과 국정농단 행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엄중한 형을 선고해달라"고 언급했다. 특검팀은 "피고인들은 통일교와 자신들의 이권 및 영향력를 확대하고자 이 사건 범행을 저질렀다"며 "정교일치를 목표로 종교단체의 막대한 자금력을 이용해 정치와 결탁했고, 선거에 불법 개입했으며 대한민국의 공권력을 불법부당하게 이용하려고 했다"고 지적했다. 특검팀은 정치권과 지속적으로 접촉하며 청탁 행위를 한 윤 전 세계본부장이 한 전 총재의 의사에 반해 행동할 수 없었다는 점을 수차례 강조했다. 특히 윤석열 전 대통령과 독대하면서 통일교 정책을 부탁하고, '건진법사' 전성배 씨를 통해 김건희 여사에게 샤넬 가방과 그라프목걸이 등을 제공한 것 역시 한 전 총재의 승인 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 행동이었다고 설명했다. 특검팀은 또한 지난 2022년 3월 한 총재가 특별집회에 참석해 사실상 '윤석열 후보 지지' 의사를 밝힌 뒤 통일교 각 지부에서 국민의힘에 재정적 지원을 한 점을 들며, 모든 사건이 한 총재로부터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특검팀은 "한학자는 이 사건 정교유착의 최종 수혜자"라고 밝혔으며, 정 부원장에 대해서는 "한 총재의 비서실장이자 최측근으로, 한 총재의 주요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조력해 큰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한 총재는 정 부원장, 윤 전 본부장과 공모해 지난 2022년 1월께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에게 윤석열 정부의 통일교 지원을 요청하며 정치자금 1억 원을 전달한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를 받는다. 같은 해 3∼4월 통일교 단체 자금 1억4400만 원을 국민의힘 소속 의원 등에게 쪼개기 후원한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도 있다. 이들은 그해 7월께 전 씨를 통해 김 여사에게 고가 목걸이와 샤넬백을 건네며 교단 현안을 청탁한 혐의(청탁금지법 위반)도 받는다. 한 총재와 정 부원장에게는 같은해 10월께 자신들의 카지노 원정도박과 관련한 수사 정보를 얻고 윤 전 본부장에게 증거인멸을 지시한 혐의(증거인멸교사)도 적용됐다. 한 총재는 지난 2022년 7월 네팔 국회의원에게 선거자금 10만 달러를, 세네갈 대통령에 선거자금 50만 달러를 각각 제공한 혐의도 적시됐다. right@newspim.com 2026-07-10 12:18
기사 번역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종목 추적기

S&P 500 기업 중 기사 내용이 영향을 줄 종목 추적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