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통제시스템 붕괴…줄서기·보신주의 확산
[뉴스핌=노희준 기자] KB국민은행이 휘청이고 있다. 도쿄지점 부당 대출과 카자흐스탄 센터크레디트은행(BCC) 부실 등 해외발 악재에 더해 본점에서 국민주택채권 위조로 90억원을 횡령하는 사건이 터졌다. 고객돈을 안전하게 관리해야 할 금융회사 직원이 사적 이익을 위해 고객돈을 가로챈 것이다.
금융당국에서는 은행의 내부통제 시스템 붕괴를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은행 안팎에서는 이에 앞서 'CEO리스크'와 그에 따른 줄서기, 보신주의가 구성원의 윤리의식과 조직문화를 좀먹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직이 실력으로 굴러가고 있다는 믿음이 깨졌다는 것이다.
KB국민은행 본사 |
한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한두 사람의 문제로 전체를 판단할 수 없지만, 내부통제 문제 이전에 고객이 믿고 맡긴 돈을 자신의 돈 이상으로 안전하게 관리한다는 은행원의 가장 기본적인 윤리의식이 무너진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이는 단순히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구성원의 전반적인 윤리의식 저하와 조직문화 퇴행의 증거라는 지적이 많다.
앞의 관계자는 "CEO리스크 하나로 변명하는 것은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을 부인하기 어렵다"며 "CEO리스크로 조직이 실력으로 승부하는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구성원간에 상당히 넓게 퍼져있어 기회가 되면 올바르지 못한 방법으로 자기 살길을 궁리하게 되는 게 현실인 것 같다"고 말했다.
KB금융그룹은 지주나 은행이나 경영진 교체기에 예외없이 외풍에 시달렸다. 황영기 전 KB금융 회장부터 어윤대 전 회장, 임영록 현 회장과 이건호 현 행장까지 낙하산 논란이 없었던 적이 없다.
주요 경영진 선임때마다 불어오는 외풍은 줄대기를 부르고 조직 누수 현장으로 이어졌다. 이어 새로운 CEO는 이를 다잡기 위한 큰 폭의 물갈이에 나섰고, 이는 임원들이 관련 업무를 제대로 꿰뚫지 못하면서 잠재적인 리스크 관리에 취약하게 하는 부작용을 부른다는 지적이다. 잦은 임원 교체 속에 일을 실제 하고 있는 실무자들이 제도의 허점을 악용하는 것을 제대로 관리감독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가령 이번 국민주택채권 횡령 사건의 경우, 횡령을 저지른 직원은 만기 이후 5년의 1종 국민주택채권 소멸시효직전까지 상환되지 않고 장롱 속에서 잠자고 있는 채권을 노렸다. 하지만 은행에서는 잠재적 리스크가 될 수 있는 이런 장기 미상환 채권이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않았다.
부실한 내부통제시스템 문제는 인사문제에서 파생된 구성원들의 도덕적 해이와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보신주의를 제어하지 못했다. 최근 국민은행은 기본적인 보고 체계조차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금감원은 지난 7일 시중은행 해외 현지법인 직원의 임기 보장 협조를 요청하는 공문을 국민은행에 보냈다. 하지만 국민은행은 이를 무시하고 원래 예정돼 있던 중국법인장과 부법인장 교체를 지난 12일에 그대로 단행했다. 이건호 행장은 금감원 공문에 대해 보고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BCC 부실 의혹과 관련해서도, BCC가 카자흐스탄 금융당국으로부터 외환업무 1개월 정지를 받았을 때도 민병덕 전 행장과 이사회는 이를 보고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은행은 허위보고도 서슴지 않았다. 보증부대출 부당 이자 수취에 대해 당초 55억원을 환급한다고 했지만 최근 10억여원으로 줄여 보고했다.
KB그룹 한 관계자는 "전반적으로 조직원들의 로열티가 상당히 떨어져 있는 것 같다"며 "어느날 밖에서 사람이 날아오고, 의외의 사람이 상사로 내려오면 '내가 열심히 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조직에 헌신한다는 사람들이 저지를 수 있는 일이 아니다"고 털어놨다.
[뉴스핌 Newspim] 노희준 기자 (gurazip@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