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충전하고 노후준비하고 비위적발하고 겸손해지고
전국에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가운데 여름휴가가 한창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회장 박병원)가 최근 전국 421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5년 하계휴가 실태조사'에 따르면 올해 여름휴가 일수는 평균 4.6일로 나타났다. 지난해 4.2일에 비해 0.4일 증가했다. 대기업이 4.8일, 중소기업이 4.5일로 전년보다 대기업은 0.1일, 중소기업은 0.5일 증가했다.
특이한 점은 휴가 일수와 경기의 상관관계다. 여름휴가 일수가 지난해보다 증가한 기업을 대상으로 이유를 묻자 '경제 불확실성 증대로 인한 생산량 감축'이라는 응답이 42.9%로 가장 많았다. '근로자 복지 확대'를 위해 휴가 일수를 늘렸다는 응답은 25.7%에 불과했다.
경제가 위기일수록 생산량을 감축하기 위해 여름휴가가 늘어난다는 것은 실제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2004년 주40시간제 도입 이후 감소하던 여름휴가 일수는 2008년 3.9일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경기가 위축되자 2009년 4.4일로 증가했다. 이후 감소 추세로 돌아섰다가 경제 여건이 악화되면서 2013년 4.1일 이후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한국의 여름휴가는 아직 후진국형이라는 방증이다.
유럽으로 가보자. '바캉스의 천국'이라는 프랑스에선 최소 5주간(평일 기준으로 25일)의 의무 유급휴가제도를 실시중이다. 바캉스는 라틴어 바카티오(vacatio)에서 유래한 단어로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라는 뜻이다.
'세계 여행의 챔피언'으로 불리는 독일도 비슷하다. 독일 노동법(Arbeitsrecht)에 따르면 주5일 근무자는 최소 20일간의 휴가를 법적으로 보장 받는다. 최소란 말은 어떤 계약조건하에서도 이보다는 줄일 수 없다는 '법적 최소'를 의미하기에 대부분 연간 5~6주 정도의 휴가를 누린다.
이처럼 한국이든 유럽이든 여름휴가는 직장인들에게 1년을 기다리게 하는 재충전의 시간이다. 오죽하면 유럽인들이 "1년의 반은 휴가계획을 짜는 데 보내고, 나머지 반은 휴가 다녀온 이야기들을 나누는 데 소비한다"고 하겠는가.
그런데 지난달 31일 여름휴가를 앞두고 있는 최상목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이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여름휴가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재밌는 분석을 내놨다.
프랑스와 미국에서 근무한 경험을 갖고 있는 최 비서관은 여름휴가는 노동자는 물론, 사용자에게도 꼭 필요한 제도라며 네 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째 여름휴가는 말 그대로 리프레시(재충전)를 위해 꼭 필요한 시간이다.
둘째 프랑스에서 만난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여름휴가는 은퇴 후 살 곳을 찾기 위한 준비과정이다. 실제로 은퇴 후 휴가 때 다녀온 곳에 가서 사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셋째 기업 내 비위사원 적발 등 내부통제구조(internal control system)를 위해 필요하다. 어떤 사람이 맡고 있는 업무에 대한 적확한 감시는 그 사람이 자리를 비웠을 때 제대로 할 수 있다. 공금횡령 등의 비위를 저지른 사람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자신의 비리를 감추기 위해 대부분 휴가도 가지 않고 일년 내내 자기 자리를 지키는 '성실형'이 많다는 것이다. 회사 입장에서 직원들의 비위사실을 제대로 감시하기 위해서도 여름휴가는 꼭 필요하다.
넷째 긴 휴가를 다녀오면 사람들은 대부분 겸손해진다. "내가 없으면 안돼"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며칠, 혹은 몇 주간의 휴가를 다녀와도 조직이 아무 문제없이 돌아가는 것을 보고나면 "아, 내가 아무 것도 아니었구나!"란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말만 들어도 설레는 여름휴가, 보내고 가야 할 이유가 또 하나 늘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뉴스핌 Newspim] 이영태 선임기자 (medialyt@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