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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태칼럼] 증오와 혐오를 벗어나야 한국이 산다

기사입력 : 2015년07월09일 10:41

최종수정 : 2015년08월27일 18:18

박근혜 대통령과 유승민 원내대표의 ‘블랙코미디’ 관전법

1. 20여 년 전 독일에서 유학할 때의 일이다. ‘통일과 언론’을 주제로 동서독 통일과 남북관계를 비교하며 언론의 역할을 조명하는 졸업논문을 쓰고 있었다. 독일의 분단과 통일 과정에서 발생했던 사건과 이슈들을 정리하고 보수를 대표하는 일간지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FAZ)이 어떤 관점에서 동서독 관계를 보도했는지를 분석하는 논문이었다.

초고를 마친 후 당시 필자가 프리랜서 기자로 일하던 지역일간지 베스트팰리쉐룬트샤우(Westfaelische Rundschau·WR) 동료 기자에게 감수를 부탁했다. 어설픈 독일어로 쓴 논문이니 고칠 문장이나 표현이 많았지만 그래도 머릿속에 또렷하게 남는 단어가 하나 있다.

필자가 독일의 민족주의적 성향을 표현하기 위해 선택한 national(나치오날)이라는 단어다. 독일 친구는 “이 단어는 과거에는 민족주의를 표현하는 말로 쓰였지만 히틀러 이후에는 나치(Nationalsozialistisch)를 연상시키는 표현이라 국가대표 등 중립적인 용도로만 쓰이고 민족주의적인 의미로는 기사나 논문 등 공적영역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금기어(禁忌語)”라며 “대신에 nationalistisch(나치오날리스티쉬) 혹은 national orientiert(나치오날 오리엔티어트)라는 말로 대체하라”고 충고했다.

직역하자면 national은 같은 철자의 영어 단어와 비슷한 의미이지만 nationalistisch는 ‘민족주의적 성향을 지닌’, national orientiert는 ‘민족주의적 방향성을 가진’이란 뜻이다.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나치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멀쩡한 단어를 사장시키고 길고 우회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영국 국회의사당(하원)의 스워드라인.<출처=영국 의회 홈페이지>
2. ‘신사의 나라’ 영국 의회에도 금기어가 있다. 동료의원들에게 바보 바리새인 악당 위선자 비겁자 강아지 돼지 반역자 등의 말을 써선 안 된다. 특히 ‘거짓말쟁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경우 결투를 각오해야 한다. 금기어를 사용할 경우 의장으로부터 즉각 취소, 사과, 퇴장명령 등의 제재가 가해진다.

기사 출신 의원들이 많았던 영국 의회에서 상대방의 명예를 훼손하는 표현으로 의원들 사이에 생사결(生死決)이 벌어지고 이로 인해 개회나 표결에 필요한 정족수를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자 모욕감을 주는 단어들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금기어로 지정한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은 ‘거짓말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못하자 “명예로운 의원님의 발언에는 ‘용어상 부정확함’이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라는 말로 상대를 우회 공격하기도 했다.

‘빅벤’으로 유명한 영국 국회의사당(하원)에는 지금도 의장석을 두고 여야가 마주앉는 자리의 한 가운데 의원들의 칼부림을 막기 위한 ‘스워드라인(Sword line·검선)’이 두 줄 그려져 있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8일 ‘드디어’ 사퇴했다. 지난달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 여야 합의를 이끌어낸 유 원내대표를 겨냥해 ‘구태정치’에다 패권주의와 줄 세우기 정치를 양산하는 ‘배신의 정치’라는 증오의 독설을 쏟아낸 지 13일 만이다.

한국 사회와 세계 경제를 패닉상태로 몰아넣고 있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와 그렉시트(Grexit·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사태가 한창 진행중인 상황에서 국정을 책임진 대통령과 여당 원내대표가 연출한 ‘블랙코미디’이자 ‘막장드라마’의 결론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 <사진=청와대·뉴시스>
정치란 원래 상대방에 대한 인정과 타협을 전제로 한 공적영역이라든가, 입법·사법·행정이라는 삼권분립의 정신이 왜 필요한지, 현대 민주사회는 통치가 아닌 협치(거버넌스)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는 등의 민주주의 기본정신에 대한 담론의 공간을 여권 내부에서 만들어진 ‘증오의 블랙홀’이 삼켜버린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증오의 정치는 꽤 긴 역사를 갖고 있다. 1945년 해방공간에서 움트기 시작한 좌우 이념대립은 6·25전쟁이란 민족상잔의 비극으로 귀결됐고 보수와 진보의 건전한 정책대결은 사라진 채 지역과 이념을 기반으로 한 ‘종북좌빨’과 ‘보수꼴통’만 남겼다.

대통령직선제가 부활한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우리가 남이가’로 대변되는 한국 사회의 패거리 정치는 ‘승자독식’ 문화로 굳어졌다. 과정이야 어떻든 선거만 이기면 된다는 ‘증오와 혐오의 정치’가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 발전을 가로막는 암적 존재로 자리 잡은 것이다.

과거에는 그나마 선거판에서만 볼 수 있었던 증오와 혐오는 이제 광화문이나 서울시청광장 등 오프라인은 물론 온라인까지 넘나들며 지평을 확대하고 있다. 일간베스트(일베) 등의 사이트에서 표출된 다문화가정이나 외국인에 대한 혐오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정책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정치에 대한 증오와 혐오가 깊어질수록 무관심도 커진다는 점이다. 즉 혐오가 초래하는 정치 무관심과 불신, 폄하가 정치라는 공공영역을 국민들이 외면케 하고 일부 기득권이 쥐락펴락하는 ‘그들만의 리그’로 넘겨주는 결과를 초래한다.

민주주의 선진국이라는 독일과 영국이 금기어를 만들어 공공영역에서의 사용을 금한 이유는 증오와 혐오를 내포한 언어가 국가발전을 저해하는 장애물임을 깨달았기 때문은 아닐까.

옥스포드 유학생 출신 이승윤 씨와 소셜클라우딩 매체 '바이라인'을 창간한 다니엘 튜더 전 이코노미스트 한국특파원은 최근 펴낸 한국 정치 평론서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에서 “나쁜 정치인에게 정치에 무관심한 대중은 최고의 선물”이라고 규정했다.

[뉴스핌 Newspim] 이영태 선임기자 (medialyt@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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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日 여행객 'K-쌀' 사간다 [세종=뉴스핌] 이정아 기자 = 일본 여행객이 한국을 방문, 한국 쌀을 직접 구매해 들고 나가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일본 내 쌀값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가운데 '밥맛 좋은 한국 쌀'이 대체제로 급부상하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3일 <뉴스핌>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상반기 동안 일본 여행객이 한국에서 직접 구매해 일본으로 들고 간 국산 쌀은 3만3694kg로 집계됐다. 일본은 지난 2018년부터 휴대식물 반출 시 수출국 검역증을 의무화한 나라로, 병해충과 기생식물 등 식물위생 문제에 매우 엄격하다. 특히 쌀처럼 가공되지 않은 곡류는 검역 과정이 매우 까다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여행객들의 한국산 쌀 열풍은 지속됐다. 지난해 한 해 동안 일본 여행객이 반출한 국산 쌀은 1310kg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상반기에만 무려 25배 이상 급증했다. 같은 기간(2024년 1~6월)으로 비교하면 작년 106kg에서 올해 3만3694kg로 약 318배 증가한 셈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일본 여행객들의 '쌀 쇼핑'이 열풍을 불면서 관련 문의가 급증했다"며 "한국쌀이 일본쌀에 비해 맛과 품질이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인식이 생기면서 반출되는 양도 많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쌀을 화물로 탁송하는 사례도 동반 상승했다. 올해 상반기 기준 화물검역을 통해 일본으로 수출된 국산 쌀은 43만1020kg에 달한다. 지난해 화물 검역 실적이 1.2kg에 그쳤던 것과 비교하면 폭증 상태다. 업계에서는 이번 흐름이 국산 쌀에 대한 일시적 특수로 끝나지 않고 국내에서 정체된 쌀 소비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임정빈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는 "일본에서 쌀 가격이 두 배 이상 올랐으니 한국에 와서라도 쌀을 구매하는 여행객이 늘어난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다만 일본의 쌀 관세율이 매우 높기 때문에 한국 쌀의 가격만 보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국산 쌀의 품질이 높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도 합격점이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영종도=뉴스핌] 윤창빈 기자 = 11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에 중국발 여행객들이 입국하고 있다. 2023.03.11 pangbin@newspim.com 정부 역시 이같은 수요에 대응해 일본 관광객을 대상으로 검역제도 안내·홍보에 나서기로 했다. 현재는 농림축산검역본부를 통한 사전신청, 수출검역, 식물검역증 발급, 일본 통관까지 최소 3단계 이상이 요구된다. 다만 한국 쌀을 일본으로 반출할 때 한국에서 식물검역증을 발급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일본 관광객이 일본에 돌아가 쌀을 폐기하는 일이 생기면서 홍보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농식품부 고위 관계자는 "지난달 오사카 엑스포 현장 방문을 계기로 일본 농림수산성과 예방할 기회가 주어졌는데 그 자리에서 쌀 검역 문제가 논의됐다"며 "한국 정부는 일본 여행객이 애써 한국 쌀을 구매한 뒤 일본으로 돌아가 폐기하는 일이 없도록 제도 홍보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전했다. plum@newspim.com 2025-07-03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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