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라씨로
KYD 디데이

[ANDA칼럼] 주진형의 류(流)와 그를 위한 변명

기사입력 : 2015년10월13일 15:28

최종수정 : 2015년10월13일 16:43

바둑에는 류(流)가 있다. 바둑판에 드러나는 기풍이다. 기사 개인의 성격과 그마다 추구하는 바가 그대로 묻어난다.

기존 틀에 얽매이지 않고 모험을 감행하는 유형, 진흙탕 싸움을 두려워 않는 잡초형, 아무리 상대가 도발을 해도 묵묵히 자기 길만 가는 돌부처형 등등. 프로 바둑기사 조훈현씨는 이런 류를 일종의 자아(自我)라고 했다. 기사들이 바둑을 어떤 식(각자의 기풍이나 류)으로 둔다는 것은 세상을 어떤 식으로 살아가겠다는 자신만의 선언이란 의미다. 이 같은 류는 바둑판에만 있는 건 아니다. 한 가정을 끌어가는 가장이나 기업을 이끄는 CEO 등 리더에게 '자신만의 류'는 존재감을 드러내는 필수품이다.

최근 여의도 증권가에 가장 핫한 인물 중 하나가 주진형 한화투자증권 사장이다. 그는 2년 전 CEO로 선임된 후 ▲매도(Sell) 리포트 의무화 ▲주식 회전율(과당매매)의 엄격한 제한 ▲사내 편집국 설치 ▲파격적인 수수료 혁신 등 상당히 많은 도전과 개혁을 감행했다. 하나같이 바꾸기 어렵고 해묵은 업계 난제들을 자신만의 스타일(류)로 거침없이 풀어갔다. 그는 전략변화의 핵심은 고객이었다고 거듭 강조한다. 전술, 즉 바둑 기풍으로 보면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잡초형과 남들이 뭐라해도 자기 길만 가는 돌부처형의 조합이다. 오너나 임직원 눈치를 보는 보통 월급쟁이 CEO들은 좀처럼 취하기 어려운 시도였다.

안팎에서 그의 일방적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날선 비판이 쏟아졌다. 그래도 그의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과 추진력만큼은 인정해주자는 부류도 꽤 있었다.

그런 그가 심한 레임덕에 빠졌다. 임기가 반년 이상 남았음에도 그룹 오너가 차기 CEO를 내정한 탓이 컸다. 그룹과 잇따른 갈등의 결과다. 불만은 있었지만 대놓고 이를 토로하지 못했던 한화투자증권 임직원들도 주진형 퇴진에 대한 그룹의 암묵적 동의가 감지되자 집단 항명사태를 일으켰다.

이쯤되니 꼿꼿하던 주진형의 류도 살짝 흔들린다. 평소 언론을 극도로 기피해왔던 그가 갑자기 인터뷰를 자청(특정언론이긴 했지만)하며 그의 입장과 의도를 강하게 피력한 걸 보면 짐작 가능하다. 또 최근 국정감사에 나가 즉답을 피하긴 했지만 진작부터 그룹과 갈등의 불씨였던 주진형의 한화S&C(김승현 회장의 세 아들이 지분 100%를 보유한 회사) 계약 교체 검토건도 오너의 노여움을 샀다. 한국 재벌기업 문화상 오너 아킬레스건을 건드린 이는 계속 가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룹에선 "개가 주인을 물었다"는 말까지 공공연하게 나왔다. 그의 시한부 퇴진은 더 명백해졌다.

서울대와 존스홉킨스대, 삼성그룹과 우리금융지주, NH투자증권(전 우리투자증권) 핵심참모를 거치며 엘리트코스를 밟아온 주진형. 그를 만나고 경험했던 이들은 한결같이 그가 똑똑하다는 데 공감한다. 경제면 경제, 경영이면 경영 모두 이론과 논리 싸움에서 그를 당해낼 자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금융계 선배들과 원로들을 한명씩 논리로 깨면서 오만하게 그들을 지휘했던 우리금융 전략참모 시절 에피소드는 유명하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한국사회는 부지런하고 똑똑한 상사, 자신의 생각만을 상대에게 주입하는 상사보단 다소 부족해도 부하 직원들의 말을 들어줄줄 알고 이해하며 소통하는 상사를 원한다. 정부 요직에 누군가를 앉힐 때도, 며느리를 고를 때도 '똑똑함(능력)'보단 '현명함(융화)'이 우선이다. CEO로서의 정무적 능력도 필수다. 아마 이번 사태가 불거지면서 어느 기업 오너도 그를 CEO로 선임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러니 일각에선 동정론도 나온다. 그런데 재밌는 건 정작 주진형 자신은 개의치 않는 듯하다. 그의 독특한 류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개 행복이 돈이나 명예, 성공에서 온다고 믿는다. 하지만 진짜 행복은 단단한 자아에서 온다. 자아가 단단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남들의 시선이나 사회적 잣대에 휘둘리지 않고 신념대로 행동한다. 이런 자아, 자존감이 주진형에겐 아주 강하다. 이게 그의 독특한 류다. 
 
아쉬움은 남는다. 주진형이 자신의 경영비전을 100% 달성하겠다는 욕심만 버렸다면 어땠을까. 조금 더 현실적으로 그룹 및 경영진이나 임직원들과 소통하면서 일정부분 타협을 하며 자신의 비전을 풀어갔다면 100은 아니라도 50 이상, 최소 절반은 바뀌었을 것이다. 그럼 관행과 불신이 만연한 자본시장, 금융투자업계에 미력이나마 긍정적인 시그널과 동기부여가 됐을 것이다. 누구는 그에게 10년이란 시간만 주어졌다면 한화투자증권은 국내 최고의 실력을 갖춘, 정말 차별화된 증권사가 됐을 것이란 상상을 한다. 가정이지만 그럴 수도 있겠단 생각이 스치는 건 필자 뿐이 아닐 것 같다.

매년 신년사를 통해 '고객중심 경영' '고객만족 경영'을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반대의 행태를 보여온 상당수 증권사 CEO들과는 분명히 달랐던 주진형의 퇴진은 안타깝지만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고 본다. 하지만 오만과 독선이 지나쳤던 주진형의 류로는 세상, 아니 일개 증권사 하나도 바꾸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다만 그 같은 과감한 시도가 증권업계에 언제 다시 있을까 생각하면 안타깝긴 하다.

[뉴스핌 Newspim] 홍승훈 증권부장 (deerbear@newspim.com)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환율 한때 1480원대...2009년 3월이후 최고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달러/원 환율이 장중 1480원을 돌파하며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23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환전소 전광판에 환율이 나타나고 있다. 2024.12.27 mironj19@newspim.com   2024-12-27 12:56
사진
'모바일 주민증' 27일부터 시범 발급 [세종=뉴스핌] 김보영 기자 = 앞으로 17세 이상 국민 모두가 주민등록증을 스마트폰에 담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행정안전부는 오는 27일부터 전국민의 신분증인 '모바일 주민등록증'을 시범 발급한다고 26일 밝혔다.                             모바일 주민등록증= 행안부 제공2024.12.26 kboyu@newspim.com 행안부에 따르면, 안정적인 도입을 위해 먼저 세종특별자치시, 고양시 등 9개 지방자치단체에서 시범 발급을 해 시스템 안정성을 검증한 뒤 내년 1분기 중 전국에서 발급할 계획이다. 모바일 주민등록증은 주민등록법령에 따라 개인 스마트폰에 발급되는 법적 신분증으로, 기존 주민등록증을 소지한 모든 국민(최초 발급자 포함)이 신청할 수 있다. 모바일 주민등록증은 2021년부터 제공된 모바일 운전면허증, 국가보훈등록증, 재외국민 신원확인증에 이어 네 번째 추가되는 모바일 신분증이다. 행안부는 먼저 세종시, 전남 여수시, 전남 영암군, 강원 홍천군, 경기 고양시, 경남 거창군, 대전 서구, 대구 군위군, 울산 울주군 등 9개 지자체를 대상으로 모바일 주민등록증을 시범 발급하며, 이후 내년 1분기 중으로 전 국민에게 발급할 계획이다. 시범 발급 기간 동안 주민등록상 주소지가 해당 지역인 주민들은 읍·면·동 주민센터를 방문해 'IC주민등록증'을 휴대폰에 인식시키거나 'QR 발급' 방법으로 모바일 주민등록증을 신청할 수 있다. 전면 발급 시에는 정부24에서도 신청이 가능하며, 신청 시 6개월 이내의 사진을 제출해야 한다. QR 발급 방법은 사진 제출이 필요 없지만, 주민등록증 사진이 오래된 경우 모바일 신분증 앱에서 안면 인식이 어려울 수 있어 재발급 후 모바일 주민등록증 발급이 가능하다. 한편, 모바일 주민등록증은 블록체인과 암호화 기술을 적용하여 개인정보 유출 및 부정 사용을 방지하고 높은 보안성을 제공한다. 본인 스마트폰에만 발급되며, 분실 시에는 잠김 처리되어 도용을 막을 수 있다. 고기동 행안부 차관은 "1968년 주민등록증 도입 이후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변화가 이루어졌다"며 "이번 시범 발급을 통해 국민이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kboyu@newspim.com 2024-12-26 13:18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