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병원 ‘리스트’에 29개 업체 등장...내부규제 ‘실효성’ 논란
[뉴스핌=박예슬 기자] 최근 18억원 상당의 리베이트를 받은 혐의로 전주 J병원 이사장이 구속되면서 제약업계 리베이트 척결을 위한 자구책에 대한 실효성 논란이 나오고 있다. 이에 보다 강력한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견해와 그에 따른 업체들의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부딪히고 있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J병원 수사 대상에 ‘리스트’에 오른 29개 업체 이상이 줄줄이 거론되면서 대규모 ‘게이트’로 퍼질 조짐이 보이며 업계의 불안도 높아지고 있다.
이행명 한국제약협회 이사장이 지난달 26일 제3차 이사회에서 회원사들에게 불법 리베이트 근절을 요청하는 호소문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한국제약협회> |
해당 리스트에는 상위 10개사 이내에 드는 제약사를 포함한 유명 중견 제약사들도 다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국과 업계는 2010년대 들어 리베이트를 제공한 측과 받은 측 모두를 처벌하는 ‘쌍벌제’를 지속 도입하며 단속의 속도를 높여 왔다.
한국제약협회도 다음달 열릴 이사회에서 리베이트를 제공한 것으로 의심되는 업체 명단을 내부적으로 공개할 예정이다. 이밖에도 주요 제약사들은 내부적으로 공정거래 자율준수 프로그램(CP, Compliance Program)을 운영하는 등 노력해 왔다.
그런데 이번 J병원 사건과 같은 대규모의 리베이트건이 적발되면서 이 같은 업계 내부적인 노력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제약협회 명단 공개의 경우 이사사 CEO들을 중심으로 2~3개 업체만 공개키로 해 예상보다 업계에 미칠 영향이 적을 것으로 보인다. 일선 제약사들의 CP교육도 전반적인 분위기는 쇄신했더라도 오랫동안 이뤄진 영업 관행 전반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리베이트 쌍벌제를 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법기관의 처벌이 미온적이라 음성적 행위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리베이트 거래 액수가 ‘300만원’을 넘지 않으면 행정적 처분을 내릴 수 없다는 한계 때문에 다양한 ‘꼼수’들이 판친다는 것이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팀장은 “300만원 규정 때문에 검찰 조사에서 리베이트 거래 수준이 전부 ‘299만원’으로 나왔던 사례도 있다. 결국 처벌도 하지 못했다”며 “리베이트를 준 업체는 두 번 다시 업계에 발을 붙이지 못 할 만큼의 실질적이고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의약품 거래제도에 대한 개선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남 팀장은 “리베이트가 일어나는지 자체도 내부고발자가 나오지 않는 한 알기가 어려운 만큼 음성화되고 있다”며 “건강보험공단에서 약제비를 제약사에 일괄 지급하게 함으로써 약제비를 투명하게 거래토록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약제비 직불제는 지난 2001년 도입이 시도됐으나 의약사들의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한편, 제약업계는 또다시 불거진 리베이트 사건으로 인해 규제가 대폭 강화될 경우 영업뿐만 아니라 모처럼 불붙은 R&D 열풍까지 위축될 수 있다며 경계하는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볼 때 리베이트를 0%로 근절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수십 년간 계속해 온 리베이트를 사법적 처벌 강화로 단번에 일소시키려 한다면 그에 따른 수익 감소도 업계가 감수해야 할 부분”이라며 “급작스러운 처벌보다는 사회적 파장을 고려한 점진적인 변화가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다른 관계자는 “올초부터 검찰, 경찰, 공정위 등 다양한 기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조사를 벌이고 있어 업계가 위축된 상태”라며 “지난해 한미약품 ‘쾌거’ 분위기가 R&D 투자 및 공격적 마케팅으로 이어지지 못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뉴스핌 Newspim] 박예슬 기자 (ruthy@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