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박지원 기자] KBS 2TV 드라마 ‘반올림3’의 박이준부터 독립영화 ‘파수꾼’의 영준, SBS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의 광평대군, KBS 2TV 드라마 ‘천상의 약속’ 강태준까지…. 대중에게 서준영(29)은 이름 석 자보다 극중 캐릭터로 더 기억되는 배우다. 섭섭할 만도 한데 정작 본인은 개의치 않는다.
“사람들이 ‘와! 서준영이다’라며 단 번에 알아볼 때보다 ‘그 드라마(또는 영화)에 나왔던 사람인 줄 몰랐다’고 놀랄 때 더 기분이 좋아요. 캐릭터로 남는 다면 그걸로 만족해요. 어쩌면 이 말이 연기자에게는 최고의 찬사가 아닐까요?”
서준영은 지난 23일 종영한 KBS 2TV 저녁 일일드라마 ‘천상의 약속’에서 야망을 위해 사랑을 버리고, 성공을 위해 양심을 버린 강태준을 연기했다. 데뷔 후 처음 맡은 악역이라 각오도 남달랐다. 제작발표회 당시 그는 “시청자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개자식’으로 봤으면 좋겠다”는 거친 발언으로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처음부터 강태준이라는 인물을 단순한 악역이 아니라 답답하고 짜증나는 ‘찌질이’ 같은 모습으로 그리고 싶었어요. 더 과격하게 표현해서 강태준은 쓰레기, ‘준레기’라고요. 감독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캐릭터를 잡아갔는데, 이제와 돌아보니 잘 맞아 떨어진 것 같아요.”
극중 강태준은 ‘개천’ 출신이 지긋지긋해 17년의 사랑 나연(이유리)을 버리고, 세진(박하나)를 택한 인물. 하지만 회를 거듭하면서 나연과 세진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고구마 전개’로 시청자들의 답답함을 불러 일으켰다.
“저도 연기하면서 끙끙 앓았어요. 나연이를 버렸으면 미안해하지 말고 매몰차게 굴던가, 세진이를 택했으면 나연이의 복수를 완벽하게 막던가 해야 하는데 말이죠. 그래도 처음 목표했던, 지금까지와는 다른 성격의 악역을 만들어낸 것 같아 좋아요.”
감정신이 많은 탓에 고충도 따랐다. 6개월 간 우울하고 불안한 강태준으로 살아가면서 9kg이나 빠졌다.
“예민해지기 시작하면 식음을 전폐하는 스타일이에요. 마음이 불편하니까 음식이 안 들어가더라고요. 연기를 하고 나면 기분이 다운되기도 했지만, 강태준, 천상의 약속과 헤어지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요. 첫 악역이어서 그런지 애정이 듬뿍 가요.”
어둡고 서늘한 ‘핏빛 복수’를 그린 드라마였지만, 현장 분위기는 그 어떤 촬영장보다 화기애애했다. 그는 서준영은 이종원, 김혜리 선배님도 함께 하는 단체 카톡방이 있다며 휴대폰을 보여 주기도 했다.
“(박)하나 누나랑은 너무 친해서 가끔 친구 같은 느낌이 들어요. (송)종호 형이랑은 연기하면서 멱살을 잡았다가도 ‘컷’ 소리가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옷을 쫙쫙 펴주며 장난도 치고요. 이종원, 김혜리 선배님도 후배들이 어려워하지 않게 잘 받아주세요. 연기적으로도 많이 알려주시고요.”
지난 2005년 SBS 드라마 ‘건빵선생과 별사탕’으로 데뷔한 서준영은 지난 10여 년 동안 드라마, 영화 등 많은 작품을 통해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했다. 그럼에도 ‘싸이코패스’는 꼭 해보고 싶은 역할이다.
“과거 싸이코패스 역할을 한 적이 있는데 특별출연으로 한 회만 나간 거라 다 표현해 낼 수 없었어요. 그래서 저만의 방식으로 풀어내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서준영 만의 싸이코패스요.”
서준영은 스스로를 ‘다작 배우’라고 칭했다. 포털사이트 프로필에 적힌 작품은 자신이 출연한 것에 반도 안 된다는 것. 그는 단역은 물론 카메오까지 자신을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 갔다. 이건 자신과의 약속이다.
“‘반올림’ 시절에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어요. 광고도 찍고 스타가 된 줄 알았죠. 그런 저를 ‘마왕’(KBS 2TV) 박찬홍 감독님이 끌어 내려주셨죠. 박 감독님이 저한테 ‘너 임마. 배우가 돼야 해. 너는 양아치처럼 껄렁껄렁 하고 다니면 안 돼’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생각해보니 반올림 시절에는 마냥 행복하기만 했는데, 마왕 때는 뭔가 성취감이 생기더라고요. 그때부터 ‘나를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 가자’고 다짐했어요.”
얼마 전 서준영은 두 편의 드라마에 카메오로 출연했다. tvN 월화드라마 ‘또 오해영’에서는 전혜빈의 소개팅남으로, KBS 2TV 새 월화드라마 ‘뷰티풀 마인드’에서는 자해환자로 등장했다.
“‘또 오해영’은 ‘슈퍼대디 열’에서 함께 작업한 감독님 제안으로 출연했어요. ‘뷰티풀 마인드’에서는 다 때려 부수는 자해환자를 연기했는데 속이 후련하더라고요. ‘천상의 약속’에서 겪은 답답함을 그 촬영장에 가서 풀었다니까요.(웃음)”
‘올레TV 무스쇼2.0’ MC를 맡고 있는 서준영은 바쁜 시간을 쪼개 매주 3편의 영화를 보고 있다. 영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없지만, 시청자들에게 좋은 영화를 소개해주는 건 기분 좋은 일이란다.
“9개월이나 됐는데 아직 어색하고 미숙해요. 하지만 재밌어요. 영화를 보면서 궁금했던 점을 윤성호 감독님과 백은하 기자님께 물어보는데, 전 그냥 방청객인 것 같아요. 시청자를 대신해서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거라 생각합니다.”
‘천상의 약속’을 마치고 또 다른 작품을 준비 중인 서준영은 대중들의 칭찬도, 질타도 겸허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
“다들 악플도 관심이라고 하잖아요. 맞는 것 같아요. 저 역시 지나친 인신공격이나 가족들만 건들지 않는다면 어떤 악플이라도 괜찮아요. 물론 칭찬해 주시면 기분 좋게 받아들이고 힘을 내고요. 앞으로 더 열심히 할게요. 지켜봐주세요.”
서준영이 출연하는 KBS 2TV 저녁 일일 드라마 ‘천상의 약속’은 23일 종영했다.
[뉴스핌 Newspim] 박지원 기자 (pjw@newspim.com)·이형석 사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