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양진영 기자·사진 이형석 기자] 테너 이정원과 소프라노 오희진이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로 프랑스 혁명 가운데에 핀 숭고한 사랑을 노래한다. 가장 극적인 삶을 살았던 실존 인물 안드레아 셰니아와 그의 연인 맏달레나의 이야기가 9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펼쳐진다.
이정원과 오희진은 뉴스핌과 인터뷰에서 오는 9월23일 막을 올리는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에 참여하게 된 소감과 각오, 이 작품이 갖는 의미들에 관해 얘기했다. 죽음과 희생까지도 감수하는 숭고한 사랑을 그린 이 오페라를 앞두고, 결코 쉽지 않은 작품이지만 어느 때보다 의미있는 작업으로 만들고픈 의지를 드러냈다.
움베르토 조르다노(Umberto Giordano)의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Andrea Chénier)'는 셰니에라는 실존인물의 삶에 가상의 인물들을 더해 창작한 사실주의 오페라의 대표작. 프랑스 대혁명을 시대적 배경으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드라마틱한 주인공의 이야기와 운명의 연인 맏달레나의 죽음까지도 포용하는 인간 본연의 사랑을 노래한다.
"오페라는 보통 타이틀이 주인공 이름인 경우가 많고, 타이틀 중엔 여성 캐릭터가 대부분을 차지하죠. 그래서 대부분은 소프라노가 타이틀롤이에요. 움베르토 조르다노의 안드레아 셰니에는 드문 남자 주연의 오페라죠. 다른 작품에 비해 자주 올리지 않는 이유는, 잘 하는 테너를 찾기 어려워서예요. 직접 부르면서도 '결코 쉽지 않다'는 생각을 매번 해요. 드라마틱한 상황이 연속되면서도, 시적인 내용의 가사가 정말 많죠. 또 조르다노 특유의 마지막에 모두 다 터뜨리고, 태워버리는 듯한 극적인 마무리가 아주 인상적입니다." (이정원)
"주인공인 셰니에는 실존 인물이지만 여자 주역인 맏달레나는 가공 인물이에요. 저는 처음 해보는 작품인데, 정말 어렵기도 하고 아리아도 굉장히 고난도라 엄두도 못냈죠. 이번에 좋은 기회를 얻게 돼서 생각보다 빨리 이 역할의 데뷔를 하게 됐어요. 맏달레나는 순수한 인간 자체예요. 1막에서 철없고 순수하고 셰니에에게 장난스럽게 다가가지만, 혁명을 통해 가족도 엄마도 모두 잃어버리죠. 역경을 통해서 결국은 성숙한 사랑에까지 이르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캐릭터라고 느꼈어요." (오희진)
특히 오희진은 맏달레나를 흰색으로 표현하며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동시에 결국은 인간이 가져야할 본연의 가치인 사랑을 가장 잘 드러내는 캐릭터라고 덧붙였다. 그가 말하는 흰색의 의미는 순결과 순수, 또 숭고함과 희생을 포함하는 넓은 개념이다.
"맏달레나는 정말 화이트의 느낌이에요. 흰색의 순결, 순수의 이미지와 숭고함, 희생까지도 아우르는, 거기에 딱 맞아떨어지는 여자가 아닌가 해요. 오페라에서 여주인공들은 대부분 사랑하면 목숨 바쳐 뜨겁게 사랑하는 경우가 많아요. 트라비아타도 그렇고 나비부인도요. 맏달레나가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아이같은 모습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죽음 앞으로 걸어가는, 거기까지 이르는 성장을 표현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연출자 선생님도 결국은 인간들이 가져야할 모습은 사랑이라고 하셨는데 그걸 완성시키는 역할이 바로 맏달레나가 아닐까 해요." (오희진)
두 사람 모두 어려운 작품이라고 입을 모았기에, 그럼에도 이 오페라를 선택하게 한 매력은 무엇인지를 물었다. 조금은 예상했던 대로 누구나 하고 싶은 작품이고, 또 한국에서 이런 좋은 작품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특히 테너의 역할이 강조되는 작품이기에 이정원의 각오는 좀 더 남달랐다.
"어려운 작품이지만 테너로서 누구나 '안드레아 셰니에'의 아름다운 아리아를 만나고 싶어하죠. 극적인 요소가 굉장히 많고 모든 테너들이 꿈꾸는 오페라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어요. 타이틀이 주인공이고, 오페라를 이끌어가는 주역인 동시에 주옥같은 아리아를 부를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니까요. 만만치는 않지만 반드시 얻고 싶은, 반드시 해내고 싶은 작품일 수밖에요. 물론 때때로 자신의 성향과 완전히 반대되는 작품을 찾는 경향이 있긴 해요. 한계를 넘고 싶죠. 하지만 진정한 예술인이라면 자신에게 어울리는 것에 열중하는 용기도 필요하다고 봐요." (이정원)
"생각보다 빨리 기회가 왔다 뿐이지 꼭 해보고 싶은 역할 중에 하나였죠. 또 한국은 이렇게 좋은 작품이 자주 올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 '이 때가 기회다' 했어요. 맏달레나의 아리아를 정말 좋아하는데도, 기존에는 너무 어려워서 불러볼 엄두를 못냈어요. 유학할 때도 선생님들이 좀 더 감정이 성숙하고 무르익은 다음에 하라고도 하셨고요. 미뤄오던 차에 이번에 연습을 시작하면서 '아 정말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요. 한계나 이런 것도 다 넘어서서, 멋진 데뷔가 되기를 바라죠." (오희진)
이정원은 23일부터 24일, 오희진은 24일과 25일까지 총 3일간 4회 열리는 공연 중 각자 2회씩을 책임진다. 또 다른 테너 국윤종과 소프라노 김유섬이 안드레아 셰니에와 맏달레나로 무대에 오른다. 직접 노래와 연기를 담당하는 상대에 따라 달라질 캐릭터들. 이정원의 셰니에와 오희진의 맏달레나는 어떤 모습일지 그 포인트를 살짝 알아봤다.
"같은 작품이지만 각자 좋아하는 파트가 다를 수 있죠. 개인적으로는 맏달레나와 마지막 아리아를 부를 때 가사나 멜로디가 굉장히 마음에 와닿아요. 별 거 아니지만 그 뜻을 알고 부르면 아름다운 사랑을 느낄 수 있고, 마지막 아리아에 조금 더 집중하려 해요. 다른 오페라 전체에 나오는 고음이 그 이중창에 다 나오는 수준이라, 리스크가 크긴 하지만 극적이고 너무나 아름답죠. 그걸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이 오페라의 표현과 마무리를 완성지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11년 전에 셰니에를 했었는데 이젠 나이도 더 먹었고 연륜있는 해석을 하게 돼요. 더 극과 셰니에란 역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있고, 비교해보는 습관도 생겼죠. 아마 저는 가장 극적인 셰니에가 될 거예요." (이정원)
"오페라를 할 때마다 시간이 가고 무대에서 많은 걸 배우면서 극에 더 몰입하고 집중하게 돼요. 그래야만 노래도 쉬워지고 효과가 있고 객석에 가 닿는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같이 호흡한다는 느낌이 든달까요. 정말 슬플 때는 관객을 정말 눈물 흘리게 만들어줄 캐릭터로 표현하고 싶어요. 우리의 재료는 노래니까 그것도 잘해야겠죠.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극적인 감동을 위해 그 역할 자체가 되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어떻게 표현하기보다 그 자체가 되는 거죠. 물론 어렵지만,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오희진)
두 사람은 '안드레아 셰니에'가 혁명 중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고려할 때, 현대적 감성이나 대중에게 빠르게 와닿지 않으리란 걸 알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단두대라도 향하는 맏달레나의 사랑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 시대가 변했기에 가치가 변했지만, 그때 그런 시절과 사랑을 떠올릴 수 있다는 자체가 큰 의미가 될 듯했다.
"맏달레나와 셰니에가 죽기 직전의 이중창이 공연의 하이라이트가 될 거예요. 살짝 공감이 안됐던 게 죽음을 앞에 두고 이렇게 희망과 맞바꾸는 듯한 노래라니. 나는 과연 열정과 모든 것을 터뜨리고 단두대로 향할 수 있을까 싶었죠. 맏달레나는 사실 죽을 필요가 없는데 다른 여자와 옷을 바꿔입고 함께 죽으면서까지 사랑을 이루죠. 일면 이해가 안되다가도 그게 너무나 감동을 안겨주는 아이러니가 있죠. 그게 또 인생사 아닐까 싶어요." (오희진)
"지금 생각하면 그런 사람이 있을까 싶겠죠. 하지만 음악에 정말로 몰입되고 오페라에서 만나면 또 다른 공감을 할 수 있어요. 오히려 '난 저렇게 안해'라고 생각한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도 오페라는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사랑이 사람을 그렇게 만들죠. 순수해지고, 사랑하고 있어야 이 사람이 무슨 짓을 해도 예뻐할 수 있고 용서할 수 있고, 함께 나아갈 수 있는 거니까요. 지금은 그런 사랑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데서 더 가치가 있는 오페라가 아닐까요. 인간 본연의 감정을 톡 건드려주고 얘기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거예요." (이정원)
이번엔 '안드레아 셰니에'로 무대에 오르지만, 이정원과 오희진은 이미 많은 오페라에 출연한 베테랑이다. 그간의 작품 중 대표작이라 할 만한, 애착이 가는 작품을 자연스레 묻게 됐다. 두 배우의 오페라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샘솟는 가운데, 오는 23일 세종문화회관에서 꽃피울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기대하는 관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하다보면 정말 무르익는 작품이 있죠. 처음에 '아이다'가 많이 어려웠는데 하면 할 수록 아리아나, 메조소프라노와 대립, 절제 이런 면들이 너무 재밌었죠. 무대도 화려하고 사람도 많이 나오고 말도 등장하고, 표현할 게 많은 그랜드 오페라거든요. 음악으로만 들어도 정말 애정이 많이 가고, 할 수록 재밌는 작품이에요. 뭔가 더 잘하고 싶고 집중해서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죠." (이정원)
"기존 작품 중엔 '나비부인'이 가장 인상깊었죠.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절절함이 있거든요. 굉장히 어렵기도 해요. 테크닉, 극적인 것, 분량 모두 고난이도에 죽을 때까지 노래를 해야하죠. 정말 제가 울면서 부를 수밖에 없는 아름다운 오페라예요. 또 하라고 해도 '잘할 수 있을까' 두려움이 들지만 단연코 소프라노에게 최고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참, '안드레아 셰니에'를 보러 오시는 많은 분들이 프랑스 혁명에 대해 이미 아시겠지만 시대적 배경과 실존 인물 셰니에를 한번쯤 찾아보고 오시면 훨씬 몰입이 쉬울 거란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오희진)
[뉴스핌 Newspim] 글 양진영 기자 (jyyang@newspim.com) · 사진 이형석 기자 (leehs@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