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리더, 자발적 참여의 '공간'만 만들어 줄뿐
無선동, 문재인 자유발언 신청 거절당하기도
無폭력, 경찰 연행자 '0'...오롯 시민만의 축제
[뉴스핌=김범준 기자] 지난 3일 6차 범국민행동 촛불집회는 서울 광화문 광장 일대에만 170만명(주최 측 추산), 전국 232만명이 운집하며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또 헌정사상 처음으로 청와대 100m 앞까지 행진이 허용됐다. 그리고 지난 10월 29일 1차 촛불집회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40일간의 긴 시간동안 '평화 촛불'의 불길을 계속 이어오고 있다.
지난 10월 29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처음 3만개로 시작한 '촛불'은, 지난달 12일 3차 집회에서 처음으로 100만개를 넘어섰고, 26일 서울에서만 150만개(전국 190만개)의 촛불로 번져나갔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의 3차 대국민 담화 직후인 이번달 3일 6차 집회에는 서울 170만개(전국 232만개)의 '작은 횃불'이 들렸다.
이번 집회는 "민주주의의 역사를 새로 썼다" 등 성공적인 집회로 평가 받는다. 성공요인은 조직력도, 리더십도, 전투력도 아니었다. 집회를 이끄는 리더가 없고, 선동도 없고, 폭력도 없는 '3무(無)' 촛불이었다. 3무 촛불은 오롯이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평화적인 방법으로 더욱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그래서 위대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6차 촛불집회가 열린 3일 광화문광장에서 출발한 시위대가 촛불을 들고 청와대 방면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김학선 사진기자> |
◆無 리더, 자발적 참여의 '공간'만 만들어 줄뿐
예전에는 '시위'라고 하면 '리더'가 이끄는 '가두행진'과 '화염병 투척' 등 물리적 충돌이 그려졌지만 요즘은 '촛불'로 대표된다.
물론, 집회를 이끄는 단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민주노총 등 1503개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해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하 퇴진행동)'을 꾸리고 촛불 집회를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특정 단체 혹은 리더가 집회를 조직하고 이끄는 구조는 아니다. 퇴진행동 측은 그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집회에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줄뿐이다.
시민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자발적으로 광장으로 모였다. 집회에 혼자 참여하는 사람들을 위한 '혼참러 오픈 채팅방'과 이를 보다 확장한 '학생채널'도 있었다. 지난 집회 중에 눈에 띄었던 '중고생연대' 역시 SNS를 통해 자발적으로 확산되고 참여를 유도해 거리로 나왔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사진=학생채널> |
퇴진행동에 참여 중인 김주호(31) 청년참여연대 간사는 "예전에는 오피니언 리더 혹은 단체가 조직적으로 이끌었다면, 최근에는 평범한 시민들이 직접 주도하고 자유롭게 참여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또한 "이번 정권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인 '소통에 대한 목마름'이 시민들을 광장으로 이끈 것 같다"고 덧붙였다.
행사 운영비 역시 시민 후원금과 현장 모금으로 대부분 꾸려진다고 한다. 퇴진행동 측은 지난 한 달간 모인 후원금은 약 6억2000만원이고, 이 중 5차 집회까지 5억1000만원을 지출했다고 밝혔다.
오는 10일 7차 집회를 위해 자발적으로 모금을 하는 이색 풍경도 연출됐고, 시민들의 자발적 청소로 집회 장소는 깨끗하게 정리된다.
또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따뜻한 음료와 핫팩, 양초 등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모습도 곳곳에 눈에 띄었다. 청와대 근방 서울 통인동에 오랫동안 위치한 커피공방은 가게 앞을 지나는 집회 참여자들을 위해 따뜻한 차를 따라 주었다.
과거 주최 측 특정 리더들이 이끄는 대로 따라 가던 방식에서 탈피해, 이제는 참여 시민들이 주권자의 정당한 목소리를 내며 주체적으로 시위 방식과 분위기를 주도하는 '상호교류형(interactive) 집회·시위'문화가 정착되고 있다.
◆無 선동, 문재인 자유발언 신청 거절당하기도
이번 6차례의 촛불집회에서 특정한 정치적 목적이나 과격 시위로 선동하는 모습 또한 찾아볼 수 없었다. 그간의 촛불집회에 얼굴을 내민 야권 정치인들도 다수 있었지만, 집회를 이용해 정당 대회로 변질시키는 구태의 모습은 없었다. 광장에 나온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촛불을 들고, 자리를 지키고, 자유발언대에 오르는 등 일반 시민의 자격으로서 집회에 참여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지난달 19일 광주 금남로 촛불대회와 지난 3일 서울 광화문에서 진행된 6차 촛불집회에 각각 참석했다. 하지만 시장의 지위를 내려놓고 일반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순서를 기다려 자유발언대에 올랐다. 이 시장 특유의 시원시원한 화법으로, 청중들의 "사이다 연설이었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같은 날 광주 금남로에서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촛불집회에 참여해 2분간 자유발언을 신청했다. 하지만 국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절차 연기에 따른 야유가 예상돼 주최 측으로부터 거절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주변에서 "문재인"을 외치며 자유발언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고, 결국 주최 측은 자유발언 대신 인터뷰의 형식으로 문 전 대표가 발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無 폭력, 경찰 연행자 '0'
지난 3일 6차 범국민행동 촛불집회는 서울 170만(전국 232만)명이라는 헌정 사상 최대규모의 시위 인파가 모였는데도, 연행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안전사고와 부상자도 없었다.
또 이날 헌정 사상 최초로 청와대 100m 앞까지 행진을 허용함에 따라 시위대 코 앞에 청와대의 모습이 들어왔으나 시민들은 흥분하지 않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법원이 허용한 시간인 오후 5시 30분이 지나자 경찰의 해산 명령 방송이 흘러나왔지만 효자치안센터 부근에 모인 시민들은 계속해서 자리를 지켰다.
그렇지만 물리적 충돌은 없었다. 경찰은 강제 해산보다 대화와 안내 방송을 통해 자발적이고 안전한 해산을 유도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경찰을 향해 비폭력 저항의 상징으로 흰 국화꽃을 던졌고, 경찰 버스 차벽 파손보다는 '꽃 스티커'를 붙였다.
비선실세 최순실의 국정농단 규탄과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4차 촛불집회가 열린 19일 밤 서울 종로구 내자동교차로 인근에 설치된 경찰차벽에 꽃무늬 스티커가 붙어 있다. <사진=김학선 사진기자> |
밤 11시쯤 한 시민이 저체온증으로 쓰러졌을 때, 주변에 있던 시민들은 외투를 벗어 덮어주고 경찰들은 핫팩을 건네며 응급환자를 신속하게 대응하는 등 따뜻한 한마음을 가지기도 했었다.
근처에서 박사모(박근혜 지지 모임) 등의 시민단체가 맞불집회를 열었지만 충돌은커녕 한 명의 연행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6주 동안 이어 온 평화 촛불의 기조는 찬 바람과 뜨거운 함성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성난 분노의 '투쟁'이 아닌 퍼포먼스와 패러디, 공연과 연설 등 재미 요소가 집회 문화로 자리잡혔다. 절제된 분노였다.
청와대의 비아그라 대량 구매 사실이 밝혀지자 이를 패러디 한 '청와대를 비우그라'와 같은 팻말이 등장하기도 했다. 광화문역은 이름이 아예 '박근혜즉각퇴진역'으로 바뀌기도 했다.
'1분 소등' 퍼포먼스는 장관이다. 지난달 26일에 이어 이달 3일 6차 집회에서도 진행됐다. 집회에 참여한 군중들은 신호에 맞춰 일제히 촛불을 끄고 박수를 쳤으며, 집회에 참여하지 못한 가정과 사무실 등 건물에서도 1분 소등이 잇따랐다. 실제 전국적으로 이 시각 불꺼진 가정은 눈에 띄게 늘었다. 거리의 운전자들은 1분 경적을 울렸다.
가정 소등 행사에 참여한 이모(57·서울 서대문구)씨는 "일 때문에 집회에 참여할 수 없었지만, 아쉬운대로 일부러 시간을 맞춰 집에 들어와 가정 소등 행사에 동참했다"고 밝혔다.
시민 자유발언 역시 집회의 대표 행사로 자리잡혔다. 지난달 26일 5차 집회 당시 청와대 200m 반경 지점인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 첫 자유발언자 이해남(인제 원통고3) 군은 "지난 집회 때 자유발언하려고 대기했으나 못해서 매우 아쉬웠다. 그래서 오늘 일찍 나와서 신청했고 영광의 첫 발언자가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미국의 CNN은 "대한민국에서는 대통령에 대한 하야 요구라는 심각한 상황에서도 집회 참가자들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최고 권력자가 무너뜨린 국격을 시민들이 쌓고 있는 것이다.
오는 9일 국회의 탄핵안 표결 예정일 하루 뒤인 10일 역시 7차 범국민행동 촛불집회가 예정돼 있다. 탄핵에 대한 뜨거운 관심만큼, 지난 3일 역대 최대 기록인 전국 232만명을 갈아치울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뉴스핌 Newspim] 김범준 기자 (nunc@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