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지은 기자] 대중의 인식에 깊이 박혀 있는 이미지와 살짝 다르다. 동갑내기 박정민, 문근영(29)이 연기하는 로미오와 줄리엣은 보기만 해도 눈물이 흐를 정도는 아니다. 조금은 유쾌하면서, 가슴 절절하기보단 풋풋하면서 아련한 사랑을 표현한다.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맞아 ‘로미오와 줄리엣’이 연극으로 재탄생했다. 이야기의 큰 줄기는 원작과 동일하다. 서로 원수인 가문에서 태어나 첫 눈에 반해 불꽃같은 사랑을 나누는 로미오와 줄리엣. 그리고 사소한 오해로 인해 비극을 맞이하는 내용이다. 워낙 대중화된 작품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신경을 쓴 것은 캐릭터 해석이다.
“원작을 놓고 정말 많은 공부를 했어요. 원작을 살리려고 한 것이 첫 번째 의도였고요. 산문체, 문어체가 워낙 많다보니까 이 작품에 있는 캐릭터들의 대사를 어떻게 이해해서 그려야 하는지 감이 잘 안 오더라고요. 저희는 관객들에게 그림을 그려서 보여줘야 하잖아요. 그래서 (박)정민이랑 모든 책을 다 펼쳐놓고 공부했죠.” (문근영)
“처음에 (문)근영이가 캐스팅됐다고 했을 때, 진짜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제 인생에 로미오라는 인물을 만날 거라고 감히 꿈도 못 꾸고 있었거든요. 하하. 사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여러 가지 형태로 무대에 올랐는데, 저는 제 식대로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박정민)
수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생각했을 때 떠올리는 것은 ‘비극적인 사랑’이다. 이러한 큰 틀을 두고 주변을 조금씩 고쳐가는 것은 한정적이고 어렵다. 이번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도 원작이 조금은 걸림돌이 돼 버렸다.
“원작을 보면 내용이 디테일하게 이어지지가 않아요. 극을 이끌어가는 큰 사건들이 갑자기 일어나죠. 그 행간들을 배우들이 적절하게 찾아서 가야하는데 굉장히 어려웠어요. 배우들이 모여서 이렇게 많은 얘기를 나눈 게 이번이 처음이에요. 그 정도로 인물들의 정당성과 사건의 공백에 대해 토론을 많이 했죠.” (박정민)
아이러니하게도, 서거 400주년을 맞아 마지막 12월을 장식하며 원캐스트로 활약하지만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박정민과 문근영은 고개를 숙이며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영화는 NG라는 것이 있고, 다시 갈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어요. 그리고 카메라는 배우를 기다려주죠. 하지만 무대는 정 반대였어요. 이번 ‘로미오와 줄리엣’을 하면서 ‘다시 갈게요!’라고 외치고 싶은 순간이 많았어요. 저는 한 가지 감정을 표현할 때 시간이 오래 걸려요. 그런데 관객들은 그 순간을 지루해하더라고요. 벌써부터 그런 단점들이 발견되고 있어요. 그걸 공연 올려놓고 알았으니, 죄송할 따름이죠(웃음).” (박정민)
“연극을 하면서 제 단점이 다 까발려졌어요. 하하. 무대가 익숙하지 않고 서툴다는 게 다 드러나고 있는 거죠. 초반에는 울기도 많이 울었는데, 이젠 눈물 흘릴 겨를도 없더라고요. 차라리 그 시간에 대본을 더 보고, 배우들끼리 맞춰가는 게 낫다는 걸 깨달았죠. 처음엔 너무 못해서 창피했는데 한편으로는 감사해요. 제가 더 나아질 수 있는 게 많이 남았다는 뜻이잖아요. 지금은 더 잘하고 싶고,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 차 있어요.” (문근영)
자신들이 생각해도 부족한 면이 한가득 이다. 그러다보니 호기심에 읽었던 리뷰들이 더러 상처로 돌아왔다. 상처는 유리멘탈(?)을 가진 박정민에게는 독으로 다가왔다.
“첫 공연이 끝나고 리뷰들을 봤어요. 보자마자 후회했죠(웃음). 한번은 제목이 좋길래 봤더니 내용은 혹평이 가득하더라고요. 하하. 이제 리뷰는 안 보기로 결심했어요. 저도 제가 못하고 있는 걸 알거든요. 제 스스로가 주눅이 들어있는데 어느 순간부터 관객들이 무서워지더라고요. 하지만 관객 반응을 다 신경 쓰면 무대 위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죠. 그래서 작품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어요.” (박정민)
“리뷰를 찾아볼 시간이 없어요. 지인들이 리뷰를 보내주면 읽긴 하는데, 그걸 보고 상처받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그것도 다 관심이잖아요. 좋은 점은 좋게 받아들이고, 안 좋은 점은 바꿔 가면 되죠. 무대에 올라온 이상, 그 무대는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을 해요. 적어도 무대 위에서는 아쉽고 못했어도 자책 안하려고 해요. 그럼 관객들에게 너무 죄송스럽잖아요. 무대 밖에서 치열하게 아파하고 생각하면서 고쳐나가려고 해요.” (문근영)
박정민과 문근영은 20대의 마지막을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장식한다. 30대가 시작되기 직전인 만큼, 이번 작품이 남다르게 느껴진다. 그리고 연기에 대한 마음가짐도 조금은 달라졌다.
“이 작품을 하기 전에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로미오와 줄리엣’은 정신없이 살아온 제 인생에 브레이크를 걸게 해 준 작품이에요. 그래서 의미가 남다르죠. 이 연극이 끝났을 때 스스로가 제정신으로 돌아왔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또 무언가 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길 바라고요. 그보다 지금 연기를 너무 못해서 마음이 복잡해요. 그래서 이 작품이 끝나면 힘든 생각 때문에 막 울 것 같아요. 하하.” (박정민)
“연극은 저한테는 무서우면서도 멋진 일이에요. 그래서 더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서고 싶은 욕심도 크고요. 이 작품이 끝나면 또 연극이 하고 싶어 질 것 같아요. 힘들지만 재밌거든요. 그리고 이번 무대를 통해서 연기를 정말 잘 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무색무취의 배우요. 나로 하여금 많은 사람들이 영감을 떠올렸으면 좋겠어요. 하하. 너무 큰 욕심인가요?” (문근영)
[뉴스핌 Newspim] 이지은 기자 (alice09@newspim.com)·사진=샘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