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 일정부터 각 산업 변수까지
[뉴욕 = 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영국 테레사 메이 총리의 50조 발동으로 이른바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협상이 본격화됐지만 실질적인 과정과 결과를 둘러싼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실제 협상 시기 및 브렉시트로 인해 영국이 치러야 할 비용부터 국내외 거주자 문제와 금융을 포함한 각 산업과 얽힌 사안들, 여기에 잠재적인 돌발 변수까지 협상 개시는 곧 온갖 불확실성과 리스크의 전개를 의미한다.
지난해 6월 국민투표에 이어 29일(현지시각) 50조 발동으로 본격화된 유럽의 역사적인 사건에 관한 시장의 의문들을 짚어 보자.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통보하는 서한에 서명하는 테리사 메이 총리 <출처=블룸버그> |
◆ 협상 시작과 끝은 = 50조 발동으로 영국과 EU 회원국들의 ‘이혼’ 협상이 곧바로 개시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영국이 EU에서 탈퇴하기 위한 절차에 착수할 수 있도록 하는 시발점일 뿐이다.
먼저 영국의 50조 발동에 대한 EU의 승인이 조만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질적인 협상 개시는 4월 29일 27개 EU 회원국 정상들이 한 자리에 모여 브렉시트 과정을 논의하는 EU 집행위원회(EC) 특별 회의가 열리는 시점에 이뤄질 전망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협상은 이보다 더 지연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이날 워싱턴 포스트는 브렉시트 협상의 핵심 축을 이루는 EU 회원국인 프랑스와 독일이 오는 4월과 9월 총선을 앞두고 있어 실제 협상이 올해 가을에 가서야 본격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공식적인 탈퇴 협상 과정은 2년이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영국과 EU는 브렉시트 협상을 내년 10월 협상 종료를 목표하고 있다.
협상이 마찰과 진통을 빚을 경우 영국과 EU 양측의 만장일치 하에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이와 관련,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무역과 법률, 시장, 보안 등 굵직한 사안들에 대한 협상이 모두 마무리되기까지는 10년에 달하는 기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 가장 중차대한 쟁점은 = 일반적인 이혼과 마찬가지로 영국과 EU가 갈라서는 데도 돈 문제가 커다란 쟁점이다.
영국은 EU에 중요한 ‘돈줄’에 해당한다. 외신에 따르면 매주 3억5000만파운드(4억2300만달러)에 달하는 영국 국민들의 세금이 EU에 전달된다.
EU 측은 영국에 600억유로에 달하는 탈퇴세를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는 연금 납입금과 장기 지역 개발 프로젝트 분담금 등이 포함됐다.
영국은 협상을 통해 이를 축소하려고 할 전망이다. 아울러 EU 주요 기구들의 자산 가운데 적어도 일부를 이혼 합의금과 상쇄시키려는 시도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례로, 영국 정부는 유럽투자은행(EIB)의 지분 16%를 보유하고 있고, 금액은 약 400억유로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보다 세부적인 사안으로 들어가면 EU에 파견된 공무원들의 연금을 영국 정부가 부담할 것인지 여부와 EU 회원국 거주 영국인 및 영국 거주 유럽 시민들의 복지 혜택이 현행대로 유지될 것인지 여부가 관심사다.
도날드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이 29일(현지시각) 영국의 팀 배로우 EU 주재 대사로부터 브렉시트 협상 발동을 요청하는 영국 테리사 메이 총리의 서한을 전달받고 있다.<사진=뉴시스> |
아울러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전부터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던 이른바 3가지 자유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자본과 노동력, 서비스의 자유로운 이동 및 EU 단일시장 잔존 여부는 영국뿐 아니라 글로벌 기업들의 경영 전략에도 커다란 변화를 몰고 올 수 있다.
앞서 메이 총리는 단일시장 탈퇴 의사를 밝히면서 이는 영국의 고립이 아니라 세계화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의도한 결과가 도출될 수 있을 것인지는 지켜 볼 문제다.
◆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의 거취는 = 영국은 출발부터 난항이 예상되는 EU 탈퇴 이외에 스코틀랜드 및 아일랜드의 거취 문제라는 난제를 떠안았다.
스코틀랜드는 지난해 국민투표에서 62%에 달하는 찬성으로 EU 잔존 및 영국 탈퇴를 결정했다. 이어 2018년 가을과 2019년 봄 사이 국민투표를 추가로 실시할 계획이다.
브렉시트는 엄청난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며, EU의 단일시장에 잔류하겠다는 것이 스코틀랜드의 입장이다.
메이 총리는 아직 때가 아니라며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거부하고 있지만 브렉시트 협상 방향에 따라 압박이 거세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지난 20년간 평화 관계를 유지해 온 아일랜드 및 북아일랜드와 관계 역시 커다란 이슈다. 영국은 브렉시트로 인해 영국에 속한 북아일랜드와 EU에 잔존하게 될 아일랜드 사이에 물리적인 경계를 칠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이 EU의 관세 동맹에서 탈퇴함에 따라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사이에 상품을 운송하는 트럭부터 각종 물자에 대해 보안 검색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된 것. 이와 관련, 영국 의회는 아일랜드를 특수 사례로 지정하는 방안을 저울질하고 있다.
◆ 금융부터 농업까지 각 산업 향방은 = 금융업을 필두로 자동차와 농수산업, 우주항공 산업까지 브렉시트에 따른 파장이 작지 않을 전망이다.
UBS가 영국 직원 5000여명 가운데 10%를 유럽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밝히는 등 국내외 금융업체들은 이미 짐을 싸기 시작했다.
프랑스 파리와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중심으로 이에 따른 반사이익을 챙기려는 도시들이 경쟁을 벌이고 나선 상황이다.
자동차 업계 역시 브렉시트로 인해 관세가 부과될 경우 매출과 고용에 커다란 타격이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영국 파운드 <사진=블룸버그> |
영국에서 제조되는 자동차의 약 80%가 수출되며,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유럽 국가에서 판매된다. 주요 업체들은 EU 단일시장 탈퇴가 치명타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영국 농가는 EU 보조금을 근간으로 한 소득에서 60%에 달하는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영국 농가의 90%가 파산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이 밖에 수산업의 경우 EU의 단일시장 잔류를 강력하게 반대하며 영국 영해에 대한 배타적인 접근권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 파운드화의 위상은 = 브렉시트와 관련해 시장의 관심이 모아진 곳 중 하나는 파운드화다.
국민투표 이후 영국 파운드화는 이른바 ‘하드 브렉시트’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면서 달러화에 대해 20% 가량 떨어진 상태다.
파운드화의 국제적인 위상은 협상 결론과 EU 탈퇴 이후 국제 무역시장에서 영국의 입지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기축 통화로서의 파운드화 위상은 이미 크게 쇠퇴했다는 것이 시장의 평가다. 도이체방크는 지난 1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주요국의 중앙은행이 파운드화를 준비통화로 보유해야 할 필요성이 크게 떨어졌고, 그 중요성이 앞으로 더욱 낮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 영국 세제 손질하나 = 브렉시트로 인한 국내외 기업들의 해외 이전은 영국 정부가 가장 경계하는 결과 중 하나다.
이 때문에 영국 정부가 법인세를 인하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올해 초 영국은 법인세를 20%에서 19%로 인하했다.
이어 2020년까지 법인세를 17%까지 떨어뜨려 주요20개국(G20) 가운데 최저 세율을 정착시킨다는 복안이다.
메이 총리는 EU가 무역 협상에서 어떤 형태로든 불리한 조건을 제시할 경우 법인세를 추가로 인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밖에 부가가치세(VAT) 인하 가능성도 제기됐다. 영국은 상품과 재화에 대해 새로운 VAT를 도입할 수 있고, 이를 통해 EU 회원국에 대해 커다란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VAT가 영국 세수 가운데 2위를 차지하는 만큼 전폭적인 인하가 이뤄질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판단된다.
[뉴스핌 Newspim] 황숙혜 뉴욕 특파원 (higr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