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사 전환 않기로, 거버넌스위원회로 주주가치 제고
[ 뉴스핌=황세준 기자 ] 삼성전자가 이사회 중심경영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첫 시작은 지주회사 전환 포기다. 지난해 해외 투기자본이 요구한 지배구조 개편 방안을 거절한 것이다.
27일 삼성전자는 컨퍼런스콜을 통해 지주회사 전환을 추진하지 않는다고 공식 발표했다.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게 사업경쟁력 강화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고,오히려 경영 역량 분산 등 부담을 줄 우려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결정은 '이사회'가 내리고 오너인 이재용 부회장에게 알렸다. 이 부회장은 이견 없이 이사회 결정을 수용했다. 이사회는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데 필요한 각 계열회사의 보유 지분 정리 과정에서 주주 동의가 필요한 만큼 삼성전자가 단독으로 추진할 문제가 아니라는 점도 고려했다.
권오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이 주총에서 주주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
지주회사 전환은 지난해 10월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이 삼성전자 이사회에 레터를 보내 제안한 방안이다. 삼성전자를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분할하고 지주회사를 삼성물산과 합병하라는 게 주요 내용이다.
당시 시장에서는 엘리엇의 구체적 제안이 삼성 지배구조 개편에 명분을 제공할 것이라는 관측과 외국인 투자자가 미국식 행동주의 투자를 삼성전자에 적용하려는 야심의 일환이라는 관측이 동시에 나왔다.
삼성전자는 그해 11월 '6개월간의 검토' 방침을 밝히면서 "6개월 뒤에 지주사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아니다", "중립적인 입장에서 지주사 전환이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검토하는 것" 등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이사회는 지배구조뿐 아니라 실질적 전환에 따르는 운영이나 다양한 세제 등을 깊이 검토한 결과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삼성전자는 공식 발표자료에 '그 동안 지주회사전환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다'라는 점을 강조했다.
재계는 특검 수사에 이은 총수 구속으로 인한 반기업정서 확산, 계열사 총괄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 해체, 정치권의 상법 개정 합의 등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상법 개정안은 기업분할 시 자기주식에 대한 신주배정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안이 시행되면 삼성전자의 지주회사 전환은 사실상 어려워진다.
이명진 삼성전자 IR그룹 전무는 "지주회사 전환은 이사회에서 결의하더라도 완료시까지 5개월~1년이 소요되는데 그 기간중 언제든지 법이 시행될 리스크가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이사회는 지주회사 전환시 '마법'을 부린다고 지적받아 왔던 자사주를 전량 소각해 주주가치를 높이기로 했다. 우선 1회차로 다음달 2일 50%(4조8751억원치)를 소각한다.
잔여분에 대한 소각은 2018년 중 이사회에서 결의할 예정이다. 이와 별개로 4월 28일부터 7월 27일까지 2조2950억원 규모 자사주를 장내 매수해 소각한다.
삼성전자는 최근 3년간(2014~2016년) 자사주 매입과 현금배당에 23조5000억원을 썼다. 기존 주주들의 지분가치를 높이기 위해 13억5000만원의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했으며, 10조원에 이르는 현금배당을 실시했다.
이와 함께 삼성전자는 이날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거버넌스위원회도 출범했다. 거버넌스위원회는 사외이사 전원(5인)으로만 구성하고 기존 CSR(사회공헌)위원회의 역할을 겸한다.
사외이사는 송광수 전 검찰총장,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 이인호 전 신한은행장, 김한중 전 연세대학교 총장, 이병기 서울대 명예교수 등 5인이다. 거버넌스위원장은 현 CSR위원장인 이병기 교수가 맡았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권오현 부회장, 신종균 사장, 윤부근 사장 등 CEO 3인방이 이사회 경영의 중심축을 맡고 거버넌스위원가 중장기 경쟁력 제고방안에 대한 제언, 주요 결정사안에 대한 검토·심의 역할을 맡는다.
경영위원회는 사업계획 수립, 해외법인 설치 및 철수, 국내외 주요 자회사 매입 또는 매각, 타법인 출자 및 처분, 대규모 자금조달을 위한 회사채 발행 등을 심의한다. 재계는 CEO 3인과 사외이사들이 새롭게 꾸려갈 삼성전자의 이사회 중심경영이 다른 계열사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밖에 삼성전자는 지주회사 추진 중단과 별개로 순환출자도 전부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이명진 전무는 "여러 계열회사가 함께 해결해야 하는 사안이라 시간이 걸리겠지만 시장 영향 최소화 방법과 시점을 찾아 전부 해소하겠다"고 강조했다.
순환출자란 'A→B→C→A' 식의 연결 고리를 통해 기업을 지배하는 구조다. 총수 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전체 그룹을 장악하는 방법이라는 지적을 받아 왔다. 삼성은 2013년부터 전자계열사와 금융계열사의 수직계열화를 통해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해 왔다.
[뉴스핌 Newspim] 황세준 기자 (hsj@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