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한국당 '시간 끌기'" vs 野 "재정 추계 자료 먼저”
[뉴스핌=조현정 기자] 국회가 지난달 국정감사를 마무리하고 이달부터 내년도 예산안 심의에 돌입했지만 아직도 지난해 결산안 심사가 마무리되지 않고 있어 예산안 통과에도 난관이 예상된다. 여야는 공무원 증원에 필요한 연금 재정 추계자료를 놓고 정쟁을 지속하며 두 달이 지나도록 결산안 심사를 미루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여야 어느 쪽도 합의점 모색을 위한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은 채 시간만 흘려보내며 국회가 본연의 업무를 져버리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004년 개정된 국회법에 따르면 국회는 결산안 심사를 정기국회 시작(9월 1일) 전에 마쳐야 한다. 여야는 지난 8월 31일 본회의를 열고 결산안을 처리하기로 했지만 불발됐다. 야당이 공무원 증원에 필요한 연금 재정 추계 자료를 요구한 데 대해 여당이 반대하면서다.
자유한국당은 공무원 17만4000명 증원에 필요한 공무원 연금의 재정 추계 자료 제출을 결산안 처리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하지만 정부 여당은 자료 제출 요구가 한국당의 '시간 끌기'라고 반발하면서 끝내 결산안은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국회가 결산안 처리 법정 시한을 지키지 못한 것은 2012년 이후 매년 반복되는 악습이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셀프 위법'이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전경 <사진=뉴시스> |
◆ 방치된 결산안…이유는 '공무원 증원' 부담
결산안 심사는 정부의 전년도 예산 씀씀이를 들여다본 뒤 문제가 있으면 각 부처에 시정을 요구, 내년 예산에 반영하도록 하는 절차다.
그러나 국회는 2011년만 빼고 결산안 처리 시한을 지키지 못했다. 결산안 처리가 늦어지면 429조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 심사에도 여파가 미치게 된다. 야당은 결산안을 처리한 뒤 예산안 심사를 한다는 방침이다.
보통 10월 중순께 국감을 끝내고 예산 심사에 들어가지만 올해는 국감이 지난달 31일 끝났다. 법정시한(12월 2일)까지 예산안을 처리하기 위해선 이달 안에 심사 일정을 마쳐야 한다. 정부 종합보고만 해도 며칠 걸리는 데다 16개 상임위별 심사 후 예결위 전체회의 및 소위 심사, 정부와 최종 조율 등을 거치려면 한 달만으로 부족하다.
야당이 결산과 예산안 심사에서 가장 문제 삼고 있는 것은 공무원 증원이다. 정부는 파출소·지구대 순찰 인력 3500명, 군 부사관 4000명, 생활안전 분야 6800명 등 국가직 1만5000명에 해당하는 인건비 4000억원을 편성했다.
문재인 정부는 앞으로 5년간 공무원 17만4000명을 증원할 방침이다. 지방직(1만 5000명) 인건비는 지방교부세·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충당해 정부 예산을 쓰지 않는다. 내년에 늘어나는 중앙직·지방직 공무원 3만명은 대부분 현장직이다.
이에 야당은 재정 문제를 지적, 공무원 증원에 반대하고 있으며 공무원 연금 등의 증가로 인해 차기 정부의 부담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공무원 증원을 위해 필요한 재정 추계 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 예산안 처리는 힘들 것이라는 입장이다.
김종석 한국당 예결위 간사는 "내년 예산안에 반영된 공무원 증원 관련 예산은 총 5349억원"이라며 "혈세로 공무원을 늘리는 것은 일자리 창출이 아닌 국민 미래에 직격탄"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생산 가능 인구는 줄어드는 추세에도 공무원만 늘리려 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정부와 여당은 재정 추계 자료에 대한 정확성과 신뢰성을 담보하기 어렵고 결산안과 무관한 정치 공세라며 맞서고 있다.
국회 본회의장 <사진=김학선 사진기자> |
◆ '몰아치기'·'셀프 위법'…내년 예산 심의 어떡하나
정세균 국회의장과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 정우택 한국당 원내대표,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 주호영 바른정당 원내대표는 지난달 23일 국회에서 비공개 회동을 갖고 문재인 대통령 시정연설 전 결산안 처리 여부를 논의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이날도 여당 측에서는 부대 의견을 철회해달라는 요청이 있었고, 야당에서는 부대 의견을 여당 측에서 그대로 받아달라고 하면서 이견 차이가 컸다.
또 지난달 27일에는 문 대통령과 여야 4당 대표가 국가 안보를 주제로 한 자리에 모여 '조속한 여야정 협의체 구성'에 합의하며 화해 분위기 조성을 노력했지만 제1야당인 한국당이 불참하면서 '협치'가 아닌 '대치' 모드가 이어지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막판 '몰아치기' 관행이 재연돼 졸속 심사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결산안을) 이렇게 방치한 채 정쟁만 하는 것은 '셀프 위법'"이라며 "두 달 가까이 예산에 대한 결산 심사가 마무리되지 못했다는 것은 국회 본연의 업무를 져버리는 것이다. 예산안도 중요하지만 결산안 처리도 빠른 시일 내 진행해야 몰아치기 관행이 되풀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3일 공청회와 6~7일 종합 정책 질의, 8~13일 부별심사 등을 진행한다. 이후 14일부터 소위원회 활동을 거쳐 다음달 2일 본회의에서 내년도 예산안을 의결해야 한다. 의결하지 못한다면 정부 예산안은 자동으로 본회의에 부의된다.
내년 예산 규모는 9년 만에 최고로 증가(7.1%)한 429조원으로 '슈퍼 예산'이다. 규모는 크지만 심사 기간은 짧고 대폭 늘어난 복지 예산 등 쟁점거리는 넘쳐난다.
여당은 최대한 '원안대로' 내년도 정부 예산안을 통과시킨다는 방침이지만 야당의 반발이 지금처럼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월 처리된 문재인 정부 첫 추가경정 예산안도 사실상 반토막이 난 채 통과된 전례가 있어 내년도 예산안 처리에도 상당한 험로가 예상된다.
[뉴스핌 Newspim] 조현정 기자 (jhj@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