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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환의 예술가 이야기] 맨발의 무용수, 이사도라 던컨

기사입력 : 2017년12월22일 12:30

최종수정 : 2017년12월22일 12:30

예술에 살고 사랑에 살고(40)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휘트먼의 시처럼, 이사도라 던컨은 꽉 끼는 슈즈를 벗어버린 맨발과 코르셋을 벗어버린 맨 몸으로, 내면을 표현하려는 자유로운 움직임을 무용으로써 승화시킨다. 이 몸짓이 훗날 현대무용의 시초가 된다.
이사도라는 미국의 무용수로, ‘자유무용’을 창시하여 현대무용의 어머니로 불리기도 한다. 그녀는 당시의 지식인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어 그들의 숭배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때로는 편협한 사람들의 공격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는 그녀의 착상과 행동이 시대를 너무 앞선 것이었고 사회의 인습을 완전히 무시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이사도라는 춤의 위대한 개혁자로서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녀는 인위적· 기교적인 제한을 거부하고 자연스런 움직임의 우아함을 중시함으로써 그때까지 엄격한 형식과 현란하지만 공허한 기술적 묘기의 나열에 의존하던 춤을 해방시켰다. 그리하여 나중에 현대무용이 수용될 수 있는 길을 마련했다.

이사도라 예술의 특징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자연스럽다는 것, 둘째 고대 그리스의 정신을 부활시켰다는 것, 셋째 음악을 무용에 종속시켰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녀의 무용에서의 자연주의란 인공적인 기교 제일주의의 고전 발레에 대한 반발이며, 자유정신의 찬가(讚歌)였다. 그 결과는 그녀의 로맨틱한 정신과 함께 고대 그리스의 건강미에 대한 강렬한 흠모로 나타났다. 음악 또한 악보와는 상관없이 그 음악으로부터 받은 인상을 감정적으로 무용에 반영시켰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기존의 표현 기교를 답습하지 않았다. 그녀는 “사람을 춤추게 하는 것은 영혼과 정신이지 기교가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표현 그 자체에도 창의를 주장하였다. 그리고 무용예술을 소수의 전문가로부터 대중들에게로 개방시켰다. 그런 의미에서 이후에 일어난 신무용 운동에 영향을 준 ‘현대 무용의 어머니’로 불리고 있다.
이사도라 역시 젊었던 시절에는 고전발레를 배웠다. 어릴 적부터 자연을 사랑하는 반항아였던 그녀는 이윽고 세련되기는 했으나 제약이 많고 인공적인 기법 위주의 고전발레에 의문을 품고, 좀 더 자연친화적이며 자유로운 춤에 대한 동경이 강렬해졌다. 고전발레를 인간의 몸을 기묘하게 뒤틀리게 하는 것이라며 철저하게 배격했고 자신 또한 곡예사가 아니라고 선언했다.

이사도라 던컨(Isadora Duncan, 1878~1927)은 1877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파산한 은행가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던컨은 은행가이면서 예술과 풍류를 즐기는 멋쟁이이자 바람둥이였다. 이사도라는 이런 아버지를 성가신 짐인 동시에 자부심의 원천으로 여겼다. 파산과 이혼으로 인한 궁핍 때문에 그녀의 어린 시절은 어머니가 손수 짠 편물을 이 집 저 집 다니며 팔아야 했다. 그런 와중에도 그녀의 어머니는 밤마다 자녀들에게 글을 읽어주었다. 그때 이사도라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이 휘트먼의 시 《나 자신의 노래》였는데, 이후 그녀는 자신을 휘트먼의 정신적인 딸이라고도 즐겨 말했다.
“나는 나를 찬양하고 나를 노래하리라. 그리고 내가 취한 것에 그대도 취하리라...”

이사도라 가족은 생계를 위해 돈벌이에 매달리면서도 언제나 시와 음악을 가까이 했다. 그녀는 훗날 자신의 진정한 교육은 어머니와 함께한 시간에 이뤄졌고 학교 교육은 쓰레기였다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 그녀는 열 살 때 학교를 그만두고 남는 시간에 인적이 없는 숲 속이나 해변으로 뛰어가 나체로 춤을 추었다. 그럴 때면 바다와 나무가 그녀와 함께 춤을 추고 있음을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진정으로 사랑한 것들은 바다와 바람, 어머니가 피아노로 들려주던 음악, 꽃의 개화와 벌들의 비행, 그리고 캘리포니아의 풍광이었다.
캘리포니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이사도라는 20세가 되던 해 일자리를 찾아 동부로 향했다. 그녀가 처음으로 시카고의 무대에 올랐을 때 발레슈즈인 토우를 던지고 타이즈도 입지 않은 채, 맨발과 거의 반나체의 모습으로 발레를 했다. 그러자 그동안 기교 위주의 고전발레에 익숙해 있던 관객들은 비난과 조소를 보냈다. 얼마 후 열린 뉴욕에서의 공연 또한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그녀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조국에 실망하여 21세가 되는 1900년 유럽으로 건너갔다. 당시 미국을 떠나면서 돈이 모자라 가축 수송선을 타고 갔다. 유럽에서의 첫 행선지는 영국이었다.
유럽에서 생활하는 동안 이사도라는 열렬한 박물관 애호가가 되었다. 런던과 파리에서 박물관에 드나들며 특히 그리스 문화에 매료되어 심취하기 시작한다. 고대 그리스 조각상들을 연구하면서 그녀는 자기가 그때까지 본능적으로 추어왔던 춤사위와 자세들이 고전적인 것임을 확인하였다.
이 그리스 석상들을 보며 영감을 얻은 그녀는 훗날에도 그리스 의상과 같은 줄 몇 개로 고정한 넝마 같은 옷을 입고 맨발로 춤을 추었다. 또 그녀는 박물관에 있는 그림 속의 춤추는 동작을 따라 했다. 당시 사람들은 종종 춤을 추면서 길을 가는 그녀를 볼 수 있었다. 이때 그녀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달나라에서 왔지요!”라고 말하곤 했다.

맨발의 이사도라 공연장면 <사진=이철환>

마침내 이사도라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런던에서 달밤에 춤을 추는 모습이 당시 정상급 여배우 패트릭 캠벨의 눈에 들어 런던 사교계에 입문하게 된다. 이후 그녀는 런던 지도층 부인들이 벌인 여러 모임에 초청받고 거기서 완전히 자유로운 춤사위로 춤을 추어 호평을 받는다. 당시 쇠퇴기에 들어선 기존의 발레에만 익숙해 있던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럽의 극장과 발표회장은 숲의 요정처럼 옷이라곤 별로 걸치지 않은 채 맨발로 춤추는 이 젊은 여성을 보려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덜 입고 나온 듯한 옷차림과 맨발로 논란을 일으켰지만 그녀는 짧은 시간 안에 유럽 예술 무대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후 이사도라는 유럽의 각 도시를 순회공연하고, 각지에서 그녀가 주장하는 ‘자유댄스’를 발표하여 갈채를 받는다. 특히 독일에서는 가장 강력한 지지를 획득했다. 독일은 ‘발레가 없는 나라’로 불려 육체문화 운동이 활발했는데, 이사도라는 그 운동에 큰 영향을 주고 독일 신무용의 탄생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1904년 베를린에 무용학교를 설립하였고 이후 프랑스, 미국, 러시아 등에도 학교를 만들었다. 이처럼 그녀가 유럽 생활을 하는 동안 현대무용을 탄생시키는 계기를 만드는 등 무용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사도라의 사생활 또한 세간의 금기들을 줄곧 거부한 탓에 그녀의 예술만큼이나 화제가 되었다. 그녀는 결혼을 혐오하던 무대장치가 에드워드 고든 크레이그와의 사이에서 딸 데어도르를 낳았고, 미국의 재력가 패리스 싱어와의 사이에서 아들 패트릭을 낳았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그녀 인생의 가장 큰 비극으로 자리 잡는다.
비 내리는 4월의 어느 봄날, 이사도라는 두 아이와 보모를 데리고 파리 시내로 나갔다. 그리고 그녀는 춤 연습 때문에 지루해할 아이들을 집으로 먼저 돌려보냈는데, 그때 폭우가 내리고 있었다. 아이들이 탄 자동차는 센 강을 따라가다 강으로 추락해 모두 익사하는 비극이 일어났다. 그녀는 충격으로부터 완전히 헤어나지 못했다. 그 이후 파리 시민들은 미친 듯이 아이들 이름을 울부짖으며 센 강변을 뛰어다니는 이사도라를 몇 번이나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슬픔을 잊기 위해 무용학교를 새로 설립하는 일에 몰두했으나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실현되지 못했다. 이어 남미· 독일· 프랑스에서 순회공연을 가졌으나 성과가 별로 없었다. 그러던 중 1920년 모스크바로부터 초빙을 받게 된다. 당시 모스크바는 이사도라와 같은 혁명적 기질을 가진 사람에게는 약속의 땅으로 비쳐졌고, 또한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는 어떤 계기가 필요하기도 했던 이사도라는 이를 수락했다.

이사도라는 모스크바에서 17세 연하의 시인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 예세닌을 만난다. 그런데 그와의 만남은 이사도라에게는 또 다른 비극의 시발점이었다. 예세닌이 대단한 천재일 뿐만 아니라 대단한 미치광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까지 그녀는 엄청난 고통과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이사도라의 눈에는 예세닌이 마치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난 금발의 아들 패트릭처럼 보였다. 그는 작은 키에 가냘픈 체구, 눈부신 금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에 대한 사랑은 어머니와도 같은 한없는 이해와 염려 그리고 헌신이었다. 이사도라는 오랜 망설임 끝에 1922년 그와 정식으로 결혼을 한다.
그러나 이사도라는 예세닌과 살면서 한순간도 평화로울 때가 없었다. 예세닌은 신경쇠약, 알코올 중독, 간질증상을 보였고, 술에 취하면 폭언을 퍼붓고 구타까지 일삼았다. 또 명품에 광적으로 탐닉하는 낭비벽까지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함께 살던 그녀 역시 점차 망가지고 있었다. 비참한 현실을 잊으려는 듯 항상 술에 취해 있었기에 춤 연습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사도라는 그와 헤어지지 못한 채 매달렸다.
이 무렵 이사도라는 예세닌과 함께 미국 순회공연을 떠났다. 당시 미국은 공산주의에 대한 혐오가 극심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러시아인 남편을 둔 이사도라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더욱이 그녀는 몸이 많이 불어 있었고 춤 기량도 이미 내리막길에 들어서 있었다. 게다가 공연 도중 나체에 가깝게 흘러내린 의상 때문에 그녀는 ‘공산주의자’, ‘매춘부’, ‘천박한 댄서’ 등으로 미국 언론에 묘사되었다.
그때 이사도라는 이렇게 반박했다. “왜 내 몸의 일부가 노출되는 것을 조심해야 하지요? 그것이 무엇인가를 상징한다면 그것은 여성의 자유를 상징하는 것이며 청교도주의의 속박과 편협한 관습에서 해방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신체를 숨기는 것이 외설적인 것입니다. 내 몸은 내 예술의 성전입니다.”

안녕, 친구여, 안녕.
사랑하는 친구여, 그대는 내 마음속에 있네.
예정된 이별은 미래의 만남을 약속한다네.
안녕, 친구여, 안녕, 악수도 작별 인사도 나누지 말자.
슬퍼하지 마라. 슬픔에 꺾이지 마라.
이 세상에서, 죽는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지.
하지만, 산다는 것 역시, 새삼스러울 것 없는 일이지.

1925년 예세닌은 《잘 있거라, 벗이여》란 시를 남기고 서른 살의 나이에 손목을 그어 자살한다. 이후 이사도라는 니스로 거처를 옮겼다. 그러나 이제 모든 것이 망가지고 있었다. 초라하고 불안정한 생활 속에서 말년의 삶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타고 가던 차의 뒷바퀴에 스카프가 말려들어가 질식사하게 된다. 그날 그녀는 생전 예세닌이 탐닉하던 붉은색 긴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뚜껑이 열린 오픈형 스포츠카에 올랐다. 새로 알게 된 남자와 드라이브를 하기 위해서였다. 이윽고 차는 출발했고, 그녀의 목을 감싼 긴 스카프는 차 뒷바퀴에 감겼다. 가녀린 목은 순식간에 꺾였고, 그렇게 그녀의 생은 끝났다.

그녀의 장례식장에서 타오르는 양초 사이에 누운 시신 옆에는 두 아이를 안고 있는 이사도라의 사진이 놓여 있었다. 그녀는 생전에 자주 이런 말을 하곤 했다. “내 영혼이 가장 사랑스러운 존재가 될 때까지 지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이철환 객원 편집위원 mofelee@hanmail.net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보분석원장, 전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 문화와 경제의 행복한 만남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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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협상 쟁점…쌀·쇠고기·구글지도 [세종=뉴스핌] 최영수 선임기자 = 한미 관세협상이 막판까지 '진통'을 겪고 있다. 오는 8일 1일까지 관세 유예기한이 연장되면서 일단 3주간 시간을 벌었다. 하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한 쟁점이 여전히 남아 있어 앞으로의 협상도 난항이 예상된다. 수차례 협상에도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은 결국 '비관세장벽' 때문이다. 특히 한국 측이 민감분야로 설정하고 있는 ▲쌀 시장 개방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 허용 ▲구글 정밀지도 반출 허용 등 3가지 쟁점이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 '제조업 협력' 카드 제시했지만…美, 농축산물 개방까지 요구 미국 정부는 오는 8월 1일부터 한국에 대한 품목관세(25%)를 부과할 방침이라고 8일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8일 오전 1시 20분(한국시간) 트루스소셜(Truth Social)을 통해 한국에 대한 상호관세율 및 발효일자 등이 포함된 서한을 공개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4월 2일 발표한 국가별 관세와 같은 수준이다. 협상 시한이 3주간 연장된 셈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로이터 뉴스핌] 한국 정부는 앞서 미국 측에 '제조업 협력 로드맵'을 제시했지만, 이것만으로는 미국 측의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측이 농축산물 등 민감분야를 사수하면서 '제조업 협력' 카드만으로 협상을 진행해 왔지만, 결국 한계에 봉착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산업부는 "새 정부 출범 이후 짧은 시간동안 국익 최우선 원칙을 갖고 치열하게 협상에 임했으나 현실적으로 모든 이슈들에 대해 합의 도출까지 시간이 부족했다"고 밝혔다. ◆ 자동차·철강 품목관세 인하 vs 농·축산물 개방 '저울질' 한미 간 몇 차례 협상에도 진통을 겪고 있는 이유는 결국 미국 정부가 농축산물 시장까지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한국의 정밀지도를 구글에 허용해 달라는 요구 역시 한국 정부로서는 민감한 쟁점이어서 난항이 예상된다. 한국 정부의 목표는 이 같은 민감분야를 사수하면서 자동차·철강 품목관세를 경쟁국 대비 불리하지 않은 수준으로 인하하는 것이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6일 협상 결과에 대해 "자동차와 철강 등 품목관세 철폐 또는 완화가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못 박았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오른쪽)과 제이미슨 그리어(Jamieson Greer) USTR 대표가 5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관세협상에 앞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산업통상자원부] 2025.07.06 dream@newspim.com 문제는 농업계와 소관부처(농림축산식품부)를 어떻게 설득하느냐다. 과거 정부도 쌀 시장 개방과 쇠고기 수입을 검토했다가 강한 저항에 부딪혀 보류한 바 있다. 정부 안팎에서는 품목관세를 완전히 철폐하는 조건이라면 농축산물 시장을 개방하는 것도 고려해 볼만하다는 분위기가 읽힌다. 산업부는 8일 미국 정부의 발표에 대해 "미국 측의 주된 관심사인 무역적자 해소를 위한 국내 제도 개선, 규제 합리화 등과 함께, 양국 간 제조업 르네상스 파트너십을 통해 핵심산업 도약의 기회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한국 측의 요구대로 자동차, 철강 등 품목관세를 원하는 수준으로 인하(철폐)될 경우, 미국 측이 요구하고 있는 비관세장벽 개선에 대해서도 전향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결국 품목관세 철폐와 비관세장벽 개선 두 가지 요소를 놓고 얼마나 균형적이고 합리적이 수준으로 타결되느냐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한국 정부가 '상호호혜적이고 균형적인 협상'을 기본 원칙으로 내세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산업부는 "관세로 인한 불확실성을 조속히 해소하기 위해 남은 기간 동안 상호 호혜적인 협상결과 도출을 위해 협상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dream@newspim.com 2025-07-08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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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20살' 슈퍼주니어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슈퍼주니어(SUPER JUNIOR, 에스엠엔터테인먼트 소속)가 8일 정규 12집 'Super Junior25'(슈퍼주니어 이오)로 컴백했다. 이번 앨범은 슈퍼주니어 데뷔 20주년을 기념하는 앨범이다. 총 9곡이 수록되어 있으며, 타이틀 곡은 'Express Mode'(익스프레스 모드)다. 'Express Mode'는 댄서블한 사운드와 중독적인 후렴구가 특징인 업템포 클럽 팝 곡으로, 가사에는 현재에 멈추지 않고 다음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패기 넘치는 태도를 담았다. 어느덧 20년이 된 슈퍼주니어가 컴백을 기념하여 일문일답을 진행했다.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데뷔 20주년을 맞은 슈퍼주니어.[사진= SM엔터테인먼트] 2025.07.08 oks34@newspim.com 1. 드디어 정규 12집, 데뷔 20주년 기념 앨범이 발매되는 소감은?- 이특: 슈퍼주니어가 20년을 함께했다. 저 역시 너무나 놀라운 시간이었는데, 이번 앨범을 시작으로 앞으로 더욱 놀라운 시간을 만들어 가도록 하겠다.- 시원: 믿기지 않을 만큼 긴 시간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만큼 값진 시간이었다. 지금까지 함께해 준 멤버들, 스태프들, 그리고 무엇보다 변함없이 곁을 지켜준 팬분들 덕분에 이 앨범이 더욱 의미 있게 완성될 수 있었던 것 같아 감사하다. 2. 앨범명도 특별하다. 'Super Junior05'에서 'Super Junior25'가 됐는데, 슈퍼주니어에게 있어 가장 많이 바뀐 것과 그래도 여전히 바뀌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희철: 가장 많이 바뀐 것은 저의 외모. 이번 앨범 준비하면서 다이어트도 하고 식단도 했는데… 여전히 바뀌지 않은 것은 이특, 은혁의 동안력과 몸무게. 둘을 보며 좋은 자극을 많이 받는다.- 예성: 정신 연령? ㅎㅎ 우리는 아직 20대 같다.- 려욱: 멤버들의 입담과 '티키타카'는 변함없는 것 같다. 대본 없이 우리끼리 카메라 하나 두고도 콘텐츠 백만 개는 나올 것 같다.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데뷔 20주년을 맞은 슈퍼주니어. [사진= SM엔터테인먼트] 2025.07.08 oks34@newspim.com 3. '히트곡 부자'로 유명한 만큼 타이틀 곡을 정하면서도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 같은데, 'Express Mode'가 선정된 이유가 있다면?- 예성: 다른 좋은 곡들도 많았지만 이 노래가 가장 '타이틀 곡' 같다고 느껴졌다.- 신동: 저희는 항상 새로운 걸 시도하려고 하지 않나, 이번에도 고민 진짜 많이 했다. 그런데 'Express Mode'를 듣자마자 다들 "이거다!" 싶었다. 슈퍼주니어다운 에너지와 재치, 그리고 요즘 감성까지 딱 잘 버무려진 곡이라, 들으면 그냥 바로 타이틀! 하는 느낌이다.- 은혁: 20주년이라는 숫자와 지금의 위치에 안주하지 않고 앞으로도 한발 한발 더 나아가겠다는 의미도 있고, 음악과 퍼포먼스도 우리를 잘 표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려욱: 데모 들을 때만 해도 'Haircut'에 한 표를 던졌던 나였지만, 녹음을 하고 보니 'Express Mode'가 우리의 에너지를 잘 담고 있었고 퍼포먼스까지 멋지게 보여줄 수 있을 거라 생각돼서 인정하게 됐다. 4. 최근 일상에서 나를 제일 'Express Mode'로 설레게 혹은 달리게 만드는 것은?- 희철: 반려견 기복이 산책.(웃음) 기복이 활동량이 상당해서 하루에 몇 번씩 산책을 하는데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아주 난리도 아니다. 기복이가 저를 미친 듯이 달리게 만든다.- 예성: E.L.F.들과 어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저를 'Express Mode'로 달리게 만든다. 우리 더 가까워지자!- 려욱: 노래 연습을 꾸준히 하고 있다. E.L.F.들에게 멋진 노래를 들려주고 싶고, 하루빨리 콘서트로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다.- 규현: 퇴근 후 접속하는 '33 원정대'.(웃음) 오랜만에 빠지게 된 게임이다.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데뷔 20주년을 맞은 슈퍼주니어. [사진= SM엔터테인먼트] 2025.07.08 oks34@newspim.com 5. 타이틀 곡 'Express Mode' 퍼포먼스, 준비하면서 어렵지는 않았는지?- 예성: 디스크 때문에 조금 고생했지만 안무가 좋아서 더 열심히 했다.- 신동: 솔직히… 좀 힘들었다. 하하! 퍼포먼스가 진짜 'Express Mode'로 달려야 해서, 예전처럼 체력으로만 밀어붙이긴 어렵더라. 대신 디테일한 표현, 팀워크를 더 살리려고 노력했다. 근데 또 무대 올라가면 신기하게 힘이 난다. E.L.F. 앞이라 그런가 보다.- 은혁: 멤버들 모두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열심히 잘 준비했다. 그래서 그런지 전혀 어렵지 않았다.(웃음) 6. 앨범 콘셉트인 'SUPER AWARDS'처럼 서로에게 주고 싶은 상 이름을 직접 정해본다면?- 신동: 은혁이한테 '몸이 한 개로 부족했상'을 주고 싶다. 안무 짜랴, 디렉팅 보랴, 촬영 챙기랴… 진짜 슈퍼 히어로다. 그리고 희철이 형한테는 '말은 많았지만 행동도 많았상', 은근히 뒤에서 멤버들 챙기고 조용히 마음 써준 거 다 알고 있다. 나머지 멤버들에겐? '아직도 이렇게 잘생겼상' 드린다. 왜냐면… 정말 아직도 잘생겼으니까.(웃음)- 려욱: '너네가 짱이야 상' 7. 지난 20주년을 돌아보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지?- 시원: 나이가 드는지 데뷔 무대가 갑자기 기억이 난다.- 려욱: 데뷔했던 순간이 제일 마음에 와 닿는다. 무중력 상태에서 우주를 떠다니듯 춤추고 노래했던 기억이 난다. 꺼진 마이크에 크게 목놓아 부른 'Twins'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규현: 'SUPER SHOW' 투어를 다닐 때인 것 같다. 어느새 너무 오랜 시간 공연을 해와서 기억도 뒤죽박죽이긴 하지만 역시 남는 건 벅차게 느꼈던 공연 순간의 감동이다.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데뷔 20주년을 맞은 슈퍼주니어. [사진= SM엔터테인먼트] 2025.07.08 oks34@newspim.com 8. 슈퍼주니어하면 콘서트도 빼놓을 수 없는데, 'SUPER SHOW 10' 투어가 곧 시작된다. 200회 공연도 앞두고 있는데, 앞으로 새롭게 세워보고 싶은 기록이 있다면?- 이특: 숫자에 대한 기록이라면 300회, 400회, 계속해서 새로운 숫자를 써 나가는 것이 목표다. 그리고 시간이 더 흘렀을 때 'SUPER SHOW'가 더욱 다양한 콘텐츠로 새롭게 재탄생하기를 바라본다.- 예성: 기록에 대해선 큰 생각은 없지만 하다 보니 200회 공연이 되다니 신기하다. 벌써 우리가 이렇게 오래 공연을 하고 있다니!- 려욱: 300회까지 가면 좋을 것 같다. 슈퍼주니어 멤버들과 관객들과 함께하는 시간들이 쌓일수록 그 횟수가 어떻든 행복할 것 같다.- 규현: 가보지 못했던 곳들도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전 세계에 E.L.F.가 살게 되는 기록도 꿈꿔본다! 9. 슈퍼주니어에게 붙는 수식어가 많은데,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은? 앞으로 어떤 수식어를 더 만들어가고 싶은지?- 은혁: 너무 거창한 수식어들은 솔직히 좀 민망하고 쑥스러운 것 같다. 그냥… '수식어가 필요 없는 그룹' 슈퍼주니어라는 표현이 가장 좋지 않을까?- 려욱: '한류 광개토대왕'이 제일 좋다. 어렸을 때 광개토대왕을 좋아해서 그런지 몰라도… 내 마음에 콕 박힌다. 10. 이번 앨범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는?- 희철: 이제 우리가 무슨 바라는 목표가 있겠나… 무탈히 즐겁게 활동 잘 마치길 바란다. 사랑한다 멤버들아!! 건강하자!!- 예성: 활동 끝까지 무사히 잘 해내고 싶다. 즐겁고 행복하게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이다.- 시원: 이번 앨범은 단순한 앨범이 아니라, 저희가 걸어온 20년의 시간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을 다음 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이 여정이 누군가에겐 시작점의 작은 용기나 희망이 되고, 후배들에게는 '이렇게 꾸준히, 진심으로 해 나가면 가능하구나'라는 좋은 선례가 되었으면 한다. 11. 20년 동안 슈퍼주니어를 지켜준 E.L.F.에게 한 마디- 이특: 한결같이 우리를 응원해주고 사랑해주는 E.L.F.! 이제는 우리가 받았던 사랑을 돌려주고, 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늘 고맙고 사랑한다!- 동해: E.L.F.가 없었다면 모든 것이 불가능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무리 꽃이 예뻐도 하늘에 햇빛이 없고 물을 주지 않으면 시들듯이, 우리는 E.L.F.라는 존재가 없으면 내일 당장 시들어 버릴 거다. E.L.F.에게 너무 고맙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진심으로 사랑해!- 려욱: 우리와 함께해 준 영원한 친구 E.L.F.들 정말 고마워. 함께 울고 웃던 시간들이 너무 소중하다. 내 인생에 큰 선물이고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어. 20주년 너무 감사하고 우리 앞으로 함께하자. 사랑해. 슈퍼주니어는 8월부터 데뷔 20주년 기념 투어 'SUPER SHOW 10'(슈퍼쇼 10)에 돌입한다. 투어의 막을 올리는 서울 공연은 8월 22~24일 올림픽공원 KSPO DOME에서 개최된다. 또한 서울 공연을 시작으로 9월 홍콩, 자카르타, 10월 마닐라, 멕시코시티, 몬테레이, 리마, 산티아고, 11월 타이베이, 방콕, 12월 나고야, 2026년 1월 싱가포르, 마카오, 쿠알라룸푸르, 가오슝, 3월 사이타마까지 슈퍼주니어는 전 세계 16개 지역에서 투어를 이어가며 '레전드 공연킹'다운 면모를 보여주고 20주년을 화려하게 마무리할 전망이다. oks34@newspim.com 2025-07-08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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