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4Q 3천억대 손실로 대우건설이 작성한 현황 보고서 신뢰 어려워
해외 공사잔액 6조원 달해..추가 손실 가능성 배제 못해
[뉴스핌=이동훈 기자] 김상열 호반건설 회장(사진)이 대우건설 인수를 포기한 것은 작년 4분기 해외손실 뿐 아니라 해외사업 현황을 파악한 보고서 자체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대우건설은 공사액 6조원이 넘는 해외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호반건설은 실사 과정에서 대우건설이 자체적으로 조사한 해외사업 현황을 기반으로 인수가격을 정했다. 하지만 4분기 예상을 뒤엎는 실적이 나오자 현황 보고서를 믿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린 것.
이에 따라 대기업에 대한 분석 보고서 자체에 대한 신뢰성 여부가 도마 위에 오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9일 투자은행(IB) 업계와 건설업계에 따르면 대우건설이 작성한 해외사업 현황 보고서를 그대로 신뢰할 수 없다는 김상열 호반건설 회장의 판단이 인수 결정을 철회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장 4분기 손실도 예상하지 못한 만큼 앞으로의 손실 가능성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란 게 김 회장의 판단인 셈이다.
호반건설에 정통한 IB관계자는 “김 회장은 지난주까지도 대우건설이 작년 4분기 3000억원대 해외손실이 발생할 지 명확히 알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해외사업 진출을 위해 대우건설 인수에 의지가 많았지만 해외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대우건설이 진행 중인 사업장에서 추가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보고서를 믿기 어려워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호반건설은 인수 가격을 결정하기 위해 대우건설의 기업 가치를 평가해야 한다. 여기에선 대우건설이 조사한 자료가 바탕이 되는데 수주 잔액, 공기 진행률, 예상 원가율 같은 사업장별 세부 사항이 들어있다. 물론 회계법인의 감사가 동반되지만 대우건설이 작성한 조사 결과가 바탕이다. 작년 4분기 실적 발표를 앞두고도 대규모 손실을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 자료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우건설의 국내외 수주 잔액은 작년 3분기 기준 33조원 규모. 이중 해외에서 전체의 18%인 6조677억원이다. 해외사업은 국가 정세, 노동자 파업, 설계 변경과 같은 변수가 많다. 원가율을 정확히 예측하기 어려운 이유다. 다만 카타르 고속도로 현장, 이라크 알포, 알제리 RDPP, 모로코 사피를 비롯한 저가 사업장을 아직 준공하지 못해 추가 손실에 무게가 실린다.
‘자수성가’ 기업가인 김상열 회장이 보수적 경영을 펼치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해외사업 진출을 위해 대우건설은 매력적인 매물이지만 김 회장 입장에선 이런 해외사업 손실이 통제 불가능한 수준이다. 매년 수천억원대 손실이 발생할 경우 현금 유동성이 좋은 호반그룹도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이런 배경이 발 빠른 인수 포기로 이어졌다.
또한 인수를 막판에 포기해도 잃을 게 없다는 배경도 한 이유다. 호반건설은 대우건설 인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무형적인 광고 효과를 얻었다.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진 만큼 향후 주택사업을 한층 유리하게 펼칠 수 있다. 게다가 금전적으로도 손해가 없다. 인수 추진을 위해 자문료를 일부 부담한 정도다. 입찰 보증금은 본계약을 앞두고 MOU를 체결할 때 내기로 했다. 아직 계약을 체결하지 않아 인수대금의 계약금이 들어가지 않은 것. 이 때문에 지금 발을 빼도 계약금을 날릴 걱정을 안해도 된다.
IB업계 관계자는 “호반건설이 대우건설 인수를 막판에 포기한 것에 대해 정치적 부담, 노조 반발, 특혜 의혹과 같은 이유가 작용했다는 시각이 있으나 해외사업을 통제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작년 대우건설의 해외손실에 대해 산업은행이 미리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것도 이번 매각이 결렬된 한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뉴스핌 Newspim] 이동훈 기자 (leed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