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장주연 기자] 형 놀부는 부모 유산을 독차지하고 동생 흥부를 내쫓는다. 흥부는 처자식과 함께 갖은 고생을 하며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흥부는 다리가 부러진 제비를 발견하고 정성껏 돌봐 날려 보낸다. 이듬해 그 제비는 흥부에게 박씨 한 개를 물어다 주고, 가을에 거둔 박 속에서는 보물이 쏟아져 나온다. 이 소식을 들은 놀부는 제비를 잡아 다리를 부러뜨린 후 실로 동여매 날려 보낸다. 그 제비 또한 이듬해 봄 박씨를 물어다 준다. 그러나 놀부 박 속에서는 괴물이 나타난다.
우리가 흔히 아는 고전 소설 ‘흥부전’의 이야기다. 배우 정우(37)의 신작 ‘흥부:글로 세상을 바꾼 자’(흥부)는 이 ‘흥부전’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단, 전형적인 스토리를 벗어나기 위해 발상을 전환을 더했다. ‘흥부전’을 흥부가 썼다는 것. 14일 개봉한 영화 ‘흥부’는 천재 작가 흥부가 정반대의 두 형제에게 영감을 받아 소설 ‘흥부전’을 집필하면서 세상을 바꾸는 이야기를 담았다.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친근한 인물을 재해석한 거잖아요. 흥부와 놀부라는 이름을 가진 주인공들이 나오지만, 그 안을 보면 또 다른 진짜 흥부와 놀부가 있잖아요. 그 자체가 너무 참신하게 다가왔어요. 또 흥부 캐릭터에도 밑도 끝도 없는 공감을 많이 했고요(웃음). 연민이 느껴져서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죠. ‘흥부’라는 두 글자가 주는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캐릭터라 특히 신선했고요.”
극중 정우는 타이틀롤 흥부를 연기했다. 어린 시절 민란 속에서 하나뿐인 형과 헤어진 흥부는 형이 찾을 수 있게 글을 쓰기 시작, 조선 최고의 천재 작가로 이름을 떨친다. 이후 형을 다시 만나기까지, 그 과정에서 흥부는 많은 사람과 만나고, 또 헤어진다.
“감정 표출의 정도에 고민이 많았죠.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게다가 인물들을 만나고 보내기를 반복하잖아요. 근데 이게 캐릭터 간 사연이 충분히 쌓인 후가 아니라 더욱 힘들었죠. 함께한 시간은 길지 않은데 감정은 깊은 거예요. 정말 외로운 시간이었죠. 돌파구요? 못 이겨냈어요. 그냥 고민하면서 촬영하다 보니 어느새 마쳤죠. 잘해낸 건지도 모르겠어요(웃음).”
감정의 강약을 조절하기도 쉽지 않은 그에게 또 다른 과제도 주어졌다. 사극 연기를 소화하는 것. 지난 2009년 영화 ‘바람’으로 데뷔한 정우는 그간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오가며 다양한 장르, 캐릭터를 소화해왔지만, 사극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실 첫 사극이라는 걸 크게 의식하지 않았어요. 물론 사극에 대한 궁금증도 있고 배우로서 차별화된 걸 보여주고 싶은 욕심도 있었죠. 근데 보셨다시피 우리 영화는 정극 느낌이 아니죠. 시나리오 자체도 열려있었어요. 정극으로 해도 됐지만, 지금처럼 약간 캐주얼하고 편안하게 가도 되는 텍스트였죠. 고민 끝에 조금 더 친근하고 편안하게 다가가는 게 낫지 않을까 했어요.”
‘흥부’를 이야기하면서 고(故) 김주혁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흥부’는 지난해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고인의 유작이다. 김주혁의 출연으로 이 영화를 망설임 없이 택했다는 정우는 마음을 추스른 후 담담하게 고인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사실 영화를 제대로 못 보겠더라고요. 함께한 기억이 많이 떠올랐어요. 촬영하면서는 존재만으로도 정말 많은 힘이 됐죠. 언제나 묵묵히 지켜봐 주시고 늘 응원해주셨어요. 현장 분위기도 따뜻하고 유쾌하게 만들어 주셨고요. 그런 따뜻함을 배우로서, 또 한 사람으로서 닮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죠. 지금 바람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면서 선배를 많이 기억해줬으면 하고요….”
영화에서 고인은 정우에게 꿈꾸라고, 땅이 하늘이 되는 세상을 꿈꾸라고 말한다. 이는 김주혁의 마지막 메시지이자 ‘흥부’의 주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정우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지금 무엇을 꿈꾸고 있느냐고.
“예나 지금이나 전 배우를 꿈꿔요. 물론 그 안에서 변화는 있었죠. 예전에는 단순히 신인상 받는 게 꿈이었다면, 지금은 어떤 배우가 될 것인가를 고민하며 더 나은 배우가 되고자 해요. 그러면서 작품 할 때마다 저 자신을 돌아보고 있죠. 때로는 자책도 하면서요. 그게 모여서 좋은 자양분이 될 거라 믿죠. 그래서 지금은 지치지 않고 감사히 생각하면서, 열심히 하고 싶어요.”
[뉴스핌 Newspim]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