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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왜 쓰나요?"…'SBS 스페셜', 돈 안쓰고 잘사는 짠돌이들 비법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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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SBS>

[뉴스핌=장주연 기자] ‘SBS스페셜’에서 돈 안쓰는데 이골이 난 짠돌이들을 찾아간다.

25일 방송하는 ‘SBS스페셜’은 ‘돈, 왜 쓰나요?’ 편으로 에서는 소문난 짠돌이들의 사례를 통해 돈 안쓰고 잘사는 비법을 파헤친다.

금수저가 아니라면, 현재 대한민국에서 돈을 모으는 방법은 절약뿐이다. 그래서 “‘욜로(YOLO)’ 외치다 ‘골’로 간다”는 우스갯소리부터 “소비하면 ‘스투핏’ 쓰지 않으면 ‘그레잇’”이란 말을 듣는 요즘, “돈을 왜 쓰나요, 안 써도 잘 사는데”라고 외치는 짠돌이들이 있다.

◆‘돈, 안 쓰고’도 잘 살 방법, 있을까
한도 45만 원짜리 카드가 있지만, 보험료에 관리비까지 내고 나면 남는 건 한 달 5만 원뿐이라는 강현식(46세) 씨. 그는 회사에서 ‘짠돌이 강과장’으로 통한다. 하지만 그 뒤에는 더 짠내 나는 아내 김순하(46세) 씨가 있다. 전기세 아끼려고 저녁 8시면 불을 끄는 탓에 초등학생 두 아들은 어둠 속에서 이를 닦고 저녁 9시에 잠든다. 게다가 세탁에 사용한 물을 버리지 않아 120ℓ의 물을 재활용한다.

그 결과 4인 가족 2만6000원이던 수도세가 4000원대로 떨어졌다. 부부가 이렇게 절약을 생활화하게 된 건 과거 공과금 독촉장이 날아올 정도로 심각한 ‘하우스 푸어’였기 때문이다. 집을 팔아 대출금을 청산한 후 순하 씨는 당시 300만 원도 채 안 되는 소득을 모아 3년 만에 30평대 집을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 돈 모으는 재미에 푹 빠진 탓일까. 이젠 한 달 5만 원인 남편 용돈을 전액 삭감, 허리띠 더 졸라맬 궁리 중이다.

◆돈 없는 사람만 돈 안 쓰나? 돈 있어도 안 쓴다!
강남에서도 소문난 부자들이 모여 산다는 한 주상복합의 입주자 대표 김 회장님, 김태수(75세) 씨. 그는 은행에서 직접 돈을 찾아다 줄 정도의 최고급 서비스를 누리는 자산가다. 하지만 만 원 내외의 옷차림을 고수하고 손수 꿰맨 지갑을 들고 경차를 탈 만큼 짠순이다.

과거 만 원을 벌면 500원만 쓸 정도로 돈을 아꼈다는 김 회장은 부자가 된 후에도 매일 가계부를 쓴다. 아파트 단지 내 비품도 세어가며 돈을 절약한 덕에 아파트 관리비를 가구당 최고 60만 원씩 절감, 2012년 에너지관리공단에서 5000만 원의 포상금까지 받았다. 돈 많은 사람이 더 돈을 좋아한다 말하는 김 회장의 지론은 무엇일까.

◆지름신 ‘유혹’ 버텨내는 짠돌이의 비밀
하지만 2016년 기준, 가구당 월 평균 소득은 439만9000원, 월평균 지출은 336만1000원에 달한다. 한 달에 모을 수 있는 돈이라고 해봤자 100만 원 정도다. 그렇다면 300만 원 남짓한 소득에서 100만 원도 지출 하지 않고 산다는 김순하 씨 부부의 경우와 우리는 대체 무엇이 다를까.

최근 카이스트 연구팀에서는 일명 ‘지름신 회로’라는 신경회로를 발견했다. 쥐 실험을 통해 뇌 시상하부에 존재한다는 MPA 신경회로를 인위적으로 자극하면, 물건에 집착하는 사실을 발견한 것. 즉 지름신은 모든 사람에게 존재하는 본능일 수 있다. 그런데 짠돌이들은 이 지름신의 ‘유혹’을 어떻게 버텨내는 것일까.

◆돈, 써야 한다면 어떻게 쓸까?
겉으로만 보면 다른 짠순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강단비(33세) 씨. 하지만 사고 싶은 코트 값이 내려가길 기다리던 중 주식을 사서 주주가 됐을 만큼 소비에 남다른 사고방식을 가졌다. 과거 일주일에 100만 원을 소비를 하던 그를 짠순이로 살게 해준 비법은 운동. 단비 씨는 몸이 지칠 때까지 운동을 했다. 그렇게 1년을 보내니 자신에게 꼭 필요한 곳에만 돈을 쓰기 시작했고 소비 습관도 바뀌었다.

강현식, 김순하 씨 부부의 초등학생 두 아들은 한 달 5000원 용돈을 몽땅 저금해 벌써 20만 원가량의 돈을 모았다. 장난감을 사는 일조차 시시하게 느껴진다는 아이들은 아빠의 차 유류비에 돈을 보태주고, 치과 치료비의 일부를 자신들이 내는 일이 더 뿌듯하다. 아이들은 어떤 계기로 달라질 수 있었을까.

한편 ‘SBS스페셜’은 매주 일요일 밤 11시15분에 방송한다. 

[뉴스핌 Newspim]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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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제6사 사장 김일성의 출현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동북항일연군 제6사 사장 김일성(金日成)이 1937년 11월 13일 사살된 이후부터 한동안 이 부대에 대한 동향이 파악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38년 봄부터 갑자기 새로운 김일성(金日成)의 움직임이 일본 경찰 정보망에 잡혔다. 신임 제6사 사장 역시 소련으로부터 파견돼 온 자였다. 그는 소련 지령으로 전임자 김일성(金日成)의 이름을 이어받은 것이었다. 후임 제6사 사장 김일성(金日成)은 1939년 봄에 사(師)를 묶어서 방면군(方面軍)으로 편제를 변경하는 동북항일연군 제3차 개편 때 제1로군 제2방면군장(方面軍長)이 되었다. 소련은 중일전쟁 발발 후, 일본이 소련을 공격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동북항일연군에 적극적인 군사 지원을 하였다. 그중에서도 소련군 내 한국·중국인 군관들에게 유격 전술을 교육하여 파견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신임 제6사(제6사는 동북항일연군 제3차 개편 때 제2방면군이 된 부대) 사장으로 취임한 김일성(金日成)은 본명이 김일성(金一星)이다. 김성주 별호와 같다. 그는 1930년 5월 30일 간도 폭동 사건 때 용정에 있었던 한인이 다니는 대성중학교 학생이었다. 이날 밤(1930년 5월 30일) 김일성(金一星)은 용정역 기관차에 불을 지르는 등의 행위로 일본 경찰에 붙잡혔으나, 서울로 압송되기 전 탈출에 성공했다. 그 후 소련으로 건너가 적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련 공산당 지령에 따라 1938년 동북항일연군으로 파견돼 온 것이었다. [사진= AI 생성 이미지]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1938년 4월 26일 밤 제2방면군은 평안북도 후창(厚昌) 경찰서 부흥(富興) 주재소 대안 임강현(臨江縣) 제3구(三區) 6도구(六道溝)를 습격하였다. 병력은 약 500명이었다. 모두 개인화기를 소지하고 있었고, 경기관총 6정도 출동하였다. 총 5개 대(隊)로 나누어 나팔을 불며 공격했다. 일본인 세무서원 2명, 중국인 세무서원 1명을 현장에서 사살했다. 지역 주민 50여 명을 납치해 갔다. 현금 2천 원, 식량 1만 원 상당을 탈취하였다. 이에 일본군과 만주군은 중일전쟁 후방지역 안정화 차원에서 동북항일연군 토벌 작전을 강도 높게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군에 의한 토벌뿐만 아니라, 심리전, 교통 차단 등 다양한 봉쇄 작전을 펼쳤다. 그 결과 1939년 봄이 되면 동북항일연군 제2·3로군의 전투력은 거의 소진돼 버렸다. 제2·3로군 중 전투력을 일부 보전한 부대는 소련으로 도주하거나, 소만 국경 지대로 은거했다. 전투력을 유지한 부대는 제1로군 뿐이었다. 이때 제1로군 사령관은 중국인 양정우(楊靖宇)였고, 부사령관은 중국인 위극민(魏極民), 사령관 비서처장 겸 군수처장은 앞서 설명한 한인 오성륜(吳成崙)이었다. 총병력은 3000여 명이었다. 제1로군은 동변도(東邊道)라 부르는 길림, 통화 간도 일대의 험준한 산악지대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부대 정비에 들어갔다. 이때 제3차 부대 개편을 단행하였다. 전투력을 유지하고 있다고는 했지만, 병력 손실이 큰 데다, 추가 병력 보충이 어려웠다. 그래서 기존의 로군 아래 군(軍)을 없애고 군(軍) 예하 모든 사(師)를 통합하여 제1·2·3방면군으로 바꾼 것이다. 제1방면군장은 조아범(曺亞範), 제2방면군장은 김일성(金日成), 제3방면군장은 진한장(陳翰章)이었다. 일본군과 만주군은 1939년 10월부터 1941년 3월까지 1년 6개월간 더욱 강하게 동북항일연군 토벌 작전을 전개했다. 이때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양정우가 1940년 2월 23일 몽강현(濛江縣) 남쪽 490고지에서 사살되었다. 그는 부하 몇 명만을 거느린 채 끝까지 항전하다 죽었다. 양정우가 죽자, 부사령관 위극민, 비서실장 겸 군수처장 오성륜,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 등 11명의 동북항일연군 수뇌부는 1940년 3월 사령관 양정우 사후 문제를 논의했다. 첫째 군은 대중 속으로 들어가 병력 획득 공작을 벌인다. 둘째 소부대로 분산하여 가능하면 북상하여 제2·3로군과 합류한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이때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부대를 10명 이하의 여러 개의 소부대로 나누어 북상하도록 하면서 모두 '김일성 부대'라는 명칭을 사용하도록 하였다. 이에 김성주가 속한 소부대도 '김일성 부대' 명칭을 사용하면서 소련 방향으로 이동하였다. 이 무렵 일본군과 만주군은 머리를 빗는 식의 섬멸 작전을 뜻하는 빗질 작전, 쇠파리처럼 끝까지 따라붙는다는 쇠파리 작전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제1로군 제1방면군장 조아범이 1940년 4월 8일 부대 내 한중간 민족 대립으로 한인 부하로부터 암살당했다. 제3방면군장 진한장은 1940년 12월 8일 일본군에게 사살되었다. 제1로군 사령관 비서실장 오성륜은 1941년 1월 30일 일본군에게 투항했다. 군 수뇌부가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자, 동북항일연군은 급속하게 무너졌다. 1941년 3월 말 기준 유기 시체 1282구, 투항 1040명, 체포 890명의 손실을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부대를 여러 개의 소조직으로 재편하여 각자도생식(各自圖生式: 제각기 살길을 도모함)으로 도주하여 소련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하였다. 이때 소련으로 도주한 동북항일연군은 대략 300명이었다. 주요 인물을 살펴보면, 제2로군 총사령 주보중(周保中), 제3로군 총사령 장수전(張壽錢), 제2로군 참모장 최용건(崔庸健), 그리고 문제의 김성주와 그의 처 김정숙(金靜淑)도 이들 무리에 끼어있었다. 1940년 11월이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2026-03-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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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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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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