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오피니언 내부칼럼

속보

더보기

[격동의 모스크바 이야기]...(2-3) 소련붕괴 앞당긴 '기이한' 쿠테타

기사입력 : 2018년12월31일 17:54

최종수정 : 2019년01월04일 15:13

※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더 작게
  • 작게
  • 보통
  • 크게
  • 더 크게

※ 번역할 언어 선택

누구도 예측못한 거함의 침몰...8인 위원회 쿠테타 주도 전권장악
국내외서 격렬한 반대 움직임...자중지란 지도부 3일만에 제압
쿠테타 후폭풍...옐친 부각-고르바초프 사임-공산당 해체-CIS 창설

2. 누구도 예측못한 거함의 침몰

(2-3) 소련붕괴 앞당긴 ‘기이한’ 쿠테타

[김흥식 뉴스핌 객원논설위원]

1991년 8월 19일 새벽 대사관의 서현섭 정무참사관으로부터 어학연수중이던 필자의 대학 기숙사로 전화가 왔다. 다급한 목소리로 쿠데타가 일어난 것 같다며 TV를 지켜보면서 안전을 위해 대사관과 긴밀한 연락을 유지하자고 했다. TV를 켜보니 정지화면과 함께 별다른 설명없이 클래식 음악만 흘러나오고 있었다.

6시경에 쿠데타에 동원된 탱크와 장갑차가 모스크바 시내로 진입하는 장면이 나왔다. 별다른 충돌은 보이지 않았고 분위기도 그다지 삼엄하다고 할 수도 없었다. 조금씩 무리지어 모인 시민들이 쿠데타군을 향해 항의를 하는데 군인들은 어색한 미소를 짓는가 하면 시민들과 대화하는 모습이 특이했다. 쿠데타군을 보면서 북방외교의 정점으로 과시했던 한·소 수교가 한 돌을 맞기도 전에 격랑 속으로 빠져들겠구나 하는 생각에 착잡한 기분이었다.

[서울=뉴스핌] 모스크바 크레믈린궁 대통령 집무실의 군인 (2008.09.29.)

◆쿠테타 주도 8인 위원회 전권 장악...고르바초프 부부 연금 후 감행

잠시 후 쿠데타를 주도한 8인의 국가비상사태위원회가 전권을 장악했으며 전국에 6개월간 비상사태가 선포됐다는 포고령을 발표했다. 8인 위원은 위원장인 야나예프 부통령을 위시해 파블로프 총리, 바클라노프 소련 연방국방위원회 위원장 대리, 야조프 국방장관, 푸고 내무장관, 크류츠코프 KGB의장 등이었다. 보수파임에도 고르바초프의 각별한 신임을 받은 인물들이었다. 쿠데타 동조자 중에는 고르바초프의 비서실장도 포함돼 있어 충격을 주었다.

이들은 쿠데타 결행 하루 전 흑해 크림 휴양지 포로스에서 휴가를 즐기던 고르바초프를 찾아가 비상사태(계엄)를 선언하든가 대통령 직을 사임하라고 강요했다. 페레스트로이카를 폐기하고 이전의 강력한 공산체제로 돌아가기 위한 목적이었다. 거부당하자 대통령 부부를 별장에 연금하고 다음날 쿠데타를 감행한 것이다.

비상사태위원장이 된 야나예프는 내외 기자회견에서 ‘와병중인’ 고르바초프를 대신해 자신을 임시 대통령이라고 선포하고 개혁·개방 노선을 계속 유지하며 대통령의 건강이 회복되면 함께 일하게 되길 바란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쿠데타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기자회견인데도 알코올 중독자처럼 손이 떨리며 지친 기색이 역력한 그의 모습에서 쿠데타 지도자로서의 위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시민들은 쿠데타를 일으킬 자격도 열정도 없다고 비웃었다. 8인 중에 가장 패기만만한 바클라노프가 실질적인 지도자라고 러시아 언론들이 지목했다.

[서울=뉴스핌]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

◆국내외서 격렬한 쿠테타 반대 움직임...자중지란 지도부 3일만에 제압

쿠데타 발생 직후 러시아 초대 민선 대통령인 옐친이 결연하게 쿠데타 반대투쟁을 벌이면서 전국적인 집회와 시위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미국을 위시한 해외에서도 격렬히 비난했다. 예상외의 사태 진전에 놀란 쿠데타 지도부는 자중지란에 빠졌다. 책임전가로 옥신각신하더니 7명의 위원이 국외 탈출하려다 체포됨으로써 3일 만에 싱겁게 막이 내렸다. 엉성한 준비에 상황판단도 치밀하지 못한 상태에서 눈치보다 제압되어 버린 것이다. 취재진들 사이에 ‘기이한 쿠데타’라는 비아냥이 나왔다.

쿠데타 제압과정에서 옐친의 적극적인 활약에 비해 고르바초프의 역할이 미미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한편으론 쿠데타가 실패한 배경에는 6년간 추진한 페레스트로이카의 잠재적인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즉 고르바초프가 야심차게 추진한 개혁, 개방과 체제완화, 자유화조치가 이미 제도적으로 자리잡아 시민의 민주의식이 높아졌기 때문에 쿠데타 세력이 전혀 지지를 받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서울=뉴스핌]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 [사진=게티이미지]

◆쿠테타 후폭풍...옐친 부각-고르바초프 사임-공산당 해산-CIS 창설

어쨌든 실패했지만 쿠데타가 소련 정치판에 끼친 후유증은 심대했다. 옐친이라는 새로운 영웅이 부각되었고 개혁의 아이콘 고르바초프는 졸지에 구시대를 상징하는 인물로 전락했다. 쿠데타라는 원죄를 저지른 공산주의 세력은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즉 쿠데타 사건 일주일만인 8월 24일 고르바초프는 소련 공산당 서기장 직을 버리게 됐고 이어 소비에트 사회주의 총본산격인 공산당을 해산하기에 이른다.

옐친은 고르바초프가 대통령으로 있는 소비에트 연방정부를 완전히 무력화시킨 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지도자와 함께 소련해체와 독립국가연합(CIS) 창설을 선언했다. 마침내 12월25일 고르바초프는 소련 대통령을 사임하고 거대한 붉은제국 소련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런 일련의 엄중한 사태는 쿠데타 사건 이후 불과 4개월만에 전광석화처럼 일어났던 것이다. 쿠데타의 후폭풍은 그만큼 거셌다.

▲김흥식 뉴스핌 객원논설위원
한국외대 러시아어과를 졸업하고 1977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첫발을 디뎠다. 1980년 신군부에 의해 강제로 해직되는 아픔을 겪고 쌍용그룹에 몸담고 있다가 1988년 연합뉴스 기자로 복귀했다. 1991년 한국의 첫 모스크바 특파원으로 파견돼 맹활약했다. 이후 연합뉴스 북한부장, 남북관계 부장, 문화부장, 논설위원실 간사, 경영기획실장을 거쳐 편집담당 상무이사를 지냈다. 퇴임후 연합뉴스 부설 동북아센터 상임이사, 중소기업진흥공단 비상임이사, 도로교통공단 비상임이사,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특별위원 등을 지낸뒤 현재 뉴스핌 객원논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khs@newspim.com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변상문의 화랑담배] 제2회 광복군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1940년 9월 17일 중국 중경 가릉호텔에서 성대한 행사가 열렸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창설식이었다. 미국 한인 동포들이 보내온 돈 4만원으로 조직한 군대였다.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20억 원 정도 된다. 총사령관 이청천 장군, 참모장 이범석 장군, 제1지대장 이준식, 제2지대장 고운기, 제3지대장 김학규, 제5지대장에 나월환을 임명했다. 지대장은 지금의 사단장에 해당한다. 모두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를 비롯하여 남북 만주에서 전개된 항일무장투쟁에 직접 참여하여 활동한 독립군 출신이었다. 한국광복군 훈련반 제1기 졸업사진. [사진= 독립기념관] 임시정부 주석 김구는 포고문을 통해 "국내외 동포들에게 알립니다. 1940년 9월 17일부로 대한민국 광복군을 창설하였습니다. 광복군은 1907년 8월 1일 일제가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한 날이 바로 광복군 창설일임을 선언합니다. 광복군은 구 한국군의 후신으로 33년간에 걸친 의병과 독립군의 항일무장투쟁을 계승한 전통 무장 조직입니다"라고 했다. 대한제국 국군-의병-독립군의 군맥(軍脈)과 군혼(軍魂)을 분명하게 잇고 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부대 편성은 소대, 중대, 대대, 연대, 여단, 사단 6단으로 편성하였다. 총 3개 사단을 조직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인원이 적은 상황에서 우선 지대를 만들고, 각 지대를 구대와 분대로 연계한 전투부대를 구성했다. 임시정부에서 1940년 9월 19일 중국 국민당 정부에 통보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직원 명단'에 의하면, 부대 규모가 총사령부와 4개 단위부대, 여기에다 조선혁명군 부대까지 포함하여 5000여 명이었다. 임시정부에서는 1941년 12월 연합국의 일원으로 일본에 선전포고했다. 1942년에는 미국 측에 "미국이 제주도를 해방 시켜 주면, 중경에 있는 임시정부를 제주도로 옮긴 후, 광복군이 미군과 함께 한반도 상륙작전을 전개하겠다."라고 제안하였다. 이 제안은 실제로 미국 OSS 부대(지금의 CIA)와 1945년 4월부터 8월까지 강도 높은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했다. 주요 훈련은 3개월 기간에 고공낙하, 암살법(권총에 특수장치를 하여 소리 없이 암살하는 방법), 통신(암호의 작성 및 해독법, 무전기 조작 및 수리), 교란 행동, 정보수집, 폭파 등 이었다. 일과는 07:00∼12:00 오전 훈련, 13:00∼18:00 오후 훈련, 19:00∼22:00 야간 훈련이었다. 주요 임무는 대한민국으로 낙하산과 잠수함으로 침투하여 미 공군 공습에 필요한 지형 등의 정보를 제공하고 일본군 군사시설 탐지 및 파괴 지하 유격대를 조직하여 연합군 상륙작전 시 제2선에서 연결하는 작전이었다. 마침내 1945년 8월 7일 모든 훈련을 마치고 국내진공작전 출정식을 개최했다. 개시일은 8월 10일이었다. 출정식 때 장준하 경기도 공작 반장은 "나는 조국광복을 위해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내가 나의 죽음을 지불하면, 내 능력껏 그 대가가 조국을 위해서 결제될 것입니다. 나의 각오는 한 장의 정수표입니다. 발생인은 장준하, 결제인은 조국입니다"라는 유서까지 작성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2025-09-08 08:00
사진
'포스트 이시바' 누구?...고이즈미·다카이치 선두 [서울=뉴스핌] 오영상 기자 =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자민당 총재직 사임을 공식화하면서, 일본 정국의 관심은 차기 자민당 총재 선거로 쏠리고 있다. 집권당 총재가 곧 총리직을 맡는 일본 정치 구조상 이번 총재 선거는 사실상 다음 총리를 뽑는 절차다. 자민당은 조만간 새로운 총재 선거 일정을 확정할 예정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지난 2024년 9월 총재 선거에서 이시바 총리와 경합했던 주요 인사들이 다시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담당상,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 모테기 도시미쓰 전 간사장,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담당상 등이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정국 운영이 소수 여당이라는 제약 속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차기 총재가 야당과 어떻게 연대할지, 어떤 연립 구도를 짤지가 최대 쟁점으로 꼽힌다. '포스트 이시바' 후보로 꼽히고 있는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농림수산상 [사진=로이터 뉴스핌] ◆ 고이즈미·다카이치 선두권 현재 여론조사에서는 고이즈미 농림수산상과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이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지난달 29~3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차기 총리에 적합한 인물로 다카이치가 23%, 고이즈미가 22%를 기록했다. 나란히 1, 2위다. 자민당 지지층으로 한정하면 고이즈미가 32%로, 다카이치(17%)를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카이치는 2024년 총재 선거에서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으나 결선에서 이시바에게 역전패했다. 고이즈미 역시 의원 표에서 선두에 올랐지만 당원 표에서 밀리며 결선에 오르지 못했다. 두 사람 모두 당내 기반과 대중적 인지도를 겸비해 차기 선거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주자들이다.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1981년생(44세)으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차남이다. 2009년 중의원 첫 당선 이후 줄곧 '포스트 아베', '차세대 리더'로 주목받았다. 환경상, 농림수산상을 거쳤으며 개혁 성향과 젊은 이미지로 지지층을 넓혔다. 2024년 총선에서 당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으나 참패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이후 농림수산상으로 복귀해 쌀 유통 개혁 등 농정 개혁에 매진했다. 대중적 인지도와 '고이즈미 브랜드'라는 정치 자산이 최대 강점으로 꼽힌다.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은 1961년생(64세)으로 보수 강경파로 분류되는 여성 정치인이다. 2021년 총재 선거에 첫 도전해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전폭적 지원을 받으며 3위를 기록했다. 2024년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최다 득표(의원 72표, 당원 109표)를 얻었으나 결선에서 이시바 총리에게 역전 당했다. 유일한 여성 후보로서 '보수의 아이콘' 이미지를 갖고 있으며, 아베 전 총리와 가까웠던 의원 그룹이 주된 지지 기반이다. 이시바 정권에서 당직 제안을 거절하며 독자 노선을 유지해 왔다. '포스트 이시바' 후보로 꼽히는 다카이치 사나에 전 일본 경제안보담당상 [사진=로이터 뉴스핌] ◆ 하야시·모테기 등 잠룡도 주목 고이즈미와 다카이치 두 선두 주자 외에 잠룡들의 행보도 주목된다.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옛 기시다파 일부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이시바 정권의 2인자로서 존재감을 키워왔다. 모테기 도시미쓰 전 간사장은 당내 경험과 풍부한 인맥을 강점으로 삼고, 아소 다로 전 부총리와 교류를 통해 지지 기반을 다지고 있다.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담당상은 5선 의원으로, 동기 의원들과 옛 니카이파의 지원을 받으며 출마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 총재 선거 이후에도 정국 '안갯속' 자민당 총재 선거는 국회의원 표와 당원·당우 표를 합산하는 방식이 원칙이지만, 긴급 시에는 국회의원과 지방 지부 대표만 투표하는 '양원 의원 총회' 방식으로 대체될 수 있다. 이 경우 의원 표의 비중이 커져 파벌 역학이 중요해진다. 차기 총재가 선출되더라도 곧바로 정권 안정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일본 헌법상 총리는 국회에서 지명되는데, 자민·공명 양당은 현재 중의원과 참의원 모두에서 과반을 잃은 상태다. 따라서 야당이 단일 후보를 세워 결집할 경우, 자민당 총재가 총리로 지명되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자민당 총재가 총리에 오르더라도, 예산안·세제 개혁 법안 등 국정 운영은 야당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차기 총재는 곧바로 '연립 확대'나 '정책 연대'를 추진할 수밖에 없고, 총재 선거 과정에서도 어떤 야당과 손을 잡을지가 핵심 화두가 된다. 결국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는 단순히 차기 지도자를 뽑는 절차를 넘어, 일본 정치가 다당제 속에서 어떤 연립 구도를 구축할지 시험대가 되는 분기점으로 평가된다. goldendog@newspim.com 2025-09-08 09:26
기사 번역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기사제목
기사가 번역된 내용입니다.
종목 추적기

S&P 500 기업 중 기사 내용이 영향을 줄 종목 추적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