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국회 잇따라 만나 노동이사제 설득
노조 사외이사 추천 권한 없어…당국은 부정적 입장
[서울=뉴스핌] 최유리 기자 = IBK기업은행 노동조합이 노동이사제를 도입하기 위해 금융권과 정치권을 상대로 전방위 설득에 나섰지만 분위기는 냉랭하다. 법적으로 노조에게 사외이사 후보 추천 권한도 없는데다 관계 부처 반응도 소극적이다. 현실적으로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CI=IBK기업은행] |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기업은행 노조는 지난 27일 금융위원회와 국무총리실 관계자를 잇따라 만나 면담했다. 노조가 추천한 사외이사 후보를 소개하고, 노동이사제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자리였다.
기업은행 노조는 지난 25일 박창완 금융위 금융발전심의회 위원을 신임 사외이사로 추전했다. 박 위원은 경남은행 노동조합 위원장,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부위원장을 거쳐 정의당 중소상공인본부장으로 활동했다. 금융위에서 운영하는 금융위 조직혁신기획단(TF)의 외부자문단으로 참여해 금융공공기관에 노동이사제 도입을 권고한 바 있다.
지난 19일에는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과 함께 민병두 국회 정무위원장을 만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기업은행 노조는 노동이사제 도입을 위한 국회의 협조를 요청했다.
노조가 전방위 설득에 나서고는 있지만 당장 노동이사제 도입은 어려워 보인다. 사외이사를 추천할 권한 자체가 없는 상황에서 금융권 노동이사제 도입에 대해 당국이 부정적인 입장이기 때문이다.
기업은행 지배구조 내부규범에 따르면 사외이사는 이사회 운영위원회에서 후보를 추천해 은행장의 제청으로 금융위가 임면한다. 기업은행 정관에도 사외이사는 은행장의 제청으로 금융위가 임면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 지배구조 내부규범이나 정관에 따라 노조에겐 사외이사 추천 권한이 없다는 의미다.
결국 이사회 승인을 받아 정관을 바꾸거나, 국회를 통해 중소기업은행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관련 움직임은 없다. 노동이사제 도입을 담은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 개정안' 역시 야당의 반대에 막혀 국회에 계류중이다.
관계 부처의 반응도 냉랭하다.
기업은행 노조와 면담한 최훈 금융위 정책국장은 "법적으로 은행장 제청을 받아 금융위가 승인을 해야 한다"며 "노조 입장을 들어보는 자리였다"고 말했다. 앞서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밝힌 대로 금융권에서 노동이사제를 먼저 도입해야 할 필요성이 낮다는 입장을 전달했다는 전언이다.
최종구 위원장은 최근 "근로자 권익보호 측면에서도 은행 쪽은 임금이나 복지수준 등 근로여건이 다른 산업보다 훨씬 양호하다"며 "금융회사에 먼저 도입돼야 할 필요성은 인정되기 어렵다"고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낸 바 있다.
공공기관 관련 부처인 기획재정부 입장도 마찬가지다. 기재부는 최근 각 공공기관이 노사합의로 노동이사제 대신 이사회 참관제를 도입하기로 했기 때문에 기업은행만 노동이사제를 허용할 수는 없다는 방침이다. 이사회 참관제는 공공기관 직원들이 기관 이사회에 참관할 수 있는 제도다. 다만 경영사안에 대한 의결권한은 없다.
여기에 기업은행과 함께 노동이사제를 추진하던 KB금융그룹 노조가 사외이사 후보 추천 주주제안을 자진 철회하면서 동력이 떨어졌다. 지난 21일 KB금융그룹 우리사주조합과 KB금융노동조합협의회는 백승헌 변호사가 소속된 법무법인이 KB금융 계열사 KB손해보험에 법률자문·소송을 수행한 사실이 있어 후보 추천을 접었다.
금융권 관계자는 "가장 민감한 임금단체협약이 마무리된 이후 노동이사제에 대한 추진력은 약해졌다"며 "임직원들 사이에서도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기업은행 노조 관계자는 "노동이사제 추진은 근로자 복지가 아닌 국책은행으로서 금융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며 "경영진 측에서 논의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라 금융당국과 정치권을 계속 설득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yrchoi@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