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인간적 고뇌 담은 '루드윅:베토벤 더 피아노'
굴곡진 인생, 음악으로 이긴 경험 비슷
더 강하고 광기어린 베토벤으로 탄생
[서울=뉴스핌] 황수정 기자 = "이상하게 첫 공연부터 떨리지 않더라고요. 대본을 받았을 때 나름대로 편하게, 깊은 고통 없이 빨리 받아들여지는 부분이 많았어요. 머릿속에 그려놓은 것들이 잘 맞아떨어진 것 같아요. 첫 공연 후 오히려 기분이 개운했고, 더 달리고 싶은 에너지가 생겼어요."
뮤지컬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 테이 [사진=과수원뮤지컬컴퍼니] |
발라드의 왕자에서 뮤지컬 배우로 거듭난 테이(36)를 지난 25일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테이는 현재 뮤지컬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연출 추정화)에 출연 중이다. 천재 음악가가 아닌 우리와 같은 한 사람으로서 존재의 의미와 사랑에 대해 치열하게 고뇌했던 인간 베토벤의 모습을 담은 작품으로, 테이는 타이틀롤 '루드윅'을 맡았다.
"뮤지컬 데뷔작인 '셜록홈즈'를 같이 했던 이주광, 김려원 배우가 이 작품을 추천해줬어요. 그때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를 하고 있을 때라 장하림이란 캐릭터에 푹 빠져있었는데도, 초연을 보니까 정말 뜨겁더라고요. 앵콜 공연을 한다고 해서 정말 참여하고 싶었죠. 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어요. 그동안 차분하고 아련한 역할을 많이 했는데, 터뜨려야 하는 부분이 엄청 많더라고요. 베토벤이 음악계의 히어로인데, 그의 음악적 고뇌를 담는다면 힘들었겠지만 인간 관계에서 오는 오해, 외로움, 갈등을 표현하니까 제 인생과 많은 부분을 연결해보려고 했죠."
작품은 베토벤과 조카 카를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새롭게 창작된 팩션드라마다. 장애를 딛고 음악가로 대성하는 일반 스토리가 아닌 그의 빗나간 열정의 극치를 보여준다. 루드윅은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음악 교육을 받고, 청력을 잃고 좌절하다 새로운 창작으로 재기하고, 이후 조카 카를을 데려와 아버지 못지 않게 엄격하게 음악을 가르친다. 청년 루드윅과 중년 루드윅이 각각 무대에 올라 그의 변화하는 인생을 조명한다.
"사실 저는 청년 루드윅이 하고 싶었어요(웃음). 계속 그걸 하겠다고 했죠. 하지만 연출님이나 대표님, 이주광 배우도 설득을 많이 했죠. 저와 비슷한,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고민하고 얻을 수 있는 건 청년보다는 루드윅이 맞는 것 같아요. 사실 인위적으로 나이든 것을 연기하는게 굉장히 어려워요. 네 목소리와 닿았을 때 너무 가짜처럼 안 보이려고 노력했죠. 인터넷으로 전기도 많이 찾아읽고, 영화 '불멸의 연인'을 통해 베토벤이 왜 조카에 집착했는지도 이해했고요. 그저 괴팍한 베토벤만 보이고 싶진 않았어요."
뮤지컬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 테이 [사진=과수원뮤지컬컴퍼니] |
테이와 같은 롤을 맡는 배우 중 김주호, 이주광은 지난해 11월 초연 무대에도 같은 역할로 무대에 올랐다. 이번에 새롭게 합류한 서범석은 뮤지컬계에서 알아주는 베테랑이다. 부담스러울 법도 하건만, 테이는 "오히려 좋았다"며 여유로운 미소를 보였다.
"초연 배우들과 함께 하면 그들이 공부한 걸 제가 쉽게 얻을 수 있어 좋아요(웃음). 사실 초연 배우들의 공연을 다 봤는데 정말 똑같은 루드윅이 한 명도 없어요. 대사나 동선은 있어도 생각하는 감정선이 모두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또 다른 루드윅을 만들어내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죠. 제의 베토벤, 저의 루드윅은 조카에게 화는 없어요. 하지만 더 큰 목소리로 강력한 광기를 표출하죠. 제가 힘이 있다보니까 노래도 가장 건강하고 강력하게 나오는 것 같아요(웃음)."
함께 하는 다른 배우들, 창작진 모두 에너지가 넘쳐흐른다. 특히 어린 루드윅과 발터 역을 맡는 아역 배우들은 '선생님'이라 부를 정도다. 추정화 연출의 열정과 애정에 모두가 허투루 연습할 수 없다. 또 그가 배우 출신이기에 연기적인 부분에서도 엄청나게 도움이 된다고.
"성인 배우들이야 다 잘 하는데, 아역 배우들은 정말 대단해요. 특히 차성재 배우는 초연 때부터 했는데, 연습실에서 보고 눈물을 흘린 건 처음이에요(웃음). 저희끼리는 선생님이라고 부르죠. 새롭게 합류한 이시목 배우도 굉장히 똘똘해요. 추정화 연출님이 작품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정말 많아서 연습 때 100% 이상을 끌어내게 만들어요. 사실 예비군과 해외 일정으로 연습을 2주 정도 못 갔는데, 그럼에도 연습실에서 매번 실제처럼 해서 첫 공연 때 안 떨렸던 것 같기도 해요(웃음)."
뮤지컬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 테이 [사진=과수원뮤지컬컴퍼니] |
베토벤의 이야기가 테이에게 더욱 특별한 이유는, 온갖 시련에도 음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베토벤의 마음이 너무나 공감되기 때문이라고. 그 역시 음악을 못할 것 같던 시절이 있었고, 그 시기를 오히려 음악으로 극복해냈다고 밝혔다.
"베토벤이 학대 수준의 음악 교육을 받으면서도 음악을 너무나 사랑해서 버릴 수가 없었잖아요. 제 인생에도 그런 순간이 있었어요. 20대 중반에 같이 지내던 매니저 형의 죽음으로 정말 큰 충격을 받았어요. 제가 큰 사고나 이슈가 없었는데 내부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가수 활동을 한동안 못했어요. 슬픈 노래를 불러야 하는데, 진짜 슬프니까 노래가 안되더라고요. 감정 컨트롤도 안됐어요. 그때 같이 콘서트를 하고 편곡도 도와주는 음악적 파트너 형과 작업실에서 음악 얘기를 하고 음악도 만들면서 나아졌죠. 3년간 밴드 활동을 하면서 엄청 치유가 됐어요. 이후 발라드를 부르니 더 깊어지더라고요. 음악을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현재 테이는 음악도 사랑하지만 연기에 대한 열정이 더 가득하다. 과거 가수를 하면서도 연기 연습을 했었고, 처음 배우로 연기를 한 작품은 2009년 SBS 드라마 '사랑은 아무나 하나'다. 뮤지컬을 만나 연기와 노래를 모두 하면서 더 힘이나고 욕심이 생기고 인정받고 싶다고.
"사실 극단 연습실이나 영화 연습실을 찾아다니면서 연기 준비를 했었어요. 잘해서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죠. 글다가 뮤지컬을 만났는데 잘하고 싶었던 욕심이 너무 많았던 거에요. 힘이 들어가니까 오히려 테이만 보이고, 그 욕심을 버리는게 정말 힘들었어요. 결국은 캐릭터, 작품에 대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이해를 해야 해요. 그러면 욕심을 부려도 캐릭터 안에서 보여줄 수 있거든요. 지금 가장 빠져 있는 것도 연기에요. 제 나이가 이제는 가능성을 보지 않고 해내는 걸 보여줘야 해요. 지인들과 연기에 대해 참 많이 얘기하는데, 결국에는 쓰임이 많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어쨌든 저는 상품이니까요. 오래도록 불러주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뮤지컬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 테이 [사진=과수원뮤지컬컴퍼니] |
테이가 보여줄 '루드윅'은 계속해서 성장할 예정이다. 그리고 또다른 무대 위에서도 보여줄 멋진 테이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뮤지컬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는 오는 6월30일까지 드림아트센터 1관에서 공연된다.
"앨범을 기다리시는 팬들이 많은 것도 알지만, 의지만으로 안 되는 것도 있어서요. 열심히 잘 준비하겠습니다. 일단은 계속해서 무대에 서고 싶어요. 작품이 끝나고 누가 절 다시 불러주고 손을 뻗어주는게 제게는 가장 큰 성과에요. 좋든 나쁘든 저는 많은 피드백이 필요하니, 관객분들도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고요(웃음). 공연을 보면 한 군데 이상 분명히 와닿는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강력추천합니다."
hsj1211@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