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대 후반 할리우드 배경의 블랙코미디 누아르 뮤지컬
재즈 살리기 위해 '엔젤스' 오디션부터 18인조 오케스트라까지
여성 음악감독 드물지만 뮤지컬 저변 확대 위한 책임감 확실
[서울=뉴스핌] 황수정 기자 = 영화와 현실이 흑백으로 구분된다. 1940년대 할리우드에서 유행하던 '필름 누아르'(암흑가를 무대로 범죄와 폭력 세계를 주로 다루는 장르)의 분위기를 살린다. 무엇보다 '재즈' 음악을 통해 작품의 차별성이 강조된다.
뮤지컬 '시티오브엔젤'은 1989년 브로드웨이 초연 후 올해 한국에서 처음 소개된다. 미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천재작곡가 사이 콜먼의 스윙재즈 넘버를 한국에서 가장 핫한 김문정(47) 음악감독이 새롭게 선사할 예정이다. 익숙하지 않은 장르를 어떡하면 더 관객에게 가까이 가져갈지 고민이 깊은 그를 최근 충무아트센터 한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김문정 음악감독 [사진=샘컴퍼니] |
뮤지컬 '시티오브엔젤'은 1940년대 후반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탐정 소설을 영화 시나리오로 만들며 어려움을 겪는 작가 '스타인'과 그가 창조한 시나리오 속 주인공 탐정 '스톤'이 교차하는 극중극이다. 당시 유행했던 영화 장르인 필름 누아르와 팜므파탈 요소를 가미한 블랙코미디 누아르 뮤지컬이다.
"솔직히 누아르의 개념도 잘 모르겠어요(웃음). 기본은 다 재즈인 작품이에요. 사실 정통 재즈는 어려워서 못 들어요. 하지만 저희 작품의 넘버는 어렵지 않죠. 재즈의 기본은 스윙과 바운스인데, 16비트나 다른 종류의 음악도 있긴 해요. 하지만 전반적으로 모든 코드라 리듬은 재즈 스타일이죠. 뮤지컬 '시카고'가 1960년대 모던 재즈라면, 이 작품은 1940년대 재즈이기 때문에 더 전통적인 느낌이에요."
작품은 초연 이후 1990년 토니어워즈 6개 부문, 드라마데스크상 8개 부문을 수상했다. 또 1993년 웨스트엔드에서 로렌스 올리비에상 베스트 뉴 뮤지컬상을 거머쥐며 작품성과 완성도를 인정받았다. 이번 국내 공연은 '논 레플리카(Non Replica, 원작을 국내 정서에 맞게 수정·각색·번안이 가능)' 방식으로 제작된다.
"지금도 연습하면서 계속 고치고 있어요. 넘버를 제외하고서도 장면 전환에 모두 음악이 들어가요. 올드한 부분을 과감하게 빼고, 다른 음악을 갖고 오거나 붙이면서 더 좋은 작품을 위해 고심하고 있죠. 탄탄한 원작인데 논 레플리카라는 자유가 있어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어요. 연습을 하는 과정에서 주는 즐거움이라고 생각해요. 모든 공연이 그렇듯, 하고 싶은 걸 다 해보는 시간이 연습 과정이에요. 이때 재밌게 해야 무대 위에서는 정해진 걸 하는 거죠. 배우들의 의견도 내고, 제가 내기도 하고 그러다 점점 일이 커지기도 해요(웃음)."
김문정 음악감독 [사진=샘컴퍼니] |
김 감독은 이번 작품의 연출을 맡은 오경택 연출과 처음 합을 맞춘다. 그는 오 연출에 대해 "굉장히 학구파"라며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보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자신과 반대이기 때문에 호흡이 좋다고 웃었다.
"오경택 선생님은 굉장히 생각을 많이 하시고, 구체적인 동선이나 음악 등 머릿속에 계산이 다 돼있어요. 전체 그림을 훑으면서 그 안에서 세부 사항을 다져가는 작업 방식인데, 사실 처음에는 따라가기가 힘들어요. 하지만 큰 그림으로 보면 좋은 작품이 될 거란 생각이 들어요. 저 같은 경우는 디테일을 잡아서 숲을 만든다면, 선생님은 숲을 보고 가지치기를 하시는 방법인 거죠. 나쁘지 않은 합이에요(웃음)."
극에는 배우 최재림과 강홍석이 '스타인' 역, 그의 시나리오 속 탐정 '스톤' 역은 배우 이지훈과 테이가 맡는다. 또 정준하, 임기홍, 가희, 백주희, 리사, 방진의, 김경선, 박혜나 등이 참여한다. 재즈가 주이기 때문에 배우들에게 가장 중요하게 주문하는 점은 '그루브'다.
"의외로 최재림 배우와 처음 작품을 해봐요. 방진의, 정준하, 김경선 배우도 모두 처음이네요. (최)재림 배우는 워낙 노래를 잘하지만 성악 베이스라서 그루브가 괜찮을까 걱정했는데, 기본적으로 소리가 좋고 디렉션도 빨리 받아들여서 좋아요. 정준하 배우는 조금 당황스럽긴 했지만(웃음) 뮤지컬 경력도 있고 따로 레슨을 받고 있어요. 무엇보다 팀 분위기를 굉장히 좋게 끌어주고 있죠. 이지훈 배우나 테이, (강)홍석이는 많이 해봐서 믿음이 있어요. 홍석이는 목소리 톤으로만 얘기하자면 이 작품에 최적화된 배우에요(웃음). 여배우들도 너무 사랑스러워요. 정말 열심히 하고 있어요. 그루브가 없다면 있는 것처럼 하게 만드는 게 제 역할이라서 꼼꼼하게 디렉션을 보고 있죠.(웃음)"
김문정 음악감독 [사진=샘컴퍼니] |
작품은 '스캣'(의미 없는 음절로 즉흥적으로 하는 노래)으로 이뤄진 '오버추어(서곡)'로 시작된다. 모든 배우들이 참여하는 대합창 넘버가 없는 대신, 재즈의 매력을 전하는 앙상블 '엔젤스'의 역할이 크다. 때문에 '엔젤스' 선정 오디션이 매우 치열했다.
"대합창이 있는 서사극이 아니에요. 저도 깜짝 놀랐죠. 풀컴퍼니가 부르는 노래가 네 소절 뿐이거든요(웃음). 그래서 '엔젤스' 네 명의 활약상이 굉장히 커요. 처음부터 컴퍼니와 연출진이 선별을 잘 하기 위한 작전을 펼쳤어요. 일대일, 성비별, 다양한 방법으로 오디션을 봤어요. 네 명의 합이 정말 중요한데, 한 명이 펑크가 나면 안되니 스윙 격으로 네 명을 더 뽑았죠. 혹여나 허전한 부분에서는 네 명의 엔젤스와 스윙까지 모두 올라오는 부분도 만들려고 해요. 공연 중간중간에 스캣을 넣으려는 생각도 있고요."
한국 뮤지컬 시장에서 주류로 선보이지 않았던 재즈의 매력을 알리기 위해 김 감독은 풀 오케스트라를 무대에 올린다. 기존 14인조 오케스트라를 18인조 빅밴드로 새롭게 구성했다. 2005년부터 본인이 이끌고 있는 Th M.C Orchestra가 함께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멀티 연주자를 찾기 쉽지 않아요. 피클로, 플룻, 클라리넷, 색소폰까지 4개 악기를 모두 소화해야 하는 연주자가 2명이나 필요해요. 또 클라리넷, 엘토 색소폰, 바리톤 색소폰 등 3개 악기를 맡아줘야 하는 연주자도 몇 명 필요하죠. 이런 분들을 찾기가 쉽지 않고 연주자 층이 두텁지 않아서 벌써부터 맹연습하고 있어요. The M.C 오케스트라와는 10년을 넘게 함께 했는데 같이 음악하고 나이 먹는 게 소중하고 행복하죠. 저희가 하는 일이 점차 체계화 되고 있고, 뮤지컬 전문 오케스트라의 인지도가 생겨서 기뻐요."
김문정 음악감독 [사진=샘컴퍼니] |
김 감독은 뮤지컬 '명성황후' '미스 사이공' '영웅' '맘마미아' '맨오브라만차' '서편제' '마타하리' '레베카' '엘리자벳' '모차르트' '레미제라블' '데스노트' '팬텀' '모래시계' '웃는남자' 등 수많은 작품에 참여했다. 20여 년의 음악생활을 되돌아보며 지난달 처음으로 단독 콘서트도 진행했다. 양일간 콘서트에 최백호, 황정민, 임태경, 정성화, 김주원, 이자람, 조정은, 양준모, 전미도, 김준수, 정택운, 포르테 디 콰트로(고훈정, 김현수, 손태진, 이벼리) 등이 게스트로 참여해 의미를 더했다.
"콘서트는 제 인생의 선물이었어요. 정말 벅찼죠. 그동안 수고했다는 위로와 격려를 받았고 더 열심히 일하라는 채찍질과 방향성도 깨달았죠. 정말 많은 훌륭한 게스트들이 두발 벗고 도와주셨어요. 지휘는 하나도 안 떨렸는데, 뒤돌아서 관객들에게 이야기하고 다시 지휘하는게 엄청 부담스러웠어요(웃음). 미숙한 진행도 있었겠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했어요. 다음에도 또 콘서트를 하고 싶긴 하지만, 이렇게 큰 규모로 할 수 있을까 싶어요(웃음)."
사실 뮤지컬업계에서 음악감독이 여성인 경우는 드물다. 김 감독의 경우 JTBC '팬텀싱어'를 통해 얼굴이 많이 알려졌을 뿐. 그는 "트렌드인 것 같다"며 뮤지컬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저변을 확대하는 일이라면 매체 노출은 물론 기꺼이 능력을 쓰겠다고 말했다. 새롭게 유튜브 채널도 개설했다.
"외국 스태프들이 오면 조금 놀라요(웃음). 누군가는 생활이 안정적이지 못해 남자들이 전업할 수 없는 현실 때문이라고도 하는데,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남자보다 여자가 더 섬세한 것도 아니고요. 그냥 국내 트렌드인 것 같아요. 가끔 강연 프로그램에서 섭외가 들어오기도 하는데, 뮤지컬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저변을 확대하는 일이라변 기꺼이 능력을 쓰려고 합니다. 최근에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는데, 뮤지컬을 하려는 음악도들의 접근성을 용이하게 할 수 있는 형태로 발전시키고자 해요. 사실 제약이 조금 있을 것 같지만 한정된 범위 내에서 현장 활동이나 아이디어 공유 과정, 다양한 음악 작업을 오픈하고 싶어요."
김문정 음악감독 [사진=샘컴퍼니] |
먼 미래의 목표보다 현재에 충실한다는 김 감독. 쉴 틈 없이 일하지만 지휘봉만 잡으면 기운이 난다고. 뮤지컬 '시티오브엔젤'의 음악감독으로서, 한세대학교 공연예술학과 교수로서, The M.C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서 앞으로 나아갈 길을 응원한다.
"체력이 좋은 편이에요. 눈만 감으면 자는 타입인데다 4~5시간만 자도 괜찮아요. 사실 피곤하고 힘들긴 해도 지휘봉만 잡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힘이 나요(웃음). 특별한 목표를 세운다기보다 그저 지금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해요. 당장 협업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 상황들, 오늘의 좋은 공연이 순간순간 이뤄야 할 목표인 거죠. 아, '팬텀싱어' 때 만났던 고훈정, 고은성, 이충주, 조형균 배우와 작품을 해본 적이 없어요. 그 친구들과는 꼭 해보고 싶네요(웃음)."
뮤지컬 '시티오브엔젤'은 오는 8월 8일부터 10월 20일까지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hsj1211@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