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 베이징 = 최헌규 특파원] 중국인들에게 양안(중국과 대만)의 분단 상황이 남 북한 관계와 똑같다고 하면 무슨 흰 소리냐고 정색을 하면서 강한 불쾌감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많다. 유엔 동시 가입국으로 남북한이 각각의 국가인데 비해 양안, 즉 중국과 대만은 세계가 인정하는 '한 나라'라고 목청을 높인다. '하나의 중국'은 지도자 일반 국민 할 것 없이 전 중국인들의 골수에 밖힌 원칙이다.
중국은 대만과 1992년 '92 공식(共識)'을 통해 '하나의 중국'에 인식을 함께 했고, 미국 등 주요국 역시 외교적으로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는 추세라고 주장한다. '하나의 중국'은 대만 독립 불가 방침이며 공산당이 절대 양보할 수 없는 핵심 이익의 하나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을 지키기 위해서는 전쟁도 불사한다는 입장이다.
2020년 1월 해가 바뀌자 마자 중국 공산당의 '하나의 중국' 원칙이 심하게 위협을 받는 사건이 터졌다. 1월 11일 치러진 대만 총통 선거에서 강한 독립성향에 '하나의 중국'을 거부하는 입장의 민진당 차이잉원 후보(현 총통)가 압승을 거둔 것이다. 차이 총통에게 쏟아진 57.1%의 지지표는 독립 노선에 드라이브를 걸라는 대만 유권자 주문이다. 자연히 차이잉원 재 집권 4년 동안 탈 중국 행보가 가속화할 게 뻔하다.
차이잉원 후보는 당선이 확정된 12일 저녁 9시 기자회견에서 민주와 평등의 가치를 강조했다. 회견에서 그는 '중국은 먼저 대만 민주주의를 이해해야한다'며 대만에 대한 위협을 멈추고 평등하게 대화에 나서라고 일갈했다. 중국의 일국양제(一國兩制)에 대해 대만의 미래는 2300만 주권자(국민)가 결정하는 것으로 민의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이번 선거가 잘 보여줬다고 말했다.
'차이잉원 총통은 오늘의 대만에 있어 민주와 자유의 아이콘이다. 내가 그를 지지하는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이 때문이다'. 대만 선거 전날인 10일 저녁 차이잉원 후보의 마지막 유세가 열린 타이베이 총통부 앞 거리. 100만 유세 군중속에서 만난 9년차 직장인 리(李)씨는 왜 차이잉원을 지지하냐고 묻자 주저함없이 이렇게 말했다.
바로 옆의 한 지지자는 "투표로 공산당에 항거하고 대만을 수호하자. 대만이 홍콩처럼 되서는 안된다"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흔들고 있었다. 이날 유세 현장에는 또 '홍콩 민주화 시위에 보내준 지지와 성원에 감사한다'는 구호도 등장했다.
차이 후보는 지난 6월 홍콩사태가 터지자 마자 선거 쟁점으로 '오늘의 홍콩이 내일의 대만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반 중국 정서에 불을 당겼다. 일국양제와 하나의 중국을 정면으로 거스르고 대만 독립을 지향하는 구호다. 민심은 여기에 호응했다. 중국 위협론이 부각되자 부재자 투표제도가 없는 대만에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까지 비행기를 타고 주민등록지로 달려가 투표하는 '귀향 투표 붐'이 일기도 했다. 차이 후보는 817만표가 넘는 사상 최다 표를 획득했다.
[뉴스핌 베이징 = 최헌규 특파원] 12일 대만 타이베이 택시 기사가 전날 치러진 총통 선거에서 차이잉원 후보가 사상 최다인 817만표를 얻어 대승을 거뒀다는 내용의 대만 빈과일보 머릿기사를 펼쳐보이고 있다. 택시 기사는 기념으로 이 특집 기사를 집에 보관할 것이라고 말했다. 2020.01.13 chk@newspim.com |
11일 저녁 타이베이 베이핑 (北平)동로 민진당 개표 실황 중개현장에서 만난 대만 기자는 "중국 대륙도 선거 결과와 전날 총통부 앞의 함성을 들었을 것이다. 어떤 반응을 보일지 주목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 정권은 대만인들이 외친 함성에 애써 귀를 닫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것 같다. 중국 대만판공실은 11일 늦은 시각 대만 선거 결과에 대한 입장문 발표에서 '일국양제와 하나의 중국 원칙'은 확고 부동하며 '92공식'과 대만 독립 반대의 기초위에 양안의 평화가 있다"고 밝혔다. 기존 대만 정책에서 토시 하나 바뀌지 않은 내용이다.
"금전살포와 네티즌을 동원한 가짜뉴스, 반중 정서와 대륙의 위협을 과장해 만들어낸 조작극이다". 12일 저녁 8시 타이베이발 베이징행 하이난 항공기에 올라 앱으로 중국 신문을 훑어보는데 대만 선거결과를 분석한 이런 기사가 올라 있었다. 분명 대만에선 '대만 독립 만세'를 외쳤는데, 중국은 대만 민의와 다른 '대만 독립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차이잉원 집권 2기 동안 중국과 대만, 즉 양안 사이에는 '하나의 중국'에 대한 공감대가 엷어지고 점점 엇박자만 요란해질 게 분명하다.
베이징= 최헌규 특파원 chk@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