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뮤지컬배우 이충주가 공연 무대의 올라운더로 활약 중이다. 올 상반기엔 최고의 기대작 '드라큘라'에서 의연하고 믿음직한 캐릭터로 여심을 훔치고 있다.
지난 15일 서초구의 한 카페에서 '드라큘라'에 출연 중인 이충주와 만났다. 코로나19로 잠시 중단되기도 했던 '드라큘라'는 이제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다. 그는 지난 2월부터 3개월간 달려왔지만 매번 다른 매력을 지닌 배우들과 호흡하며 공연의 흥이 한창 무르익어가고 있다.
"뮤지컬 자체가 오랜만이었어요. 작년 5월 '킹아더' 이후 1년 만이네요. 제안이 들어왔을 때 꼭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뱀파이어 소재는 '마마돈크라이'같은 다른 작품을 통해서도 많이 접해봤고, 워낙 매력적인 소재잖아요. 같이 참여하는 배우들도 꼭 한번 만나보고 싶은 분들이 많았죠. 뭐가 됐든 꼭 하고 싶었고, 모든 게 새로운 환경이었어요. 처음 함께하는 회사, 배우들과 있어서 긴장도 됐지만, 결과적으론 하길 정말 잘한 것 같아요. 대극장 라이센스 작품, 또 유명한 음악까지. 무대에 오르면서 만족스러워요."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뮤지컬배우 이충주가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뉴스핌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0.05.15 mironj19@newspim.com |
특히 이충주는 '드라큘라'의 아름다운 음악에 유난히 애정을 드러냈다. 프랭크 와일드혼은 한국에서 '지킬앤하이드' '엑스칼리버' 등을 작곡했으며,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는 유명 작곡가다. 이충주는 "그 분의 음악을 정말 좋아한다"면서 감격스러워했다.
"음악을 듣고 좋아서 찾아보면 그분 음악이더라고요.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감성인지 잘 모르지만 제가 너무 좋아하는 스타일이에요. '드라큘라' 하면서도 늘 음악이 정말 아름답고 감탄하게 되고 그 힘이 크다는 걸 느끼거든요. 공연이 완벽하게 잘 짜인 극이 아니라고 해도 다 채워주는 힘이 있죠. 직접 만나보니 생각보다 인상도 푸근하고 좋았어요. 하하. '드디어 와일드혼 앞에서 이분의 음악을 부를 수 있구나' 생각도 들고. 공연 끝나고 오셔서 너무 칭찬을 해주시는 거예요. 얼떨떨할 정도로 좋은 평가를 해주셔서 기뻤어요. 연락처도 물어보시고 문자도 주셔서 정말 감사했죠. 좋은 인상으로 남을 수 있어 다행이었어요."
프랭크 와일드혼의 음악과 브람 스토커의 원작 소설 '드라큘라'의 이야기가 만난 뮤지컬에는 1993년작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 영화의 설정도 추가됐다. 이충주가 맡은 조나단 하커는 드라큘라 백작의 성에 찾아간 변호사로, 약혼녀 미나와 함께 괴이한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인물이다. 드라큘라와 미나가 로맨스로 얽히면서 조금은 안타까운 처지에도 놓이게 된다.
"처음 연습할 때 가장 먼저, 드라큘라를 경계하면서 들어갈 건지, 아니면 순수한 동기로 갔다가 뒤늦게 깨닫는다는 느낌을 줄지 결정해야 했어요. 그게 좀 오래 걸렸죠. 처음엔 단순히 클라이언트를 모신다고 생각했지만, 조금 바뀌었어요. 드라큘라의 성에 오면서 불길하고, 불안함을 암시하는 대사들이 있거든요. 가는 과정이 녹록치 않아요. 내내 뜯어말리는 사람들을 만나고, 선임자도 조금 이상해졌고요. 아직 백작 때문이라고는 생각 못하지만 '도대체 무슨 일이지?' 할 수밖에 없죠. 심지어 십자가를 보고 백작은 기절초풍을 하잖아요. 의심이라기보다 굉장히 이상한 기운을 갖고 들어가는 게 맞고, 긴장감을 관객들에게 충분히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극 중후반부에는 드라큘라와 미나를 따라가지만, 초반만큼은 조나단의 입장에서 극을 보게 되거든요."
이충주의 말처럼, 조나단은 가장 먼저 드라큘라를 마주하고 그에게 이용당한다. 심지어는 약혼녀 미나까지 빼앗기는 상황에 처한다. 드라큘라가 일방적으로 미나를 뺏는다기보다, 미나가 그에게 끌리기도 한다. 조나단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서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뮤지컬배우 이충주가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뉴스핌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0.05.15 mironj19@newspim.com |
"조나단에게서 가장 중요한 건 미나죠. 무엇보다도 미나를 향한 사랑에 방점을 가장 확실히 찍어야 했어요. 미나가 조나단을 왜 선택했을까요? 분명히 굉장히 행복한 커플이었는데 그러려면 극에는 드러나지 않은 조나단의 매력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개인적으로 느낀 건데 이 사람은 정말 담력이 세더라고요. 가면 죽을 것 같은데. 저라면 안그럴 것 같은데 끝까지 가더라고요. 좀 담대하고 정의감이 있는 사람이죠. 비겁하게 숨지 않고 나서고 사랑 앞에서는 또 다 내려놓을 줄도 알고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멋있는 남잔데 그런 게 잘 전달됐으면 했어요. 뭐가 좋아서 미나가 넘어갔을까. 정의감이 있고, 드라큘라에게 진다는 걸 알면서도 맞서 싸우는 그런 면을 좋아하게 됐던 게 아닐까요."
그리 큰 비중은 아니지만 조나단은 극 초반에 드라큘라에게 홀리는 장면에서 상반신 노출신을 소화해야 한다. 이충주는 탄탄한 복근을 드러내며 완벽하게 관리된 모습으로 무대에 오른다. 의외로 본인은 이 장면을 준비하면서 고민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연습 중에 그 장면을 알게 됐고, 노출이 있으니 고민을 했어요. 결과적으로는 몸을 만들었는데 조나단이 복근이 있는 게 맞나? 싶긴 했죠. 배우가 표현하고 싶어하는 건지, 조나단이 그래야 한다는 건지 고민할 수밖에요. 어떻게 보면 저한테 진 거예요.(웃음) 영국의 변호사가 그럴 필요는 없었을 텐데요. 그래도 4-5개월 가까이 되는 공연에서 몸을 만들어놓고 보니, 개연성이 나름대로 생긴 것도 있어요. 그 성에서 조나단은 어떻게 빠져나왔을까요? 그럴 만한 체력을 갖춘 걸로 보일 수도 있죠. 하하. 결과적으론 굉장히 만족스러워요."
앞서 설명했듯 극중 조나단은 약혼녀 미나가 드라큘라에게 유혹당하고, 끌리고 마지막 선택을 하기까지 모든 과정을 지켜봐야 하는 입장이다. 이충주는 조나단을 연기하면서 "일부러 모르려고 한다"고 감정선을 잡아간 과정을 설명했다. 실제로 극중에서 미나의 감정 상태는 물론이고, 미나가 어떤 인물을 만나고 어떤 사건을 겪는지 조나단은 모르는 장면이 종종 나오기도 한다.
"어느 순간 미나의 마음이 다른 곳으로 가고 있죠. 그걸 알고도 모르려고 하는 면이 있어요. 좀 이상한데 모르고 싶은 거죠. 미나의 혼란이 가장 잘 느껴지는 장면은 조나단의 넘버 'Before the Summer Ends' 전에 소파에 앉아 손을 잡고 있을 때예요. 미나를 다독이는데 저한테 누구는 의지를 하는가 하면 누구는 애써 피하려고 하기도 하고. 그때 좀 '이게 무슨 감정이지?'하는 생각이 들죠. 미나가 '때가 오면 목숨을 끊어달라'고 하는데 갈팡질팡하는 친구도 있고, 이미 마음을 정한 친구도 있어요. 그래도 조나단은 그걸 모르는 거죠. 렌필드를 만나고 온 것도 그래요. '미나가? 왜 이제야 얘기하지?' 하면서 타격을 받죠. 그때 좀 '나한테 숨기는 게 있구나' 알게 되고요. 해석의 방향이 여러가지로 나올 수 있어요. 저한테 다행스러운 건 미나가 물리고 물고 한 장면을 직접 못본다는 거예요. 하하. 무슨 상황인지 쉽게 가늠이 안되는 상황이죠."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뮤지컬배우 이충주가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뉴스핌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0.05.15 mironj19@newspim.com |
특별히 이충주는 솔로곡 'Before the Summer Ends'에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조나단은 사실 그 장면 하나를 위해 달려가는 것처럼 느껴진다"면서도 그 곡을 부를 때 아주 복잡한 감정이 든다고 했다. 미나 세 명이 모두 다른 해석을 하는 것처럼, 조나단의 감정도 세 미나들에 따라 매일 달라진다.
"굉장히 어려운 신이죠. 그 말을 하면서도 진짜로 할 수 있어서 하는 말인지도 모르겠고요. 절대 못하겠다고 말하다가, 부르면서도 맹세가 잘 안될 거예요. 하염없이 울기도 하고 어떤 날은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거야' 할 때도 있어요. 정말 사랑하는 신인데, 이때 맹세하겠다고 다짐을 하진 않거든요. 약간의 여운을 남기는데 그게 매일 달라요. (임)혜영누나는 가장 밝고 상큼 발랄한 미나예요. 저나 루시와 있을 때 다른 두 미나가 상대적으로 차분한 반면에 좀 통통 튀죠. 감정이 극대화됐을 때 갭도 제일 큰 편이고 조나단과 사이에서 흔들리는 감정도 가장 크게 느껴져요. 린지는 가장 끝까지 고민하는 미나 같아요. 많이 흔들리고 끝까지 힘들어하는 게 느껴지죠. (조)정은 누나 얘길 안할 수가 없는데 보는 관객들도 그러시더라고요. 어느 순간엔 딱 끊어내는 것처럼 보인대요. 하하. 시종일관 에너지가 딱딱 와서 꽂힌달까요. 조나단도 드라큘라도 너무 처연하게 사랑해주는 느낌이죠. 만약 뒷이야기가 있다면 저는 미나의 모든 삶을 인정해주고 보내줄 것 같아요. 다시 받아주는 것도, 저라면 모르겠지만 조나단이라면 할 수 있을 거라고 봐요. 멋있는 남자예요."
'드라큘라'를 하면서 코로나19 때문에 공연이 약 3주간 중단되는 사태를 겪었다. 이충주가 배우로 활동하면서도 드문 경험이었을 뿐더러, 3월 개막 예정이었던 '마마돈크라이' 10주년 공연은 아예 무대에 올리지 못했다. 그래서 더 무대의 소중함을 느꼈다는 이충주는 앞으로도 연극과 뮤지컬, 매체를 가리지 않고 좋은 기회에 감사하게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거짓말 하나 없이 진짜 집에만 있었어요. 저라고 왜 그런 생각이 안들었겠어요. 그래도 놀러가서는 안되는 시기였고 공연을 못한다는 게 정말 힘들더라고요. 소중한 시간들이라는 걸 한번 더 느꼈어요. '마마돈크라이'도 오래했던 작품이고, 좋아해주신 분들이 많아요. 코로나 때도 취소표가 한장도 없었대요. 정말 아쉽죠.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작품이라면 '아마데우스'를 꼽고 싶은데 조정석 형과 나란히 주연을 했거든요. '스프링 어웨이크닝'으로 어머니가 와도 찾지 못하는 코러스로 데뷔했는데 그때 주인공이 정석이형이었어요. 앞으로도 역할의 크고 작음보다도 좋은 작품을 만나면 좋겠어요. '맨오브라만차'나 드라큘라 역도 해볼 수 있다면 좋겠고요. 뭘하든 제 이름을 보고 믿음이 가는 배우가 됐으면 해요. 물음표를 느낌표로 딱 바꿔줄 수 있는, 한계가 없는 배우요. 당장 스타가 되기보다 이 일을 오래 즐겁게 하고, 사람들한테 좋은 배우로 기억되는 게 제 꿈이에요."
jyya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