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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주의 수선전도] '정릉의 눈물' 담긴 정릉 없는 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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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가 조성하고 아들 태종이 해체한 신덕왕후 정릉 이름 딴 정동
태종과 '혁명동지'에서 '철천지 원수'로 돌아선 신덕왕후

[편집자] 수선전도(首善全圖)는 조선의 수도 한양을 목판본으로 인쇄한 지도입니다. 대동여지도를 제작한 고산자(古山子) 김정호가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북쪽 도봉산부터 남쪽 한강에 이르기까지 당시 서울의 주요 도로와 동네, 궁궐 등 460여개의 지명을 세밀하게 묘사했습니다. 수선전도에 있는 지명들은 지금도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오승주의 수선전도'는 이 지도에 나온 동네의 발자취를 따라 지명과 동네에 담긴 역사성과 지리적 의미, 옛사람들의 삶과 숨결 등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오늘 숨가쁜 삶을 사는 우리 자신을 되돌아볼 계획입니다.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서울 성북구 북한산 자락 동편에 자리잡은 정릉(貞陵)은 조선 태조의 계비(繼妃·두번째 왕비) 신덕왕후(神德王后)의 안식처다. 동네 이름도 정릉동인 만큼 일대에서는 랜드마크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정릉의 원래 위치는 여기가 아니다. '덕수궁 돌담길'로 유명한 서울 중구 정동(貞洞)이었다.

도성 안에 능을 조성하지 않는다는 원칙까지 깨고 서울 정동에 만들어졌던 정릉이 북한산 중턱 산골짜기로 파묘천장(묘를 파서 다른 장소로 이전)한 이유에는 조선 건국을 위해 의기투합했던 두 혁명 동지가 철천지 원수로 변해가는 과정이 담겨 있다.

지금은 동네 전체가 도심속 공원 역할을 하는 고즈넉한 정동. 그러나 서울 정동에는 620여년전 '조선의 국모' 신덕왕후의 눈물과 '피의 군주' 태종의 한맺힌 노여움이 세월을 넘어 엮여 있다.

◆'조선의 국모' 눈물 스민 정동

태종 16년(1416년) 음력 8월21일. 임금이 편전에서 정사를 보다 좌우에 이른다. "계모(繼母)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유정현이 대답했다. "어머니가 죽은 뒤에 이를 계승하는 자를 계모라고 합니다."

임금이 "그렇다면 정릉(貞陵)이 내게 계모가 되는가" 하니 (유정현이) 대답했다. "그때에 신의왕후(神懿王后·태종의 생모)가 승하하지 않았으니 어찌 계모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에 임금은 "정릉이 내게 조금도 은의가 없었다. 내가 어머니 집에서 자라났고 장가를 들어서 따로 살았으니 어찌 은의가 있겠는가. 다만 부왕이 애중하시던 의리를 생각해 기신의 재제(제사)를 어머니와 다름없이 하는 것이다"고 답했다.

임금의 말에는 독(毒)이 들어 있다. 비록 생모는 아니지만 어머니로 대접해 정성껏 제사로 드리고 하지만 '내 어머니도 아닌데 내가 제사를 지내고 보살필 이유가 뭐가 있느냐'는 뼈가 섞인 말이다.

유교를 다스림의 최고 덕목으로 삼은 조선왕조에서 '유교의 수호신'인 왕이 비록 계모지만 '어머니를 어머니로 여기지 않겠다'는 파격적인 발언을 한 셈이다. 앞으로 신덕왕후에 대한 제사 등 보살핌을 끊고 방치하겠다는 선언에 다름없는 것이다.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 서울 중구 정동의 모습. 태조가 조성한 신덕왕후의 능인 정릉의 당초 위치로 추정되는 영국대사관(성당 뒤 회색건물)이 보인다. <자료=서울연구원> 2020.07.09 fair77@newspim.com

이 일에 앞서 7년전 태종은 '어머니의 묘'를 도성 밖으로 내치는 결정을 내린다. 태종(1409년) 9년 2월23일의 일이다. 이날 태종은 정동에 있던 정릉을 옮기는데 동의한다. 그날 조선왕조실록 기사다.

'신덕왕후 강씨(康氏)를 사을한(沙乙閑)의 산기슭으로 천장하였다. 처음에 의정부에 명하여 정릉(貞陵)을 도성 밖으로 옮기는 가부를 의논하게 하니 의정부에서 상언하기를 "옛 제왕의 능묘가 모두 도성 밖에 있는데 지금 정릉이 성안에 있는 것은 적당하지 못하고, 또 사신이 묵는 관사에 가까우니 밖으로 옮기도록 하소서." 하였으므로 (태종이) 그대로 따랐다.'

태조 승하(1408년 음력 5월24일) 9개월만이다. 신덕왕후가 묻힌 정동의 정릉을 지금의 서울 성북구 정릉동으로 옮겨버린 것이다. 왕릉을 옮기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수맥이 흐르거나 터가 좋지 않다는 등 이유로 천장할 수 있다. 세종대왕 영릉의 경우도 처음에는 경기도 광주에 있었지만 1469년(예종 원년) 풍수지리상 길지를 찾아 옮겼다. 세종 이후 문종, 단종, 세조, 예종 등 19년간 왕이 4번이나 바뀌고, 세조와 예종의 장남이 잇따라 요절하자 천장을 단행했다.

그러나 정릉은 도성 안에 있어 불편하다는 탐탁지 않은 명분을 들어 북한산 중턱으로 옮겼다. 이후 200년 이상 정릉은 산골짜기에 방치된다.

태종에 비해 아버지 태조는 정릉 조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조선 건국의 정치적 동지이자 공신이나 다름없던 신덕왕후의 위상을 높이 샀던 만큼 정릉 건설공사를 직접 챙겼다.

태조와 신덕왕후는 보통 사이가 아니었다. 아내이자 조선건국 과정의 건국공신이었다. 만남도 심상치 않았다. 먼 길 달려온 장수가 목이 말라 물을 찾자 우물가 처녀가 버들잎을 띄워 급체를 막는다는 스토리를 담고 있다.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뻗은 서울 정동의 모습. 2020.07.09 fair77@newspim.com

한국고전종합DB에 따르면 다산 정약용이 쓴 다산시문집 제14권 신덕기적비첩에는 태조와 신덕왕후의 만남을 묘사한 설화가 있다.

"옛날 우리 태조께서 여름철에 말을 달려 계곡을 지나다가 매우 갈증이 나므로 개울에서 빨래하는 한 여자를 보고 물을 떠오게 하였다. 그 여자는 일어나서 즉시 물을 떠오는 데 버들잎 한 움큼을 물에 띄워가지고 바쳤다. 태조가 노하여 '왜 버들잎을 섞었는가?' 하니, 그 여자가 '더울 적에 물을 급하게 마시면 몸에 해로우므로, 그것을 불면서 천천히 마시게 하려는 것입니다'고 하였다. 그러자 태조가 그를 매우 기특하게 여겨 말에 태워가지고 함께 돌아왔는데, 그가 바로 신덕왕후였다."

이 버들잎 설화는 고려왕조 건국에도 인용된다. 고려 태조 왕건이 나주 지방을 지날 때 그 지역의 오씨 성을 가진 여성이 물을 찾는 왕건에게 버들잎을 띄운 물을 바쳐 혼인에 이른다. 훗날 고려 2대왕 혜종의 어머니가 되는 장화왕후다.

1396년 음력 8월13일 신덕왕후가 판내시부사 이득분의 집에서 승하하자 태조는 열흘 뒤인 8월 23일 직접 자리를 살펴 취현방 북쪽에 능지를 정했다. 현재 정동 영국대사관 부근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왕릉은 도성 안에 있을 수 없고, 도성 밖에 조성한다는 원칙도 무시한 채 경복궁에서 멀지 않은 장소에 정릉을 세웠다.(조선 태조비 신덕왕후 정릉의 조성과 봉릉 고찰, 황정연, 서강인문논총 46, 2016년 8월)

그러나 태조가 이처럼 공들인 정릉은 철저히 해체된다. 조선왕조 태종실록 9년(1409년) 음력 4월13일 기사에는 정릉이 파괴되는 이야기가 묘사돼 있다. 봉분은 자취를 없애고 석인(왕릉 좌우에 세우는 문인·무인상)을 땅에 묻었으며 정자각은 헐어 그 자리에 터를 높게 쌓아 태평관을 짓는 데 사용했다.

이듬해인 1410년 8월 청계천 광통교가 홍수로 무너지자 정릉의 병풍석을 광통교 돌다리를 복구하는데 사용했다. 원형을 황폐화시킨 것은 물론 제례의 대상에서도 제외했다.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 청계천 광통교 아래 받침돌로 사용된 정릉의 병풍석. 능침을 둘러싼 병풍석에는 불교와 도교 등을 표현한 문양과 조각이 새겨져 있다. 2020.07.09 fair77@newspim.com

서울 청계천 SK그룹 사옥 옆으로 흐르는 청계천에 광통교가 있다. 다리 아래 석축벽에는 일반 돌과는 다른 다양한 무늬와 그림이 새겨진 조각석이 자리 잡고 있다. 정릉을 둘러싼 병풍석이다. 부처를 정교하게 새긴 조각과 도교의 영향을 받은 구름무늬 등은 600년 세월이 흘렀어도 당당한 위품을 자랑한다. 거꾸로 뒤집힌 부처상도 있다.

뭇 백성들이 밟고 지나가면서 수모를 겪으라는 의미로 해체돼 옮겨진 정릉 병풍석은 역설적으로 수백년이 지나도 기품을 잃지 않은 모습으로 백성들과 함께 하고 있다.

◆'혁명동지'에서 '철천지 원수'로

태종이 정릉을 '철천지 원수'처럼 파괴했지만, 처음 이들은 '혁명동지'였다. 태조가 '왕씨의 고려'를 지우고, '이씨의 조선'을 건국하는데 태종과 신덕왕후는 힘을 합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태조 이성계가 요동정벌에 나선 군사를 이끌로 개경으로 돌아온 위화도회군 당시 남아 있던 태조의 가족들은 '역적'으로 몰려 죽음의 위기에 처한다. 이 때 신덕왕후와 훗날 1차 왕자의 난(무인정사) 당시 죽음을 피할수 없었던 방번·방석 등 왕후 소생의 배다른 두 동생을 구한 사람은 다름 아닌 태종이었다.

태조실록 1권 총서 89번째 기사다. '처음에 신의왕후(태종의 생모)는 포천 재벽동에 있고, 강비(신덕왕후)는 포천 철현에 있었는데, 전하(태종)가 서울에 있으면서 변고가 발생했다는 말을 듣고 말을 달려 포천에 이르렀다. 전하가 왕후와 강비를 모시고 동북면을 향하여 가면서 말을 탈 때든지 말에서 내릴 때든지 모두 친히 부축해 주고, 스스로 허리춤에 불에 익힌 음식을 싸 가지고 봉양하였다. 경신공주·경선공주·무안군·소도군이 모두 나이 어렸으나 또한 따라왔으므로 전하께서 자기가 안아서 말에 태우고 길이 험하고 물이 깊은 곳에는 전하가 또한 말을 이끌기도 하였다.'

긴박한 상황에서도 태종이 신덕왕후와 그 자식들까지 직접 말에 태워 음식을 먹였다는 기록이다. 태종은 목숨을 건 도주에서 태조의 계비와 그 자식들까지 챙긴 것이다.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 수선전도에 표기된 정동. 소정동과 대정동으로 나눠져 있을만큼 규모가 상당했음을 알수 있다. <자료=수선전도>2020.07.09 fair77@newspim.com

조선 창건의 걸림돌로 지목된 정몽주를 태종이 개성 선죽교에서 죽인 이후 태조 이성계가 크게 화가 났을 때 신덕왕후가 태종을 옹호하는 장면도 조선왕조실록에 나온다.

'전하(태종)가 "몽주 등이 장차 우리 집을 모함하려고 하는데, 어찌 앉아서 망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합하겠습니까. 몽주를 살해한 이것이 곧 효도가 되는 까닭입니다"고 하였다. 태조가 성난 기색이 한창 성한데, 강비(신덕왕후)가 곁에 있으면서 감히 말하지 못했다. 전하(태종)가 말하기를 "어머니께서는 어찌 변명해 주지 않습니까" 하니 강비가 노기(怒氣)를 띠고 고하기를 "공(태조)은 항상 대장군으로서 자처하였는데, 어찌 놀라고 두려워함이 이 같은 지경에 이릅니까"라고 하였다.'

정몽주를 죽인 태종이 화가 머리 끝까지 치민 태조 앞에 불려가 뭔가 사달이 벌어지려 할 때였다. 태종이 신덕왕후를 보면서 '나를 변호해 달라'고 하니, 신덕왕후가 태조에게 '태종이 결단력있게 일을 잘 처리했는데, 왜 몰아 세우느냐'면서 옹호한 것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태종이 신덕왕후에게 '어머니'라고 불렀다는 점이다. 앞선 태조의 위화도회군 당시 목숨이 벼랑 끝에 달린 시점에서 태종이 신덕왕후의 자식들까지 안전하게 대피시킨 점도 '어머니'로 여기지 않으면 할 수 없는 행동이다.

하지만 이들 '혁명동지'는 조선건국 이후 '불구대천의 원수'로 갈라선다. 아버지와 남편을 새 왕조의 임금으로 세우는 과정에서는 '혁명'을 위해 뜻이 맞았지만, 태조가 신덕왕후의 아들 방석을 세자로 세우자 태종은 두 번에 걸친 왕자의 난을 일으켜 신덕왕후의 대를 끊어 버린다.

◆정릉의 부활

200년 이상 방치된 정릉은 현종 10년(1669년) 송시열의 상소 등으로 촉발된 서인들에 의해 복구된다. 신덕왕후는 왕비로 복위되면서 종묘에 위패가 모셔진다. 무덤도 왕후의 능으로 복원된다. 지금의 서울 성북구 정릉이다.

태종과 악연이 맺힌 정릉의 복원은 서인의 정략에 따른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남인과 대립하던 서인은 정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정릉과 신덕왕후 복귀를 이슈로 삼았다.

당시 서인과 대립하던 남인도 마땅히 반대할 명분이 없던 터라, 정릉 복위를 수차례 반대 끝에 결국 현종이 받아 들였고, 정국은 서인이 좌우하게 됐다.

200여년간 버려졌던 정릉이 제대로 왕릉의 격식을 갖추고 종묘에 배향되자 하늘에선 비가 내렸다.

실록은 이렇게 전한다. '능침을 봉하고 제를 올리던 날 소나기가 정릉(貞陵) 일대에 갑자기 쏟아져 백성들은 그 비를 일러 세원우(洗冤雨)라고 하였다.'(현종개수실록 1권, 현종대왕 행장)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 서울 성북구 정릉동에 위치한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의 정릉. 태종이 내친 정릉은 현종 때 송시열 등 서인에 의해 복원된다. <자료=문화재청> 2020.07.09 fair77@newspim.com

정동은 '신덕왕후의 눈물'뿐 아니라 조선시대 당파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정릉을 복위시킨 서인의 발원지다.

조선후기 학자 이긍익이 지은 사서인 연려실기술 선조조고사본말(宣祖朝故事本末)에 따르면 선조 5년(1572) 이조 참의로 있던 심의겸은 당시 과거 장원 급제자 김효원이 이조 정랑에 추천되자 그가 어릴 적에 권신 윤원형의 식객이었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했다.

늦게야 이조 정랑이 된 김효원은 심의겸의 아우 심충겸이 이조 좌랑의 추천에 오르자 외척(명종의 처남)이라는 이유로 이를 반대해 저지시켰다. 이후 심의겸과 김효원은 반목이 생기고, 조신들은 심의겸을 옳다고 하는 파와 김효원을 옳다고 하는 파로 나눠졌다. 심의겸의 집이 서울의 서쪽인 정동에 있었고, 김효원의 집이 동쪽인 건천동에 있어 동인과 서인의 이름이 생기게 됐다.

태종의 악연과 당쟁의 발원지에 이어 정동은 조선의 험난한 역사가 묻어 있다. 조선말 문호 개방 이후 미국과 영국, 러시아 등 각국 공사관이 들어선 땅이다. 고종이 궁궐을 버리고 러시아대사관에 몸을 피한 아관파천을 비롯해 구한말 열강의 다툼이 치열하게 벌어진 장소다.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 현재 서울 정동의 모습. 동네 전체가 공원이라고 할만큼 역사의 굴곡에도 불구하고 고즈넉하다. 2020.07.09 fair77@newspim.com

현대 서울의 정동은 동네 전체가 공원이다.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경향신문사 방향으로 길은 고즈넉히 뻗어 있다.

정동 남쪽 초입 덕수궁 돌담길을 걷다보니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가 떠오른다. 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했지만,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다.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도 있지만, 동네 전체가 공원인 듯한 넉넉한 모습 속에 조선의 아픔도 함께 서려 있다.

fair77@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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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DS 성과급 1인 평균 6억 [서울=뉴스핌] 김정인 기자 = 삼성전자 노사가 반도체를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에 사업성과의 10.5%를 재원으로 하는 특별경영성과급을 신설하기로 잠정 합의했다. 지급 상한을 따로 두지 않기로 하면서 사업성과 산정 기준과 실제 실적에 따라 메모리사업부 임직원의 성과급이 연봉 1억원 기준 최대 6억원 안팎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는 전날 '2026년 성과급 노사 잠정 합의서'에 서명했다. 합의안은 기존 초과이익성과급(OPI) 제도를 유지하면서 DS부문에 별도의 특별경영성과급을 신설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수원=뉴스핌] 류기찬 기자 =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가운데), 최승호 삼성전자 노조 공동투쟁본부 위원장(오른쪽), 여명구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피플팀장이 20일 오후 경기 수원시 장안구 경기지방고용노동청에서 열린 삼성전자 노사교섭 결과 브리핑에서 손을 맞잡고 있다. 2026.05.20 ryuchan0925@newspim.com 특별경영성과급 재원은 노사가 합의해 선정한 사업성과의 10.5%로 정했다. 지급률 상한은 두지 않는다. 성과급 재원 배분은 DS부문 전체 기준 40%, 사업부 기준 60%로 나눠 이뤄진다. 공통 조직 지급률은 메모리사업부 지급률의 70% 수준으로 정했다. ◆ 상한 없어진 DS 보상…메모리 직원 6억 가능성 이번 합의안의 핵심은 성과급 상한 폐지다. 기존 OPI는 연봉의 최대 50%까지 지급되는 구조였지만, 새로 도입되는 DS부문 특별경영성과급은 지급 한도를 두지 않는다. 사업성과를 영업이익으로 가정할 경우 메모리사업부 임직원에게 돌아가는 성과급 규모는 크게 늘어날 수 있다. 올해 삼성전자의 영업이익 전망치를 300조원 안팎으로 놓고 계산하면, DS부문 특별경영성과급 재원은 약 31조5000억원 규모가 된다. 이 가운데 40%인 약 12조6000억원은 DS부문 전체 임직원에게 배분된다. DS부문 임직원 수를 약 7만8000명으로 보면 사업부와 관계없이 1인당 약 1억6000만원이 돌아가는 구조다. 나머지 60%인 약 18조9000억원은 사업부별 성과에 따라 배분된다. 파운드리와 시스템LSI 등 비메모리 사업부가 적자로 인해 사업부 배분에서 제외된다고 가정할 경우, 이 재원은 메모리사업부(약 2만8000명)와 공통 조직(약 3만명)에만 돌아가게 된다. 노사가 합의한 '1 대 0.7'의 지급률 비율을 적용해 계산하면, 메모리사업부 임직원은 1인당 약 3억8000만원, 공통 조직은 약 2억7000만원을 추가로 받게 되는 구조다. 메모리사업부 임직원이 기존 OPI로 연봉의 50%를 받을 경우 연봉 1억원 기준 약 5000만원이 더해진다. 이 경우 특별경영성과급과 OPI를 합친 총 성과급은 1인당 최대 6억원 안팎까지 늘어날 수 있다. 다만 이는 사업성과를 영업이익으로 가정한 계산이다. 합의서상 사업성과 산정 기준이 최종적으로 어떻게 정해지는지, 실제 실적이 어느 수준에서 확정되는지에 따라 지급액은 달라질 수 있다. ◆ 적자 사업부도 보상…2027년부터 차등 적용 비메모리 등 적자 사업부도 일정 수준의 성과급을 받을 수 있다. 합의안에 따르면 적자 사업부는 부문 재원을 활용해 산출된 공통 지급률의 60%를 적용받는다. 다만 이 기준은 1년 유예돼 2027년분부터 적용된다. 올해는 적자 사업부에도 DS부문 공통 배분 재원에 따른 성과급이 지급될 가능성이 있다. 사업성과를 영업이익으로 가정한 계산에서는 비메모리 부문 임직원도 최소 1억6000만원가량의 성과급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별경영성과급은 현금이 아닌 자사주로 지급된다. 세후 금액 전액을 자사주로 주고, 지급 주식의 3분의 1은 즉시 매각할 수 있다. 나머지 3분의 1씩은 각각 1년, 2년간 매각이 제한된다. DS부문 특별경영성과급 제도는 향후 10년간 적용된다. 2026년부터 2028년까지는 매년 DS부문 영업이익 200조원 달성, 2029년부터 2035년까지는 매년 DS부문 영업이익 100조원 달성이 조건이다. 임금 인상률은 평균 6.2%로 정해졌다. 기본인상률 4.1%, 성과인상률 평균 2.1%를 합친 수치다. 노사는 사내주택 대부 제도 도입과 자녀출산경조금 상향에도 합의했다. 자녀출산경조금은 첫째 100만원, 둘째 200만원, 셋째 이상 500만원으로 오른다. DX부문과 CSS사업팀에는 상생협력 차원에서 600만원 상당의 자사주를 지급하기로 했다. 협력업체 동반성장을 위한 재원 조성 및 운영 계획도 별도로 발표할 예정이다. 다만 잠정 합의안이 최종 확정된 것은 아니다. 노조는 조합원 찬반투표를 거쳐 합의안 수용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찬반투표에서 과반 찬성이 나오면 임금협약은 최종 타결된다. kji01@newspim.com 2026-05-21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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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현 43.5% vs 김태흠 43.9% [서울=뉴스핌] 송기욱 기자 = 6·3 지방선거 충남지사 선거에 출마한 박수현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김태흠 국민의힘 후보가 오차 범위 내 초접전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충남 도민 10명 중 8명 이상이 이번 지방선거에 투표하겠다는 의향을 밝혔다. ◆ 박수현 43.5% vs 김태흠 43.9%...오차 범위 내 0.4%p 초접전 종합뉴스통신사 뉴스핌 의뢰로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18일부터 19일까지 충남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80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충남지사 후보 지지도 조사 결과 박수현 후보 43.5%, 김태흠 후보 43.9%였다. 두 후보 간 격차는 0.4%p(포인트)로 오차 범위 안이다. '없음'은 4.6%, '잘 모름'은 8.1%였다. 지역별로는 김 후보가 천안시에서 45.0%를 기록해 박 후보(42.7%)보다 높게 조사됐다. 서남권(보령시·서산시·서천군·예산군·태안군·홍성군)에서도 김 후보는 48.8%로 박 후보(39.2%)보다 높았다. 반면 박 후보는 아산·당진시에서 47.1%를 기록하며 김 후보(37.5%)에 우세했고, 동남권(공주시·논산시·계룡시·금산군·부여군·청양군)에서도 46.0%로 김 후보(43.2%)를 웃돌았다. 연령별로는 김 후보가 만 18~29세에서 40.8%를 기록해 박 후보(31.5%)보다 높았다. 60대에서도 김 후보는 53.5%로 박 후보(41.2%)보다 높았고, 70세 이상에서는 김 후보 61.3%, 박 후보 26.9%였다. 반면 박 후보는 30대에서 40.2%로 김 후보(39.2%)를 소폭 웃돌았다. 40대에서는 박 후보 61.7%, 김 후보 29.2%였고, 50대에서는 박 후보 56.3%, 김 후보 36.0%로 크게 앞섰다.  성별로는 남성층에서 김 후보가 47.1%를 기록해 박 후보(44.1%)보다 높았다. 여성층에서는 박 후보 42.8%, 김 후보 40.5%였다.  정당 지지층별로는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의 84.6%가 박 후보를 지지한다고 답했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 지지층의 89.4%는 김 후보를 택했다. 조국혁신당 지지층에서는 박 후보 64.5%, 김 후보 24.0%였다. 개혁신당 지지층에서는 김 후보 48.5%, 박 후보 31.0%였다. 투표 의향별로는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적극 투표층에서 박 후보가 48.8%로 김 후보(45.2%)보다 높았다. 반면 투표 의향층 전체에서는 김 후보 46.2%, 박 후보 43.8%였다. 투표 의향이 없다는 응답층에서는 박 후보 44.6%, 김 후보 27.7%였다. ◆ 충남도민 83.7% "지방선거 투표하겠다" 투표 의향은 83.7%가 투표하겠다고 답했다. '반드시 투표' 66.1%, '가급적 투표' 17.7%였다. 반면 '별로 투표할 생각 없음' 6.0%, '전혀 투표할 생각 없음' 8.0%였다. 권역별 투표 의향은 동남권 85.4%, 서남권 84.1%, 천안시 83.6%, 아산·당진시 82.3%였다. 전 권역에서 투표 의향층은 80%를 넘었다. 연령별로는 60대가 91.3%로 가장 높았고, 50대 89.7%, 70세 이상 88.9%, 40대 88.3% 순이었다. 뒤이어 30대는 72.5%, 만 18~29세 63.1%였다. 이번 여론조사는 휴대전화 가상(안심)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자동응답조사(ARS)방식으로 진행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5%p, 응답률은 8.2%다. 2026년 4월 말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를 기준으로 성별, 연령별, 지역별 가중치(림가중)를 적용했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oneway@newspim.com 2026-05-2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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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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