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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주의 수선전도] '정릉의 눈물' 담긴 정릉 없는 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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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가 조성하고 아들 태종이 해체한 신덕왕후 정릉 이름 딴 정동
태종과 '혁명동지'에서 '철천지 원수'로 돌아선 신덕왕후

[편집자] 수선전도(首善全圖)는 조선의 수도 한양을 목판본으로 인쇄한 지도입니다. 대동여지도를 제작한 고산자(古山子) 김정호가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북쪽 도봉산부터 남쪽 한강에 이르기까지 당시 서울의 주요 도로와 동네, 궁궐 등 460여개의 지명을 세밀하게 묘사했습니다. 수선전도에 있는 지명들은 지금도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오승주의 수선전도'는 이 지도에 나온 동네의 발자취를 따라 지명과 동네에 담긴 역사성과 지리적 의미, 옛사람들의 삶과 숨결 등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오늘 숨가쁜 삶을 사는 우리 자신을 되돌아볼 계획입니다.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서울 성북구 북한산 자락 동편에 자리잡은 정릉(貞陵)은 조선 태조의 계비(繼妃·두번째 왕비) 신덕왕후(神德王后)의 안식처다. 동네 이름도 정릉동인 만큼 일대에서는 랜드마크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정릉의 원래 위치는 여기가 아니다. '덕수궁 돌담길'로 유명한 서울 중구 정동(貞洞)이었다.

도성 안에 능을 조성하지 않는다는 원칙까지 깨고 서울 정동에 만들어졌던 정릉이 북한산 중턱 산골짜기로 파묘천장(묘를 파서 다른 장소로 이전)한 이유에는 조선 건국을 위해 의기투합했던 두 혁명 동지가 철천지 원수로 변해가는 과정이 담겨 있다.

지금은 동네 전체가 도심속 공원 역할을 하는 고즈넉한 정동. 그러나 서울 정동에는 620여년전 '조선의 국모' 신덕왕후의 눈물과 '피의 군주' 태종의 한맺힌 노여움이 세월을 넘어 엮여 있다.

◆'조선의 국모' 눈물 스민 정동

태종 16년(1416년) 음력 8월21일. 임금이 편전에서 정사를 보다 좌우에 이른다. "계모(繼母)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유정현이 대답했다. "어머니가 죽은 뒤에 이를 계승하는 자를 계모라고 합니다."

임금이 "그렇다면 정릉(貞陵)이 내게 계모가 되는가" 하니 (유정현이) 대답했다. "그때에 신의왕후(神懿王后·태종의 생모)가 승하하지 않았으니 어찌 계모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에 임금은 "정릉이 내게 조금도 은의가 없었다. 내가 어머니 집에서 자라났고 장가를 들어서 따로 살았으니 어찌 은의가 있겠는가. 다만 부왕이 애중하시던 의리를 생각해 기신의 재제(제사)를 어머니와 다름없이 하는 것이다"고 답했다.

임금의 말에는 독(毒)이 들어 있다. 비록 생모는 아니지만 어머니로 대접해 정성껏 제사로 드리고 하지만 '내 어머니도 아닌데 내가 제사를 지내고 보살필 이유가 뭐가 있느냐'는 뼈가 섞인 말이다.

유교를 다스림의 최고 덕목으로 삼은 조선왕조에서 '유교의 수호신'인 왕이 비록 계모지만 '어머니를 어머니로 여기지 않겠다'는 파격적인 발언을 한 셈이다. 앞으로 신덕왕후에 대한 제사 등 보살핌을 끊고 방치하겠다는 선언에 다름없는 것이다.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 서울 중구 정동의 모습. 태조가 조성한 신덕왕후의 능인 정릉의 당초 위치로 추정되는 영국대사관(성당 뒤 회색건물)이 보인다. <자료=서울연구원> 2020.07.09 fair77@newspim.com

이 일에 앞서 7년전 태종은 '어머니의 묘'를 도성 밖으로 내치는 결정을 내린다. 태종(1409년) 9년 2월23일의 일이다. 이날 태종은 정동에 있던 정릉을 옮기는데 동의한다. 그날 조선왕조실록 기사다.

'신덕왕후 강씨(康氏)를 사을한(沙乙閑)의 산기슭으로 천장하였다. 처음에 의정부에 명하여 정릉(貞陵)을 도성 밖으로 옮기는 가부를 의논하게 하니 의정부에서 상언하기를 "옛 제왕의 능묘가 모두 도성 밖에 있는데 지금 정릉이 성안에 있는 것은 적당하지 못하고, 또 사신이 묵는 관사에 가까우니 밖으로 옮기도록 하소서." 하였으므로 (태종이) 그대로 따랐다.'

태조 승하(1408년 음력 5월24일) 9개월만이다. 신덕왕후가 묻힌 정동의 정릉을 지금의 서울 성북구 정릉동으로 옮겨버린 것이다. 왕릉을 옮기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수맥이 흐르거나 터가 좋지 않다는 등 이유로 천장할 수 있다. 세종대왕 영릉의 경우도 처음에는 경기도 광주에 있었지만 1469년(예종 원년) 풍수지리상 길지를 찾아 옮겼다. 세종 이후 문종, 단종, 세조, 예종 등 19년간 왕이 4번이나 바뀌고, 세조와 예종의 장남이 잇따라 요절하자 천장을 단행했다.

그러나 정릉은 도성 안에 있어 불편하다는 탐탁지 않은 명분을 들어 북한산 중턱으로 옮겼다. 이후 200년 이상 정릉은 산골짜기에 방치된다.

태종에 비해 아버지 태조는 정릉 조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조선 건국의 정치적 동지이자 공신이나 다름없던 신덕왕후의 위상을 높이 샀던 만큼 정릉 건설공사를 직접 챙겼다.

태조와 신덕왕후는 보통 사이가 아니었다. 아내이자 조선건국 과정의 건국공신이었다. 만남도 심상치 않았다. 먼 길 달려온 장수가 목이 말라 물을 찾자 우물가 처녀가 버들잎을 띄워 급체를 막는다는 스토리를 담고 있다.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뻗은 서울 정동의 모습. 2020.07.09 fair77@newspim.com

한국고전종합DB에 따르면 다산 정약용이 쓴 다산시문집 제14권 신덕기적비첩에는 태조와 신덕왕후의 만남을 묘사한 설화가 있다.

"옛날 우리 태조께서 여름철에 말을 달려 계곡을 지나다가 매우 갈증이 나므로 개울에서 빨래하는 한 여자를 보고 물을 떠오게 하였다. 그 여자는 일어나서 즉시 물을 떠오는 데 버들잎 한 움큼을 물에 띄워가지고 바쳤다. 태조가 노하여 '왜 버들잎을 섞었는가?' 하니, 그 여자가 '더울 적에 물을 급하게 마시면 몸에 해로우므로, 그것을 불면서 천천히 마시게 하려는 것입니다'고 하였다. 그러자 태조가 그를 매우 기특하게 여겨 말에 태워가지고 함께 돌아왔는데, 그가 바로 신덕왕후였다."

이 버들잎 설화는 고려왕조 건국에도 인용된다. 고려 태조 왕건이 나주 지방을 지날 때 그 지역의 오씨 성을 가진 여성이 물을 찾는 왕건에게 버들잎을 띄운 물을 바쳐 혼인에 이른다. 훗날 고려 2대왕 혜종의 어머니가 되는 장화왕후다.

1396년 음력 8월13일 신덕왕후가 판내시부사 이득분의 집에서 승하하자 태조는 열흘 뒤인 8월 23일 직접 자리를 살펴 취현방 북쪽에 능지를 정했다. 현재 정동 영국대사관 부근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왕릉은 도성 안에 있을 수 없고, 도성 밖에 조성한다는 원칙도 무시한 채 경복궁에서 멀지 않은 장소에 정릉을 세웠다.(조선 태조비 신덕왕후 정릉의 조성과 봉릉 고찰, 황정연, 서강인문논총 46, 2016년 8월)

그러나 태조가 이처럼 공들인 정릉은 철저히 해체된다. 조선왕조 태종실록 9년(1409년) 음력 4월13일 기사에는 정릉이 파괴되는 이야기가 묘사돼 있다. 봉분은 자취를 없애고 석인(왕릉 좌우에 세우는 문인·무인상)을 땅에 묻었으며 정자각은 헐어 그 자리에 터를 높게 쌓아 태평관을 짓는 데 사용했다.

이듬해인 1410년 8월 청계천 광통교가 홍수로 무너지자 정릉의 병풍석을 광통교 돌다리를 복구하는데 사용했다. 원형을 황폐화시킨 것은 물론 제례의 대상에서도 제외했다.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 청계천 광통교 아래 받침돌로 사용된 정릉의 병풍석. 능침을 둘러싼 병풍석에는 불교와 도교 등을 표현한 문양과 조각이 새겨져 있다. 2020.07.09 fair77@newspim.com

서울 청계천 SK그룹 사옥 옆으로 흐르는 청계천에 광통교가 있다. 다리 아래 석축벽에는 일반 돌과는 다른 다양한 무늬와 그림이 새겨진 조각석이 자리 잡고 있다. 정릉을 둘러싼 병풍석이다. 부처를 정교하게 새긴 조각과 도교의 영향을 받은 구름무늬 등은 600년 세월이 흘렀어도 당당한 위품을 자랑한다. 거꾸로 뒤집힌 부처상도 있다.

뭇 백성들이 밟고 지나가면서 수모를 겪으라는 의미로 해체돼 옮겨진 정릉 병풍석은 역설적으로 수백년이 지나도 기품을 잃지 않은 모습으로 백성들과 함께 하고 있다.

◆'혁명동지'에서 '철천지 원수'로

태종이 정릉을 '철천지 원수'처럼 파괴했지만, 처음 이들은 '혁명동지'였다. 태조가 '왕씨의 고려'를 지우고, '이씨의 조선'을 건국하는데 태종과 신덕왕후는 힘을 합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태조 이성계가 요동정벌에 나선 군사를 이끌로 개경으로 돌아온 위화도회군 당시 남아 있던 태조의 가족들은 '역적'으로 몰려 죽음의 위기에 처한다. 이 때 신덕왕후와 훗날 1차 왕자의 난(무인정사) 당시 죽음을 피할수 없었던 방번·방석 등 왕후 소생의 배다른 두 동생을 구한 사람은 다름 아닌 태종이었다.

태조실록 1권 총서 89번째 기사다. '처음에 신의왕후(태종의 생모)는 포천 재벽동에 있고, 강비(신덕왕후)는 포천 철현에 있었는데, 전하(태종)가 서울에 있으면서 변고가 발생했다는 말을 듣고 말을 달려 포천에 이르렀다. 전하가 왕후와 강비를 모시고 동북면을 향하여 가면서 말을 탈 때든지 말에서 내릴 때든지 모두 친히 부축해 주고, 스스로 허리춤에 불에 익힌 음식을 싸 가지고 봉양하였다. 경신공주·경선공주·무안군·소도군이 모두 나이 어렸으나 또한 따라왔으므로 전하께서 자기가 안아서 말에 태우고 길이 험하고 물이 깊은 곳에는 전하가 또한 말을 이끌기도 하였다.'

긴박한 상황에서도 태종이 신덕왕후와 그 자식들까지 직접 말에 태워 음식을 먹였다는 기록이다. 태종은 목숨을 건 도주에서 태조의 계비와 그 자식들까지 챙긴 것이다.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 수선전도에 표기된 정동. 소정동과 대정동으로 나눠져 있을만큼 규모가 상당했음을 알수 있다. <자료=수선전도>2020.07.09 fair77@newspim.com

조선 창건의 걸림돌로 지목된 정몽주를 태종이 개성 선죽교에서 죽인 이후 태조 이성계가 크게 화가 났을 때 신덕왕후가 태종을 옹호하는 장면도 조선왕조실록에 나온다.

'전하(태종)가 "몽주 등이 장차 우리 집을 모함하려고 하는데, 어찌 앉아서 망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합하겠습니까. 몽주를 살해한 이것이 곧 효도가 되는 까닭입니다"고 하였다. 태조가 성난 기색이 한창 성한데, 강비(신덕왕후)가 곁에 있으면서 감히 말하지 못했다. 전하(태종)가 말하기를 "어머니께서는 어찌 변명해 주지 않습니까" 하니 강비가 노기(怒氣)를 띠고 고하기를 "공(태조)은 항상 대장군으로서 자처하였는데, 어찌 놀라고 두려워함이 이 같은 지경에 이릅니까"라고 하였다.'

정몽주를 죽인 태종이 화가 머리 끝까지 치민 태조 앞에 불려가 뭔가 사달이 벌어지려 할 때였다. 태종이 신덕왕후를 보면서 '나를 변호해 달라'고 하니, 신덕왕후가 태조에게 '태종이 결단력있게 일을 잘 처리했는데, 왜 몰아 세우느냐'면서 옹호한 것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태종이 신덕왕후에게 '어머니'라고 불렀다는 점이다. 앞선 태조의 위화도회군 당시 목숨이 벼랑 끝에 달린 시점에서 태종이 신덕왕후의 자식들까지 안전하게 대피시킨 점도 '어머니'로 여기지 않으면 할 수 없는 행동이다.

하지만 이들 '혁명동지'는 조선건국 이후 '불구대천의 원수'로 갈라선다. 아버지와 남편을 새 왕조의 임금으로 세우는 과정에서는 '혁명'을 위해 뜻이 맞았지만, 태조가 신덕왕후의 아들 방석을 세자로 세우자 태종은 두 번에 걸친 왕자의 난을 일으켜 신덕왕후의 대를 끊어 버린다.

◆정릉의 부활

200년 이상 방치된 정릉은 현종 10년(1669년) 송시열의 상소 등으로 촉발된 서인들에 의해 복구된다. 신덕왕후는 왕비로 복위되면서 종묘에 위패가 모셔진다. 무덤도 왕후의 능으로 복원된다. 지금의 서울 성북구 정릉이다.

태종과 악연이 맺힌 정릉의 복원은 서인의 정략에 따른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남인과 대립하던 서인은 정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정릉과 신덕왕후 복귀를 이슈로 삼았다.

당시 서인과 대립하던 남인도 마땅히 반대할 명분이 없던 터라, 정릉 복위를 수차례 반대 끝에 결국 현종이 받아 들였고, 정국은 서인이 좌우하게 됐다.

200여년간 버려졌던 정릉이 제대로 왕릉의 격식을 갖추고 종묘에 배향되자 하늘에선 비가 내렸다.

실록은 이렇게 전한다. '능침을 봉하고 제를 올리던 날 소나기가 정릉(貞陵) 일대에 갑자기 쏟아져 백성들은 그 비를 일러 세원우(洗冤雨)라고 하였다.'(현종개수실록 1권, 현종대왕 행장)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 서울 성북구 정릉동에 위치한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의 정릉. 태종이 내친 정릉은 현종 때 송시열 등 서인에 의해 복원된다. <자료=문화재청> 2020.07.09 fair77@newspim.com

정동은 '신덕왕후의 눈물'뿐 아니라 조선시대 당파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정릉을 복위시킨 서인의 발원지다.

조선후기 학자 이긍익이 지은 사서인 연려실기술 선조조고사본말(宣祖朝故事本末)에 따르면 선조 5년(1572) 이조 참의로 있던 심의겸은 당시 과거 장원 급제자 김효원이 이조 정랑에 추천되자 그가 어릴 적에 권신 윤원형의 식객이었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했다.

늦게야 이조 정랑이 된 김효원은 심의겸의 아우 심충겸이 이조 좌랑의 추천에 오르자 외척(명종의 처남)이라는 이유로 이를 반대해 저지시켰다. 이후 심의겸과 김효원은 반목이 생기고, 조신들은 심의겸을 옳다고 하는 파와 김효원을 옳다고 하는 파로 나눠졌다. 심의겸의 집이 서울의 서쪽인 정동에 있었고, 김효원의 집이 동쪽인 건천동에 있어 동인과 서인의 이름이 생기게 됐다.

태종의 악연과 당쟁의 발원지에 이어 정동은 조선의 험난한 역사가 묻어 있다. 조선말 문호 개방 이후 미국과 영국, 러시아 등 각국 공사관이 들어선 땅이다. 고종이 궁궐을 버리고 러시아대사관에 몸을 피한 아관파천을 비롯해 구한말 열강의 다툼이 치열하게 벌어진 장소다.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 현재 서울 정동의 모습. 동네 전체가 공원이라고 할만큼 역사의 굴곡에도 불구하고 고즈넉하다. 2020.07.09 fair77@newspim.com

현대 서울의 정동은 동네 전체가 공원이다.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경향신문사 방향으로 길은 고즈넉히 뻗어 있다.

정동 남쪽 초입 덕수궁 돌담길을 걷다보니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가 떠오른다. 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했지만,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다.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도 있지만, 동네 전체가 공원인 듯한 넉넉한 모습 속에 조선의 아픔도 함께 서려 있다.

fair77@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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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한강 청년 버스킹 축제' 18일 한강공원서 개최 [서울=뉴스핌] 정태이 기자 = 선선한 가을바람이 부는 한강에서 청년 음악가들의 다채로운 공연과 시민 참여형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감엔터테인먼트가 주최하고 서울특별시가 후원하는 '2026 한강 청년 버스킹 축제 : DAY OFF SEOUL'이 오는 18일 여의도한강공원 녹음수광장에서 열린다. 행사는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진행되며 모든 공연과 체험 프로그램은 무료로 운영된다. [서울=뉴스핌] 정태이 기자 = '2026 한강 청년 버스킹 축제 DAY OFF SEOUL' 포스터 [사진=감엔터테인먼트] 2026.10.08 taeyi427@newspim.com 올해 축제는 '한강 위에서 하루를 통째로 쉬어가는 청년 문화 축제'를 주제로 마련된다. 음악과 피크닉, 한강, 가을을 결합해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열린 문화 공간을 조성하고 시민 참여와 청년 예술가 발굴을 함께 꾀한다. 청년 예술가에게는 시민과 만나는 무대를, 시민에게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문화와 휴식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는 취지다. 축제의 중심은 청년 음악가들의 버스킹 무대다. 싱어송라이터 오디션 '히든스테이지' 출신의 김은찬밴드,신직선,윤태경,윤준,채수빈,심각한 개구리, 채비(Che!vee), 혼즈(Hon'z) 등 10팀이 참여해 각기 다른 장르와 개성을 담은 음악을 선보인다. [서울=뉴스핌] 정태이 기자 = '히든스테이지' 대상 심각한 개구리(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최우수상 윤태경, 우수상 김은찬밴드. [사진=감엔터테인먼트] 2026.10.08 taeyi427@newspim.com 특히 지난 7일 열린 '히든스테이지' 결선에서 대상을 받은 심각한 개구리를 비롯해 최우수상 윤태경, 우수상 김은찬밴드 등 수상자들도 이번 축제를 통해 다시 관객들과 만난다. 경연 무대에서 실력을 겨룬 청년 음악가들이 이번에는 한강 야외 무대로 자리를 옮겨 시민들과 가까이에서 호흡할 예정이다. 청년 아티스트들의 공연에 더해 특별 초청 무대도 마련된다. 뉴올리언스 사운드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컨템포러리 재즈밴드 '김루꾸밴드'와 국악·비보이·아크로바틱 등을 결합한 퍼포먼스팀 '라스트릿크루', 비트박서 잭브라이언(Jackbryan)이 무대에 올라 축제의 볼거리를 더한다. 싱어송라이터들의 음악부터 재즈와 퍼포먼스, 비트박스까지 서로 다른 장르의 무대를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서울=뉴스핌] 정태이 기자 = 사진 위쪽부터 라스트릿크루, 김루꾸밴드, 비트박서 잭브라이언(Jackbryan). [사진=감엔터테인먼트] 2026.10.08 taeyi427@newspim.com 시민도 직접 무대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시민과 함께하는 버스킹' 참가 희망자는 축제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 신청할 수 있으며 개인 또는 팀 단위로 지원 가능하다. 신청자의 자기소개와 활동 경력, 희망 공연곡과 장르, 공연 영상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참가자를 선정한다. 선정된 참가자는 '시민과 함께하는 버스킹' 무대에 참여하게 된다. 청년 뮤지션의 공연과 함께 시민에게도 직접 무대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한다. 무대 밖에서는 공연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서울의 향을 찾아서'에서는 서울을 대표하는 핫플레이스 이미지를 향으로 구현해 시향한 뒤 원하는 향료를 더해 자신만의 맞춤 향수를 만들 수 있다. 여러 향을 직접 맡아보고 취향에 맞게 조합해 결과물을 만드는 방식이다. '한강 포토 스테이션'에서는 축제 현장의 즐거운 순간을 간직할 수 있도록 즉석 사진 인화 부스 '한강로 사진관'을 운영한다. 현장에서 촬영한 사진을 인화해 축제의 순간을 기록할 수 있도록 마련했다. [서울=뉴스핌] 정태이 기자 = 한강 포토 스테이션 [사진=감엔터테인먼트] 2026.10.08 taeyi427@newspim.com 음악과 한강의 풍경, 청춘에게 전하고 싶은 문장을 엽서에 적어 남기는 참여형 아카이브 프로그램 '한강 사운드 엽서'도 준비된다. 공연 관람에 더해 향수 제작과 사진, 엽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축제를 즐길 수 있도록 구성했다. 주최 측은 "청년 음악가들이 시민과 가까이에서 소통하고, 시민들도 공연과 체험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축제를 준비하고 있다"며 "가을 한강에서 음악과 휴식을 함께 즐기는 특별한 하루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taeyi427@newspim.com 2026-10-13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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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직원 35명' 日 NEC…한달 인건비는 300만원? [서울=뉴스핌] 오영상 기자 = 일본 NEC가 인공지능(AI) 에이전트 35명으로만 구성된 '무인 부서'를 운영하고 있다. 부서장부터 중간관리자, 실무 직원까지 모두 AI로 채웠으며, 한 달간 투입된 비용은 약 35만엔(약 300만원)에 불과했다. AI 에이전트 한 명당 월평균 비용은 약 1만엔으로, 사람을 고용하는 방식과 비교해 인건비를 획기적으로 낮출 가능성을 보여주는 실험이다. 14일 닛케이(日經)비즈니스에 따르면 NEC는 지난 8월 1일 '코퍼레이트 AI·워크포스 부문'을 출범했다. 9월 3일 기준 35명의 AI 에이전트가 소속돼 있으며, 경영진 역할을 맡은 AI부터 재무·전략 담당자, 실무 직원까지 일반 조직과 유사한 구조로 운영된다. 이 부서는 법무·인사 등 기업의 관리 업무 가운데 특히 경영기획에 가까운 일을 맡는다. 사내외 정보를 수집·분석하고 경영진의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정보 현황판을 작성·운영하는 것이 핵심 임무다. ◆ AI 35명이 월 300만원으로 경영기획까지 NEC가 공개한 실증 결과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비용이다. AI 부서의 실증 기간인 7월 한 달간 AI가 정보를 처리할 때 발생하는 토큰 비용은 약 300만원이었다. 같은 업무를 사람이 수행한다면 인건비가 훨씬 많이 들 것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AI 에이전트 한 명당 단순 평균으로 환산하면 월 약 8만5000원이다. 다만 이 금액은 급여나 전체 운영비가 아니라 AI 모델이 작업을 수행하면서 사용하는 토큰 비용이다. 시스템 구축·유지보수, 전력, 보안 관리 등에 드는 비용까지 포함한 총비용과는 구분해야 한다. 실제 업무도 구체적이다. 재무 담당 AI는 매월 사내 결산 자료를 취합해 재무 보고서를 작성하고, 주가 분석 담당 AI는 매일 아침 자사와 경쟁사의 주가 동향을 정리한다. 또 다른 AI는 정부기관의 시스템 갱신 시기를 분석해 영업 대상으로 삼을 고객을 추려낸다. NEC 무인 부서 구성 [출처=닛케이비즈니스] ◆ AI가 AI를 평가하고 조직을 개선 이 부서의 특징은 AI가 단순히 주어진 작업만 수행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AI 에이전트들은 서로 역할을 나눠 자료를 검토하고, 문제점을 지적하며, 업무 효율을 높이는 방안을 논의한다. 예컨대 품질관리 담당 AI는 다른 에이전트가 만든 자료를 점검해 누락된 내용을 지적한다. 비용 관리 담당 AI는 토큰 사용량을 줄이는 방법을 찾아 조직 전체에 공유한다. 재무 담당 경영진 AI는 AI 활용에 투입하는 비용과 성과를 비교해 투자 판단을 내린다. AI 경영진은 매주 '임원회의'를 열어 조직 개선 방안을 논의하고, AI 직원의 역할과 직책이 맞지 않으면 인사 면담을 거쳐 강등하는 사례도 나왔다. 사람의 조직에서 볼 수 있는 평가와 관리 절차를 AI 조직에도 적용한 것이다. 업무 중 오류가 발생하면 AI 에이전트가 스스로 수정하고 외부 환경 변화에도 대응한다. 실패를 점검하고 개선안을 적용하는 순환 구조를 통해 업무 수행 방식을 계속 다듬는다는 설명이다. 다만 최종 평가와 의사결정, 거버넌스 통제는 사람이 담당하며, 사람의 승인이 필요한 사안에도 직원이 개입한다. ◆ 사람은 AI가 만든 결과로 현실을 움직인다 NEC가 무인 부서를 만든 배경에는 AI 활용 방식을 바꾸려는 전략이 있다. 사람이 필요할 때마다 AI를 도구로 사용하는 수준을 넘어, AI 자체가 독립된 조직처럼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고다마 히로시 AI전환최고책임자는 "사람이 AI를 매번 사용하는 기존 방식으로는 AI의 속도와 기능을 충분히 활용하기 어렵다"며 "이에 따라 인적 자본과 AI 자본을 분리하고, 각각의 강점을 살려 가치를 창출하는 조직 모델을 실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AI가 제공하는 분석은 경영 판단에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NEC 측은 기존에는 사업 부문이 보고하는 수치가 보수적으로 제시되는 경향이 있었지만, AI는 예측에 기반한 객관적인 수치를 제공해 사업 부문과 더 깊이 있는 논의를 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AI 부서의 업무 범위는 향후 총무 등 기업 관리 업무 전반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다만 AI가 사람의 일자리를 곧바로 대체한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게 NEC의 입장이다. [AI 일러스트=오영상 기자] goldendog@newspim.com 2026-10-14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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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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