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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주의 수선전도] '정릉의 눈물' 담긴 정릉 없는 정동

기사입력 : 2020년07월09일 16:15

최종수정 : 2020년07월09일 16:15

태조가 조성하고 아들 태종이 해체한 신덕왕후 정릉 이름 딴 정동
태종과 '혁명동지'에서 '철천지 원수'로 돌아선 신덕왕후

[편집자] 수선전도(首善全圖)는 조선의 수도 한양을 목판본으로 인쇄한 지도입니다. 대동여지도를 제작한 고산자(古山子) 김정호가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북쪽 도봉산부터 남쪽 한강에 이르기까지 당시 서울의 주요 도로와 동네, 궁궐 등 460여개의 지명을 세밀하게 묘사했습니다. 수선전도에 있는 지명들은 지금도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오승주의 수선전도'는 이 지도에 나온 동네의 발자취를 따라 지명과 동네에 담긴 역사성과 지리적 의미, 옛사람들의 삶과 숨결 등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오늘 숨가쁜 삶을 사는 우리 자신을 되돌아볼 계획입니다.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서울 성북구 북한산 자락 동편에 자리잡은 정릉(貞陵)은 조선 태조의 계비(繼妃·두번째 왕비) 신덕왕후(神德王后)의 안식처다. 동네 이름도 정릉동인 만큼 일대에서는 랜드마크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정릉의 원래 위치는 여기가 아니다. '덕수궁 돌담길'로 유명한 서울 중구 정동(貞洞)이었다.

도성 안에 능을 조성하지 않는다는 원칙까지 깨고 서울 정동에 만들어졌던 정릉이 북한산 중턱 산골짜기로 파묘천장(묘를 파서 다른 장소로 이전)한 이유에는 조선 건국을 위해 의기투합했던 두 혁명 동지가 철천지 원수로 변해가는 과정이 담겨 있다.

지금은 동네 전체가 도심속 공원 역할을 하는 고즈넉한 정동. 그러나 서울 정동에는 620여년전 '조선의 국모' 신덕왕후의 눈물과 '피의 군주' 태종의 한맺힌 노여움이 세월을 넘어 엮여 있다.

◆'조선의 국모' 눈물 스민 정동

태종 16년(1416년) 음력 8월21일. 임금이 편전에서 정사를 보다 좌우에 이른다. "계모(繼母)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유정현이 대답했다. "어머니가 죽은 뒤에 이를 계승하는 자를 계모라고 합니다."

임금이 "그렇다면 정릉(貞陵)이 내게 계모가 되는가" 하니 (유정현이) 대답했다. "그때에 신의왕후(神懿王后·태종의 생모)가 승하하지 않았으니 어찌 계모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에 임금은 "정릉이 내게 조금도 은의가 없었다. 내가 어머니 집에서 자라났고 장가를 들어서 따로 살았으니 어찌 은의가 있겠는가. 다만 부왕이 애중하시던 의리를 생각해 기신의 재제(제사)를 어머니와 다름없이 하는 것이다"고 답했다.

임금의 말에는 독(毒)이 들어 있다. 비록 생모는 아니지만 어머니로 대접해 정성껏 제사로 드리고 하지만 '내 어머니도 아닌데 내가 제사를 지내고 보살필 이유가 뭐가 있느냐'는 뼈가 섞인 말이다.

유교를 다스림의 최고 덕목으로 삼은 조선왕조에서 '유교의 수호신'인 왕이 비록 계모지만 '어머니를 어머니로 여기지 않겠다'는 파격적인 발언을 한 셈이다. 앞으로 신덕왕후에 대한 제사 등 보살핌을 끊고 방치하겠다는 선언에 다름없는 것이다.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 서울 중구 정동의 모습. 태조가 조성한 신덕왕후의 능인 정릉의 당초 위치로 추정되는 영국대사관(성당 뒤 회색건물)이 보인다. <자료=서울연구원> 2020.07.09 fair77@newspim.com

이 일에 앞서 7년전 태종은 '어머니의 묘'를 도성 밖으로 내치는 결정을 내린다. 태종(1409년) 9년 2월23일의 일이다. 이날 태종은 정동에 있던 정릉을 옮기는데 동의한다. 그날 조선왕조실록 기사다.

'신덕왕후 강씨(康氏)를 사을한(沙乙閑)의 산기슭으로 천장하였다. 처음에 의정부에 명하여 정릉(貞陵)을 도성 밖으로 옮기는 가부를 의논하게 하니 의정부에서 상언하기를 "옛 제왕의 능묘가 모두 도성 밖에 있는데 지금 정릉이 성안에 있는 것은 적당하지 못하고, 또 사신이 묵는 관사에 가까우니 밖으로 옮기도록 하소서." 하였으므로 (태종이) 그대로 따랐다.'

태조 승하(1408년 음력 5월24일) 9개월만이다. 신덕왕후가 묻힌 정동의 정릉을 지금의 서울 성북구 정릉동으로 옮겨버린 것이다. 왕릉을 옮기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수맥이 흐르거나 터가 좋지 않다는 등 이유로 천장할 수 있다. 세종대왕 영릉의 경우도 처음에는 경기도 광주에 있었지만 1469년(예종 원년) 풍수지리상 길지를 찾아 옮겼다. 세종 이후 문종, 단종, 세조, 예종 등 19년간 왕이 4번이나 바뀌고, 세조와 예종의 장남이 잇따라 요절하자 천장을 단행했다.

그러나 정릉은 도성 안에 있어 불편하다는 탐탁지 않은 명분을 들어 북한산 중턱으로 옮겼다. 이후 200년 이상 정릉은 산골짜기에 방치된다.

태종에 비해 아버지 태조는 정릉 조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조선 건국의 정치적 동지이자 공신이나 다름없던 신덕왕후의 위상을 높이 샀던 만큼 정릉 건설공사를 직접 챙겼다.

태조와 신덕왕후는 보통 사이가 아니었다. 아내이자 조선건국 과정의 건국공신이었다. 만남도 심상치 않았다. 먼 길 달려온 장수가 목이 말라 물을 찾자 우물가 처녀가 버들잎을 띄워 급체를 막는다는 스토리를 담고 있다.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뻗은 서울 정동의 모습. 2020.07.09 fair77@newspim.com

한국고전종합DB에 따르면 다산 정약용이 쓴 다산시문집 제14권 신덕기적비첩에는 태조와 신덕왕후의 만남을 묘사한 설화가 있다.

"옛날 우리 태조께서 여름철에 말을 달려 계곡을 지나다가 매우 갈증이 나므로 개울에서 빨래하는 한 여자를 보고 물을 떠오게 하였다. 그 여자는 일어나서 즉시 물을 떠오는 데 버들잎 한 움큼을 물에 띄워가지고 바쳤다. 태조가 노하여 '왜 버들잎을 섞었는가?' 하니, 그 여자가 '더울 적에 물을 급하게 마시면 몸에 해로우므로, 그것을 불면서 천천히 마시게 하려는 것입니다'고 하였다. 그러자 태조가 그를 매우 기특하게 여겨 말에 태워가지고 함께 돌아왔는데, 그가 바로 신덕왕후였다."

이 버들잎 설화는 고려왕조 건국에도 인용된다. 고려 태조 왕건이 나주 지방을 지날 때 그 지역의 오씨 성을 가진 여성이 물을 찾는 왕건에게 버들잎을 띄운 물을 바쳐 혼인에 이른다. 훗날 고려 2대왕 혜종의 어머니가 되는 장화왕후다.

1396년 음력 8월13일 신덕왕후가 판내시부사 이득분의 집에서 승하하자 태조는 열흘 뒤인 8월 23일 직접 자리를 살펴 취현방 북쪽에 능지를 정했다. 현재 정동 영국대사관 부근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왕릉은 도성 안에 있을 수 없고, 도성 밖에 조성한다는 원칙도 무시한 채 경복궁에서 멀지 않은 장소에 정릉을 세웠다.(조선 태조비 신덕왕후 정릉의 조성과 봉릉 고찰, 황정연, 서강인문논총 46, 2016년 8월)

그러나 태조가 이처럼 공들인 정릉은 철저히 해체된다. 조선왕조 태종실록 9년(1409년) 음력 4월13일 기사에는 정릉이 파괴되는 이야기가 묘사돼 있다. 봉분은 자취를 없애고 석인(왕릉 좌우에 세우는 문인·무인상)을 땅에 묻었으며 정자각은 헐어 그 자리에 터를 높게 쌓아 태평관을 짓는 데 사용했다.

이듬해인 1410년 8월 청계천 광통교가 홍수로 무너지자 정릉의 병풍석을 광통교 돌다리를 복구하는데 사용했다. 원형을 황폐화시킨 것은 물론 제례의 대상에서도 제외했다.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 청계천 광통교 아래 받침돌로 사용된 정릉의 병풍석. 능침을 둘러싼 병풍석에는 불교와 도교 등을 표현한 문양과 조각이 새겨져 있다. 2020.07.09 fair77@newspim.com

서울 청계천 SK그룹 사옥 옆으로 흐르는 청계천에 광통교가 있다. 다리 아래 석축벽에는 일반 돌과는 다른 다양한 무늬와 그림이 새겨진 조각석이 자리 잡고 있다. 정릉을 둘러싼 병풍석이다. 부처를 정교하게 새긴 조각과 도교의 영향을 받은 구름무늬 등은 600년 세월이 흘렀어도 당당한 위품을 자랑한다. 거꾸로 뒤집힌 부처상도 있다.

뭇 백성들이 밟고 지나가면서 수모를 겪으라는 의미로 해체돼 옮겨진 정릉 병풍석은 역설적으로 수백년이 지나도 기품을 잃지 않은 모습으로 백성들과 함께 하고 있다.

◆'혁명동지'에서 '철천지 원수'로

태종이 정릉을 '철천지 원수'처럼 파괴했지만, 처음 이들은 '혁명동지'였다. 태조가 '왕씨의 고려'를 지우고, '이씨의 조선'을 건국하는데 태종과 신덕왕후는 힘을 합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태조 이성계가 요동정벌에 나선 군사를 이끌로 개경으로 돌아온 위화도회군 당시 남아 있던 태조의 가족들은 '역적'으로 몰려 죽음의 위기에 처한다. 이 때 신덕왕후와 훗날 1차 왕자의 난(무인정사) 당시 죽음을 피할수 없었던 방번·방석 등 왕후 소생의 배다른 두 동생을 구한 사람은 다름 아닌 태종이었다.

태조실록 1권 총서 89번째 기사다. '처음에 신의왕후(태종의 생모)는 포천 재벽동에 있고, 강비(신덕왕후)는 포천 철현에 있었는데, 전하(태종)가 서울에 있으면서 변고가 발생했다는 말을 듣고 말을 달려 포천에 이르렀다. 전하가 왕후와 강비를 모시고 동북면을 향하여 가면서 말을 탈 때든지 말에서 내릴 때든지 모두 친히 부축해 주고, 스스로 허리춤에 불에 익힌 음식을 싸 가지고 봉양하였다. 경신공주·경선공주·무안군·소도군이 모두 나이 어렸으나 또한 따라왔으므로 전하께서 자기가 안아서 말에 태우고 길이 험하고 물이 깊은 곳에는 전하가 또한 말을 이끌기도 하였다.'

긴박한 상황에서도 태종이 신덕왕후와 그 자식들까지 직접 말에 태워 음식을 먹였다는 기록이다. 태종은 목숨을 건 도주에서 태조의 계비와 그 자식들까지 챙긴 것이다.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 수선전도에 표기된 정동. 소정동과 대정동으로 나눠져 있을만큼 규모가 상당했음을 알수 있다. <자료=수선전도>2020.07.09 fair77@newspim.com

조선 창건의 걸림돌로 지목된 정몽주를 태종이 개성 선죽교에서 죽인 이후 태조 이성계가 크게 화가 났을 때 신덕왕후가 태종을 옹호하는 장면도 조선왕조실록에 나온다.

'전하(태종)가 "몽주 등이 장차 우리 집을 모함하려고 하는데, 어찌 앉아서 망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합하겠습니까. 몽주를 살해한 이것이 곧 효도가 되는 까닭입니다"고 하였다. 태조가 성난 기색이 한창 성한데, 강비(신덕왕후)가 곁에 있으면서 감히 말하지 못했다. 전하(태종)가 말하기를 "어머니께서는 어찌 변명해 주지 않습니까" 하니 강비가 노기(怒氣)를 띠고 고하기를 "공(태조)은 항상 대장군으로서 자처하였는데, 어찌 놀라고 두려워함이 이 같은 지경에 이릅니까"라고 하였다.'

정몽주를 죽인 태종이 화가 머리 끝까지 치민 태조 앞에 불려가 뭔가 사달이 벌어지려 할 때였다. 태종이 신덕왕후를 보면서 '나를 변호해 달라'고 하니, 신덕왕후가 태조에게 '태종이 결단력있게 일을 잘 처리했는데, 왜 몰아 세우느냐'면서 옹호한 것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태종이 신덕왕후에게 '어머니'라고 불렀다는 점이다. 앞선 태조의 위화도회군 당시 목숨이 벼랑 끝에 달린 시점에서 태종이 신덕왕후의 자식들까지 안전하게 대피시킨 점도 '어머니'로 여기지 않으면 할 수 없는 행동이다.

하지만 이들 '혁명동지'는 조선건국 이후 '불구대천의 원수'로 갈라선다. 아버지와 남편을 새 왕조의 임금으로 세우는 과정에서는 '혁명'을 위해 뜻이 맞았지만, 태조가 신덕왕후의 아들 방석을 세자로 세우자 태종은 두 번에 걸친 왕자의 난을 일으켜 신덕왕후의 대를 끊어 버린다.

◆정릉의 부활

200년 이상 방치된 정릉은 현종 10년(1669년) 송시열의 상소 등으로 촉발된 서인들에 의해 복구된다. 신덕왕후는 왕비로 복위되면서 종묘에 위패가 모셔진다. 무덤도 왕후의 능으로 복원된다. 지금의 서울 성북구 정릉이다.

태종과 악연이 맺힌 정릉의 복원은 서인의 정략에 따른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남인과 대립하던 서인은 정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정릉과 신덕왕후 복귀를 이슈로 삼았다.

당시 서인과 대립하던 남인도 마땅히 반대할 명분이 없던 터라, 정릉 복위를 수차례 반대 끝에 결국 현종이 받아 들였고, 정국은 서인이 좌우하게 됐다.

200여년간 버려졌던 정릉이 제대로 왕릉의 격식을 갖추고 종묘에 배향되자 하늘에선 비가 내렸다.

실록은 이렇게 전한다. '능침을 봉하고 제를 올리던 날 소나기가 정릉(貞陵) 일대에 갑자기 쏟아져 백성들은 그 비를 일러 세원우(洗冤雨)라고 하였다.'(현종개수실록 1권, 현종대왕 행장)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 서울 성북구 정릉동에 위치한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의 정릉. 태종이 내친 정릉은 현종 때 송시열 등 서인에 의해 복원된다. <자료=문화재청> 2020.07.09 fair77@newspim.com

정동은 '신덕왕후의 눈물'뿐 아니라 조선시대 당파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정릉을 복위시킨 서인의 발원지다.

조선후기 학자 이긍익이 지은 사서인 연려실기술 선조조고사본말(宣祖朝故事本末)에 따르면 선조 5년(1572) 이조 참의로 있던 심의겸은 당시 과거 장원 급제자 김효원이 이조 정랑에 추천되자 그가 어릴 적에 권신 윤원형의 식객이었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했다.

늦게야 이조 정랑이 된 김효원은 심의겸의 아우 심충겸이 이조 좌랑의 추천에 오르자 외척(명종의 처남)이라는 이유로 이를 반대해 저지시켰다. 이후 심의겸과 김효원은 반목이 생기고, 조신들은 심의겸을 옳다고 하는 파와 김효원을 옳다고 하는 파로 나눠졌다. 심의겸의 집이 서울의 서쪽인 정동에 있었고, 김효원의 집이 동쪽인 건천동에 있어 동인과 서인의 이름이 생기게 됐다.

태종의 악연과 당쟁의 발원지에 이어 정동은 조선의 험난한 역사가 묻어 있다. 조선말 문호 개방 이후 미국과 영국, 러시아 등 각국 공사관이 들어선 땅이다. 고종이 궁궐을 버리고 러시아대사관에 몸을 피한 아관파천을 비롯해 구한말 열강의 다툼이 치열하게 벌어진 장소다.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 현재 서울 정동의 모습. 동네 전체가 공원이라고 할만큼 역사의 굴곡에도 불구하고 고즈넉하다. 2020.07.09 fair77@newspim.com

현대 서울의 정동은 동네 전체가 공원이다.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경향신문사 방향으로 길은 고즈넉히 뻗어 있다.

정동 남쪽 초입 덕수궁 돌담길을 걷다보니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가 떠오른다. 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했지만,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다.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도 있지만, 동네 전체가 공원인 듯한 넉넉한 모습 속에 조선의 아픔도 함께 서려 있다.

fair77@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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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라이 릴리, 먹는 비만치료제 임상 성공적 [서울=뉴스핌] 고인원 기자= 주사 없이 하루 한 알로 체중을 감량할 수 있는 비만 치료제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미국 제약사 일라이 릴리는 17일(현지시간) 현재 회사가 개발 중인 경구용 GLP-1 작용제 '오포글리프론'의 임상 3상 시험에서 체중 감량과 혈당 조절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번 임상은 제2형 당뇨병 환자를 대상으로 40주간 진행됐다. 최대 용량을 복용한 환자들은 평균 체중의 7.9%(약 7.3kg)를 감량했으며, 시험 종료 시점에도 체중 감량이 멈추지 않아 체중 감량 정체기에 도달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일라이 릴리는 "이번 결과는 주사제에 버금가는 수준이며, 안전성과 내약성 또한 긍정적으로 평가됐다"고 설명했다. 일라이 릴리 로고 [자료=로이터] 다만, 당뇨병 치료의 핵심 지표인 혈당 조절 효과(A1c)는 1.3~1.6%포인트 개선에 그쳐, 일부 애널리스트들이 기대한 1.8~2.1% 수준에는 못 미쳤다. 하지만 위약군이 0.1% 감소에 그친 점을 고려하면 의미 있는 개선이라는 평가다. 부작용은 대부분 경미하거나 중간 정도의 위장 장애였으며, 최대 8%의 환자만이 부작용으로 치료를 중단했다. 업계에서는 하루 한 번 복용하는 특성상 주사제보다 부작용이 클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지만, 실제 데이터는 이를 크게 웃돌지 않았다. 오포글리프론은 기존 주사제인 오젬픽(Ozempic), 위고비(Wegovy) 등과 달리 펩타이드가 아닌 비펩타이드 경구 약물로, 체내 흡수가 더 용이하고 식이 제한이 필요 없는 것이 강점이다. 또한 제조 공정이 간단하고 대량 생산이 가능해 글로벌 수요 대응에도 유리하다는 평가다. 일라이 릴리는 올해 말 비만 치료제로 먼저 허가 신청을 할 계획이며, 당뇨 치료제는 2026년 허가를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임상은 총 7건(당뇨병 5건, 비만 2건)으로, 경쟁사인 아스트라제네카와 로슈, 바이킹 테라퓨틱스보다 최소 3년 이상 앞선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GLP-1 계열 비만 치료제 시장이 2030년대 초 1500억 달러(약 200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 중 경구형 약물만 500억 달러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내다본다. 글로벌 공급난 해소와 주사제 대체 가능성을 모두 갖춘 오포글리프론이 상용화될 경우, 일라이 릴리가 시장 주도권을 확고히 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 같은 보도 내용에 이날 뉴욕 증시 오전 거래에서 일라이 릴리(LLY)의 주가는 16% 넘게 급등하고 있다. koinwon@newspim.com 2025-04-17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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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국회·대통령실, 세종 이전 추진" [서울=뉴스핌] 윤채영 기자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6·3 대통령선거 예비후보는 17일 "세종을 행정수도의 중심으로 완성하겠다"며 국회의사당과 대통령 집무실을 세종으로 완전 이전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대표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회 세종의사당과 대통령 세종 집무실을 임기 내 건립하겠다"며 "국회 본원과 대통령 집무실의 세종시 완전 이전도 사회적 합의를 거쳐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 2025.04.16 mironj19@newspim.com 이 예비후보는 이날 충청 지역 공약 로드맵을 제시했다. 세종은 행정수도로, 대전은 세계적 과학 수도로 만들겠다고 했다. 대전에 대해서는 "대덕연구특구를 글로벌 과학기술 혁신클러스터로 전환하겠다"며 "글로벌 융합연구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인재 양성 인프라 확충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이 예비후보는 대전연구특구를 "AI와 우주산업 중심지로 키우겠다"며 "'스마트시티 국가시범도시' 전략과 연계해 세종을 스마트·디지털 행정 허브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또 삭감된 R&D 예산은 대폭 늘리겠다고 했다. 충청권에는 대전(AI·우주산업)~세종(스마트행정)~충북(바이오·반도체·이차전지)~충남(디스플레이)를 잇는 첨단산업벨트 구축을 약속했다. 이 예비후보는 "보령‧태안‧당진에 있던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지역을 태양광·풍력·그린수소 등 재생에너지 중심지로 전환하는 지역 지원 특별법을 추진하겠다"며 "논산, 계룡에 국방 관련 기관을 유치해 스마트 국방산업 발전을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예비후보는 "충북 내륙은 휴양·힐링 관광벨트로 발전시키겠다"며 ▲청주~증평~진천~음성까지 이어지는 관광·휴양지 조성을 지원 ▲충주호와 단양8경은 호반 관광·휴양벨트로 연결하고, 소백산~속리산~장령산~민주지산을 잇는 백두대간 탐방벨트 조성 지원을 약속했다. 아울러 "청주공항을 확장하고, 사통팔달 광역 교통망을 구축하겠다"며 ▲청주국제공항에 민간전용 활주로 신설 ▲충남 서산~천안~청주~경북 울진을 잇는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조기 확정 등을 약속했다. [서울=뉴스핌] 국회사진취재단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 2025.04.14 photo@newspim.com 다음은 이 예비후보가 페이스북에 올린 충청 지역 공약 전문이다. <이재명 경선후보 페이스북 게시용 충청 지역공약> "대한민국 균형발전의 심장, 충청을 행정‧과학 수도로 만들겠습니다" 충청은 국토의 중심이자 대한민국의 심장입니다.수도권과 남부권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입니다.충청의 심장이 힘차게 뛰어야, 대한민국 경제의 혈맥이 살아납니다. 수도권 집중으로 지역은 소외되고, 기회는 편중됐습니다.국가가 나서야 합니다. 균형발전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입니다.충청에 맞는 산업을 배치하고, 과감한 투자로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야 합니다.저 이재명, 진짜 균형발전에 앞장서겠습니다. 충청을 '행정·과학 수도'로 조성해,대한민국 균형발전의 중심축으로 삼겠습니다. 세종은 명실상부한 행정수도로, 대전은 세계적 과학수도로 만들겠습니다.충북은 미래산업의 중심지로, 충남은 환황해권의 거점으로 완성하겠습니다. 첫째, 세종을 행정수도의 중심으로 완성하고 제2차 공공기관 이전을 조속히 추진하겠습니다. 국회 세종의사당과 대통령 세종 집무실을 임기 내 건립하겠습니다.국회 본원과 대통령 집무실의 세종시 완전 이전도 사회적 합의를 거쳐 추진하겠습니다.중단(2019년)된 공공기관 이전을 조속히 재개하겠습니다. '무늬만 혁신도시'가 아닌 실질적 기능을 갖추겠습니다.대전과 충남 혁신도시에는 지역 경쟁력을 고려한 공공기관을 유치하겠습니다.충북혁신도시는 중부내륙 성장거점으로 키우겠습니다. 둘째, 대전을 한 차원 높은 과학 수도로 만들겠습니다. 대덕연구특구를 글로벌 과학기술 혁신클러스터로 전환하겠습니다.글로벌 융합연구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인재 양성 인프라 확충을 지원하겠습니다. 삭감된 R&D 예산은 대폭 늘리고, 연구자와 기술자 정주 여건도 개선하겠습니다.성과 지원을 두텁게 해 무너진 연구 생태계를 다시 일으키겠습니다. 셋째, 충청권에 첨단산업벨트를 구축하겠습니다. 대전(AI·우주산업)~세종(스마트행정)~충북(바이오‧반도체‧이차전지)~충남(디스플레이)을 잇는 유기적인 첨단산업벨트를 구축하겠습니다. 대전 대덕연구특구는 AI와 우주산업 중심지로 키우겠습니다.'스마트시티 국가시범도시' 전략과 연계해세종을 스마트‧디지털 행정 허브로 자리매김하겠습니다. 충북은 K-바이오스퀘어를 조기 조성해글로벌 바이오산업 클러스터로 육성하겠습니다.이차전지‧반도체사업 분야는 R&D와 인력 양성 인프라를 강화해초격차 경쟁력 확보를 지원하겠습니다. 충남은 국제 경쟁력과 생산성을 갖춘,미래형 디스플레이 산업 메카로 만들겠습니다.국산화 기술개발을 지원하고, 핵심 소재‧부품기업을 육성하겠습니다.혁신공정 플랫폼 등 인프라도 갖춰차세대 디스플레이 기술 확보를 지원하겠습니다. 보령‧태안‧당진에 있던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지역을태양광‧풍력‧그린수소 등 재생에너지 중심지로 전환하는지역 지원 특별법을 추진하겠습니다.논산, 계룡에 국방 관련 기관을 유치해 스마트 국방산업 발전을 지원하겠습니다. 넷째, 환황해권 해양관광벨트와 충북 휴양‧힐링 관광벨트를 조성하겠습니다. 서해안 해양 생태를 복원하고, 가로림만 해양정원 조성을 지원하겠습니다.해상교량 건설로 서해안 관광도로망을 완성하겠습니다.서천 브라운필드는 재자연화를 거쳐 생태관광 명소로 탈바꿈시키겠습니다. 서산 부남호와 간월호는 해수 유통 등 역간척 사업으로 생태계를 복원하고, 해양신도시 개발도 함께 지원하겠습니다.금강 하구에 해수를 들여 자연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입법과 제도개선으로 뒷받침하겠습니다. 충북 내륙은 휴양·힐링 관광벨트로 발전시키겠습니다.도민의 뜻을 모아 미호강 수질을 개선하고, 청주 ~ 증평 ~ 진천 ~ 음성까지 이어지는 관광·휴양지 조성을 지원하겠습니다.충주호와 단양8경은 호반 관광 ‧ 휴양벨트로 연결하고, 소백산~속리산~장령산~민주지산을 잇는 백두대간 탐방벨트 조성도 지원하겠습니다. 다섯째, 청주공항을 확장하고, 사통팔달 광역 교통망을 구축하겠습니다. 청주국제공항에 민간전용 활주로를 신설해, 중부권 거점공항이 되도록 지원하겠습니다.충남 서산~천안~청주~경북 울진을 잇는중부권 동서횡단철도는 조기에 확정하겠습니다.충북선‧호남선 고속화를 서둘러 X자형 강호축 철도망을 완성하겠습니다. 대전~세종~오송~청주공항을 연결하는충청권 광역급행철도(CTX)는 적기에 착공하고,GTX의 천안‧아산 연장도 신속히 추진하겠습니다. 잠실 또는 동탄에서 청주공항까지 이어지는수도권내륙 광역철도도 빠르게 추진하겠습니다. 우선 사업 대상지로 선정된 대전조차장 부지를 시작으로,대전 도심 철도 지하화를 단계적으로 추진하겠습니다.서해대교 인근 교통정체 해소를 위해 제2 서해대교 건설을 적극 검토하겠습니다. 존경하는 충청권 시민, 도민 여러분!저는 늘 현장에 답이 있다는 신념으로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어 왔습니다.자부심 넘치고 행복한 도시 충청을 만들겠습니다. 4개 시도가 하나 되어 통합경제권을 만들고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습니다.충청이 살면 대한민국이 살 것입니다. 이제부터 진짜 대한민국, 지금은 이재명입니다. 감사합니다. ycy1486@newspim.com 2025-04-17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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