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탄 두둑이 확보한 현대百...SK바이오랜드 인수 추진
코로나 위기에 추가 M&A 추진 가능성도 제기...업계선 기대반 우려반
[서울=뉴스핌] 남라다 기자 =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이 유료방송 계열사인 현대HCN 매각으로 1조원가량의 실탄을 확보하게 됐다.
정 회장은 이 자금으로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미래 먹거리 물색을 위해 대규모 인수합병(M&A)에 나설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특히 화장품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두고 현재 매물로 나온 SK바이오랜드 인수를 적극 검토 중이다. 백화점 업계 3위인 현대백화점이 유통 사업부문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화장품 시장에 진출해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려는 전략이다.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사진=현대백화점그룹] 2020.01.02 hj0308@newspim.com |
다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로 촉발된 '실적 쇼크'에 따라 기업들의 투자 심리도 위축된 상황에서 현대백화점의 공격적 사업 확장 행보가 코로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타개책이 될지 관심을 모은다.
◆실탄 두둑이 확보한 현대百...SK바이오랜드 인수 검토
29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백화점그룹은 현대HCN의 매각절차를 마무리하면 5000억대 중반가량의 자금을 거머쥘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HCN은 전날 공시를 통해 KT스카이라이프를 매각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여기에 현대HCN이 보유하고 있는 자금 4000억원을 합치면 1조원가량의 실탄을 확보하게 된 셈이다.
현대백화점은 이 자금을 기반으로 사업 다각화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현대백화점이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낙점한 화장품 사업을 강화하고 비주력 계열사는 정리하는 사업구조 재정비를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현재 시장에 매출로 나온 SKC의 자회사인 SK바이오랜드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 SK바이오랜드는 국내 천연화장품 원료 시장에서 업계 1위다. 화장품과 건강식품 원료, 의료기기, 원료 의약품 등을 주력으로 하고 있으며, 1995년 설립돼 2016년 SK계열사로 편입됐다.
인수 대상은 SKC가 보유하고 있는 지분 27.9%다. 인수 대금은 2000억~3000억원 안팎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 등 국내 브랜드뿐 아니라 로레알, P&G 등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에도 화장품 원료를 납품하고 있다. '3세대 마스크팩'이라 불리는 바이오셀룰로스 기술을 적용한 마스크팩 시트도 제조업자개발생산(ODM) 방식으로 생산 중이다. 프리미엄 스킨케어 브랜드인 '리바이리'(ReXRe)도 보유하고 있다.
지난 5월 패션 계열사인 한섬을 통해 인수한 화장품 전문기업인 클린젠코스메슈티칼과의 시너지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한섬은 고기능성 화장품 전문기업인 클린젠코스메슈티칼의 지분 51%를 인수하고 화장품 시장에 진출했다. 인수 규모는 약 100억원이다.
한섬 사옥 [사진=현대백화점그룹] 2020.05.11 hrgu90@newspim.com |
클린젠은 서울 청담동의 클린피부과와 신약개발 전문업체인 프로젠이 공동 설립한 회사다. 미백과 주름개선, 탄력 등 기능성 화장품브랜드 'gb20'를 보유하고 있다.
올 하반기에 SK바이오랜드 인수절차를 마무리한다면, 내년 초 출시 예정인 스킨케어 브랜드 개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출시 제품은 고가의 기능성 화장품 브랜드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면세점과의 시너지도 기대...추가 M&A 업체도 물색 중
또한 최근 사업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는 면세점과의 협업도 기대를 모은다. 화장품 사업은 유통 채널 확보가 중요하다. 면세점은 화장품 사업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판매처로 꼽힌다.
현대백화점은 지난 2월 동대문점 개점과 인천국제공항면세점 입찰전에서 신세계와 롯데를 제치고 DF7(패션·기타) 구역을 따내면서 3개의 면세점 사업장을 운영하는 '빅(big)4' 반열에 올랐다.
아울러 실탄이 충분한 만큼 SK바이오랜드 외에도 다수의 M&A도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미래 성장 잠재력이 높은 분야를 대상으로 투자처를 물색하고 있다.
식품과 리빙 등 유통·식음료업계는 물론, 플랫폼, 물류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폭 넓게 인수 후보를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토 중인 투자 처도 1000억원에서 최대 8000억원대 기업까지 광범위하다는 게 증권가 전언이다.
이러한 공격적인 경영 행보는 실적 부진과 맞닿아 있다. 주력 사업인 백화점 사업부문도 코로나 사태로 실적이 크게 악화됐다. 올 1분기 영업이익은 149억원으로 80%가량 감소했고 현대그린푸드는 별도 기준 14.4% 줄었다. 한섬도 전년 대비 11.5% 떨어졌고 당기순이익은 전년 대비 10% 감소했다.
그간 현대백화점이 위기 때마다 M&A를 통해 몸집을 키워왔다는 점도 향후 차세대 성장엔진으로 삼을 수 있는 기업 인수에 나설 수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M&A 연혁. 2020.05.28 hj0308@newspim.com |
실제 외환위기가 진정된 2000년대 초 신촌 그레이스백화점을 인수해 현대백화점 신촌점을 열었고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에는 현대백화점 유플렉스 신촌점과 대구점, 충청점을 잇달아 개점했다. 이후 2012년에는 한섬과 리바트를 인수함으로써 외형 확장을 해왔다.
◆코로나 위기 속 대형 M&A 추진에 기대반 우려반
다만 업계에서는 대규모 M&A에 나서는 현대백화점의 정반대 행보에 대해 엇갈린 의견을 내놓고 있다. 코로나 위기 속에서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시각이 있는가 하면, 성공 가능성을 점치기에는 아직 이르다라는 견해를 밝히는 이들도 적지 않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현대백화점의 주력 사업인 유통 채널과 식품, 패션사업 모두 올 1분기 실적이 부진했다"며 "새로운 성장동력이 필요하다. 재무 구조가 탄탄한 데다 이번 현대HCN 매각으로 상당한 현금을 확보한 만큼 인수합병을 통한 외형 확장으로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면 오린아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SK바이오랜드 인수를 추진하는 것은 화장품 사업을 향후 새로운 성장동력을 삼겠다는 전략"이라며 "한섬이 인수한 클린젠코스메슈티칼, 면세점과의 시너지를 강화하고 백화점 사업을 다각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 다만 롯데백화점이 2년 만에 화장품 사업을 중단한 점을 고려할 때 향후 브랜딩 전략을 지켜볼 필요는 있다"고 평가했다.
nrd8120@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