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한태희 기자 = "민사 소송 걸려서 잘못하면 집안 풍비박산 납니다. 지금이야 현장 적극 대응 주문하지만 막상 민사 소송으로 가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판사는 경찰 손을 안 들어줍니다. 적극 대응한 경찰이 손해배상금까지 감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난 11일 국회에서 경찰 형사 책임을 감면해주는 경찰관 직무집행법 개정안이 통과된 후 한 일선 경찰이 조심스럽게 꺼낸 말이다. 형사 책임을 감면해준다는 법 개정은 반길만한 소식이나 이와 별개로 풀어야 할 숙제는 많다는 것이다.
민사 소송이 대표적이다. 적극 현장 대응을 했다가 민사 소송에 휘말려면 치안 담당하는 본연 업무는 고사하고 법원 쫓아다니기 바쁘다는 하소연이다. 패소할 경우에는 자칫 수억원에 달하는 손해배상금도 오롯이 경찰이 감당해야 한다고도 토로했다.
[서울=뉴스핌] 한태희 기자 = 2022.01.12 ace@newspim.com |
경찰은 직무 수행과정에서 끊임없이 민·형사 소송에 휘말린다. 지난해 말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6부(황순현 부장판사)는 경찰이 쏜 테이저건에 맞고 포박 등 진압 행위 이후 사망한 정신질환자의 유족이 국가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법원에 따르면 우울증 등 신경정신 치료를 받던 A씨는 병원 이송을 거부하며 흉기를 든 채 출동한 경찰과 대치했다. 경찰은 테이저건을 쏘고 뒷수갑을 채우는 등 A씨를 제압했다. A씨는 9분 후 의식을 잃었고 5개월 뒤 사망했다.
법원은 1심에서 경찰이 A씨를 제압하면서 사용한 물리력과 A씨 사망 사이 인과 관계가 있다고 인정했다. 이에 국가가 A씨 가족에게 3억2000만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법원 판결이 나오자 경찰은 항소했다. 김창룡 경찰청장도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법원 판결을 존경한다"면서도 "추가적인 법원 판단을 받을 필요하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은 국가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라 혹여 경찰이 패소했을 때 국가 예산으로 손해배상금을 지급한다. 경찰청은 현장 출동한 경찰관 개인이 손해배상금을 부담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의 또는 중과실이 인정될 경우 경찰관에게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으나 이번 사안은 그럴만한 사건이 아니라고도 강조했다. 아울러 경찰이 민사 소송을 당하면 경찰법률보험과 공무원책임보험을 통해 변호사 선임 등 소송을 지원한다고 덧붙였다.
강한 힘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공권력, 경찰권에도 큰 책임이 따른다. 때문에 경찰권은 법으로 정하는 절차와 규정에 따라 절제된 상황에서 행사돼야 한다. 그래야 경찰권 오·남용을 막을 수 있다. 이런 이유에서 이번 경찰관 직무집행법 개정안에서도 형사 책임 감면 사유를 제한적으로 뒀다. 살인과 폭행, 강간 등 강력범죄 및 가정폭력, 아동학대범죄 등에 대응할 때 불가피성과 긴급성 등을 고려해 형사 책임을 감면한다.
하지만 형사 책임만 감면받을 뿐 민사 책임은 남아있다. 절제된 경찰권을 행사했어도 개인이 여전히 민사상 책임을 감당한다면 적극적인 현장 대응을 기대하기가 어려워진다. 각종 소송 지원으로 경찰 '조직'이 개인에 대한 책임을 분산하나 현장에서는 여전히 적극 대응에 멈칫할 수도 있다.
근본적으로 '조직이 나를 지켜줄 것인가?'라는 뿌리깊은 의심도 자리잡고 있다. 이번 법 개정안 논의 과정에서 형사 책임에 대한 논의만 치열했을 뿐 민사 책임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쉬운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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