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불확실성 확대에 경계...수요 점차 감소 우려
美 '횡재세' 입법 움직임...정부 압박 가능성도
[서울=뉴스핌] 이윤애 기자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국제유가 급등, 정제마진 강세 등 실적 호조가 기대되는 가운데 국내 정유사들의 표정이 마냥 밝지만은 않다.
정유업계는 단기간의 높은 변동성에 따른 시장의 불확실성을 경계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면서 "한두 달 반짝 실적이 큰 폭 상승한 뒤 오랜 기간 곤두박질치는 고통스러운 과정이 전개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 정제마진 12.1달러로 급등
15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정제마진 상승과 재고평가이익 등으로 국내 정유사들이 올 1분기 역대급 실적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3월 둘째주 싱가포르 정제마진은 12.1달러로 전주(5.7달러) 대비 6.4달러 급등했다. 이달 초 윤재성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정제마진이 9년 내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분석했는데 여기서 추가 상승한 것이다.
원유 배럴 [사진= 로이터 뉴스핌] |
정제마진은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가·수송비 등을 뺀 것으로 정유사의 수익을 결정하는 핵심 지표다. 업계는 4~5달러대를 손익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정제마진은 코로나19 발생 이후 수요가 급락하며 마이너스까지 내려갔다가 백신 보급 확대, 세계 경제 회복세 등에 힘입어 지난해 하반기부터 반등세를 보였다.
국제유가도 배럴당 100달러 안팎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70달러대에서 50% 가까이 올랐다. 국제유가가 오르면 정유사들이 저유가일 때 사들였던 원유의 가치가 상승하면서 재고평가이익이 발생한다.
일각에서는 세계 원유시장의 7~8%를 차지하는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제재가 강화되면서 국제유가가 배럴당 200달러까지 폭등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런 영향으로 SK이노베이션과 에쓰오일의 1분기 실적 컨센서스(증권가 전망치 평균)는 각각 6598억 원, 6538억 원으로 집계되고 있다.
◆ "기름값이 묘하다" 재현될까 걱정
하지만 정유업계는 현재 상황이 반갑지 않다는 입장이다. 불확실성 확대로 인한 '실적 추락'을 경계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고유가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가격 부담이 가중돼 수요가 점진적으로 감소할 수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정제마진이 강세를 띄면서 글로벌 정유사들은 팔수록 이익을 보니, 설비 가동률을 계속 높여 생산량을 늘려나가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제마진이 워낙 좋은 상황으로 팔수록 이익이 높아지니 글로벌 정유사들이 생산량을 조절하는 결단을 내리기가 어렵다"면서 "하지만 고유가로 수요는 점차 감소하고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로 인해 하반기로 갈수록 정제마진이 큰폭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
정유4사 CI. [사진=각사] |
동시에 각국 정부로부터 정유사에 대한 가격 압력 정책이 심화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최근 미국에서는 민주당을 중심으로 '횡재세(Windfall Tax)' 입법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횡재세는 '굴러들어온 행운'에 부과하는 세금으로 2000년대 중반 미국와 유럽연합 등에서 유가 급등에 따른 정유사들의 이익을 환수하기 위한 방안으로 논의된 바 있다.
국내에서도 휘발유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해 9년 만에 리터당 2000원을 넘어서면서 정유사의 판매가격 압박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 2011년 국제유가 상승으로 휘발유 가격이 2000원까지 오르자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기름값이 묘하다"며 정유사를 압박하기도 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후 정부가 석유가격 TF를 구성해 기름값을 조사했고 정유사는 기름값을 내렸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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