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안 갚고 주식양도해 사기죄 유죄→대법 "다시 판단"
"사후적 이중양도 사정만으로 편취 범의 인정 어렵다"
[서울=뉴스핌] 이성화 기자 = 채무초과상태에서 유효하게 소유하던 주식을 담보로 돈을 빌렸다가 이를 갚지 않고 해당 주식을 제3자에 양도한 피고인을 사기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의 상고심에서 사기죄를 유죄로 인정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5일 밝혔다.
대법원 [사진=뉴스핌 DB] |
A씨는 2016년 2월 경 B씨로부터 5000만원을 빌리면서 A씨 소유의 C사 주식 1만2500주를 담보로 제공하는 금전소비대차 및 주식담보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에 따르면 이들은 A씨가 상환기일까지 원리금을 변제하지 못할 경우 해당 주식 소유권을 B씨에게 귀속시키기로 했다.
그러나 A씨는 B씨에게 원금을 갚지 못했음에도 같은 해 7월 해당 주식을 다른 채권자에게 양도했다.
이후 A씨는 시가 미상의 주식 상당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고 B씨에게 재산상 손해를 가한 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A씨가 B씨로부터 돈을 빌릴 당시 16억3000만원 상당의 채무가 있는 등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태여서 빌린 돈을 변제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다고 보고 예비적 공소사실로 사기 혐의도 적용했다.
1심은 "피고인이 담보권자인 피해자에 대해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지위에 있지 않으므로 형법상 배임죄를 구성하지 않는다"며 배임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또 "피해자로부터 돈을 차용할 당시 주식 등 충분한 담보를 제공했고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차용 당시 피고인에게 차용금을 변제할 의사와 능력이 없었다는 점이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사기 혐의도 무죄로 봤다.
항소심은 1심과 달리 사기죄를 유죄로 인정해 A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은 피해자로부터 5000만원을 차용할 당시 채무초과 상태에 빠져 있었고 운영하던 사업이 어려워지는 등 차용금을 변제할 의사와 능력이 없었음에도 돈을 빌려 이를 편취한 것이라고 봄이 상당하다"고 했다.
대법원은 이러한 원심 판단을 다시 뒤집었다. 대법은 "회계법인이 이 사건 주식 가치를 평가한 결과에 따르면 피고인이 양도담보로 제공한 주식 1만2500주의 가액 합계는 차용금 5000만원을 초과한다"며 "차용 당시 주식 가액 합계가 차용금 채무 5000만원을 담보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주식을 유효하게 양도담보로 제공한 이상 사후적으로 제3자에게 이중양도했다는 사정만으로 충분한 담보를 제공하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며 "차용 당시 양도에 관한 피고인의 진정성이 인정되는 경우라면 차용 이후 피해자의 담보권 실행에 장애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었다고 해서 피고인에게 편취의 범의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대법은 "원심 판단에는 사기죄의 성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라고 판시했다.
shl2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