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리드 정상회의 통해 '주적' 러시아와 대립각 뚜렷
'유럽의 강력한 나토화' 실현...중국까지 겨냥
푸틴의 우크라 침공으로 결속도 높아져
[뉴욕=뉴스핌]김근철 특파원=스페인 마드리에서 열렸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가 30일(현지시간) 이틀간의 회기를 마치고 폐막했다.
이번 마드리드 정상회의는 지난 1949년에 창설된 나토 역사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온 기념비적인 회의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2차 세계대전 종식 77주년이자, 냉전 종식 50년이 지난 시점에서 향후 나토가 나아갈 새로운 이정표가 정립되는 계기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나토의 이같은 변화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일으킨 우크라이나 침공사태가 촉발시켰다는 데에 이론이 없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통해 나토의 무력화를 노렸지만, 오히려 '더 크고, 강하고, 단결된' 나토를 상대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바이든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럽의 핀란드화'를 기대했지만 '유럽의 나토화'를 초래했다고 말한 것은 뼈아픈 지적이 아닐 수 없다.
◆ 유럽 중립국, 아·태까지 확대...나토, '범 서방' 군사동맹화
이번 나토 정상회의의 가장 구체적인 결과물은 스웨덴과 핀란드의 가입이다. 이는 단순히 2개의 회원국이 늘어나 32개국 체제가 됐다는 의미 이상이다.
스웨덴과 핀란드는 그동안 서유럽과 러시아 사이에서 군사적 중립을 유지해왔다. 서유럽에 편향되거나 나토에 기압할 경우 러시아로부터의 군사 보복을 두려워한 측면도 강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는 집단 안보 동맹이란 보호막이 없는 유럽의 약소국은 언제든지 러시아의 탱크에 짓밟힐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스웨덴이나 핀란드로선 나토 가입을 미루면 언제든 우크라이나와 같은 처지가 될 수 있다는 각성이 생겨난 셈이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한 정상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스웨덴과 핀란드의 나토 가입은 군사적으로도 러시아에게 큰 부담이다.
푸틴 대통령은 나토가 러시아의 국경에 까지 직접 확대, 안보를 위협하는 것을 좌시할 수 없다는 명분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켰다.
하지만 핀란드의 가입으로 러시아는 나토 회원국과 대치하는 국경선이 1340km나 늘어났다. 스웨덴은 러시아가 북유럽 발트해로 나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 러시아의 역외 영토이자 발트 함대의 주둔지인 칼리닌그라드는 이제 완전히 나토 회원국에 포위된 형국이 됐다.
이밖에도 이번 나토정상회의에는 비회원국인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정상들도 참여했다. 나토의 영향권이 유럽을 너머 아시아태평양까지 확대된 셈이다. 이는 나토가 향후 러시아는 물론 중국까지 함께 겨냥한 '범 서방' 군사 동맹으로 확대될 초석을 마련한 것으로 해석된다.
◆'종이 호랑이'에서 막강 군사력 갖춘 동맹으로진화
나토가 단순히 몸집만 커진 것이 아니다.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나토의 군사력은 한층 강화될 초석을 다졌다. 그동안 나토는 실질적인 군사력이 제대로 갖추지 못해 '미군의 들러리', '종이 호랑이'라는 지적을 받곤 했다. 자신들의 방위비 지출을 아끼며 미군에 편승해온 유럽 각국이 자초한 측면도 컸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이후 나토 회원국은 방위력 증강이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러시아의 무력충돌은 이제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머지않은 미래의 '실제 상황'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옌스 스톨벤테르크 나토 사무총장이 신속대응군 병력을 현재 4만명에서 30만명으로 확대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할 수 있었던 것도 이와같은 기류를 반영한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당장 러시아에 맞설 수 있는 유럽 주둔 미군을 증강하고 전진 배치시키겠다고 발표했다.
바이든 정부는 폴란드에 미 육군 5군단 사령부를 설치하고, 유럽 각지에 전투여단과 기갑, 항공 부대를 증강해 순환 배치키로 했다. 영국에는 F-35 스텔스기 2개 대대를 ,스페인에는 구축함을 추가 배치키로 했다. 유럽 주둔 미군도 10만명 선을 유지할 예정이다.
이밖에 영국을 비롯한 유럽 각국은 그동안 미뤄온 '국내총생산(GDP) 대비 2.5% 국방비 지출' 계획에도 적극 실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 '러시아' 주적 앞에서 단결하는 나토
그동안 나토의 약점 중 하나는 '취약한 단결력'이었다. 유럽 각국이 안보 동맹으로 뭉쳤지만 각기 처지와 이해관계가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 유럽 대륙과 영국, 회원국 사이의 격차 등으로 인해 단합된 힘을 모으는데 한계가 뚜렷했다.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를 계기로 나토 회원국들은 이제 '러시아는 주적이자 위협'이란 인식을 분명히 갖게 됐고, 이는 결속력 강화로 이어졌다.
실제로 독일은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 우크라이나는 물론 주변 회원국으로부터 많은 질타를 받았다. 러시아와의 경제 협력, 에너지 의존을 감안해 대응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우크라이나에 장거리 무기와 탱크 등을 지원키로 했고, 우크라이나의 유럽 연합(EU) 가입도 적극 지지하는 입장을 보였다.
터키(튀르키예)는 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 가입을 반대했지만 지난 28일 찬성으로 급선회했다. 협상 과정에서 터키가 실리를 챙긴 대목도 있지만 애초부터 '대러 공동전선' 구축이 시급하다는 대세를 거스리긴 힘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나토의 분열은 언제든 다시 재연될 수 있다. WP도 향후 나토의 내부 분열 가능성은 완전히 해결되기 힘든 약점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2차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유럽 전쟁인 우크리아니 전쟁에 휘말리면서 나토의 결속력이 과거 어느때보다 견고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kckim100@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