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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방송 제작을 위한 '클리어런스'를 아십니까  

기사입력 : 2023년02월22일 13:49

최종수정 : 2023년02월22일 13:49

이용해 YH&CO 대표변호사

 

 

방송 프로그램 제작사가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 등을 촬영하고 제작하는 과정에서 해당 촬영의 직접적인 목적이 된 대상 이외에 타인의 이름과 얼굴, 상표, 미술품 등이 노출되는 경우가 있고, 때로는 의도적으로 특정한 상표나 미술품 등을 배치하여 소품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얼마 전에는 타인의 퀴즈 책에 있는 문제를 무단으로 도용해 방송 프로그램에 사용한 혐의로 해당 프로그램의 관계자가 벌금형을 받고 방송사 측이 공식 사과한 사례도 있었다. 이처럼 방송 프로그램에 타인이 권리를 가지는 대상이 사용되는 경우에는 다양한 법적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바, 제작사가 이러한 법적 분쟁을 막기 위해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타인의 미술품, 건축물, 책자 등 저작물을 사용하는 경우 = 타인의 미술품은 물론이고 건축물 등도 고유한 창작성을 갖추고 있다면 저작권법상 저작물로서 보호된다. 어문저작물은 그 내용이 저작권법으로 보호되고, 그 제목은 보호대상이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책자 표지는 통상 고유한 디자인을 통해 만들어지므로 저작물로서 보호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프로그램 촬영 과정에서 그 배경에 타인의 저작물이 함께 촬영되는 경우에 주로 문제되는데, 개방된 장소에 항시 전시되어 있는 미술저작물이라 하더라도 이를 판매의 목적으로 복제하는 경우에는 원본 소유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저작권법 제35조).

촬영 과정에서 보이거나 들리는 저작물이 촬영의 주된 대상에 부수적으로 포함되는 경우에도, 이용된 저작물의 종류와 용도, 이용목적과 성격 등에 비추어 저작재산권자의 이익을 부당하게 해치게 된다면 그 복제나 배포 등에 저작재산권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제35조의3). 이러한 부수적 복제 규정은 우연히 촬영되어 주된 촬영 대상에 부수적으로 포함되는 경우를 전제로 하므로, 제작진이 의도적으로 저작물을 소품으로 배치하는 경우에는 저작재산권자의 동의를 받아야 하고, 동의가 없다면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 등 별도의 저작권 제한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한 저작재산권 침해가 될 수 있다.

이용해 변호사

◇타인의 얼굴이나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 = 초상권은 헌법상 인격권에 의해 보장되고 있는 권리이므로, 타인의 얼굴이 나오는 영상 등을 촬영하거나 이를 공표하는 경우 피촬영자로부터 동의를 받아야 한다. 촬영 자체는 동의를 받았더라도 피촬영자가 허용한 범위를 넘어 공표하는 경우에는 피촬영자의 동의를 별도로 받아야 하므로, 촬영된 영상의 공표 범위에 대하여 명확한 합치가 없다면 역시 법적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성명권도 헌법상 행복추구권과 인격권에 의해 보장되는 권리로서, 개인 뿐만 아니라 법인이나 비법인사단도 성명권의 주체가 된다. 따라서 프로그램에 사용된 법인의 이름이 지리적 명칭이나 보편적인 성질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단어로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실제 존재하는 특정 법인 등의 명칭과 유사한 경우 그 법인 등의 명칭에 관한 권리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

◇ 타인의 상표 등을 사용하는 경우 = 타인의 표장을 이용하더라도 그것이 상표의 본질적인 기능이라 할 수 있는 출처표시를 위한 것이 아닌 경우에는 상표권 침해행위로 되지 않는다. 따라서 방송 프로그램 등에 타인의 상표, 상품, 로고 등이 단순히 노출된 것만으로는 상표법 위반행위가 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지만, 이러한 경우에도 간접광고 등을 제한하는 방송법과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위반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또한 정당한 사유 없이 국내에 널리 알려진 타인의 상호, 상표, 표지 등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것을 사용하여 타인의 표지의 식별력이나 명성을 손상시키거나, 타인의 상품을 사칭하거나 상품의 품질, 내용 등을 오인하게 하는 표지를 하는 행위는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하므로(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다목, 바목), 타인의 상표나 표지가 붙은 가상의 상품을 만들어 프로그램의 소품 등으로 사용하는 경우, 부가된 사정에 따라서는 부정경쟁방지법 위반행위가 될 수도 있다.

◇ 클리어런스(Clearance)의 필요성 = 이상에서 살펴본 문제들 이외에도 특정 개인이나 법인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경우 명예훼손 및 인격권 침해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촬영 및 공표로 우려되는 타인의 사생활 및 개인정보 침해에 관한 문제, 촬영본을 수정하거나 변형하여 이용하는 경우 실연자의 인격권 등 침해에 관한 문제, 청소년이 출연하는 경우 법정대리인의 동의나 촬영시간 제한 등 청소년 보호의 문제 등 방송 프로그램을 촬영하고 이를 공표하는 과정에서는 수없이 많은 법적 문제들이 발생한다.

이에 주요 글로벌 플랫폼들은 이러한 법적 분쟁을 사전에 차단하거나 해결하기 위해 법률전문가(Production Legal Counsel)의 자문을 통해 법령 위반 여부, 동의가 필요한 사항인지 여부 등을 확인하고 있는데, 이를 클리어런스(Clearance)라 한다. 

그리고 이러한 Clearance는 대본 집필 단계에서의 스크립트 클리어런스(Script Clearance), 촬영 과정에서의 프로덕션클리어런스(Production Clearance), 편집 단계에서의 포스트 프로덕션 클리어런스(Post Production Clearance) 등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프로그램을 촬영 및 제작하는 과정에서 주로 문제되는 인격권, 저작권, 상표권 등의 권리가 대부분 배타적인 권리라는 점에서, Clearance는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즉, 권리의 침해가 인정되면 제작사가 권리자 등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프로그램의 전송이나 배포 등이 아예 금지될 수도 있기 때문에, Clearance가 글로벌 플랫폼들에게 프로그램 제작에 필수적인 일부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정작 Clearance가 가장 필요한 대본 집필 단계에서 타인의 권리 침해 등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다. 촬영 단계에서 비로소 제작사 측이 작가나 연출자 등에게 법적 문제 발생에 대한 우려를 표하더라도,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욕심이나 현장 상황 등을 이유로 그대로 촬영이 강행되는 경우가 많다. 편집 단계에서도 추가로 제작비의 지출을 요하는 재촬영에 대한 부담 등을 이유로 실질적인 Clearance는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 제작현장을 잘 아는 프로덕션 리걸의 중요성 = 이 처럼 한국의 방송 프로그램 제작현장에서 Clearance가 무시되는 것은, 제작 과정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프로덕션 리걸(Production Legal Counsel)이 부족한 것에 근본 원인이 있다. 경험 있는 프로덕션 리걸이 아닌 경우, 제작사가 변호사에게 조언을 구하더라도 제작현실과는 동떨어진 결론을 제시하거나 막연한 위험만을 나열하여 정작 중요한 결정을 할 때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더구나 변호사가 현장에 곧바로 법률적 조언을 하는 것도 아니므로 전언을 통한 조언이 현장에서 크게 권위를 가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법적 위험과 관련된 책임소재에 대한 기록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에 반해 제작현장을 잘 아는 프로덕션 리걸이 제작 전반에 관여하여 법적 조언을 한다면, 현장에 필요한 적절한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그 조언은 현장에서 상당한 권위를 가지게 되므로 추상적인 이유로 Clearance가 무시되는 상황을 줄일 수 있고, 나중에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여기에 변호사가 제작실무에 정통한 경우에는, 제작사가 제작의 효율성과 법적 리스크 관리 사이에서 균형 있는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도울 수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프로덕션 리걸의 활용은 이미 오래 전부터 방송 제작현장의 글로벌 스탠다드로 자리 잡았다.

국내에서도 사전 제작되는 프로그램이 많아지고 근로기준법을 엄격히 준수하는 등 방송 제작 시스템이 점차 선진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Clearance가 경시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러한 현실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방송 제작에 관여하는 국내 변호사들이 법률적 관점에서만 사안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제작 현장에도 보다 관심을 가지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저작권자로부터 허락을 받지 않고 무단으로 이용하는 행위가 정당한 권원을 가지지 못하는 것처럼, 제작사 입장에서도 배타적인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고 제작된 프로그램은 마치 모래 위에 쌓은 성처럼 그대로 폐기될 수 있는 위험을 항상 안고 있음을 염두에 두고 Clearance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용해 변호사는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변호사로서 커리어를 시작하기 전에, 10년 간 SBS PD로서 다수의 프로그램을 연출했다. SBS 퇴사 후 10여 년간 초록뱀미디어 등에서 드라마 및 예능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이후 변호사로서 법무법인 화우에서 근무하면서 넷플릭스, 아이치이, 파라마운트, 스카이댄스, Banijay, JTBC스튜디오, 초록뱀미디어, 드라마하우스, IHQ, 스튜디오플로우 등 국내외 다수의 콘텐츠 기업의 프로덕션 리걸 및 자문변호사로서 역할을 수행해왔다. CJ ENM 등의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대비한 컨설팅을 수행하기도 했다. 현재 콘텐츠업계 여러 기업들에 법률적 자문과 경영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YH&CO의 대표변호사로 있다.

windy@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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