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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들의 일터] "의사, 가장 중요한 자질은 인성...협업이 성패 갈라"  

기사입력 : 2023년05월29일 09:00

최종수정 : 2023년05월29일 09:00

[서울=뉴스핌] 김경선 행복한직장생활연구소장 = 절박할수록 돌아갈 수 있는 있는 지름길이나 꼼수는 없다. 우리 사회 일터 고수들에게는 그들만의 성공 노하우가 있다. 어떤 철학을 가지고 일을 대하는지, 그 일터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기까지 지난했던 과정과 그늘들, 화려함 뒤에 가려진 노력과 자세를 곱씹어 보면서 성공의 실마리를 찾아볼 일이다. 고용노동부 관료를 거쳐 여성가족부 차관까지 일자리 문제를 전문적으로 고민하고 일터의 정점까지 올랐던 김경선 행복한직장생활연구소장이 각 전문 분야의 고수들을 만나 그들만의 경험과 비밀스러운 성공 레시피를 듣는다.

연세대학교병원 중입자치료센터 로비에서 만난, 하얀 가운을 입은 성진실 교수는 마른 체격에도 강단있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미국 의학연구 평가기관인  'Expertscape'가 선정한 간암분야 전 세계 최우수 연구자, 간암으로 어린 나이에 사망한 딸을 위해 그 가족들이 기탁한 기금으로 만든 "Bluefaery Award"의 최초 여성 수상자, 국내보다 오히려 국외에서 더 명성을 얻고 있는 간암방사선치료의 최고 권위자인 성진실 교수를 만나 의사로서의 삶과 그가 추구하는 핵심가치를 들어보았다.

뚜렷한 삶의 철학을 갖고 자신의 길을 오롯이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는 그와의 인터뷰는 지금까지 그의 삶의 궤적과도 일치하는구나 싶었지만 한가지 의외의 답변이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공부 잘하는 자녀를 둔 부모들은 누구나 희망하는 "의사". 이 직업을 영위해 나가는데 가장 필요한 자질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 "인성이 좋아야 합니다"는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벚꽃이 화려한 잔치를 끝내고 푸릇푸룻한 잎사귀를 보이는 날, 국내 최초의 거대한 중입자치료기가 있는 연세대학교 병원 연구실에서 만난 성진실 교수는 의사이자 학자이면서 진료팀과 학회 등 다양한 팀을 이끌고 있는 진정한 리더였다.

성진실 연세암병원 방사선종양과 교수.

◆"점심식사 편하게 할 시간도 없지만 더 나은 나를 만나는 기쁨이 커"

-직업으로서 의사를 평가하다면?

▲의사의 범주는 매우 넓습니다. 순수하게 연구만 하는 의사도 있고 예방의학처럼 정책을 수립하는 의사도 있습니다. 통상 의사하면 일반인이 생각하는 임상의학자도 환자를 직접 대면하는 의사와 판독이나 검진만 하는 의사로 나누어질 수 있죠. 그래서 질문에 대해 저의 입장에서 말씀드린다면 정말 힘들고 바쁜 직업이지만 암을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서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선택하고 싶은 직업이라 하겠습니다.

저는 교수로서 연구도 하면서 환자를 직접 진료합니다. 특히 저는 간암 치료를 전공으로 하고 간암, 췌장암, 담도암, 골전이암 등 암 중에서도 난치암으로 알려진 암의 치료에 관여하기 때문에 제가 병원에서 만나는 환자분들은 진단을 받고 누구나 한번쯤은 죽음을 생각해보신 분들이죠. 그런 환자분들을 마주하면서는 제가 어떻게 말을 건네야 할지도 고민이 많습니다. 고도의 집중을 요하고 스트레스가 많은 일을 하는 거죠. 반면에 환자 치료가 성공적으로 끝날 때 기쁨도 정말 큽니다.

그리고 연구자로서 저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방사선을 이용한 간암치료를 시작했습니다. 난치암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둡니다. 그리고 학회장을 맡고 있어서 해외출장도 많고 컨퍼런스도 자주 참가하니까 정말 바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본인의 하루 일상을 소개해 준다면 ?

▲평소 저는 5시30분에 일어나서 7시면 출근합니다. 통상 9시 환자 진료 시작전 의사들이 함께 환자진료를 위한 회의를 먼저 합니다. 이 회의 준비이외에도 학회관련 이메일체크 등 혼자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7시부터 업무를 시작하고요, 환자진료는 1주일에 오전 또는 오후 4회를 하게 됩니다.

요즘 암치료에 있어서도 완치 뿐 아니라 환자의 삶의 질을 고려하게 때문에 방사선 치료가 굉장히 많이 활용되고 있어서 더 바쁩니다. 이러다 보니 사실 점심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그냥 연구실에서 샌드위치 등으로 가볍게 떼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선진국에 비해 의사를 지원해주는 시스템도 열악한 편입니다. 의사가 직접 해야할 일이 굉장히 많죠.

-요즘 논쟁이 되고 있는 주69시간 근무는 거리가 먼 얘기이군요 ?

▲저는 매일 7시에 나와서 7시에 퇴근하고 주말에도 종종 근무를 할 정도이니 어쩌다 69시간이 아니라 거의 매주 그 이상 일하는 셈이죠! 근무시간이 중요하다면 저 같은 대학병원 의사는 포기해야겠죠? (웃음) 최근 화제가 된 '일타스캔들'이라는 드라마를 보니 의대가는 것이 지상의 목표가 된 것 같던데 저렇게 무작정 의대 가는 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명석한 사람보다 성실하고 좋은 인성의 사람이 훌륭한 의사가 된다

-의사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인성이 가장 중요합니다. 사실 의사가 시대를 이끌어가는 새로운 창조를 하는 경우는 매우제한적이기 때문에 누구나 천재일 필요는 없습니다. 엄청난 분량의 학습, 지속적인 훈련과 반복을 통해 이미 정착되어 있는 진료방법을 적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성실함이 오히려 중요합니다.

그리고 환자를 진료함에 있어서 환자를 바라보는 의사의 시각도 매우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환자에게 진단소식을 전하는 방법도 다양한데 환자를 위한 인간적인 접근이 필요한 것이죠. 공부 잘하는 학생 중에 공감능력이 부족한 경우도 많은데 이런 능력을 키워나가는게 중요합니다. 너무 경쟁이 과열될 경우 이러한 공감능력이나 협업하는 자세가 부족할 수 있어서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은 상대평가를 없앴습니다. 절대평가로 변경한 거죠. 변경 후에 훨씬 더 성과가 좋아진 것 같습니다.

성진실 연세암병원 방사선종양과 교수.

◆ "환자를 낫게 하는 것은 명의가 아니라 팀워크"

-인성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씀이 굉장히 신선하게 느껴지는데요

▲저는 사실 언론에서 '명의'을 집중 조명하는 것을 그렇게 바람직하다고 느끼지는 않습니다. 물론 특출한 성과를 내시는 의사분들이 계시지만 저는 환자를 낫게 하는 것은 의사 한 명이 잘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대로 된 진단을 내릴 수 있도록 검사를 진행하는 임상병리사, 영상을 찍어주시는  방사선사, 그리고 주사, 투약을 담당하는 간호사, 입원실을 청결하게 관리하는 청소부 등 이러한 분들 모두가 최선의 노력을 다할 때, 환자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확한 진단과 보완적 치료 등 다학제적으로 협진에 참여하는 의사분들은 말할 것도 없구요. 협업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죠.  

-의사로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경험을 하나 소개해주신다면 ?

▲제가 92년부터 교수를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간암에 방사선치료를 도입하게 되었습니다. 방사선과 약물 치료를 병행하면서 종양크기를 대폭 축소해서 제거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이 지금은 일반화되었지만 그 이전까지는 간암은 방사선치료를 하는 것이 아닌 걸로 교과서에 기술되어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간암치료의 지평을 넓히면서 초기에 제가 만났던 30살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젊은 여성이 있었는데 상당히 암이 진전된 상태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사실 간은 약물치료로는 딱 종양에만 효과적으로 작용하기가 매우 어려운 장기입니다. 그런데 방사선치료를 병행하니 종양의 크기가 현저하게 줄어들고, 또 하나의 중요한 점인 정상 간의 용적이 상대적으로 커져서 근치적인 수술이 성공적으로 시행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분은 15년이 지난 지금 결혼하여 자녀도 양육하면서 잘 지내십니다. 각 분야의 전문의사들이 협업하고 집중해서 정말 성의껏 진료를 하게 되면 성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화려한 길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주어진 길에 최선을 다했다"

-방사선종양학 분야의 리딩 그룹으로 활약이 대단하신데 출발부터 그랬는지요?

▲그렇지 않습니다. 1983년도에 의대를 졸업했는데 그때만 해도 여학생들이 희망하는 전공과에서 뽑아주지를 않아 전공선택에 어려움을 겪는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때 방사선과가 영상의학과와 방사선종양학과로 막 분리되는 시점이었는데 새로운 분야이고 흥미도 있어서 도전적으로 방사선종양학과를 선택해서 지금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연구와 임상을 통해 간암분야에도 방사선치료를 정착시켰고 최근에는 암치료도 생명을 구하는 데서 나아가 치료후의 삶의 질까지 중요하게 고려되면서 방사선 역할의 치료가 커져가고 있어서 제가 잘 선택한 결과가 되었죠.(웃음)

성진실 연세암병원 방사선종양과 교수.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비커밍"의 철학      

-정말 쉽지 않은 일인데 30년 넘게 교수님을 이끌어 온 동인은 무엇인지요?

▲저는 "비커밍(becoming)이라는 단어를 제일 좋아합니다. 제 일에 대한 철학도 바로 이 비커밍이죠. 저는 어제와 다른, 매일 매일 또 나아지는 삶을 지향합니다. 암을 치료하는 의사에게는 끊임없이 도전해야 할 과제가 있습니다. 환자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일이라면 앞으로도 계속 연구하고 노력해 나가려고 합니다.

그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는 자세, 이것이 제가 제 일에 , 제 삶에 적용하는 기본 자세입니다. 사실 제가 갖고 있는 신앙도 저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저에게 주신 탈란트가 세상을 이롭게 하는데 쓰인다는 것 자체가 큰 영광이죠

-마지막으로 같은 길을 걷고 싶은 하는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의사 혼자서 환자를 낫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어려운 병을 치료하는 경우일수록 협업이 중요합니다. 제가 여기까지 오게 된 데에는 저의 은사이신 김귀언 교수님의 가르침이 컸습니다. 새로운 길로 이끌어주셨고 의사이자 학자로서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동료의사분들, 그리고 환자를 돌보는데 참여해주시는 병원의 모든 관계자분들과의 협업이 저를 이 자리까지 올 수 있게 한 것입니다.

환자의 아픔에 공감하고 협업을 통한 팀플레이에 최선을 다하면 좋겠습니다. 저는 멀리서 오는 환자분들에게는 병원까지 뭘 타고 오셨는지 물어봅니다. 저를 보기 위해 먼 길을 달려오신 분들을 위한 일종의 공감의 표시죠. 그렇게 환자 진료에 최선을 다하고 끊임없이 호기심을 갖고 연구에 임한다면 어제와는 다른, 더 나아진 나를 만나게 되실 것입니다.

성진실 교수 약력 △연세대의대 졸업, 대학원 박사 △미국 텍사스대 MD앤더슨 암센터 교환교수△연세대의대 방사선종양교실 주임교수△연세대의료원 암센터 방사선종양학 교수△국제원자력기구(IAEA)자문 위원 △2021년 미국 의학 학술연구 평가기관 '엑스퍼트스케이프(Expertscape)' 간암 분야 전 세계 최우수 연구자 선정

김경선 소장.

<에필로그>언론사 모임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성진실 교수는  의사와 학자로서의 정석을 걸어오신 분이고 앞으로도 지금처럼 겸손하게 꼿꼿이 그 길을 걸어가실 분이다.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자신의 정도를 지키며 하루하루 더 나아지는  삶을 추구하는 그의 모습에서 배울 점이 참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바쁜 생활속에서도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려 하고 서로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인본주의적 가치관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는 분이라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인터뷰과정에서 본인이 걸어온 길, 연구했던 내용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의사를 천직으로 여기시는 것이 절로 느껴졌다. 새벽같이 일어나 직장으로 달려오고 점심도 여유롭게 먹지 못하지만 그 일이 좋아서 끊임없이 연구하고 진료에 매진하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고 의대만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학부모들이 한번쯤은 자신의 자녀에게 정말 의사가 맞는 직업일까 한번쯤은 고민해보아야 할 일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의사가 되려면 공부잘하는 것 보다 인성이 더 중요하다는 그의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김경선 행복한직장생활연구소장은 1991년 행정고시를 합격하고 공직에 입문했다. 30년 넘는 공직생활 대부분을 고용노동부에서 보냈고, 마지막으로 여성가족부 차관을 역임했다. 은퇴 후 공직생활에서의 경험과 역량을 MZ세대 직장인들과 공유하고자 행복한직장생활연구소를 만들어 온라인으로 소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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