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재무상황, 코로나 확산기보다 더 악화
노란봉투법 등 정책 이슈로 기업들 시름 더 커져
[서울=뉴스핌] 백진엽 선임기자 = 우리나라 기업이 코로나19 확산기보다 더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익성, 안정성, 활동성 지표가 악화된 상황에 노랑봉투법이나 자사주 규제 움직임 등 정책적 논란까지 겹치면서 기업들의 시름은 더 커지는 모습이다.
13일 대한상공회의소가 한국평가데이터와 함께 1612개 상장사의 작년말까지 재무상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기업들의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3분의 1 줄어든 반면, 이자 비용은 3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대상 기업들의 지난해 매출액은 전년 대비 12.1% 증가했다. 2021년에 이어 2년 연속 순성장을 기록했다. 하지만 성장세는 분기를 거치며 둔화됐다.
수익성 지표인 영업이익 증감률은 전년대비 -34.2%로 크게 후퇴했다. 이는 코로나 기간인 2020년(22.7%)과 2021년(60.8%)에 성장을 보인 것과 대조된다. 수익성은 떨어지는 상황에서 이자비용은 31.9% 증가, 기업들의 부담은 커졌다. 기업이 벌어 들인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갚을 수 있는 능력을 나타내는 이자보상배율은 전년 대비(10.1배) 절반 수준인 5.1배로 나왔다.
기업의 안정성과 활동성도 악화됐다. 대상 기업의 부채비율은 79.9%로 전년 대비 4.8%포인트 상승했다. 총자산에서 재고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최근 4년 중 가장 높은 수준인 7.7%로 나타났다. 재고자산이 매출로 이어지는 속도를 나타내는 지표인 재고자산회전율도 10.6회로 전년(11.7회) 대비 크게 떨어졌다.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영업이익은 크게 깎이고 기업의 부채부담만 눈덩이처럼 불어나 기업현장의 우려가 큰 상황"이라며 "기업활력 회복과 경기진작을 위한 선제적인 통화정책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이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03회국회(임시회) 환경노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02.21 pangbin@newspim.com |
기업들은 이처럼 재무상황 악화와 함께 정책쪽에서 더 큰 압박 요인을 받고 있다. 노란봉투법과 자사주 규제 움직임이 대표적이다.
'노란봉투법'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조와 제3조를 개정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조는 사용자와 노동조합 등에 대한 정의 조항이다. 제3조는 이 법에 의한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를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에 대해 배상 청구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지난 2월 2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대표발의해 현재 제21대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재계는 이 개정안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달 말에는 한국경영자총협회를 중심으로 업종별 단체들이 모여 노란봉투법 국회 본회의 상정 작업을 중단해야 한다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들은 만약 국회를 통과할 경우 대통령실에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이동근 경총 상근부회장은 "국내 제조업이 자동차, 조선, 건설 등 업종별로 다단계 협업체계로 구성돼 있는 상황에서, 원청 기업들을 상대로 끊임없는 쟁의행위가 발생한다면 원·하청 간 산업생태계는 붕괴될 것임이 자명하다"며 "원청기업이 국내 협력업체와 거래를 단절하고 해외로 이전할 경우, 국내 중소 협력업체가 도산하면서 고용 감소는 물론 국내 산업 공동화 현상이 현실화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자사주 소각 의무화, 또는 자사주 보유 제한 등 규제 목소리에 대해서도 우려가 크다. 이는 금융 당국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소액주주 권익 증진, 자사주 악용 방지 등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고려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기업들의 반대가 큰 사안이다.
재계에서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시행될 경우 기업들이 이를 대비해 자사주를 대량으로 주식시장에 매각할 수 있고, 이는 주주들의 피해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했다. 작년말 기준 코스피 시장 전체 자사주 규모는 52조원을 조금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아울러 경영권 위협에 고스란히 노출될 것이라는 걱정도 많다. 해외 주요국에 있는 '포이즌필'(신주인수선택권)이나 '차등의결권' 같은 효율적 방어 기제가 국내 기업에게는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그동안 자사주가 우리 기업의 거의 유일한 방어 수단 역할을 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자사주 소각이 강제될 경우, 해외 투기자본의 경영권 위협이 더욱 빈번해질 것이라는 우려다.
추광호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산업본부장은 "자사주 취득과 처분은 주주가치 제고라는 측면뿐만 아니라 적대적 M&A를 방어하는 거의 유일한 수단인데, 자사주 소각을 강제할 경우 득보다 실이 클 것"이라며 "이미 기업들이 배당 확대나 자사주 소각 등으로 주주환원 정책을 적극 펼치고 있는 만큼, 기업 현실에 맞는 자사주 정책이 일관되게 유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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