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상 차릴만큼만"....나물 한웅큼에 어물 세마리 소량구입 추세
울진 추석대목장 풍경
[울진=뉴스핌] 남효선 기자 = 엿새 간 이어지는 추석연휴 전날인 27일, 경북 울진의 대표적 전통 장시(場市)인 울진 바지게시장이 사람들의 발길로 빼곡하다.
바지게 시장 건너편에 위치한 공영주차장에도 차량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추석 명절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주차장 건너 시장으로 들어서는 초입에 자리한 어시장도 모처럼 활기를 띠는 모습이다.
장맛비처럼 이어지던 가을비도 이날 아침이 되자 잠시 숨을 고르듯 그쳤다. 그러나 여전히 하늘은 구름에 덮혀 거무룩하다.
어시장 맞은 편에 자리한 과일 좌판 앞에 제수거리를 장만하러 나온 주민들이 탐스런 햇과일을 꼼꼼하게 살피며 가격을 흥정하고 있다.
과일전 주인이 선심쓰듯 바구니에 햇과일 두개를 더 얹어놓으며 흥정을 마무리한다.
맞은 편 어시장 앞에 건어물을 가지런하게 펼쳐 놓은 어물전 주인이 잘 말린 열기 세마리를 비닐봉지에 담아 손님에게 건넨다.
"며칠 째 가을비가 내려 추석 대목장을 망칠까봐 걱정했는데 오늘 새벽에 용케도 비가 그쳐 다행이니더. 비가 그치면서 장터에 사람들은 꽉 찼는데 당췌 물건이 안팔리니더. 작년에 반도 안되니더. 요즘 사람들은 제사고기도 한 마리씩만 사가지고 가니더. 옛날같지 않니더."
어물전 주인이 능숙한 손놀림으로 채반 위에 놓인 마른 가자미를 갈무리하며 혀를 찬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 탓도 있지만 예전과는 달리 제수거리를 모두 소량으로 구입하는 추세가 두드러졌다는 얘기이다.
"요즘 사람들은 제수거리를 딱 차례상에 차릴만큼만 사가지고 가니더. 예전에는 젯상에 푸짐하게 차리고 식구들이 며칠씩 먹을 만큼 많이 구입했는데. 이제는 제사지내고 그 자리에서 먹을만큼만 장만하니더. 먹을 게 쌨는데, 요즘 젊은 사람들이 옛날 음식을 먹을라 하니껴? 먹을 사람도 없고."
나물전도 마찬가지이다. 명절 나물음식의 필수 재료인 무, 콩나물과 도라지, 고사리, 시금치도 예전같으면 큰 소쿠리로 장만하던 것이 최근들어서는 나물별로 한웅큼씩만 장만한다는게 시장 상인들의 얘기이다.
그래도 콩나물이나 도라지, 고사리 따위는 명절 차례상에 반드시 올리는 제수거리여서 가장 많이 팔리는 품목 중의 하나이다.
시장 장옥으로 이어지는 좌판에 할머니들이 줄을 지어 앉아 도라지를 다듬고 있다. 할머니들이 손놀림이 능숙하다.
앞에 펼쳐 놓은 좌판 소쿠리에 속살이 하얀, 잘 다듬어진 토종 도라지나물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토실토실하게 잘 여문 햇밤도 그득하게 쌓여 있다.
"추석 대목장이라꼬 밤새워 제수나물거리 장만해 왔는데 도통 팔리질 않니더. 점심때가 지나면 대목장도 끝장인데. 껍질을 벗긴 도라지나물이 퉁퉁 불어 팔지도 못하고..."
좌판 할머니들이 애써 다듬은 도라지나물을 건사하며 한숨을 내쉰다.
장옥에 자리잡은 반찬가게에서 너댓명의 할머니들이 분주한 손놀림으로 전(煎)을 부치고 있다.
두 분의 할머니가 능숙한 솜씨로 게살을 넣은 오색 꼬지와 살 오른 새우 껍질을 벗기고 있다. 곁의 또 다른 할머니가 익숙한 손놀림으로 꼬지전을 튀기자 이내 한 할머니가 작은 도시락에 가지런히 넣고 포장한다.
"요즘 젊은 새댁들은 집에서 부침개나 전을 안하니더. 한발자욱만 가면 마트 냉장고에 포장된 부침과 전이 수두룩한데 누가 부엌에 쪼그리고 앉아 전을 부치는껴. 그래도 우리 고장에서 나는 싱싱한 해산물로 꼬지전이나 새우튀김을 만들어 놓으면 그나마 명절 대목장에 인기가 제일 좋니더"
능숙한 손놀림으로 도시락 포장작업을 하던 할머니가 "이게 요즘 세상에 맞춘 장터표 벤처사업이시더"하며 환하게 웃는다.
"할머니 네 분이 모두 동업이시냐"고 묻자 한 할머니가 노릇하게 구워지는 명태전을 빠른 손길로 뒤집으며 "나는 알바시더. 저기 포장하는 할매가 주인이시더" 한다.
할머니들은 지난 설 명절부터 '전 부침 가게'를 열었다고 했다.
[대구경북=남효선 기자] 2023.09.28 nulcheon@newspim.com |
장터거리 한 쪽에 자리한 떡집도 눈코뜰새없이 분주하다. 주문받은 차례용 떡을 포장하는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요즘은 소포장이 인기가 있니더. 차례상에 올릴만큼한 사가니더. 추석이 모레인께 오늘 대목장보다는 추석 전날인 내일이 더 바쁘니더. 떡집 대목은 오늘이 아니라 내일이시더."
떡집주인은 추석 전날까지 온 가족이 주문들어온 떡을 소포장하는데 온 가족이 매달린다며 환하게 웃는다.
아침나절 그쳤던 비가 점심시간이 지나자 다시 빗살을 뿌린다.
장옥 골목에 좌판을 펼쳤던 할머니들이 주섬주섬 장거리를 챙기며 귀가 채비를 서두른다.
오후 3시 무렵이 지나자 흩날리던 가을비가 제법 소리를 내며 쏟아진다.
장터가 갑자기 분주해진다. 추석대목장을 보기위해 울진 바지게시장에 전을 펼친 외지에서 온 장꾼들이 빠른 손놀림으로 천막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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