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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차이나] <4> '곡우부터 하지까지' 영화로 본 중국 <上>

기사입력 : 2023년10월10일 15:28

최종수정 : 2023년10월10일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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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영(중국영화)본색'의 시작은 틈새 비집기였다. 웹툰PD를 하다가 소위 0 하나 더 붙는다는 중국 콘텐츠 시장 규모에 눈이 번쩍 뜨였다.  일단 중국 유학을 떠나기로 결심한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한 끝에 나온 답이 중국 영화였다. 솔직히 무모한 도전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중문과를 졸업했지만 중국어는 자기소개나 간신히 하는 수준이었고, 영화에 대한 지식도 일천했다. 중국 영화라고는 영화채널 OCN에서 방영하던 주성치 영화 몇 편, 학부 때 수업시간에 대한  위화 원작(훠저)의 장예모 영화 '인생', 천카이거의 '패왕별희' 정도가 전부였다.

영화제에 다니며 시네필들이 본다는 왕가위 영화와 허우샤오시엔 영화를 좀 찾아보긴 했으나, 영화 좋아한다는 사람들이 보는 딱 그 정도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당시 내 판단으로는 영화가 제일 할만해 보였고, "저 영화 좋아해요, 중국도 좋고요" 이런 나이브한 소리를 하며 중국으로 떠날 짐을 꾸렸다.

중국 현지 영화관에서 처음 본 영화는 왕가위 감독의 '아비정전'이었다. 2017년 여름 중국 생활 3주차, 베이징연합대학교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있을 때였다. 중국말도, 바이두 검색도, 위챗(웨이신)의 어플들도 익숙하지 않았고 주변에 영화관을 가본 사람 조차 찾기 힘들던 터라 "거기 쇼핑몰에 가면 영화관 같은 게 있다더라"라는 말만 듣고 더듬더듬 영화관을 찾아갔다.

열정의 중문학도, 설레임으로 떠난 '영화 중국기행' 

학교에서 5km 떨어진 보나국제영화관(博纳国际影城)이라는 곳이었는데, 건물을 빙빙 돌며 영화관을 찾는데만 상당한 시간을 허비해야했다. 한국의 멀티플렉스에 익숙하다 보니 건물 외관의 '영화관'이라는 간판을 찾느라 한참을 헤매야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우리와 달리 중국은 영화관 체인이 아주 다양하고 꼭 쇼핑몰이나 큰 건물에 있다는 법칙도 없어서 건물 외관만 보고 영화관 입점여부를 알아차릴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다.

당시 힘들게 찾아간 영화관은 낡디 낡은 곳이었는데, 마침 왕가위 감독 특별전을 하고 있었고 운 좋게도 '아비정전' 표를 구할 수 있었다. 바깥의 불볕더위와는 다르게 영화관 내부는 에어컨을 풀가동해 팔이 시려울 정도로 추웠다. 관객은 거의 없었고, 내 좌석 양옆으로는 일부러 맨 뒷자리를 찾아 앉은 듯한 커플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서울=뉴스핌] 최헌규 중국전문기자=CJ 콘텐츠 사업팀에 재직중인 필자 이조은이 베이징대 예술대학원에서 공부하던 시절 캠퍼스 극장에서 영화 관람을 마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2023.10.10 chk@newspim.com

왼쪽 좌석의 커플은 연애에 푹 빠져 장국영이 나와서 맘보춤을 추든 말든 부둥켜 안고 서로를 탐닉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오른쪽 커플은 여자가 에어컨 바람에 춥다며 수선을 떨자 남자가 윗옷을 벗어주었다. 여름이라 얇은 옷을 걸쳤던 남자는 옷을 벗어준 뒤 거의 맨몸 상태가 됐다. 그렇게 나는 왼쪽에는 스킨십 하느라 정신없는 커플, 오른쪽에는 반라의 남자를 두고 '아비정전'을 봤다.

돌이켜보면 그 영화관은 여름의 평일 낮시간대에 더위를 피해 시원한 곳으로 자리를 옮긴 커플들의 데이트 장소였을 테고, 나는 그 사이에 눈치 없이 끼어든 외국인 관객이었다. 그날 봤던 '아비정전'은 도대체 무슨 내용이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연인들 사이에 껴서 난처했던 이 경험은 내가 이후로도 중국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 두고두고 써먹는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에피소드가 되었다.

영화 유학 결심과 처음 시작은 호기로웠으나, 정작 어학연수 6개월 동안 중국 영화관에서 관람한 영화는 '아비정전'이 전부였다. 중국어를 잘 못하니 중국어 자막만 나오는 영화는 이해가 안 됐고, 학교 근처 영화관은 너무 멀었고 무엇보다 대학원 입학시험 준비에 바빠 영화관에 가지 못했다.

1000페이지에 달하는 대학원 입학시험 필수교재 '영화개론'과 '중국영화사'를 읽으며 진짜 영화는 보기도 전에 지쳐버렸다. 2019년 하반기 어렵사리 대학원에 입학했지만 영화관에 가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예술학원 MFA라는 전공명에 걸맞게 첫 학기 수업은 예술 개론, 철학, 비평 중심으로 진행되어 영화관 갈 핑계를 찾기 어려웠고, 쉴 틈 없이 과제가 쏟아졌다. 수업시간에는 20세기 중엽 제작된 흑백 화면의 중국 영화만 줄창 봤던 기억이 난다.

아이러니컬 하게도 중국 영화에 대한 진짜 공부는 코로나 때문에 캠퍼스 교문이 닫히고 학교로 돌아가지 못했던 2020년 시작되었다. 지도교수님이 배정되어 원격으로나마 본격적으로 영화 관련 수업을 듣고, 일주일에 두 편 이상 과제를 내야 했던 강행군의 효과로 중국어가 조금씩 들리기 시작했다. 그제야 중국어로 영화 한 편 제대로 볼 욕심이 났고 때마침 중국 친구들이 爱奇艺(OTT)에 어떤 영화가 재밌다며 추천해 주었다.

지도교수님이 매달 발표하는 중국 영화 평론에 대한 호기심도 한몫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도무지 중국영화 신작을 볼 길이 없었다. 친구들이 말한 OTT는 해외 IP를 막아버려 접속이 불가능했다. 해외 유저를 위해 열어놓은 얄궂은 예능과 오래된 영화 몇 편이 전부였다. 토렌트 같은 불법 사이트에도 중국영화는 없었다.

가끔 유튜브에 중국 신작 영화의 썸네일을 달아놓고 러닝타임까지 표시한 영상이 있어 클릭하면 영화와 아무 상관없는 영상만 나왔다. 훼이크였다. 그 흔한 영화 요약 영상도 구하기 어려웠다. 가끔 블로그에 중국 영화에 대한 게시물을 올리는 사람들은 영화 소개글 번역만 해놓는 정도였고, 영화의 내용과 현지 관객 반응 등 나의 궁금증은 전혀 해결해주지 못했다. 그렇게 한번 찾아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중국영화 검색은 집착이 되었으나 해결할 길이 없었다.

팬데믹으로 1년을 꼬박 한국에 있다가 2021년 2월 중국으로 돌아갈 때, 이번에는 기회가 되는대로 중국 영화를 많이 보겠다고 결심했다. 중국 영화를 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중국 현지에 체류할 때라는 사실을 깨달았으니 졸업까지 남은 1년 6개월 동안 원 없이 중국영화를 보다가 가겠다는 다짐이었다.

코로나 격리기간 뜻밖의 선물 '중영본색'

중국행 비행기에 오르며 그런 멋진 결심을 했건만, 중국에 도착하자마자 30일간의 격리 생활이 시작되었다. 운 좋게도 청도에 바다가 보이는 5성급 숙소에서 격리생활을 했는데, 창밖으로 바다는 잘 보였으나 넷플릭스는 안 보였다. 중국영화를 열심히 보겠다고는 다짐은 했지만 사람은 역시 편하고 익숙한 것을 원한다. 넷플릭스 '투핫'이 너무 보고 싶었다. 그러나 VPN을 통해 어렵사리 넷플릭스를 켜도 영상이 자꾸만 끊겼고, 유튜브는 시청 난이도가 더 높았다. 이용 가능한 것은 중국 OTT 밖에 없었다.

 

[서울=뉴스핌] 최헌규 중국전문기자= 중국 베이징 영화 팬들이 유명 영화 체인점인 바오리 영화관으로 입장하고 있다.  2023.10.10 chk@newspim.com

중국 인터넷망 안에 들어오니 OTT에 있는 모든 영화가 접근 가능했다. 한국에 있는 동안 궁금했던 영화들을 찾아 하루에 몇 편씩 봤다. 격리생활 하는 동안 항문 검사며 윗방에서 내려오는 담배 냄새며 매일같이 일어나는 속 시끄러운 일들을 공유하기 위해 블로그에 격리생활 연재를 시작했는데, 여기에 내가 보는 영화들에 대한 이야기를 끼워 넣었더니 반응이 좋았다.

춘절 대표 영화 '당인가탐안' 시리즈부터 중국 여자 배구 국가대표 이야기 '탈관', 세 청년의 커피회사 창업 이야기 '커피 오어 티' 등 중국에서 흥행한 상업영화의 줄거리, 영화의 배경, 캐스팅, 중국 관객들의 반응, 비하인드 스토리를 함께 소개하니 어떻게 검색하고 들어왔는지 모를 독자들이 드나들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중국어가 좀 되니 접근 가능한 정보와 영상들이 많아졌다. 격리생활은 지루했지만, 중국에 있는 덕을 톡톡히 누리며 중국영화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고 알리는 과정이 즐거웠다. 학업은 제쳐두고 매일 글 쓸 소재를 찾아 헤맸다. 격리가 끝날 때쯤, 중국영화에 대한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나중에 보니 코로나 격리 한달은 나의 중국 영화 공부에 더할나위 없이 훌륭한 시간이었다.

2021년 4월 봄의 마지막 절기 '곡우'에 중국영화를 소개하는 뉴스레터 '중영본색' 발행을 시작했다. 한국과 중국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24 절기를 연재 주기로 활용한 것이었는데, 한 절기는 생각보다 너무 짧았다. 2주 간격으로 돌아오는 마감 일정에 정신이 혼미할 정도였다. 중영본색은 실시간 중국영화 시장에 대해 개괄하고 신작 두세 편을 소개하는 구성으로 기획했다.

매 절기마다 영화관에 걸린 신작들을 보고 소개할 영화 두어 편을 선택한뒤 글을 지어내 중영본색에 실었다. 간신히 마감시간에 맞춰 중영본색을 발행하고 한숨 돌리면 원고 마감을 알리는 다음 절기가 무섭게 돌아왔다. 논문 프로포절(开题)을 앞둔 대학원생이 지도교수님 방보다 영화관을 더 많이 갔다.

내 논문을 기다리는 사람은 없어도 중영본색을 기다리는 사람은 적지않을 터였다. 격리생활 블로그 연재를 봐준 사람들이 중영본색을 구독해 주어 절기마다 내 글을 읽어주었다. 피드백과 응원을 남겨주는 구독자들도 있었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은 중영본색으로 내 안부를 확인했다. 다른 때보다 메일이 늦어지면 무슨 일 있냐고 한국에서 연락이 왔다. 내 생애 그 어떤 일보다 책임감과 열의가 넘쳤다.  <下편에 이어짐>

글쓴이 = 이조은 CJ 4DPLEX 콘텐츠사업팀

▶이조은은...

중문과를 나왔지만 중국어도 잘 못했고 중국영화는 더더욱 잘 몰랐다. 대학 졸업 한참뒤 이조은은 중국 영화를 인생 진로로 정했다. 이조은은 만화가족 넙치 PD로 일하던 도중 2017년 여름 베이징으로 어학연수를 떠난다. 그녀는 이때 처음 현지 상영관에서 중영을 관람했고, 그 이후로 점점 중국영화에 빠져든다. 영화 때문에 끼니를 넘기고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2020년 코로나로 국경이 막히면서 중국은 국산 영화 전성기를 맞았고, 그것은 중국 영화를 공부할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됐다. 자신도 모르게 내공이 쌓여갔다. 2021년 30일간의 코로나 격리기간에 시작한 중국 영화평론 '중영본색' 은 이조은을 하루 아침에 유명인사로 만들었다. 중영본색은 중국 영화로 통하는 큰 길이 됐고 중영이 궁금한 사람은 그녀에게 물었다. 2022년 이조은은 베이징대학 예술대학원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이듬해 CJ 4DPLEX 콘텐츠사업팀에 합류했다. 이조은은 영화가 사회 현실의 반영이며 문화의 응축물이라고 말한다. 중국 영화는 공산당의 지향과 국가 번영, 사회변화상을 구술하고, 농후한 중국의 인문과 서정, 인민들의 삶의 애환을 담아낸다. 이런 점에서 영화는 중국을 공부하는데 아주 훌륭한 교과서인 셈이다. 중국과 중국영화, 중국콘텐츠 전문가를 꿈꾸는 이조은의 '영화 백문이불여일견' 중국 기행은 간단없이 이어질 것이다.

서울= 최헌규 중국전문기자 chk@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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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문의 화랑담배] 제2회 광복군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1940년 9월 17일 중국 중경 가릉호텔에서 성대한 행사가 열렸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창설식이었다. 미국 한인 동포들이 보내온 돈 4만원으로 조직한 군대였다.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20억 원 정도 된다. 총사령관 이청천 장군, 참모장 이범석 장군, 제1지대장 이준식, 제2지대장 고운기, 제3지대장 김학규, 제5지대장에 나월환을 임명했다. 지대장은 지금의 사단장에 해당한다. 모두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를 비롯하여 남북 만주에서 전개된 항일무장투쟁에 직접 참여하여 활동한 독립군 출신이었다. 한국광복군 훈련반 제1기 졸업사진. [사진= 독립기념관] 임시정부 주석 김구는 포고문을 통해 "국내외 동포들에게 알립니다. 1940년 9월 17일부로 대한민국 광복군을 창설하였습니다. 광복군은 1907년 8월 1일 일제가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한 날이 바로 광복군 창설일임을 선언합니다. 광복군은 구 한국군의 후신으로 33년간에 걸친 의병과 독립군의 항일무장투쟁을 계승한 전통 무장 조직입니다"라고 했다. 대한제국 국군-의병-독립군의 군맥(軍脈)과 군혼(軍魂)을 분명하게 잇고 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부대 편성은 소대, 중대, 대대, 연대, 여단, 사단 6단으로 편성하였다. 총 3개 사단을 조직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인원이 적은 상황에서 우선 지대를 만들고, 각 지대를 구대와 분대로 연계한 전투부대를 구성했다. 임시정부에서 1940년 9월 19일 중국 국민당 정부에 통보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직원 명단'에 의하면, 부대 규모가 총사령부와 4개 단위부대, 여기에다 조선혁명군 부대까지 포함하여 5000여 명이었다. 임시정부에서는 1941년 12월 연합국의 일원으로 일본에 선전포고했다. 1942년에는 미국 측에 "미국이 제주도를 해방 시켜 주면, 중경에 있는 임시정부를 제주도로 옮긴 후, 광복군이 미군과 함께 한반도 상륙작전을 전개하겠다."라고 제안하였다. 이 제안은 실제로 미국 OSS 부대(지금의 CIA)와 1945년 4월부터 8월까지 강도 높은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했다. 주요 훈련은 3개월 기간에 고공낙하, 암살법(권총에 특수장치를 하여 소리 없이 암살하는 방법), 통신(암호의 작성 및 해독법, 무전기 조작 및 수리), 교란 행동, 정보수집, 폭파 등 이었다. 일과는 07:00∼12:00 오전 훈련, 13:00∼18:00 오후 훈련, 19:00∼22:00 야간 훈련이었다. 주요 임무는 대한민국으로 낙하산과 잠수함으로 침투하여 미 공군 공습에 필요한 지형 등의 정보를 제공하고 일본군 군사시설 탐지 및 파괴 지하 유격대를 조직하여 연합군 상륙작전 시 제2선에서 연결하는 작전이었다. 마침내 1945년 8월 7일 모든 훈련을 마치고 국내진공작전 출정식을 개최했다. 개시일은 8월 10일이었다. 출정식 때 장준하 경기도 공작 반장은 "나는 조국광복을 위해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내가 나의 죽음을 지불하면, 내 능력껏 그 대가가 조국을 위해서 결제될 것입니다. 나의 각오는 한 장의 정수표입니다. 발생인은 장준하, 결제인은 조국입니다"라는 유서까지 작성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2025-09-0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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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이시바' 누구?...고이즈미·다카이치 선두 [서울=뉴스핌] 오영상 기자 =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자민당 총재직 사임을 공식화하면서, 일본 정국의 관심은 차기 자민당 총재 선거로 쏠리고 있다. 집권당 총재가 곧 총리직을 맡는 일본 정치 구조상 이번 총재 선거는 사실상 다음 총리를 뽑는 절차다. 자민당은 조만간 새로운 총재 선거 일정을 확정할 예정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지난 2024년 9월 총재 선거에서 이시바 총리와 경합했던 주요 인사들이 다시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담당상,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 모테기 도시미쓰 전 간사장,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담당상 등이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정국 운영이 소수 여당이라는 제약 속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차기 총재가 야당과 어떻게 연대할지, 어떤 연립 구도를 짤지가 최대 쟁점으로 꼽힌다. '포스트 이시바' 후보로 꼽히고 있는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농림수산상 [사진=로이터 뉴스핌] ◆ 고이즈미·다카이치 선두권 현재 여론조사에서는 고이즈미 농림수산상과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이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지난달 29~3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차기 총리에 적합한 인물로 다카이치가 23%, 고이즈미가 22%를 기록했다. 나란히 1, 2위다. 자민당 지지층으로 한정하면 고이즈미가 32%로, 다카이치(17%)를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카이치는 2024년 총재 선거에서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으나 결선에서 이시바에게 역전패했다. 고이즈미 역시 의원 표에서 선두에 올랐지만 당원 표에서 밀리며 결선에 오르지 못했다. 두 사람 모두 당내 기반과 대중적 인지도를 겸비해 차기 선거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주자들이다.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1981년생(44세)으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차남이다. 2009년 중의원 첫 당선 이후 줄곧 '포스트 아베', '차세대 리더'로 주목받았다. 환경상, 농림수산상을 거쳤으며 개혁 성향과 젊은 이미지로 지지층을 넓혔다. 2024년 총선에서 당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으나 참패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이후 농림수산상으로 복귀해 쌀 유통 개혁 등 농정 개혁에 매진했다. 대중적 인지도와 '고이즈미 브랜드'라는 정치 자산이 최대 강점으로 꼽힌다.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은 1961년생(64세)으로 보수 강경파로 분류되는 여성 정치인이다. 2021년 총재 선거에 첫 도전해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전폭적 지원을 받으며 3위를 기록했다. 2024년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최다 득표(의원 72표, 당원 109표)를 얻었으나 결선에서 이시바 총리에게 역전 당했다. 유일한 여성 후보로서 '보수의 아이콘' 이미지를 갖고 있으며, 아베 전 총리와 가까웠던 의원 그룹이 주된 지지 기반이다. 이시바 정권에서 당직 제안을 거절하며 독자 노선을 유지해 왔다. '포스트 이시바' 후보로 꼽히는 다카이치 사나에 전 일본 경제안보담당상 [사진=로이터 뉴스핌] ◆ 하야시·모테기 등 잠룡도 주목 고이즈미와 다카이치 두 선두 주자 외에 잠룡들의 행보도 주목된다.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옛 기시다파 일부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이시바 정권의 2인자로서 존재감을 키워왔다. 모테기 도시미쓰 전 간사장은 당내 경험과 풍부한 인맥을 강점으로 삼고, 아소 다로 전 부총리와 교류를 통해 지지 기반을 다지고 있다.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담당상은 5선 의원으로, 동기 의원들과 옛 니카이파의 지원을 받으며 출마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 총재 선거 이후에도 정국 '안갯속' 자민당 총재 선거는 국회의원 표와 당원·당우 표를 합산하는 방식이 원칙이지만, 긴급 시에는 국회의원과 지방 지부 대표만 투표하는 '양원 의원 총회' 방식으로 대체될 수 있다. 이 경우 의원 표의 비중이 커져 파벌 역학이 중요해진다. 차기 총재가 선출되더라도 곧바로 정권 안정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일본 헌법상 총리는 국회에서 지명되는데, 자민·공명 양당은 현재 중의원과 참의원 모두에서 과반을 잃은 상태다. 따라서 야당이 단일 후보를 세워 결집할 경우, 자민당 총재가 총리로 지명되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자민당 총재가 총리에 오르더라도, 예산안·세제 개혁 법안 등 국정 운영은 야당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차기 총재는 곧바로 '연립 확대'나 '정책 연대'를 추진할 수밖에 없고, 총재 선거 과정에서도 어떤 야당과 손을 잡을지가 핵심 화두가 된다. 결국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는 단순히 차기 지도자를 뽑는 절차를 넘어, 일본 정치가 다당제 속에서 어떤 연립 구도를 구축할지 시험대가 되는 분기점으로 평가된다. goldendog@newspim.com 2025-09-08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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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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