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봉투' 재판서 증언…"단순 심부름, 책임감 느껴"
'100만원씩 2000만원 받았다'는 윤관석 주장과 배치
"동지로 생각한 강래구·이성만·조택상, 덤터기 씌워"
[서울=뉴스핌] 이성화 기자 = 이정근 전 더불어민주당 사무부총장이 전당대회를 앞둔 2021년 4월 27~28일 강래구 전 한국수자원공사 상임감사위원의 지시를 받아 윤관석 무소속(전 민주당) 의원에게 돈봉투를 전달한 과정을 설명하며 "개당 100만원보다는 많아 보였다"라고 법정 증언했다.
이는 윤 의원이 300만원씩 든 봉투 20개를 받아 총 6000만원을 수수했다는 검찰의 공소사실과 달리 '100만원이 든 봉투 10개씩 2번, 총 2000만원을 받았다'는 윤 의원의 주장과 배치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2부(김정곤 김미경 허경무 부장판사)는 23일 정당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강 전 감사와 윤 의원, 송영길 전 대표의 전직 보좌관 박용수 씨에 대한 공판을 열고 이 전 부총장에 대한 증인신문을 진행했다.
[서울=뉴스핌] 황준선 기자 = 억대의 금품 수수 의혹을 받고 있는 이정근 전 더불어민주당 사무부총장이 2022년 9월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열리는 소환조사에 출석하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22.09.23 hwang@newspim.com |
이 전 부총장은 당시 강 전 감사의 지시를 받아 윤 의원에게 이틀에 걸쳐 돈봉투를 전달했고 전달한 이후에는 강 전 감사와 박씨에게도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먼저 "2021년 4월 27일 박씨로부터 전달받았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돈봉투가 차곡차곡 쌓여 있는 쇼핑백을 받아 윤 의원에게 전달했다"라며 "이날 액수나 봉투 개수를 정확하게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맨 위에 있는 봉투를 들어서 살짝 만져봤는데 좀 두툼했다"라고 회상했다. 또 봉투 안에는 5만원권이 들어 있었다고 했다.
이어 저녁식사 시간에 여의도 국회 근처 한 중식당 앞에서 윤 의원을 만나 윤 의원이 타고 온 차 안에 쇼핑백을 넣어줬고 그날 비가 와서 검정색 봉투로 쇼핑백을 씌워 가져갔다고 부연했다.
이 전 부총장은 다음날인 28일 오후 송영길 캠프 사무실에서 박씨로부터 돈봉투 10개를 추가로 전달받았고 사무실에 방문한 윤 의원에게 그대로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액수는 들은 바도 없고 세 보지도 않았지만 봉투 두께는 전날과 같아 보였기 때문에 같은 금액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돈봉투 액수에 대해서는 "차이가 있었다면 어느 쪽에선가 컴플레인이 있었을 텐데 마련한 사람(박씨)과 받아간 사람(윤 의원), 중간에 전달하라고 지시한 사람(강 전 감사) 모두한테 '오케이'라고 확인을 받았기 때문에 세 분이 확인한 금액은 동일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검찰에서도 돈봉투 두께에 대한 테스트 결과 100만원은 넘었던 걸로 나왔다"라고 덧붙였다.
검찰에 따르면 이 전 부총장은 검찰 조사에서 '100만원보다는 훨씬 많았고 500만원보다는 적었는데 홍영표 캠프에서 300만원을 준다고 했으니 우리가(송영길 캠프) 200만원을 주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취지로 진술했다.
다만 이 전 부총장은 이날 돈봉투 20개를 받은 국회의원의 이름에 대해서는 들은 기억이 없고 들었더라도 정확하게 기억나는 이름은 없다고 했다.
검찰이 이날 재생한 2021년 4월 24일 당시 강 전 감사와 이 전 부총장의 통화 녹취파일에 따르면 강 전 감사는 '관석이 형이 마지막으로 의원들에게도 좀 줘야 되는 거 아니냐고 이야기하더라고, 홍쪽(홍영표 캠프)도 의원들한테 뿌리니까'라고 말하고 이 전 부총장은 "의원들?"이라고 되묻는다.
이 전 부총장은 '의원들에게 금품 제공을 최초로 말한 게 윤관석 피고인이 맞는가'라는 검찰 질문에 "윤 의원이 요청했다고 강 전 감사한테 들었다"라며 "스태프들에게 주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의원들한테까지 준다는 건 좀 놀랐다"라고 답했다.
그는 이틀 뒤 열린 4월 26일 기획회의에서도 윤 의원이 '홍영표 캠프에서 의원들에게 300만원씩 뿌리는데 우리도 줘야 하지 않겠냐'는 취지로 말했고 당시 허종식·임종성 의원이 필요하다고 맞장구를 쳐 송영길 캠프도 의원들에게 돈을 제공하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했다.
검찰은 이 전 부총장이 허종식·임종성 의원 외에 이성만·김영호·민병덕 의원에게도 회의 참석을 알리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며 법정에서 내용을 공개하기도 했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2021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 사건의 핵심 피의자로 지목된 윤관석 무소속 의원이 8월 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2023.08.04 pangbin@newspim.com |
이날 이 전 부총장은 강 전 감사가 실질적으로 송영길 캠프의 조직본부장 역할을 했지만 한국수자원공사 상임감사직을 맡고 있어 캠프 전면에 나설 수 없다 보니 자신을 내세운 것이고 자신은 강 전 감사의 지시를 이행하는 역할을 했다고 증언했다.
이 전 부총장은 자신이 먼저 돈을 요구했다는 취지로 언론과 인터뷰한 강 전 감사와 이성만 의원, 조택상 전 인천시 부시장을 향해 "한 때는 동지라고 생각했는데 세 분이 짠 듯이 저한테 덤터기를 씌웠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러면서 "강 전 감사와 검찰 대질 조사에서 제가 강 전 감사에게 먼저 돈을 요구한 사실이 없음에도 그런 인터뷰를 한 것에 대해 사과를 받았다"라며 "기회가 있다면 이 의원과 조 전 부시장에게도 녹취록을 보여주고 사과를 받고 싶다"고 했다.
그는 "단순 심부름을 했지만 당 대표 선거에서 이러한 의혹이 있었던 것에 대해 큰 책임감을 느낀다"라며 "제가 한 행위에 대해서는 당연히 책임지고 벌을 받겠다"고 이날 증언을 마무리했다.
검찰은 이 전 부총장의 알선수재 및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을 수사하던 중 임의 제출받은 휴대전화에서 나온 통화녹음 파일과 문자메시지 등을 돈봉투 재판에 증거로 제출했는데 이 전 부총장은 이 과정에 불법성은 없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오는 30일 이 전 부총장을 다시 불러 강 전 감사와 윤 의원, 박씨 측 변호인의 반대신문을 진행할 예정이다.
shl2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