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미 성향 라이칭더 승리로 미중 갈등 증폭
미국의 핵심 동맹국인 한국의 딜레마 가중
반도체와 공급망에 '기회와 도전' 모두 열려
정부, 미·일과 달리 신중한 반응 "예의 주시"
[서울=뉴스핌]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 세계적 관심 속에 지난 13일 치러진 대만 총통 선거에서 친미 성향의 강경 독립파인 민주진보당(민진당) 라이칭더(賴淸德) 후보가 승리하면서 국제정세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라이 당선인은 대만이 권위주의 진영의 핵심인 중국의 위협에 맞서는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최전선임을 강조해왔다. 또한 미국을 비롯한 서방과의 관계를 강화를 공공연히 주장해왔다. 따라서 이번 선거 결과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을 증폭시킬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주의 가치를 내세우며 미국과 밀착해온 한국에게도 이번 선거 결과는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번 선거 결과가 가뜩이나 어려움에 처한 한·중 관계를 관리하는데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대만 집권당인 민주진보당(민진당)의 라이칭더 당선인이 당선 소감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2024.01.15 kwonjiun@newspim.com |
◆ 정부, 미·일에 비해 신중한 반응
대통령실은 14일 "대만 총통 선거 결과가 한·중 관계나 대만과의 외교정책에 큰 변화를 줄 사안을 아니다"라며 "정부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준수하고 있다"고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도 이날 "대만 문제와 관련한 정부의 기본 입장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유지되고 양안관계가 평화적으로 발전해 나가기를 기대한다"면서 "대만과 다양한 분야에서 실질적인 협력을 계속해 나가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반응은 미국, 일본에 비해 신중하고 절제된 편이다. 선거 결과가 한·중 관계와 세계 정세에 미칠 파장을 고려한 탓이다. 미국, 일본과 달리 정부의 입장에는 라이 당선인의 승리를 축하하는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 정부가 '하나의 중국' 정책을 지지하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 '중국의 일부'인 대만 선거 결과에 축하를 자제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앞서 미국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우리는 대만의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히긴 했지만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성명에서 라이 당선인의 승리 축하 메시지를 담았다. 블링컨 장관은 "미국은 양안(중국과 대만) 관계에 있어 평화와 안정 유지에 대한 해법 모색, 강압과 압박으로부터 자유를 약속한다"며 "민주주의 가치에 기반한 미국과 대만 관계는 경제·문화 등 다방면에 걸쳐서 깊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블링컨 장관은 또 '하나의 중국 정책과 대만관계법'에 부합해 오랫동안 이어온 (대만과의) 비공식 관계를 심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 역시 지난 13일 가미카와 요코(上川陽子) 일본 외무상 명의의 성명을 통해 "민주적인 선거의 원활한 실시와 당선을 축하한다"며 "대만과의 관계를 비정부 간 실무관계로 유지한다는 입장을 바탕으로 일본과 대만 간 협력과 교류의 심화를 도모할 것"이라고 밝혔다.
◆ 대만 문제 분명한 입장 요구받을 수도
라이 당선인은 당선 기자회견에서 "중화민국(대만)이 계속해서 국제 민주주의 동맹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선거 결과에 따라 중국이 대만에 대한 압력을 높일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미국, 일본 등과 협력을 강화해 이에 대응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힌 셈이다. 안보적으로 미국,일본과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한국은 중국이 대만에 대한 압력을 높이는 과정에서 타겟이 될 수 있다.
정부는 지금까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한다는 원칙을 유지하면서 대만과는 비공식적 관계를 유지해왔다. 윤석열 정부가 2022년 8월 낸시 펠로시 당시 미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하고 한국을 찾았을때 중국과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어정쩡한 태도'를 취한 것은 대만 문제가 한국에게 '딜레마적 요소'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이번 선거 결과로 대만 문제로 인한 미·중 갈등이 심화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한국은 미국과 중국 양쪽 모두로부터 대만 문제에 대한 보다 분명한 입장을 요구받을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한국이 미국, 일본과 협력을 강화하면서 대만 해협 문제에 대해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에 강하게 반발해왔다. 중국이 가장 중요한 핵심 이익으로 간주하고 있는 대만 문제는 한·중 관계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민감한 요소다. 향후 한국이 미국의 핵심 동맹국으로서의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중국의 압박을 피하고 국익을 지키면서 한중 관계를 관리해야 하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미·중의 대치가 심화되고 북한 문제에 대한 미·중의 협력 공간이 더욱 작아졌다는 것도 한국에게는 부담이다.
대만 TSMC 로고 [사진=로이터 뉴스핌] |
◆ 반도체와 공급망에 미칠 영향에 촉각
대만 민진당의 정권 재창출은 한·미·일 협력 강화를 내세운 한국에게 안보적으로 도움이 되는 결과이지만, 산업적인 측면에서는 만만치 않은 경쟁자가 건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과 대만은 모두 반도체 분야를 핵심 산업 기반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 결과로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TSMC를 보유한 대만은 이 분야에서 미국의 지원을 받아 더욱 존재감을 키울 수 있게 됐다. 민진당은 TSMC의 해외 투자에도 긍정적인 입장이어서 해외 시장에서 한국 반도체 산업과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가능성이 높다.
미·중 관계가 더욱 경색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중국이 대만 반도체와 TSMC에 대한 압박의 수위를 높일 경우 한 국내 반도체 산업이 이에 따른 반사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라이 정권 출범 이후 대만에 편중됐던 중국의 반도체 수입이 한국으로 향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미·중 갈등 격화는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에 결코 유리하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국이 대만을 통해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산업 공급망에서 중국을 견제 , 압박하는 구도가 계속 이어질 경우 한국에게도 불똥이 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이 미·중 경쟁의 연장선에서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을 대상으로 배터리, 반도체 등에 필요한 핵심 광물 수출 통제를 확대하는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외교부 관계자는 이번 대만 총통선거 결과가 한국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 "도전과 기회의 요소가 모두 있기 때문에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아직은 속단하기 어렵다"면서도 "한·중 관계를 관리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졌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정교하고 세밀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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