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적대관계' 운운하며 차단벽
특사파견이나 막후채널은 시기상조
11월 미 대선 트럼프 복귀여부 촉각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 윤석열 정부의 지난 2년 간 대북・통일 정책 추진은 김정은의 핵・미사일 개발과 대남 차단벽 치기 사이에서 돌파구를 제대로 찾지 못한 것으로 진단할 수 있다.
특히 지난해 말부터 시작돼 올 들어 본격적으로 거칠어지기 시작한 북한의 대남 적대시 행보는 남북관계를 대적(對敵)으로 규정하고 '국가 대 국가'로 설정함으로써 대북접근 자체가 약효를 발휘하기 어렵게 만든 것이다.
[서울=뉴스핌] 국회사진취재단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22년 5월 10일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통해 대북정책인 '담대한 구상'을 밝혔다. |
결국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월 8일 KBS와의 신년대담에서 "북한이 비이성적 세력이란 점을 전제로 안보를 튼튼히 구축해야한다"고 강조하는 상황까지 치달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윤 대통령은 지난 2022년 5월 10일 취임사에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대화를 제안하는 등 전향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어 같은 해 8.15 경축사에서는 "저는 북한이 핵 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한다면 그 단계에 맞춰 북한의 경제와 민생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구상을 지금 이 자리에서 제안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여기에는 북한에 대한 대규모 식량지원과 송배전 인프라, 국제 교역을 위한 항만과 공항의 현대화 프로젝트, 병원과 의료 인프라 현대화 지원 등이 포함됐다.
그렇지만 이 같은 제안은 북한 김정은 정권의 막무가내식 행보와 대남 적대노선으로 인해 제대로 전달되기도 어려운 상황을 맞았고, 남북관계는 파국을 맞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정도로 출렁였다.
물론 이런 남북관계의 파행은 윤석열 정부 들어 급작스레 발생한 문제는 아니라는 게 대북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에서 열린 북미 2차 정상회담 단독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2018.02.28. [사진=뉴스핌 로이터] |
문재인 정부 당시인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결렬된 충격으로 인해 김정은은 문 당시 대통령을 향해 '삶은 소대가리' 등 거친 막말을 퍼부었고, 개성공단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백주에 폭탄을 설치해 파괴하는 등 호전적인 모습을 노골화 했다.
무엇보다 김정은 스스로 보수・진보 성향을 막론하고 한국 정부에 대해 극도의 반감을 드러내면서 남북대화나 교류・협력, 대북지원 등은 전면적으로 멈출 수밖에 없는 국면이 상당기간 이어지고 있다.
현재의 북한 내부 상황이나 한반도 주변 국제 정세 등으로 볼 때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 남북관계 진전을 위한 단초를 마련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김정은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병참기지를 자처하면서 밀착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올해 수교 75주년을 맞는 중국과의 관계 복원도 서두르고 있다.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북한을 방문해 김정은과 정상회담을 하고 한미일 공조에 대응한 북중러 동맹을 더욱 강하게 구축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8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북한과의 양자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있으며 그들과 가능한 모든 분야에서 더욱 관계를 발전시키고자 한다"며 북한을 "훌륭하고 매우 유망한 파트너"라고 치켜세우는 등 북러 관계는 최상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아무르 로이터=뉴스핌] 최원진 기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좌)이 지난 2023년 9월 13일 오후 극동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를 방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설 투어를 하고 있다. wonjc6@newspim.com |
오는 11월 미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승리할 경우 지난 2018년 싱가포르에서 첫 북미 정상회담을 하고 한미 합동 군사연습 중단 등을 이끌어냈던 상황이 재연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주한미군 철수 등 민감한 현안뿐 아니라 북핵에 대한 조건부 용인 등이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실제로 트럼프의 외교안보 브레인으로 알려진 엘브리지 콜비 전 미 국방부 전략·전력 개발 담당 부차관보는 6일(현지시간)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주된 문제가 아닌 북한을 해결하기 위해 더 이상 한반도에 미군을 인질로 붙잡아둬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는 등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이런 동향을 면밀히 들여다보면서 북한과의 접점을 찾기 전까지는 대북제재와 관련한 한미일 공조와 북한 인권문제 국제 이슈화, 탈북민 정착 지원 활성화 등의 정책을 차근차근 추진해 나간다는 입장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현재로서는 드라마틱한 남북관계의 전전이나 북한의 노선변화가 일어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로 제시됐던 '담대한 구상'의 경우도 적절한 여건이 되면 추진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남북관계 돌파구 마련을 위한 고위급 특사 파견이나 제3국에서의 막후채널 가동 등의 가능성도 제기하지만 시기상조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총선 참패로 국정 추진 동력이 상당부분 상실된 상황에서 대북정책이나 남북관계의 모멘텀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란 얘기다.
다만 대북지원이나 이산가족 상봉 등을 매개로 한 남북관계의 물꼬트기는 한반도 정세와 남북관계 동향을 보아가면서 적절한 시점에서 시도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yj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