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분석업체 일루미나, 그레일 분사 결정
2021년 재인수 후 美 반독점 소송+EU 벌금
美 연방법원, 그레일 인수 '반(反)경쟁적' 판결
암 진단 자회사 분사 후 염기서열 분석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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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김현영 기자 = 미국의 유전자 염기서열 분석 업체 일루미나(종목 코드: ILMN)가 혈액 검사 기반 암 조기 진단 테스트를 개발하는 자회사 그레일(Grail)의 분사를 이사회가 승인했다고 3일(현지시간) 발표했다. 2021년 그레일 재인수를 두고 미국과 유럽 규제 당국의 반독점법 위반 소송과 막대한 벌금 부과, 억만장자 행동주의 투자자 칼 아이칸의 극심한 반대에 직면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나온 분사 결정이다.
일루미나 연구실 [사진=업체 홈페이지] |
1998년 4월 설립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 본사를 둔 일루미나는 시퀀싱(유전체 염기서열 해독)에 중점을 두며, 유전형질 분석, 유전자 발현, 단백질 유전 정보학 등 여러 영역에 걸쳐 분석용 장비와 진단 시약 및 키트를 개발·제조·판매해 매출을 올린다. 글로벌 유전체 시장 점유율이 70~80%에 달하며, 전 세계 연구소·대학·기업에서 유전자 분석을 할 때 주로 일루미나 장비를 쓸 정도로 유전자 분석 하드웨어 제조사로 유명한 업체다.
3일 일루미나 이사회는 그레일의 분사를 승인했다. 분사는 오는 6월 24일 이뤄질 예정이며, 그레일은 'GRAL'이라는 종목 코드로 나스닥에 독립 상장돼 거래된다. 기존 일루미나 주주들은 6월 13일을 기준으로 보유 중인 일루미나 보통주 6주당 그레일 보통주 1주를 받게 되며, 일루미나는 분사 이후에도 그레일 지분 14.5%를 보유하게 된다. 미국 동부 시간으로 4일 낮 12시 24분 현재 일루미나의 주가는 전일 대비 0.24% 내린 103.12달러를 가리키고 있다. 주가는 올해 들어 25.98%, 최근 1년 사이 49.25% 각각 하락한 상태다.
이번 분사 결정은 일루미나의 그레일 재인수가 반독점 규제에 위배된다는 미 연방거래위원회(FTC)와 유럽연합(EU)의 판단에 따른 조치다. 일루미나는 지난 2016년 그레일을 설립해 분사했지만, 암 조기 진단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이 액체생검 기업을 전액 출자 자회사로 두기로 했다. 차세대 염기서열분석(NGS)을 기반으로 환자의 혈액이나 체액을 통해 50종류의 암을 한 번에 진단할 수 있는 그레일의 갈레리(Galleri)를 다시 손에 넣기 위해서다. 당시 그레일은 빌 게이츠와 제프 베조스 등이 20억달러 이상을 투자한 스타트업으로 관심을 모았다.
일루미나 로고 [사진=업체 홈페이지 갈무리] |
2020년 9월 그레일을 71억달러에 인수한다고 공식 발표한 일루미나는 경쟁 저해 가능성 등을 두고 미국 FTC와 EU 집행위원회(EC)의 반독점 관련 규제 검토가 아직 진행 중이던 2021년 8월 당국의 허가 없이 그레일 인수합병(M&A)을 완료했다. 20억달러를 투자받아 분사한 그레일을 거의 4배를 주고 되사들이는 이 거래를 두고 미국과 유럽 경쟁 당국은 의문을 제기했다.
유전자를 분석하는 데 필요한 장비를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파는 일루미나가 그레일을 인수하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의견이 뒤따랐다. 반독점 규제 당국은 일루미나의 독점적 지위가 그레일의 경쟁사들이 혈액 기반 암 조기 진단 테스트 개발을 위해 일루미나의 기술을 활용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우려로 일루미나와 그레일의 재결합을 뒤집으려 했다. 일루미나의 장비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그레일 경쟁업체에 가격을 부당하게 인상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2021년 3월 FTC는 "양사의 M&A가 미국 다중암조기검사(MCED) 시장에서의 혁신을 위축시킬 것"이라고 주장하며 미 연방법원에 반독점 소송을 제기했고, 2023년 4월에는 일루미나의 그레일 인수가 암 조기 진단 테스트 시장의 경쟁을 저해할 수 있다며 합병 해제를 명령했다. 일루미나는 이에 항소했으나 2023년 12월 15일 연방 항소법원은 일루미나의 그레일 인수는 "경쟁 체제에 역행하는 행위"라고 판결하며 FTC의 손을 들어줬다.
일루미나는 이번 '반(反)경쟁적' 판결에는 더 이상 항소하지 않고 그레일을 처분하기로 결정했다. 일루미나는 12월 17일 자사 홈페이지에 그레일 매각 계획을 발표하면서 "내년 2분기까지 제3자에게 매각하거나 독립회사로 분사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전했다. 앞서 일루미나는 미국과 유럽 어느 쪽에서라도 패소할 경우 그레일을 처분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②편에서 계속됨
kimhyun01@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