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는 '의대 증원 정책'을 두고 의사와 이기고 지는 게임으로 인지하고 있어요. 국민들을 위한 정책이 돼야 하는데, 이런 식으로 대응하니 정말 답답합니다"
의대가 있는 서울의 한 대학 총장은 '의대 증원' 정책과 관련한 기자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그는 지금도 늘어나고 있는 대학병원 적자, 의대생들의 집단 수업 거부로 인한 수업 파행 여파에 대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했다. 벌써 몇 달째 계속되는 의료계와 정부의 대치를 두고 "이럴 일이 아니다"라며 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사회부 조승진 기자 |
대학 총장들은 의대 증원으로 인한 교육의 질적 하락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꼽히는 난제는 늘어난 학생에 맞춰 의대 교수를 새로 구하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의대가 있는 서울의 한 대학 총장은 기자와 만남에서 "의대 교수가 되면 1년에 1억을 벌지만, 개원을 하면 1년에 몇억 원의 수익을 올린다"며 "이런 상황에서 누가 교수를 하겠다고 오겠냐"고 토로했다. 의대 증원에 앞서 전공의가 의무적으로 필수 의료를 수련하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윤석열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이 지역 의료 불균형을 해소하기에는 허술하다는 비판도 나왔다. 의대 교수를 새로 뽑아야 하는 대학들은 서울에 있는 의대에서 교수를 모집하면, 지방 의대에서 근무하던 교수만 지원한다고도 했다. 이는 지역 인재가 서울로 이동하는 꼴이 돼 지역의료 여건 개선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지방의대가 보유한 병원이 서울에 있는, 소위 '무늬만 지역의대'에 정부가 의대 증원분을 배정한 것도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을 향한 비판 근거 중 하나다. 이들 대학 의료진이 서울로 흘러간다는 점에서 지역의료 개혁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문제는 의대 교수 등 의료계에서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것이 밥그릇 싸움으로만 비친다는 것이다. 최근 정부의 의과대학 증원·배분 처분을 멈춰달라는 의대생들의 집행정지 신청이 대법원에서 최종 기각됐다. 이 사건은 '의대 증원 효력을 일시적으로 정지할 필요가 있는지'를 따지는 일이었다. 대법원은 의대 증원으로 인한 교육의 질이 떨어질 것이라는 의료계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의대 증원으로 인해 발생할 피해가 가까운 시일에는 크게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여긴 것이다.
이 때문에 여론도 의사들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모양새다. 법원이 판단했으니, 인정하라는 얘기다. 생사가 오가는 환자를 두고 집단 휴진에 돌입하는 것도 국민들에게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환자들은 의사들의 집단 휴진에 맞서는 대규모 총궐기대회를 예고하며 반발하고 있다.
온라인에서는 의사들이 '집단 이기주의'에 빠졌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정치권에서도 의사들을 향한 비판이 이어진다. 국회의원들은 최근에도 "의사들이 국민 생명을 인질로 잡고 있다"며 휴진중인 의사들의 현장 복귀를 촉구했다. 윤 대통령은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이 본격화됐던 지난 2월 "국민 생명과 건강을 볼모로 집단행동은 안 된다"며 전공의들을 질책하기도 했다.
다만, 대통령의 말처럼 국민 생명과 건강이 볼모로 잡혀 있다면 정부는 협상가로 나서야 한다. 미연방수사국 FBI는 인질범을 무력으로 진압하려고 하면, 오히려 인질이 다치는 경우가 많아 협상기법을 도입했다.
굵직한 범죄 현상에서 인질 협상을 해결한 국내 1호 위기 협상 전문가 이종화 씨는 인질 협상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인질범의 이야기를 듣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한다. 의사들이 비판받을 만한 지점이 있더라도 그들이 우려하는 지점을 듣고, 정부가 이를 해소하는 과정이 있어야 하는 이유다. 물론 의사들도 민심의 방향에 맞춰 한 발짝 물러서 정부에 협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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