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지정 마약중독자 치료보호기관 실태조사
허가받은 만큼 최대로 운영하는 곳 없어
의료진 부족·다른 입원환자의 기피 현상 등 문제
"국립병원뿐 아니라 민간병원까지 전폭 지원해야"
[서울=뉴스핌] 노연경 기자 = 마약을 누구나 쉽게 구매할 수 있게 되면서 마약중독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지만, 치료를 위한 사회적 기반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마약중독자 치료를 위한 병원을 지정했는데, 이들 병원 중 허가한 병상수를 모두 채워 환자를 받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인력 수급이 어렵고 운영할수록 적자가 나는 구조적인 원인 때문이다. 마약 근절의 가장 마지막 단계인 치료 단계에 대한 지원이 늘어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사진=뉴스핌 DB] |
◆ "의료진 부족…허가받은 만큼 병상 운영 못 해"
14일 뉴스핌은 지난 4월 기준 마약류 중독자 치료보호기관에 포함된 병원 중 허가 병상수가 10개 이상인 곳 10곳을 추려 실제로 가동되고 있는 병상수를 확인했다.
10곳 중 병동 신축이 진행되고 있는 곳과 가동 병상수 공개를 거부한 곳 2곳을 제외한 8곳 중 허가된 병상수를 모두 채워 환자를 받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국내에서 마약중독 환자 치료로는 가장 많은 입원 병상수를 허가받은 국립부곡병원조차 허가받은 병상(90개)의 3분의 1에 그치는 30개만 가동하고 있다.
국립병원임에도 입원환자를 아예 받지 않는 곳도 있었다. 국립춘천병원과 국립나주병원은 각각 10개의 병상을 허가받았지만, 입원 환자는 아예 받지 않고 통원치료를 하는 외래환자만 받고 있다고 했다.
민간병원 1곳은 유지가 불가능해 최근 복지부에 치료보호기관으로 신청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해당 병원 관계자는 "인력 수급도 어렵고 환자도 다루기 힘들어 신청을 포기했다"고 설명했다.
병원 규모를 막론하고 마약 입원환자를 많이 받지 못하는 이유는 모두 같다. 인력과 시설 부족이다. 한 병원 관계자는 "알코올 중독 환자 10명보다 마약 중독 환자 1명을 보는 게 더 힘들다"고 귀띔했다.
◆ 마약중독 치료가 종착지...인프라 지원 늘려야
전문가들은 마약 중독자가 크게 늘고 있는 상황에서 종착지인 치료단계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점에 대해 우려했다.
최근 텔레그램 등 온라인 채팅 몇 번으로 마약을 구할 수 있을 정도로 마약 구매가 쉬워지면서 10, 20대 마약사범도 크게 증가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10대·20대 마약사범은 2023년 9845명에 육박했다. 2019년(3760명) 2.6배나 늘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도 같은 중독 환자여도 마약 중독 환자는 특수하기 때문에 마약중독 환자만을 위한 치료 기반을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도박 중독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최삼욱 전문의는 "같은 중독이라도 행위 중독인 도박 중독과 달리 마약 중독은 실제로 뇌에 물질이 들어가며 일어나는 '물질 중독'이라 상당히 위험하고 금단현상도 심하게 나타난다"고 꼬집었다.
이어 "약에 따라 다르지만 필로폰의 경우 중독 급성기에 환청과 피해망상 현상까지 생긴다"며 "마약 중독 환자에게 안정된 환경에서 입원치료를 받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마약 중독자를 더 폭넓게 치료하기 위해 건강보험 적용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 등을 강구하고 있지만, 관련 의료진들은 의료진 수급 문제 등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환자들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조성남 서울시립은평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인력도 많이 필요하고 다른 환자들보 노력도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병원 직원들도 마약 중독 환자는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며 "간헐적으로 마약에 취한 상태로 입원하는 환자들은 다른 환자들이 같은 병동을 쓰는 걸 거부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조 전문의는 "독립된 병동과 인력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며 "특히 국립병원뿐 아니라 민간 병원에 대한 시설, 인원 지원을 해야 제대로 된 치료가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ykno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