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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일상 앗아가는 청소년 도박, 어른들이 관심 가져야"

기사입력 : 2024년10월25일 10:57

최종수정 : 2024년10월25일 10:57

청소년 도박 근절 캠페인 이끈 실무자 인터뷰
도박 중독된 가상의 청소년 '박도영' 만들어
"몰입감 높여 어른들 관심 끌려고 한 게 의도"
"사회적 관심 생겨야 입법 운동도 이어져"

[서울=뉴스핌] 노연경 기자 = "청소년 도박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아이들은 학교폭력, 가정불화는 물론이고 사채에 시달리기도 한다. 애들 문제로 보면 안 된다. 어른들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 

지난 23일 서울시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뉴스핌과 만난 경찰청 대변인실 소속 정원식 경위는 청소년 도박 중독 문제가 일부 비행 청소년의 일탈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지만, 여전히 사회적인 관심과 문제를 대하는 태도는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애들이 도박을 해봐야 얼마나 하겠어', '자기들이 좋아서 한 건데 왜 구제해줘' 청소년 도박은 성인 도박만큼 심각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 도박 중독자를 피해자로 인정하지 않는 시선 등이 대표적이다. 무관심 속에서 청소년 도박은 여전히 입법 사각지대에 있다. 

지난 23일 서울시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뉴스핌과 만난 경찰청 대변인실 소속 정원식 경위(오른쪽)가 청소년 도박의 심각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사진=토스]

◆ 경찰청·토스, 청소년 도박 근절 위해 맞손

정원식 경위는 "보이스피싱이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면서 계좌 지급정지가 입법을 통해 가능해진 것처럼 청소년 도박도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선 사회적 관심과 동의, 입법을 위한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회적 관심을 환기하기 위해 정 경위가 생각해 낸 방법은 민간과 함께하는 캠페인이다. 그는 10대 청소년이 가장 많이 쓰는 금융 플랫폼과 협업하면 캠페인이 더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여기에 흔쾌히 손을 내민 곳은 토스다.

토스는 만 7~18세 가입자가 230만 명에 달할 정도로 주 이용자가 10대로 구성된 금융 플랫폼이다. 주 이용자와 관련된 사회 문제인 만큼 토스 측도 기업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느꼈다. 경찰청과의 협업이 결정된 뒤 토스는 곧바로 사내에 청소년 도박 근절 캠페인을 위한 프로젝트팀을 꾸렸다. 

수많은 사례 공부, 전문가들의 조언, 실제 도박 중독을 겪었던 청소년들의 도움으로 협업 얘기가 시작된 지 6개월 만인 지난 9월 캠페인의 결과물이 완성됐다.

광고 카피라이팅 경력이 있는 용석민 토스 브랜드마케팅 매니저는 '공익광고스럽지 않은 캠페인'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유명인이 나와 몇 마디 문구를 말하고 끝나는 게 아닌, 실제로 도박에 중독된 청소년의 삶을 와닿게 보여주자는 게 그의 목표였다.

지난 23일 서울시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뉴스핌과 만난 용석민 토스 브랜드마케팅 매니저(왼쪽)가 청소년 도박 근절 캠페인 기획 의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토스]

◆ '박도영' 통해 청소년 도박 중독 과정 생생히 보여줘

이날 정 경위와 함께 경찰청에서 만난 용석민 매니저는 "캠페인을 설계하며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은 진정성"이라며 "실제 청소년들의 삶을 보여주면서 이들이 어떻게 삶에서 도박을 접하게 됐는지를 보여주려고 애썼다"고 말했다.

경찰청과 토스는 캠페인의 일환으로 도박에 중독된 가상의 청소년 '박도영'을 만들었다. 박도영의 얼굴은 실제로 도박 중독 경험을 겪은 청소년들의 얼굴을 동의 하에 변형·합성해 만들었다.

2008년생, 고등학교 1학년인 박도영은 축구를 좋아하고, 친구들과 유행하는 릴스도 찍고 풋풋한 연애도 하는 실제로 어디에나 있을 법한 인물이다. 경찰청과 토스는 약 5주간 가상의 인물 박도영의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며 평범했던 한 청소년의 삶이 도박으로 인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보여줬다.

용 매니저는 "최대한 실제로 있을법한 인물처럼 만들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박도영의 이야기에 몰입되도록 하는 것에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그의 의도는 성공했다. 박도영이 가상 인물임을 밝힌 뒤 그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에는 '이게 진짜 AI(인공지능)로 만든 거라고?'라며 믿지 못하겠다는 댓글이 달렸다.

여느 학생들과 다름없던 도영이는 반 친구들과 장난처럼 도박을 시작했다. 초반엔 돈을 땄고, 큰돈이 생기자 여자친구한테 명품을 선물해 주고 비싼 운동화를 사는 등 사치를 부렸다. 점점 학교나 친구 등 일상은 뒷전이 되고 도박에 중독됐을 때 도영이는 돈을 잃기 시작한다. 

'이때로 돌아갈 수 있나, 이제 다 그만두고 싶다'는 도영이의 인스타그램 피드 마지막 게시물에는 장난처럼 시작한 도박으로 인해 인생이 망가진 한 청소년의 후회가 묻어난다.

◆ 청소년 개인 문제 아니야…어른들이 관심 가져야

정 경위와 용 매니저는 모두 도박에 중독된 청소년이 중단을 결심하려면 주변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또 도박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생각해 보면 청소년 도박의 공론화는 꼭 필요하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용 매니저는 "사례 공부를 하며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는 아이들이 도박을 중단하게 된 계기"라며 "부모님 등 주변인들이 본인의 도박 중독 사실을 알게됐을 때 미안한 마음이 커지면서 중단을 결심하게 된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도박 게임은 사용자환경(UI)이 일반 게임과 같아서 충동을 조절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10대 청소년은 더 쉽게 중독될 수 있다"며 "도박을 중단하기 위해선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 경위 역시 캠페인을 통해 더 많은 어른이 청소년 도박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도박 자체가 아이들에게 주는 위험도 있지만, 정말 심각한 건 이에 따라 파생되는 다양한 사건"이라며 "이런 걸 막으려면 부모님을 포함해 어른들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전보단 청소년 도박 문제가 많이 조명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사회적으로 관심이나 여론이 생겼다고 보기엔 어렵다"며 "이번 캠페인을 통해 보이스피싱처럼 청소년 도박도 계좌 지급정지 등 사회적 관심을 통한 결과물이 나오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yknoh@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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