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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정착스토리](17) 첫 탈북민 출신 법무사 임윤미 씨..."무법천지 北에서 두 오빠 잃었어요."

기사입력 : 2024년12월02일 07:20

최종수정 : 2024년12월08일 19:05

7년 도전해 법무사 자격증 취득
북송 재일교포 출신 집안서 자라
"통일 후 北에 법제도 정착 꿈"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 평안북도 의주 출신인 임윤미(54) 씨는 탈북민 출신 첫 법무사 타이틀을 갖고 있다.

7년간의 도전 끝에 지난 5월 법무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변호사‧의사 등 전문 직종에 탈북민의 진출이 속속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법무사 벽을 임 씨가 처음 뚫은 것이다.

[서울=뉴스핌] 탈북민 출신 첫 법무사 임윤미 씨. 평북 신의주 출신인 그는 7년 간의 도전 끝에 지난 5월 법무사 자격을 취득했다. [사진=남북하나재단 제공] 2024.12.02

통일부 산하 탈북민 정착지원 전담 기구인 남북하나재단에 따르면 임 씨는 2022년 5646명이 응시해 합격률이 6.96%에 불과한 1차 시험을 통과했다.

또 이듬해 2차 시험에선 753명이 응시해 167명이 합격했는데, 합격자 명단엔 임 씨의 이름이 들어 있었다.

법무사 시험은 한국에서도 까다롭기로 소문난 시험이다.

합격률 6%대의 장벽을 넘고, 다시 경쟁 과정을 거쳐 22.7%에 드는 건 법무사 시험 응시생 100명 중 고작 1~2명에게만 주어지는 영예라고 한다. 그 어려운 일을 임 씨는 50대에 해냈다.

그가 이를 악물고 법무사 시험을 통과한 것은, 북한에서 두 오빠를 잃은 아픔과도 무관치 않다. 힘들어 포기할까 고민될 때마다 그는 법도 모른 채 왜 죽어야 했는지도 몰랐던 북한에서의 삶을 떠올렸다. 

임 씨는 1970년 신의주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났을 때 각각 6살, 4살 터울의 오빠가 있었다.

그의 부모는 1960년대 초반 일본에서 북한으로 온 재일교포 출신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왔다며 감시와 차별 받는 북송 재일교포

북송선을 탄 재일교포들은 한결같이 "도착하는 순간 우리가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선택을 되돌릴 순 없었다.

운전사로 열심히 일하며 혁신자로 인정받은 임 씨 아버지는 1970년대 초반 귀국자로서는 드물게 조선노동당에 입당했다.

임 씨 어머니 역시 귀국할 때 하고 갔던 금목걸이와 금반지까지 국가에 바쳤다.

그럼에도 북한 체제는 이들을 알아주지 않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북송교포들은 감시와 차별의 대상이었다. 일본에 남아 있는 재일동포들을 다루기 위한 인질에 불과했다.

말 한마디에 반동으로 몰려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가는 경우도 많았다.

임 씨 외삼촌 두 명도 그렇게 사라졌다. 누구보다 앞장서 북한으로 가자고 선동했던 둘째 외삼촌이 1970년대 초반에 형제 중에서 제일 먼저 잡혀갔다.

얼마 후 셋째 외삼촌도 요덕수용소로 끌려가고 가족이 농촌으로 쫓겨났다.

"형이 그 정도 말한 게 뭔 죄냐"고 불만을 토로했다가 누군가의 밀고로 영장도 없이 잡혀간 것이다.

당시 간 경변 말기로 입원하기로 돼 있었지만 자비는 없었다. 그는 결국 요덕수용소에서 한 달 만에 숨을 거두었다.

오빠 두 명이 반동으로 끌려가 죽자 임 씨 어머니는 점점 말이 없어졌다. 형들 때문에 연좌제로 끌려가지 않을까 위축이 된 다른 외삼촌들도 묵묵히 직장만 다녔다.

임 씨의 아버지는 도시를 벗어나 농촌으로 자진해 갔다. 불행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임 씨가 14살이 되던 1984년 봄 어느 날, 아침에 학교 농촌동원을 간다며 집을 나간 큰오빠가 갑자기 사라져 나타나지 않았다.

[서울=뉴스핌] 1. 지난 5월 대한법무사협회로부터 법무사 자격증을 받는 임윤미 씨. 2. 한국에 정착한 직후인 1999년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에서 딸과 함께 한 임 씨. [사진=남북하나재단] 2024.12.02

한 달 조금 지났을 때 보위부에서 부모를 불렀다. "당신 아들이 압록강을 헤엄쳐 중국으로 넘어가 베이징 주재 일본대사관을 찾아갔고, 공안에 넘겨져 북으로 송환됐다"는 설명이었다.

그것으로 큰오빠의 소식을 더는 알 수 없었다. 1993년 둘째 오빠도 잡혀갔다. 안전부서 조사할 것이 있다고 불러냈는데, 그것이 임 씨가 본 둘째 오빠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담당 안전원은 "아들을 꺼내려면 돈이 필요하다"며 수시로 뇌물 상납을 요구했다. 술과 담배는 물론 당시 북한에선 엄청난 고가였던 컬러TV를 요구했다.

1년 넘게 뇌물 요구가 이어지자 끝내 참지 못한 아버지가 폭발했다. 아들 때문에 마음고생 하다가 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된 아버지는 안전원과 대판 싸우고 말았다.

며칠 뒤 집에 화물차가 들이닥쳤다. 임 씨 가족들은 강제로 태워졌다.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때는 둘째 오빠가 안전부 감옥에서 사망한 뒤였다.

◆대학 박사과정 다니다 농장원으로 추방

그들이 추방된 곳은 평북 철산군이었다. 당시 임 씨는 신의주1사범대학 국문과 박사원을 다니고 있었는데, 졸지에 청년분조 농장원으로 전락했다. 임 씨는 처지를 바꾸기 위해 결혼을 탈출구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1997년 어느 날, 신의주에서 대학교원을 하다가 그만두고 외화벌이 사업을 하던 남편이 임 씨에게 말했다.

"여기서는 더는 미래가 보이지 않아. 외화벌이로 돈 좀 벌었다는 사람들 보면 다 잡혀가고 끝이 좋지 않아. 우리 딸은 자유로운 세상에서 살게 하고 싶어."

북한 체제에 대한 염증이 차고 넘쳤던 임 씨와 남편, 갓 태어난 딸과 어머니 이렇게 4명은 1997년 10월 탈북의 길에 올랐다. 이들은 중국에서 온갖 고초를 겪다가 1999년 5월 마침내 한국에 도착했다. 

임 씨는 하나원 1기생으로 3개월의 정착교육을 마치고 그해 9월 서울에 21평 임대주택을 받았다. 이듬해 아들도 태어났다.

하지만 한국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정착 초기 사업을 시작해 잘나가던 남편은 여러 번 실패를 거듭한 끝에 방황하다가 끝내 재기 불능 상태에 빠졌고, 입국 7년 만에 두 사람은 헤어졌다.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 남북하나재단과 박충권 국민의힘 의원실이 지난 7월 25일 국회 의원회관 세미나실에서 개최한 탈북민 취업 증진을 위한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남북하나재단] 

가정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임 씨에게 한꺼번에 위기가 닥쳐왔다. 아무리 벌어도 수입은 채무 상환으로 빠져나갔다.

임 씨는 대한법률구조공단을 통해 변호사로부터 법률서비스를 받아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한국에 법무사라는 직업이 있음을 처음으로 알게 됐고, 2006년 법무사 사무실 직원으로 취업해 지금까지 근무하고 있다. 

법무사라는 전문직에 대해 알게 됐을 때 그는 자격증 공부를 해보고 싶었지만, 두 자녀가 어려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자녀들이 어느 정도 성장했을 때 임 씨는 성장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법무사 자격시험이 얼마나 어려운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그는 과감히 도전했다.

법무사가 되려면 헌법·민법·형법·상법·부동산법·공탁법·민사집행법·가족관계법 등 8개의 법을 공부해야 했다.

공부는 그 나름대로 자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이 탓인지 생각만큼 따라갈 수 없었다. 낮에는 일하고 집에 와서 새벽까지 6시간 이상 공부에 매달렸다.

이때 남북하나재단의 전문직 양성프로그램 등이 임 씨에겐 큰 도움이 됐다.

법무사 시험 합격 후 임 씨는 "먼저 와서 실패도 해본 탈북 선배로서, 법 공부를 한 탈북민으로서 제 경험과 지식이 다른 탈북민의 한국 사회 정착에 도움이 되게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또 "6년 넘게 자유 대한민국의 법을 공부하는 동안 억울하게 잡혀간 외삼촌, 오빠들이 끊임없이 떠올랐다"며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잡혀갔는지도 몰랐고, 부모님들은 아들들이 왜 죽었는지도 모르고 가슴에 묻어야 했다"고 지난날을 되돌아봤다.

이어 그는 "지금도 북한에선 법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며 "통일 이후 북한에도 한국과 같은 선진적인 사법제도가 정착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뉴스핌-남북하나재단 공동기획>

yjlee@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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