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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강제성 불인정' 알면서 사도광산 등재
예정된 '진실의 순간' 도래하자 추도식 파행
세계유산 등재는 '침략역사 지우기' 프로젝트
과거사·협력 분리대응하고 침략역사 보존해야

[서울=뉴스핌]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 지난달 2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일본 사도광산 추도식 파행에 대한 긴급 현안 질의에서 한 여당 의원은 "합의를 안 지킨 쪽에 대한 규탄이 중심이 되기보다 '원래 일본이 그러는 것 몰랐냐'는 식으로 상황이 흘러가고 있다"고 했다. 약속을 어긴 것은 일본인데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일본 규탄보다 정부에 대한 질타가 먼저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이번 사태는 지난 7월 정부가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는 데 동의했을 때 이미 예견됐던 일이기 때문이다.

당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카노 다케히로(加納雄大) 주유네스코 일본 대사는 "일본 정부는 그동안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채택된 모든 관련 결정과 이에 관한 일본의 약속들을 '명심(bearing in mind)'하겠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그동안의 약속'에는 2015년 하시마 탄광(군함도) 세계유산 등재 당시 일본 대표가 "많은 한국인과 여타 국민이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끌려와 강제로 일했다"고 인정한 것이 포함돼 있다. 이를 두고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지난 8월 외통위에 출석해 내용적으로는 일본이 이번에 강제성을 인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하지만 조 장관의 이같은 논리 전개는 맞지 않는다. 2015년 발언 다음날 일본 외무상은 일본 대표의 발언에 대해 "강제노동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고 부인했다. 일본은 약속했던 이행 조치들도 지키지 않았다. 인정하지도 않고 지키지도 않은 약속을 "명심하겠다"고 한 것을 두고 내용적으로 강제성을 인정한 것이라는 결론으로 끌고가는 것은 논리적 오류이며 궤변이다.

일본이 조선인 노동자 강제노역을 명시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일본은 일제 강점기 모든 조선인 강제동원에서 강제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은 한국과 사도광산 등재를 협의하는 과정에서 '강제'라는 표현이 들어간 문안을 만드는 것을 거부했다. 이는 외교부가 스스로 밝힌 내용이다. 그 상태에서 합의가 이뤄졌다.

일본 유네스코 대표가 공개발언에서 강제성을 직접 언급하지 않은 것은 당연한 결과다. 그 후에 이어진 사도광산 조선인 노동자 전시물과 추도식 등에서도 '강제'라는 표현이 들어갈 가능성은 처음부터 없었다.

추도식은 일본 정부가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지방정부의 지원을 받는 관변 단체가 주최하는 것으로 합의가 되어 있었다. 일본이 "중앙 정부가 이런 추도식을 주최한 전례가 없다"면서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추도식이 이런 식으로 진행된 것은 갑자기 일본이 태도를 바꿔 뒤통수를 때린 것이 아니라, 미리 예정돼 있었던 것이고 외교부도 짐작하고 있었던 일이다. 일본이 추도식 파행의 책임이 한국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합의할 때 다 알고 있었으면서 왜 지금와서 문제삼느냐'는 의미다.

정부가 추도식 불참을 결정한 것을 두고 "그나마 결기를 보인 것은 다행"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추도식 불참 결정은 결기를 내보이면서 강한 의사 표시로 보이콧을 한 것이 아니다. 일본이 강제성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빙빙 돌려서 애매하게 처리한 것을 두고 외교부가 협상 실패를 감추기 위해 "그 안에 다 들어 있다"고 스스로 일본을 변호해 오다가 '진실의 순간'이 도래하자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포기해버린 것이다.

사실 일본이 강제성을 인정할 가능성은 애초부터 없었다. 군함도·사도광산 등재는 모두 일본이 과거 침략 역사를 지우려는 의도에서 출발한 '아베 프로젝트'의 일부분이다. 아베 신조(安培晋三) 전 총리는 2015년 '전후 70년 담화(아베 담화)'에서 "후손들이 패전국으로서 사과를 계속할 숙명을 지게해서는 안된다"고 밝힌 인물이다.

일본은 앞으로도 아베 프로젝트에 따라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노역했던 현장들을 속속 지워나갈 것이다. 일본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를 추진하고 있는 60여곳의 근대 산업 유산 중 대부분이 조선인 강제동원 현장이다. 당장 아시오 동광산·구로베가와 댐 등이 물망에 올라 있다. 이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조 장관은 국회에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다. 그러나 장관이 책임을 통감한다고 해서 해결책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유네스코 틀 안에서 일본이 세계유산위원회의 결정을 이행하도록 촉구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지만 그것으로 일본의 역사 지우기를 막을 수는 없다.

정부는 우선 대일 외교기조를 바꿔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한·일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과거사 문제와 한·일 협력 문제를 모두 하나의 테이블에 올려놓고 일괄타결하는 '그랜드바겐' 방식을 추구해왔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이 같은 대일 외교기조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과거사 문제를 한·일 협력과 분리해 다뤄나가지 않으면 한·일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바꿔나갈 수 있는 동력이 생길 수 없다.

또한 세계유산 등재와 과거사 문제에 대한 한·일 협의에서 일본이 진지하게 대응하지 않을 수 없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 일본이 근대 산업 유산에서 침략의 역사를 계속 지워나간다면 국내에 남아있는 일본의 침략 역사 현장을 발굴·보존하고 이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맞대응도 고려하기를 바란다.

opento@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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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제6사 사장 김일성의 출현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동북항일연군 제6사 사장 김일성(金日成)이 1937년 11월 13일 사살된 이후부터 한동안 이 부대에 대한 동향이 파악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38년 봄부터 갑자기 새로운 김일성(金日成)의 움직임이 일본 경찰 정보망에 잡혔다. 신임 제6사 사장 역시 소련으로부터 파견돼 온 자였다. 그는 소련 지령으로 전임자 김일성(金日成)의 이름을 이어받은 것이었다. 후임 제6사 사장 김일성(金日成)은 1939년 봄에 사(師)를 묶어서 방면군(方面軍)으로 편제를 변경하는 동북항일연군 제3차 개편 때 제1로군 제2방면군장(方面軍長)이 되었다. 소련은 중일전쟁 발발 후, 일본이 소련을 공격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동북항일연군에 적극적인 군사 지원을 하였다. 그중에서도 소련군 내 한국·중국인 군관들에게 유격 전술을 교육하여 파견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신임 제6사(제6사는 동북항일연군 제3차 개편 때 제2방면군이 된 부대) 사장으로 취임한 김일성(金日成)은 본명이 김일성(金一星)이다. 김성주 별호와 같다. 그는 1930년 5월 30일 간도 폭동 사건 때 용정에 있었던 한인이 다니는 대성중학교 학생이었다. 이날 밤(1930년 5월 30일) 김일성(金一星)은 용정역 기관차에 불을 지르는 등의 행위로 일본 경찰에 붙잡혔으나, 서울로 압송되기 전 탈출에 성공했다. 그 후 소련으로 건너가 적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련 공산당 지령에 따라 1938년 동북항일연군으로 파견돼 온 것이었다. [사진= AI 생성 이미지]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1938년 4월 26일 밤 제2방면군은 평안북도 후창(厚昌) 경찰서 부흥(富興) 주재소 대안 임강현(臨江縣) 제3구(三區) 6도구(六道溝)를 습격하였다. 병력은 약 500명이었다. 모두 개인화기를 소지하고 있었고, 경기관총 6정도 출동하였다. 총 5개 대(隊)로 나누어 나팔을 불며 공격했다. 일본인 세무서원 2명, 중국인 세무서원 1명을 현장에서 사살했다. 지역 주민 50여 명을 납치해 갔다. 현금 2천 원, 식량 1만 원 상당을 탈취하였다. 이에 일본군과 만주군은 중일전쟁 후방지역 안정화 차원에서 동북항일연군 토벌 작전을 강도 높게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군에 의한 토벌뿐만 아니라, 심리전, 교통 차단 등 다양한 봉쇄 작전을 펼쳤다. 그 결과 1939년 봄이 되면 동북항일연군 제2·3로군의 전투력은 거의 소진돼 버렸다. 제2·3로군 중 전투력을 일부 보전한 부대는 소련으로 도주하거나, 소만 국경 지대로 은거했다. 전투력을 유지한 부대는 제1로군 뿐이었다. 이때 제1로군 사령관은 중국인 양정우(楊靖宇)였고, 부사령관은 중국인 위극민(魏極民), 사령관 비서처장 겸 군수처장은 앞서 설명한 한인 오성륜(吳成崙)이었다. 총병력은 3000여 명이었다. 제1로군은 동변도(東邊道)라 부르는 길림, 통화 간도 일대의 험준한 산악지대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부대 정비에 들어갔다. 이때 제3차 부대 개편을 단행하였다. 전투력을 유지하고 있다고는 했지만, 병력 손실이 큰 데다, 추가 병력 보충이 어려웠다. 그래서 기존의 로군 아래 군(軍)을 없애고 군(軍) 예하 모든 사(師)를 통합하여 제1·2·3방면군으로 바꾼 것이다. 제1방면군장은 조아범(曺亞範), 제2방면군장은 김일성(金日成), 제3방면군장은 진한장(陳翰章)이었다. 일본군과 만주군은 1939년 10월부터 1941년 3월까지 1년 6개월간 더욱 강하게 동북항일연군 토벌 작전을 전개했다. 이때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양정우가 1940년 2월 23일 몽강현(濛江縣) 남쪽 490고지에서 사살되었다. 그는 부하 몇 명만을 거느린 채 끝까지 항전하다 죽었다. 양정우가 죽자, 부사령관 위극민, 비서실장 겸 군수처장 오성륜,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 등 11명의 동북항일연군 수뇌부는 1940년 3월 사령관 양정우 사후 문제를 논의했다. 첫째 군은 대중 속으로 들어가 병력 획득 공작을 벌인다. 둘째 소부대로 분산하여 가능하면 북상하여 제2·3로군과 합류한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이때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부대를 10명 이하의 여러 개의 소부대로 나누어 북상하도록 하면서 모두 '김일성 부대'라는 명칭을 사용하도록 하였다. 이에 김성주가 속한 소부대도 '김일성 부대' 명칭을 사용하면서 소련 방향으로 이동하였다. 이 무렵 일본군과 만주군은 머리를 빗는 식의 섬멸 작전을 뜻하는 빗질 작전, 쇠파리처럼 끝까지 따라붙는다는 쇠파리 작전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제1로군 제1방면군장 조아범이 1940년 4월 8일 부대 내 한중간 민족 대립으로 한인 부하로부터 암살당했다. 제3방면군장 진한장은 1940년 12월 8일 일본군에게 사살되었다. 제1로군 사령관 비서실장 오성륜은 1941년 1월 30일 일본군에게 투항했다. 군 수뇌부가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자, 동북항일연군은 급속하게 무너졌다. 1941년 3월 말 기준 유기 시체 1282구, 투항 1040명, 체포 890명의 손실을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부대를 여러 개의 소조직으로 재편하여 각자도생식(各自圖生式: 제각기 살길을 도모함)으로 도주하여 소련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하였다. 이때 소련으로 도주한 동북항일연군은 대략 300명이었다. 주요 인물을 살펴보면, 제2로군 총사령 주보중(周保中), 제3로군 총사령 장수전(張壽錢), 제2로군 참모장 최용건(崔庸健), 그리고 문제의 김성주와 그의 처 김정숙(金靜淑)도 이들 무리에 끼어있었다. 1940년 11월이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2026-03-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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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재룡, 강남서 사고 뒤 도주 [서울=뉴스핌] 김가희 기자 = 서울 강남에서 교통사고를 낸 뒤 현장을 떠난 배우 이재룡이 경찰 조사에서 음주운전이 아니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8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강남경찰서는 도로교통법 위반(사고 후 미조치) 혐의로 이씨를 조사하고 있다. 이씨는 지난 6일 오후 11시께 서울 강남구 청담역 인근 도로에서 차량을 운전하던 중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은 뒤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현장을 떠난 혐의를 받는다. 이재룡. [사진=CJ E&M] 사고 이후 이씨는 차량을 자택에 주차한 뒤 지인의 집으로 이동했다가 경찰에 의해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이 실시한 음주 측정 결과 이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정지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다만 약물 간이 검사에서는 음성 반응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운전 당시 음주 상태가 아니었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차량 블랙박스 영상 등을 토대로 사고 당시 상황과 음주 여부 등을 확인하고 있다. 한편 이씨는 과거에도 음주와 관련한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2003년 강남에서 음주운전 사고를 낸 뒤 음주 측정을 거부해 면허가 취소됐고, 2019년에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강남의 한 볼링장 입간판을 파손해 재물손괴 혐의로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rkgml925@newspim.com 2026-03-08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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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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