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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신시가지 8·12·13단지 재건축 계획 확정...3곳서 8500가구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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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이동훈 기자 = 1980년대 후반 준공된 서울 양천구 목동 8·12·13단지가 40층 이상 고층 아파트 단지로 재탄생할 예정이다. 

17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16일 열린 제13차 도시계획위원회 신속통합기획(신통기획) 정비사업 등 수권분과위원회에서는 양천구 목동 8·12·13단지에 대한 재건축 정비구역 지정 및 정비계획 결정안을 수정 가결했다.

신통기획은 민간 주도의 정비사업을 시가 초기부터 지원해 정비구역 지정 기간을 단축하는 정책이다.

목동신시가지 재건축 현황도 [자료=서울시]

이번 정비계획에 따라 목동8단지는 용적률 300% 이하를 적용해 기존 15층, 1352가구를 헐고 최고 49층 이하, 1881가구(공공주택 293가구)로 재건축하게 된다. 8단지는 서울지하철 5호선 목동역과 오목교역 인근에 위치하고 서정초, 진명여고 등 초·고등학교와 양천공원에 둘러싸여 있다.

이번 심의에 따라 목동중심지구변(목동서로) 3m 확폭을 통해 자전거도로 및 보행공간을 확보하였으며, 목동로변으로 녹지를 두어 학교와 양천근린공원을 연결했다. 또 가운데로 공공보행통로를 설치해 지역주민들의 보행 연결성을 확보했다. 아울러 단지 서측 등촌지하차도(목동로)로 단절된 보행동선를 연결하는 입체보행로를 조성해 인접한 9단지와의 연속적인 보행 네트워크를 조성함으로써 안전한 통학로 조성 등 지역 주민의 편의성을 최대화했다.

또한 서정초·진명여고와 연접해 새로운 어린이공원을 설치해 단지 중심부의 공공보행통로로 양천근린공원까지 그린네트워크를 강화했으며 대상지 동측의 상업지역과 연계해 목동서로변으로 근린생활시설, 개방형 커뮤니티를 설치해 가로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도록 계획했다.

목동12단지는 용적률 300% 이하, 최고 43층 이하, 2810가구(공공주택 367가구)로 재건축하게 된다. 계남근린공원과 신트리공원 등 주민휴식공간과 양천구청역(2호선) 인근에 바로 위치해있다. 

대상지 북측 도로(목동동로), 남측 도로(목동로3길), 서측 도로(목동동로2길), 동측 도로(목동동로4길)를 각각 1.5m~3m 확폭해 자전거도로 및 보행공간을 확보함으로서 지역 주민의 편의성을 최대화했다. 아울러 주변단지 및 2호선 양천구청역을 연계한 보행자전용도로 및 공공보행통로를 설치해 지역주민들의 보행 접근성을 개선했다.

계남초 주변으로 소공원을 설치해 학교 주변의 공원·녹지 공간을 확충하고 목동로3길변 건축한계선을 설정(8m)해 양천구청역까지 가로활성화 도모 및 보행공간이 확충될 수 있도록 계획했다. 아울러 목동 대규모 공동주택 개발에 따른 가구수 증가를 고려하여 유아교육을 위해 유치원용지를 신설하도록 계획했다.

목동13단지는 양천구청, 양천경찰서 등 주요 공공시설과 양천공원 등 주민휴식시설, 학원가 접근성이 좋으며 서울지하철2호선 지선 양천구청역에 바로 연접한 역세권 입지를 갖추고 있다. 이번 심의를 통해 용적률 300% 이하, 최고 49층 이하, 3811가구(공공주택 570가구)로 재건축하게 된다.

대상지 북측 목동중심지구변(목동동로) 및 대상지 내외부 인접도로(목동동로4길, 목동동로6길, 목동로3길)를 3m 확폭하여 자전거도로 및 보행공간을 확보하여 지역 주민의 편의성을 최대화했다. 

목동 중심지와 주변단지 및 2호선 양천구청역을 연계해 공공보행통로를 2개소 설치해 인접단지와 연속성있는 가로를 형성하고 지역주민들의 보행 접근성을 개선했으며 대상지 북측 목동 중심지구와 인접하여 근린생활시설을 배치하여 가로활성화를 도모했다.

 

서울 내 주요 학군지로 꼽히는 목동신시가지아파트 1~14단지는 1985~1988년 조성된 총 2만6000여 가구 대규모 단지다. 재건축을 통해 약 2배 규모인 5만3000여 가구 단지로 탈바꿈한다. 앞서 6단지와 14단지는 각각 올해 8월과 지난달 정비계획안이 서울시 심의를 통과했다.

한병용 서울시 주택실장은 "목동8·12·13단지는 목동지구 내 신속통합기획자문사업으로 재건축 사업이 완료되면 지하철역과 공공시설 주변 커뮤니티가 활성화되고 주변단지 재건축과 더불어 주거환경 또한 크게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donglee@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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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제6사 사장 김일성의 출현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동북항일연군 제6사 사장 김일성(金日成)이 1937년 11월 13일 사살된 이후부터 한동안 이 부대에 대한 동향이 파악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38년 봄부터 갑자기 새로운 김일성(金日成)의 움직임이 일본 경찰 정보망에 잡혔다. 신임 제6사 사장 역시 소련으로부터 파견돼 온 자였다. 그는 소련 지령으로 전임자 김일성(金日成)의 이름을 이어받은 것이었다. 후임 제6사 사장 김일성(金日成)은 1939년 봄에 사(師)를 묶어서 방면군(方面軍)으로 편제를 변경하는 동북항일연군 제3차 개편 때 제1로군 제2방면군장(方面軍長)이 되었다. 소련은 중일전쟁 발발 후, 일본이 소련을 공격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동북항일연군에 적극적인 군사 지원을 하였다. 그중에서도 소련군 내 한국·중국인 군관들에게 유격 전술을 교육하여 파견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신임 제6사(제6사는 동북항일연군 제3차 개편 때 제2방면군이 된 부대) 사장으로 취임한 김일성(金日成)은 본명이 김일성(金一星)이다. 김성주 별호와 같다. 그는 1930년 5월 30일 간도 폭동 사건 때 용정에 있었던 한인이 다니는 대성중학교 학생이었다. 이날 밤(1930년 5월 30일) 김일성(金一星)은 용정역 기관차에 불을 지르는 등의 행위로 일본 경찰에 붙잡혔으나, 서울로 압송되기 전 탈출에 성공했다. 그 후 소련으로 건너가 적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련 공산당 지령에 따라 1938년 동북항일연군으로 파견돼 온 것이었다. [사진= AI 생성 이미지]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1938년 4월 26일 밤 제2방면군은 평안북도 후창(厚昌) 경찰서 부흥(富興) 주재소 대안 임강현(臨江縣) 제3구(三區) 6도구(六道溝)를 습격하였다. 병력은 약 500명이었다. 모두 개인화기를 소지하고 있었고, 경기관총 6정도 출동하였다. 총 5개 대(隊)로 나누어 나팔을 불며 공격했다. 일본인 세무서원 2명, 중국인 세무서원 1명을 현장에서 사살했다. 지역 주민 50여 명을 납치해 갔다. 현금 2천 원, 식량 1만 원 상당을 탈취하였다. 이에 일본군과 만주군은 중일전쟁 후방지역 안정화 차원에서 동북항일연군 토벌 작전을 강도 높게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군에 의한 토벌뿐만 아니라, 심리전, 교통 차단 등 다양한 봉쇄 작전을 펼쳤다. 그 결과 1939년 봄이 되면 동북항일연군 제2·3로군의 전투력은 거의 소진돼 버렸다. 제2·3로군 중 전투력을 일부 보전한 부대는 소련으로 도주하거나, 소만 국경 지대로 은거했다. 전투력을 유지한 부대는 제1로군 뿐이었다. 이때 제1로군 사령관은 중국인 양정우(楊靖宇)였고, 부사령관은 중국인 위극민(魏極民), 사령관 비서처장 겸 군수처장은 앞서 설명한 한인 오성륜(吳成崙)이었다. 총병력은 3000여 명이었다. 제1로군은 동변도(東邊道)라 부르는 길림, 통화 간도 일대의 험준한 산악지대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부대 정비에 들어갔다. 이때 제3차 부대 개편을 단행하였다. 전투력을 유지하고 있다고는 했지만, 병력 손실이 큰 데다, 추가 병력 보충이 어려웠다. 그래서 기존의 로군 아래 군(軍)을 없애고 군(軍) 예하 모든 사(師)를 통합하여 제1·2·3방면군으로 바꾼 것이다. 제1방면군장은 조아범(曺亞範), 제2방면군장은 김일성(金日成), 제3방면군장은 진한장(陳翰章)이었다. 일본군과 만주군은 1939년 10월부터 1941년 3월까지 1년 6개월간 더욱 강하게 동북항일연군 토벌 작전을 전개했다. 이때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양정우가 1940년 2월 23일 몽강현(濛江縣) 남쪽 490고지에서 사살되었다. 그는 부하 몇 명만을 거느린 채 끝까지 항전하다 죽었다. 양정우가 죽자, 부사령관 위극민, 비서실장 겸 군수처장 오성륜,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 등 11명의 동북항일연군 수뇌부는 1940년 3월 사령관 양정우 사후 문제를 논의했다. 첫째 군은 대중 속으로 들어가 병력 획득 공작을 벌인다. 둘째 소부대로 분산하여 가능하면 북상하여 제2·3로군과 합류한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이때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부대를 10명 이하의 여러 개의 소부대로 나누어 북상하도록 하면서 모두 '김일성 부대'라는 명칭을 사용하도록 하였다. 이에 김성주가 속한 소부대도 '김일성 부대' 명칭을 사용하면서 소련 방향으로 이동하였다. 이 무렵 일본군과 만주군은 머리를 빗는 식의 섬멸 작전을 뜻하는 빗질 작전, 쇠파리처럼 끝까지 따라붙는다는 쇠파리 작전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제1로군 제1방면군장 조아범이 1940년 4월 8일 부대 내 한중간 민족 대립으로 한인 부하로부터 암살당했다. 제3방면군장 진한장은 1940년 12월 8일 일본군에게 사살되었다. 제1로군 사령관 비서실장 오성륜은 1941년 1월 30일 일본군에게 투항했다. 군 수뇌부가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자, 동북항일연군은 급속하게 무너졌다. 1941년 3월 말 기준 유기 시체 1282구, 투항 1040명, 체포 890명의 손실을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부대를 여러 개의 소조직으로 재편하여 각자도생식(各自圖生式: 제각기 살길을 도모함)으로 도주하여 소련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하였다. 이때 소련으로 도주한 동북항일연군은 대략 300명이었다. 주요 인물을 살펴보면, 제2로군 총사령 주보중(周保中), 제3로군 총사령 장수전(張壽錢), 제2로군 참모장 최용건(崔庸健), 그리고 문제의 김성주와 그의 처 김정숙(金靜淑)도 이들 무리에 끼어있었다. 1940년 11월이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2026-03-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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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재룡, 강남서 사고 뒤 도주 [서울=뉴스핌] 김가희 기자 = 서울 강남에서 교통사고를 낸 뒤 현장을 떠난 배우 이재룡이 경찰 조사에서 음주운전이 아니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8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강남경찰서는 도로교통법 위반(사고 후 미조치) 혐의로 이씨를 조사하고 있다. 이씨는 지난 6일 오후 11시께 서울 강남구 청담역 인근 도로에서 차량을 운전하던 중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은 뒤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현장을 떠난 혐의를 받는다. 이재룡. [사진=CJ E&M] 사고 이후 이씨는 차량을 자택에 주차한 뒤 지인의 집으로 이동했다가 경찰에 의해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이 실시한 음주 측정 결과 이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정지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다만 약물 간이 검사에서는 음성 반응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운전 당시 음주 상태가 아니었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차량 블랙박스 영상 등을 토대로 사고 당시 상황과 음주 여부 등을 확인하고 있다. 한편 이씨는 과거에도 음주와 관련한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2003년 강남에서 음주운전 사고를 낸 뒤 음주 측정을 거부해 면허가 취소됐고, 2019년에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강남의 한 볼링장 입간판을 파손해 재물손괴 혐의로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rkgml925@newspim.com 2026-03-08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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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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