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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D 폴리티션 스토리](상) 기자에서 국회의원으로…부친 꿈 대신 이룬 정연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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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사나이' 정연욱 "부친도 법대 출신, 자연스레 법조인 길 생각"
서울대 법대 졸업 후 동아일보 입사…"85학번 시대적 고민들 있어"
정치부 기자로 활동하며 '한나라당 당무감사 결과' 단독 보도로 반향
"은사는 故 박세일 교수…한국 정치의 새로운 모티브 제공했다 자부"

[서울=뉴스핌] 이바름 기자 = 정연욱 국민의힘 의원이 뉴스핌 KYD(Korea Youth Dream) '폴리티션스토리'에 출연해 어린 시절과 정치 입문 과정 및 가치관에 대해 진솔하게 소개했다.

정 의원은 16일 오후 유튜브 채널 '뉴스핌 TV'를 통해 공개된 폴리티션 스토리에서 좌우명을 묻는 질문에 "거창한 건 없다"고 답했다. 다만 "좌절하고 이제 고개 숙이고 이렇게 하지 말자는 생각이 강하다"고 덧붙였다. 학창시절 모범생이었다던 그는 헤르만헤세의 '데미안'을 읽으며 접했던 '알을 깨라'라는 표현을 지금도 의미있게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정 의원은 "판단은 빨리 하지 않는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스타일"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30여 년간 언론인의 삶 이후 정계에 입문한 그는 "무모한 도전"이었다고 회상했다. 문장의 강조점은 '무모'가 아닌 '도전'이었다. 정 의원은 "반드시 앞으로 나아가야 된다"며 "대한민국을 어떻게 더 키워나갈 건지, 업그레이드시킬 건지가 정치의 영역"이라고 역설했다.

1965년 부산에서 태어난 정연욱 국민의힘 의원은 서울대학교 공법학과 학사를 마치고 1991년 동아일보에 입사, 32년동안 언론인의 길을 걸었다. 대부분 정치부 기자로 활동했다. 그는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총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 당무감사 결과' 자료를 단독 보도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해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과 한국신문방송인클럽 한국언론대상을 수상했다.

[서울=뉴스핌] 이바름 기자 = 정연욱 국민의힘 의원. 2025.01.16 right@newspim.com

종합편성채널인 채널A 보도본부 정치부장을 비롯해 시사프로그램인 '쾌도난마' 진행 등 방송에서도 활약했다. 2019년 동아일보 논설위원으로 복귀해 정치현안에 대한 심도 있는 칼럼을 게재하다가 2023년 12월 퇴직했다.

2024년 국민의힘 부산시당에 입당하며 정계에 입문했다. 그해 제22대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 부산진구을 후보로 출마했으나 당내 경선 과정에서 현역인 이헌승 의원에 패배했다.

하지만 국민의힘 부산 수영구 후보였던 장예찬 전 최고위원이 과거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막말 논란으로 공천 취소되면서 3월17일 국민의힘 부산 수영구 후보로 전략공천됐다. 개표 결과 50.33%를 득표하며 더불어민주당 유동철 후보(40.47%), 무소속 장예찬 후보(9.18%)를 따돌리고 당선증을 거머쥐었다. 소속 상임위원회는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이다.

다음은 박 전 의원과의 폴리티션 스토리 인터뷰 전문이다.

(이바름 기자, 이하 이 기자) 정치인의 인생 궤적을 돌아보는 폴리티션 스토리 시작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진행을 맡은 정치부 이바름 기자입니다. 오늘 함께 진행을 맡아주실 스웨덴 린네대학교 최연혁 최 교수 모셨습니다.

(최연혁 교수, 이하 최 교수) 네 안녕하십니까?

(이 기자) 오늘은 '이재명은 안 됩니다' 현수막의 주인공이시죠? 이제는 '이재명 저격수' 부산 수영구 국회의원 정연욱 의원님 모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최 교수) 어서 오십시오.

(이 기자) 의원님 사실 기자 출신이시고 방송 진행도 하셨는데 그래서 그런지 오늘 사실 자리가 좀 바뀐 것 같습니다.

▲(정 의원) 아닙니다. 저는 이제 신분이 바뀌었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이 기자) 의원님 이력을 보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모두 부산에서 졸업을 하셨거든요. '부산 사나이'라고 불리시는데 학창시절 겪었던 뭐 특별한 경험이나 추억 같은 게 있으실까요?

▲(정 의원) 제가 태어나서 그 다음에 초등학교, 중·고, 12년 다 부산에서 나왔습니다. 그다음에 바로 대학으로 와서 이제 서울 생활을 했지만 그래도 제가 아직 뼛속 깊이 부산 사나이라는 건 지울 수가 없는 거죠.

(최 교수) 부산 사나이의 특징이 뭡니까?

▲(정 의원) 거칠다는 지적도 받습니다만 약간 좀 선이 분명하다고 그럴까요. 좀 말이 짧죠. 뒤끝은 없습니다. 그렇게 해주면 고맙겠습니다.

(이 기자) 그러면 혹시 유년 시절 가정 환경은 어떠셨는지 좀 궁금하거든요.

▲(정 의원) 네, 뭐 유복하지는 않았습니다만 무난한 생활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제가 고등학교 중반에 아마 저희 아버님이 와병을 하셔서 좀 이렇게 어려워진 적은 있습니다. 그래도 뭐 버틸만 했습니다.

(이 기자) 20살이 되면서 대학을 서울로 진학을 하셨거든요. 서울대 법대에 입학을 하셨는데 당시에 그럼 장래 희망이 법조인이셨나요?

▲(정 의원) 네, 저희 아버님도 법대 출신이기도 해서 저도 이제 자연스럽게 저 개인적으로도 이제 법조인의 길을 한번 갈까 하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최 교수) 어렸을 때는 대개 골목대장 출신이었습니까? 그런 성향이었습니까? 아니면 뭐 조용히 책을 읽는 스타일이었습니까?

▲(정 의원) 어떻게 보면 골목대장이라기보다는 그냥 누가 봐도 그냥 모범생 그런 이미지 아니었나 싶습니다. 저도 활달하게 다녔지만 그래도 상대적으로 모범생 이미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최 교수) 어렸을 때 어떤 분이 가장 영향력을 미쳤다고 생각하십니까?

▲(정 의원) 아무래도 아버님입니다. 아버님은 이제 법대 출신이긴 했지만 영어 교사를 하셨고, 하시다가 당시에 야당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생활을 하셨습니다. 출마 준비까지 하셨는데 그 무렵에 와병을 하셔가지고 출마를 접게 된, 좀 아픈 기억이 제 고등학교 때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뭐 대학을 가고 이후에 모든 제 삶을 정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그런 기억은 계속 오래 남았습니다.

(최 교수) 그럼 아버님의 꿈을 실현하신 거네요?

▲(정 의원)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이 기자) 그러면 이제 서울대 법대를 들어가셨는데 졸업 후에 동아일보에 입사를 하셨거든요. 그때부터 30년 넘게 언론인의 길을 걸으셨는데 계획을 하셨던 걸까요?

▲(정 의원) 85학번이기 때문에 갖는 약간의 80년대 대학생들이 갖는 아마 시대적 고민들이 있었습니다. 아마 그 부분이 저에게 있어서는 제가 평생 갖고 가야 되는 제 대학 시절이었다고 생각이 들고요.

(이 기자) 정통 기자의 삶을 사셨더라고요. 기자 이력을 보면. 이제 사회부 기자로 시작을 하셨고 정치부 기자로 가셔서 청와대 출입하셨고 또 법조팀장을 거쳐서 정치부장 논설위원까지 하셨거든요. 또 방송 진행도 하셨고. 이게 소위 '잘 나가는 기자'라고 다들 알고 있는데, 당시의 삶을 좀 기억을 하고 계십니까?

▲(정 의원) 기자들은 잘 나간다는 표현을 쓰면 안 됩니다. 그리고 그건 같이 고생하는 '원팀'으로 가야 되기 때문에 누가 잘 나간다 못 나간다 그런 얘기할 건 아닙니다. 특히 정치부장을 방송, 신문을 다 해봤기 때문에 느끼는 현장에서 지금도 이제 그 후배들과 간혹 보기는 하지만, 언론인이나 기자 현장 취재라는 건 팀웍으로 같이 가야 됩니다. 그게 같이 가야 되는 일이기 때문에 누구를 뭐 잘 나왔다 못 나왔다 그렇게 평가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최 교수) 기자로서의 사명도 필요할 것 같고요. 또 기자로서의 자질도 필요할 것 같은데 특히 이제 자질 면에서는 글을 쓰는 걸 좋아하셨나요?

▲(정 의원) 글을 쓰는 걸 좋아했습니다.

(최 교수) 잘 쓰셨다고 생각하십니까?

▲(정 의원) 제가 평가할 건 아니지 않습니까?

(최 교수) 본인 스스로도 그래도 재밌다, 글 쓰는 게 이 정도면 괜찮다라는 그런 나름대로의 자체 평가가 있지 않을까요?

▲(정 의원) 저는 그렇게 평가했죠. 남들이 어떻게 평가하는 건 모르겠습니다. 저는 최대한도로 제 진심을 담아서 쓰려고 했고 그렇게 취재를 했고요. 책은 많이 읽었습니다. 여러 고등학교 시절에도 웬만한 세계문학 과정은 제가 따로 다 읽고 싶었고 읽었고요. 군에서도 저도 차트병을 했습니다. 그래서 글 쓰는 건 저도 자신 있었습니다. 사명감이라는 부분은 제가 그렇게 거창하게 얘기할 건 없지만 기자라는 게 그런 겁니다. 아시겠지만 뭔가 하나의 이슈를 가지고 접근할 때 반응이 즉각적으로 나오는 거 아닙니까? 저희는 이제 어떤 기사를 쓸 때 이게 좋든 싫든 반응이 나옵니다. 그걸 갖다가 어떤 사태를 해결해 줬거나 뭐 진상을 파헤쳤거나 즉각적인 반응이 올 때 나는 그 약간의 희열이라는 게 있습니다. 기자들의 그 엔돌핀은 거기서 나오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 부분이 조금씩 사회가 조금씩은 나아가는 한 발자국씩 이렇게 나가는 걸 지켜볼 수 있다는 거, 아마 그건 기자들이 갖는 가장 큰 사명이 아닐까 싶습니다.

(최 교수) 내가 이 기자를 하면서 우리나라의 어떤 면을 좀 바꿔보겠다든지, 아니면 뭐 정론 언론을 한번 내가 한번 나름대로 또 기여를 해 보겠다라는 그런 나름대로 각오가 있으셨나요?

▲(정 의원) 네, 있었죠. 특히 저는 주로 정치 현장에서 많이 뛰었기 때문에 정치권의 변화, 정치권이 조금은 나아져야 된다는 생각, 그런 생각을 항상 좀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가야 된다는 생각이 있었고, 자연스럽게 제가 가장 큰 나름대로 제가 회심의 역작이라고 할 수 있는 게 제가 2004년도 한나라당 현장반장을 하면서 썼던 기사가 그때 2004년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당무감사 문건을 저희가 폭로한 게 있었습니다. 그게 이제 그 한나라당 현역 의원들의 당무감사 결과를 A·B·C·D·E 등급을 나눠서 그게 이제 그 결과가 공천 자료로 즉각 활용되는 거기 때문에 그 데이터 자체가 아주 민감했던 숫자입니다. 그 반응이 아주 폭발적이었습니다. 과연 이 당무감사 A·B·C·D·E 등급이 과연 제대로 매겨진 것인지, 어떤 근거에서 나왔던 건지 이 부분이 명쾌하게 설명이 안 되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정 의원) 그러니까 좀 편의적으로 어떤 부분을 좀 이렇게 유리하게 봐주고 말고 하는 이게 좀 우리가 속된 말로 표현하면 '마사지를 한다'는 그런 표현을 쓰죠. 그런 표현이 그런 것들이 가미가 되니 그럼 이 당무감사 결과를 신뢰할 수 있겠느냐 근본적인 문제 제기가 나왔고 이런 식의 당무감사가 의미가 있느냐, 현역 의원 100명 정도의 전화가 몰려와서 휴대폰을 제가 받지 못할 정도였는데. 지금도 모든 아마 웬만한 정당은 당무감사 지역구 조사를 하면서 그 결과를 공천자료로 활용을 합니다. 그래서 최대한도 공정성을 기여할 수 있는 당무감사 자료를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되지 않았나 저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 기자) 사회부나 정치부 경험을 하시면서 또 기억에 남는 기사나 아니면 인터뷰이가 뭐 있을까요?

▲(정 의원) 많은 부분에 대해서 저도 많은 사람을 만나고 여러 분들과 교류할 수밖에 없는 자리가 많았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비운의 정치인이지만 제 은사이기도 했던 그 박세일 교수님을 많이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그분이 이제 정치권에 들어오는 과정, 2004년도 들어오시고, 그 중간에 이제 결국 정치적 이렇게 좀 이견이 있어서 나가시고 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한국 정치가 약간 속된 표현이죠. 패거리를 지어서 다니는, 그러니까 진영이라기보다도 진영의 가치라도 제대로 있으면 되지만, 그냥 이렇게 사람들이 뭉쳐 다니는 옛날에 3김식 정치에 있었다면 하나의 이제 진영의 가치를 놓고 이념을 한번 추구하고 우리가 나아가야 될 하나의 국가적 어젠다를 고민하는 하나의 모티브가 되지 않았나.

▲(정 의원)저는 박세일 교수께서 정치권에 들어오는 과정부터 많은 얘기를 했지만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정치가 한 발짝 나가가기 위해서는 이념적 가치나 보수의 가치도 정립을 해야 된다, 그런 부분은 많이 저도 공감을 했고요. 그래서 선진화라는 얘기도 나오고 선진화가 이제 산업화, 민주화 그다음 넥스트 선진화로 가는 국가적 목표를 놓고 각 분야별로 어떻게 정리를 해 나가야 될지, 물론 현실 정치는 그게 바로 적용되기는 어렵습니다. 어려운 한계는 있었지만 그런 정도의 정치적 어젠다를 걸 수 있는 새로운 하나의 계기가 되지 않았나 한국 정치의 새로운 좀 모티브를 제공하지 않았나 저 개인적으로 그렇게 자부하고 있습니다.

(최 교수) 기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인 어떤, 보수도 마찬가지고, 정치적인 어떻게 보면 입문의 기회가 조금 됐다 하는 거는 뭐 부인할 수 없겠습니까?

▲(정 의원) 입문이라고 할 수는 없죠. 저는 이제 기자로서 그렇게 할 수 있는 길이 좀 필요하다는 생각이. 기자도 어느 정도는 이제 사회적 여러 가지 이슈에 Involve 할 수밖에 없는 거 아닙니까? 이제 그렇게 좀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가야 되지 않나 그런 생각도 한 것이죠.

(이 기자) 30년 동안 기자 생활로 사명감을 가지시다가 작년 국민의힘 부산시당에 입당하면서 이제 정계에 발을 들이셨잖아요. 당시에 정치인 정연욱이 되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어땠습니까?

▲(정 의원) 기자나 언론인이라는 건 제3자적 좀 객관적,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기본적으로 항상 기본적인 이 전제가 바탕에 깔리는 거 아닙니까? 그러다 보면 항상 균형이라는 걸 찾게 되고 어쩔 수 없습니다. 그건 불가피하게 그걸 요구받게 되고 그렇게 가야 되는 것이 숙명이고 언론이. 과연 그렇다면 과연 그 길만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저는 좀 했습니다. 고민도 했고 또 이제 뭐 수많은 저희 언론 동지들이 있는 것이고. 저는 좀 이 부분이 더 좀 한 발자국이라도 이렇게 진행이 되는 과정은 뭐 결국은 정치의 영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치는 국민적 비난과 비판의 항상 대상이 되고 있지만 정치를 통해서 사회가 원래 어차피 한 발자국 나갈 수밖에 없는 거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한번 도전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좀 했었던 것 같습니다.

(최 교수) 인생을 표현해 주는 혹은 내가 나는 이것이 신조로 한다 혹은 믿음이나 원칙이나 철학이나 이런 것들이 있는지요?

▲(정 의원) 제가 고등학교 때 읽었던 여러 가지 소설 중에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조금 숙독을 했습니다. '알을 깨라'는 표현들이 많습니다. 이게 알을 깨고 나와야 된다는 표현들이 그 헤세가 얘기하는 몇 가지 강조점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데미안이 이제 성숙해가는 과정을 그리는 여러 가지 묘사가 나오는데. 저는 군대도 현역으로 다녔습니다. 저는 강원도 철원에서 FM대로 군 생활을 하고 나왔습니다. 아마 좀 법대생 치고는 좀 드물 겁니다. 아시겠지만 기자 생활 초년병은 무척 힘듭니다. 잠도 거의 뭐 한두 시간 만에 못 자고 그런 생활을 했고. 결국은 일련의 과정에서 좀 이렇게 이렇게 헤쳐 나간다는 그런 느낌으로 살아야 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정치권 도전도 저로서는 좀 상당히 무모하다 싶은 도전이기도 했습니다. 처음 가는 길이고 제가 지켜는 봤지만 현실에서 뛰어보는 건 다른 거거든요.

▲(정 의원) 중도에 있는 사람을 설득하는 과정 또 이렇게 상대 진영과의 또 싸우는 과정. 그래서 제가 조금 헤쳐 나올 수 있지 않았나. 좀 무모하리만큼 도전했던 길이었던 것 같습니다.

(최 교수) 좌우명이나 좋아하는 단어나 뭐 이런 건 있나요?

▲(정 의원) 저는 거창한 건 없습니다. 다만, 좌절하고 이제 고개 숙이고 이렇게 하지 말자는 생각이 강합니다. 저는 판단은 빨리 하지 않습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스타일입니다. 제가 뭐 사람인 이상 완벽할 수는 없으니까. 그렇지만 가급적이면 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자 했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 기자) 작년 한 해가 의원님의 삶에 큰 의미였을 것 같은데, 어떤 한 해였는지 궁금합니다.

▲(정 의원) 저로서는 작년 한 해가 10년간 벌어질 모든 사건을 한꺼번에 압축해 놓은 게 아니었나. 1년이 10년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뭐 선거 준비부터 선거를 치르고 나서 국회 생활을 하고 그리고 또 지난 연말에 벌어졌던 일련의 사태들이 한꺼번에 벌어졌기 때문에 저도 지금 상당히 좀 혼란스럽습니다. 제가 쉬는 곳에 가서 항상 저는 자기 정리를 합니다. 이게 좀 어떻게 풀어야 될지 그리고 이게 어떻게 저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를 해야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최 교수) 아마도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 아마 이걸 시청하시는 분들이나 대한민국 국민들이 그 알에 갇혀서 어떻게 이걸 깨고 나갈 것인가에 대한 메시지 좀 전해주시죠.

▲(정 의원) 45년 해방 이후에 올해 그럼 80년이 되지 않습니까? 대한민국은 가장 최빈국에서 출발했습니다. 어떻게 전쟁을 치른 나라가 이렇게 세계 10위 경제대국이 될 수 있습니까. 그러면서도 가장 어려운 생활을 산업화를 거치면서 헤쳐 나왔고. 그러면서도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민주화까지 완성해서 이 나라를 세계 10위의 경제대국. 이게 누구 세계 어느 나라도 대한민국을 부러워할 정도로 대한민국이 됐습니다. 우리나라는 절대 폄훼해서도 안 되고 폄훼받을 나라도 아닙니다. 그리고 스스로 절대 그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우리 스스로를 자기 비하해서도 안 되고 그럼 이 대한민국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저는 그게 선진화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부문에서 경제도 그렇고 말씀하신 하나의 그 가치나 이념적 부분에 민주주의, 제도적 성숙의 문제도 같이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진짜 제대로 된 선진국이 될 수 있는 대한민국이 돼야 됩니다. 그렇게 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최 교수) 어제 발표한 거를 봤더니 대한민국이 수출 기준으로 세계 5위더군요. 참 대단한 국가죠.

▲(정 의원) 우리가 과거는 잊을 수 없습니다. 잊어서는 안 되고, 그리고 과거의 아픈 기억을 간직하지만 반드시 앞으로 나아가야 됩니다. 그러니까 서로의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뭐라고 다툴 수는 있어도 대한민국이라는 큰, 하나의 거함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계속 나가야 되니 이걸 지켜야 된다는데 누구도 이의 제기를 해서는 안 됩니다. 결국은 대한민국을 어떻게 더 키워 나갈 건지, 그리고 이걸 한 단계 업그레이드 어떻게 시킬 건지 결국 이게 정치의 영역 아닌가 싶습니다.

right@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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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KF-21, 내년 3월 양산 1호기 출고식 [서울=뉴스핌] 오동룡 군사방산전문기자 = 한국형 전투기(KF-21) 양산 1호기 출고 행사가 내년 3월 경남 사천 KAI 본사에서 열리는 방향으로 검토되고 있다. 뉴스핌이 단독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당초 2026년 연말로 잡혔던 일정이 약 10개월 앞당겨지는 '조기 실전배치 시나리오'가 가시권에 들어온 것이다. KF-21(당시 KF-X) 사업은 2015년 방위사업추진위원회(방추위)가 약 8조원(70억~80억달러 수준) 규모의 체계개발을 승인하면서 본궤도에 올랐고, 인도네시아가 개발비 20% 분담을 약속하며 공동개발 파트너로 참여했다. 이후 설계안 확정(2019년)과 2020년 9월 최종조립 착수 과정을 거쳐 2021년 4월 시제 1호기(001번기) 출고 및 명명식에서 공식 제식명 'KF-21 보라매'가 부여됐다.​​ 지난해 11월 29일 1000소티 비행을 달성한 한국형 전투기 KF-21. 이로써 전체 약 2000소티 중 절반을 완료하며 반환점을 돌았다. [사진=한국항공우주산업] 2025.12.09 gomsi@newspim.com 시제기는 단좌 4대·복좌 2대를 포함해 총 6대가 제작됐고, 2022년 7월 첫 비행에 성공한 뒤 2023년 초음속 돌파, 야간·무장분리 시험을 포함해 2024~2025년까지 누적 2000회 수준의 시험비행을 소화하면서 블록Ⅰ(공대공 중심) 체계개발 막바지 단계에 올라와 있다. 방위사업청과 공군은 이 시험 데이터를 토대로 2026년까지 '초도양산+작전운용시험·평가'를 동시에 진행해 공군 F-4E, F-5 등 노후 3세대 전투기를 순차적으로 대체한다는 이정표를 세워왔다.​ 당초 KF-21 양산기 전력화 로드맵은 2024년 양산계약, 2025년 최종조립, 2026년 하반기 대량 양산 출고 및 전투적합 판정, 2026~2028년 초도 대대급 배치 순으로 짜여 있었다. 실제로 방추위는 2025년 3월께 '올해 20대·내년 20대' 방식의 1·2차 양산계약(20+20대)을 의결했고, 1조9000억원 안팎(1차 20대 기준 약 1조9000억원)의 초도 물량 계약이 체결되면서 사천 KAI 공장은 2025년 5월부터 양산 1호기 최종조립에 들어간 상태다.​ 이 기본 시나리오에서 2026년 연말로 잡혀 있던 '양산 출고식'을 10개월가량 당겨 2026년 3월 사천에서 여는 방향으로 급선회한 것이다. 업계에선 "양산 1호기·2호기를 포함한 초기 물량의 기체·엔진·전장 계통 신뢰성 검증이 예상보다 순조롭고, 공군의 F-4E 조기 퇴역·북한 핵·미사일 위협 고도화에 따른 전력 공백 우려가 일정 단축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2015년 개발 승인 이후 만 10년 만에 양산형을 내놓는 만큼, 대통령 참석을 전제로 한 '국가급 이벤트'가 될 것이란 전망이 업계에 확산되는 분위기다.​ KF-21 시제 1호기 출고식은 2021년 4월 경남 사천 KAI 본사에서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고, 그 자리에서 "2032년까지 120대 실전배치" 목표가 공개되면서 한국의 '8번째 초음속 전투기 개발국' 도약을 대내외에 과시한 바 있다. [사천=뉴스핌]문재인 대통령이 9일 경남 사천시 고정익동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서 열린 한국형전투기 'KF-21 보라매' 시제기 출고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2021.04.09 photo@newspim.com 내년 3월로 예고되는 이번 출고행사는 시제기가 아닌 '양산형 1호기'가 주인공인 만큼, 시제기 롤아웃 이후 약 4년 만에 현직 대통령이 다시 사천을 찾는 장면이 연출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아랍에미리트(UAE)를 포함한 중동 순방 과정에서 KF-21을 한국 방산 수출 패키지의 핵심 품목으로 전면에 내세우며, 향후 수출형 블록Ⅱ·블록Ⅲ 개발과 현지 공동생산·부품 협력 구상을 함께 홍보해 왔다. 대통령실과 국방부, 산업부 안팎에선 "양산형 출고식이 사실상 '수출형 보라매'의 첫 공개 무대가 될 수 있는 만큼, 대통령 주관 행사로 격상할 명분이 충분하다"는 기류가 감지된다.​ 현 시점에서 군·방산업계가 그리는 '3·6·9 시나리오'의 뼈대는 비교적 선명하다. 내년 3월 사천 출고식을 통해 양산 1호기를 공개하고, 6월까지 공군·방사청 공동의 전투적합 판정(전투운용능력 평가)을 마친 뒤, 9월 전후로 공군 작전부대에 초도 인도를 시작한다는 시간표다.​ KF-21 블록Ⅰ양산기는 2026년 상반기 대량 출고 이후 강릉 제18전투비행단과 예천 제16전투비행단에 각각 1개 전투비행대대(20대 안팎) 규모로 나뉘어 초도 배치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이어 2028년 이후 공대지·다목적 능력을 강화한 블록Ⅱ 80대는 횡성 제8전투비행단, 충북 지역 제19전투비행단 등으로 확산 배치돼 공군의 F-5, 구형 F-16 전력을 단계적으로 완전히 대체하는 계획이다. 지난 11월 5일 국산항공기 FA-50와 함께 비행하는 손석락 공군참모총장의 KF-21. [사진=공군 제공] 2025.12.09 gomsi@newspim.com KF-21 사업은 개념연구 착수(2000년대 초) 이후 예산·기술 이전 문제로 수차례 좌초 위기를 겪었지만, 2015년 개발 승인 이후 10년 만에 양산형 출고 단계에 진입했다. 방산업계에서는 "전투기 체계개발-양산-수출까지 독자 사이클을 돌리는 소수 국가 반열에 올랐다"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방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KF-21 양산형 출고는 단순히 새 전투기를 들여놓는 차원을 넘어, 한국이 10년 주기의 전투기 개발·개량 사이클을 스스로 설계해 가는 수준으로 성장했음을 보여준다"며 "2015년 개발 승인에서 2025년 양산 1호기, 2032년 120대 전력화로 이어지는 연표는 한국이 명실상부 '전투기 개발·수출국'으로 올라섰다는 증표"라고 했다. gomsi@newspim.com 2025-12-09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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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 조희대 대법원장 입건 후 사건 검토 [과천=뉴스핌] 김현구 기자 =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조희대 대법원장을 입건하고 본격적인 사건 검토에 들어갔다. 공수처 관계자는 9일 정례 브리핑에서 "(조 대법원장) 고발건은 한 두건이 아니다. 어떤 건은 수사 4부, 어떤 건은 1·3부 등에 있다"고 밝혔다. 오동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사진=뉴스핌DB] 공수처는 고소·고발이 접수되면 선별해 사건화하는 것이 아닌 '자동입건' 시스템으로 운영하고 있다. 다수의 고소·고발이 접수된 조 대법원장은 피의자 신분이 유력하다. 조 대법원장은 대선 후보 시절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파기환송하고, 윤석열 전 대통령 사건을 지정 배당했다는 의혹 등을 받고 있다. 아울러 공수처는 최근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대한 감사원의 '표적 감사 의혹' 수사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해당 사건은 최재해 전 감사원장과 유병호 전 감사원 사무총장(현 감사위원) 등이 2022년 전 전 위원장을 사직시키기 위해 특별 감사를 진행했다는 내용이다. 이와 관련해 공수처 수사1부(나창수 부장검사)는 지난 4일 감사원 운영쇄신태스크포스(TF)와 심의지원담당관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다만 공수처는 사건의 처분 시기 등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공수처 관계자는 "(처분 시기는) 수사팀이 결정할 문제이기 때문에 언제 (처분한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한편 공수처는 윤 전 대통령 사건을 심리하고 있는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술자리 접대 의혹' 수사도 진행하고 있다. 지난 5월 김용민 민주당 의원은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지 부장판사가 1인당 100만~200만원 정도의 비용이 나오는 고급 룸살롱에서 여러 차례 술을 마셨고 단 한 번도 돈을 낸 적 없다는 구체적이고 신빙성 있는 제보를 받았다"며 의혹을 제기하고 관련 사진을 공개했다. 이후 대법원 법원감사위원회는 해당 의혹을 심의한 후 "현재 확인된 사실관계만으로는 지 부장판사에게 징계사유가 있다고 판단하기 어려우므로, 수사기관의 조사 결과를 기다려 향후 드러나는 사실관계가 비위행위에 해당할 경우 엄정하게 처리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와 관련해 공수처는 사건을 수사3부(이대환 부장검사)에 배당했고, 수사팀은 최근 그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하는 등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공수처는 택시 앱 사용 기록 등과 달리 신용카드 사용 내역 등은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hyun9@newspim.com 2025-12-09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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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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