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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D 폴리티션 스토리](상) '기후전문가' 김소희 "어린 시절 꿈 파일럿, 유학 중 기후 관심"

기사입력 : 2025년02월18일 17:00

최종수정 : 2025년02월18일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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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신정인 기자 =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은 18일 방송된 정치인의 인생 여정을 돌아보는 뉴스핌 '폴리티션 스토리'에서 성장 과정과 꿈, 초선 의원으로서의 정치 생활 등을 소개했다. 

김 의원은 이날 '뉴스핌 TV'를 통해 공개된 폴리티션 스토리에서 "어린 시절에는 파일럿이 꿈이었다. 세계를 돌아다녀 보고 싶었다"며 "중간에 포기 했지만 대학교 졸업하고 나서도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 세계는 정말 많이 돌아다녔다"고 회상했다.

이어 "오래 공부를 하면서 전공에 고민을 많이 했는데 2008년에 영국에서 기후법을 만들고 기후대응을 본격적으로 하더라"라며 "지속가능한 개발이랑 기후는 떼려야 뗄 수가 없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학 시절) 한국에 돌아가서 기후 관련 시민단체나 NGO가 있으면 공부를 해봐야겠단 생각이 들었고 마침 그때 이명박 정부도 녹색 성장이라는 드라이브를 걸어서 글로벌 트렌드가 비슷하게 맞았다"고 했다.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 [사진=뉴스핌 DB]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 의원은 덕성여대 영문과, SOAS 런던대학교 개발학 석사를 거쳐 서울대 농생명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를 수료했다. 김 의원은 비영리 민간 단체 '기후변화센터' 사무총장과 한국신재생에너지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이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에 기후 전문가로 영입, 국민의미래(국민의힘 위성정당) 비례대표 7번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다음은 김 의원과의 폴리티션 스토리 인터뷰 전문이다. 

-(신정인 기자, 이하 신 기자) 한 정치인의 인생 궤적을 돌아보는 폴리티션 스토리 시작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진행을 맡은 뉴스팀 신정인 기자입니다. 오늘 함께 진행을 맡아주실 최연혁 교수님 모셨습니다.

-(최연혁 교수, 이하 최 교수) 네, 반갑습니다.

-(신 기자) 오늘은 국민의힘 김소희 의원님 모시고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의원님 안녕하세요

▲(김소희 의원, 이하 김 의원) 안녕하세요. 여기서 보니까 더 반갑네요.

-(신 기자) 네, 저도요. 의원님 근황부터 여쭐게요. 시간이 되게 빠른 것 같아요. 벌써 2월인데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김 의원) 매일 뉴스가 있어서 그 뉴스를 보면서 요즘만큼 헌법에 대해서 찾아보는 시간도 없는 것 같고 저는 어쨌든 법을 공부했던 사람이 아니다 보니까 어떤 기사에서 그런 내용이 나오면 좀 찾아보게 되고 이것저것 양쪽의 의견들을 좀 찾아보게 되는 헌법을 공부하는 일부는 그렇고요.

그리고 글로벌 정세가 워낙 왔다 갔다 하니까 그리고 저는 이제 기후를 공부하다 보니까 트럼프 2기 정부에 대해서 트럼프 정부 시작하고 90일이 제일 중요한데 그 90일 사이에서 나오는 그런 정책들을 좀 보면서 준비는 해야겠더라고요.

그리고 저는 이제 우리 당 안에서 AI 3대 강국 도약 특위도 하고 있어서 제가 생각하기에는 미래 먹거리가 AI고 그리고 국가 차원에서 가장 대비를 해야 되는 게 기후인데 이 두 가지 기후랑 AI 쪽에서는 워낙 업데이트되는 속도가 빨라서 그거 따라가기도 힘든 상황입니다.

-(신 기자) 제가 찾아보기로는 의원님께서 이제 덕성여대에서 영어 영문학을 전공하시고 그 사이에 텀이 좀 있다가 영국 소아스 런던대에서 개발학 석사를 하셨는데 혹시 뭐 그 사이에는 좀 어떻게 지내셨었는지

▲(김 의원) 제가 이제 뭐 중고등학교 때 영어 하는 거 되게 좋아해가지고 저는 영문학과나 영어 관련된 학과를 가고 싶다 이런 꿈이 있었고 그 공부를 하고 나서 영어를 쓰면서 그 세계를 돌아다니는 직업이 없을까. 보통 저랑 같은 이제 제 동기들은 그 때 영문과는 대부분 이제 그래도 취직이 좋았어요.

대기업이나 외국계 은행이나 영어 쓰는 곳은 취직이 잘 되는데 저는 그런 데 말고 약간 세계를 돌아다니는 직업 뭐 이런 걸 하고 싶어서 찾던 중에 이제 지도교수님 소개로 플랜 인터네셔널이라고 그 개도국의 빈곤 퇴치를 지원하는 인터네셔널 단체가 있었습니다.

거기에 지원을 해서 여러분 잘 아시는 것처럼 유니세프나 월드비전처럼 이제 개도국에 가서 빈곤 퇴치 활동을 하는 그런 활동을 거의 이제 9년 조금 넘게 하면서 직업 덕분에 이제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이렇게 약간 오지 같은 데를 굉장히 많이 다녔고. 다니다 보니까 '아 이 나라들은 왜 계속 가난할까' 이거를 이론적으로 정립해 놓은 학문이 있을 텐데 실제로 거기서 이제 캠페인을 하거나 구호 사업을 하거나 개발 사업을 하는 거 말고 약간 이제 지식적으로 정립된 거를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9년 정도 일하니까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 경력을 바탕으로 어느 나라가 제일 유명할까 이 대학으로 그랬더니 이제 플랜 인터내셔널 본부가 영국에 있었어요. 그래서 영국 친구들한테 물어보니까 '우리나라가 제일 유명해' 하면서 몇 군데 학교를 추천해 줬었는데 그때 이제 맨체스터랑 런던에 있는 대학교를 추천해 줬는데 둘 다 어플라이를 했는데 됐어요.
근데 이제 런던에 좀 살아보고 싶어서 런던 소아스를 가게 됐습니다.

-(최 교수) 거기서 몇 년 보내셨어요?

▲(김 의원) 석사 과정은 1년인데요. 1년 만에 끝내긴 하는데 저는 조금 더 있고 싶어 가지고 그걸 끝내고 이제 오픈 유니버시티라고 해서 그 과정도 추가로 좀 더 들었고. 실은 이제 가족이 다 같이 가서 저는 석사를 마치고 오픈 유니버시티 할 동안 이제 남편이 이제 또 석사를 해가지고 거의 2년 반 정도 있었습니다.

-(신 기자) 양육하고 사실 공부를 그것도 타국에서 좀 병행하기가 어려우셨을 것 같은데

▲(김 의원) 지금 하라고 그러면 못할 것 같긴 한데요. 근데 이제 마침 제 친 여동생이 그냥 디플로마 정도 수준으로만 하겠다고 해서 애를 같이 봐줬고. 약간 네이티브가 아니니까 힘들더라고요. 거의 학교에서 12시까지 있었나. 밥 먹이고 하는 건 동생이 거의 봐줬고요. 그렇게 해서 이제 간신히 근근히 정말 인텐시브 한 과정이더라고요. 석사가 1년이다 보니까 읽어야 될 아티클도 되게 많고 그런데 또 친구들이 도움을 좀 많이 줬어요.

보통 유럽 친구들은 이제 학부를 끝내고 바로 석사를 하는 과정이 많은데 저는 거의 경력이 10년 있는 상황에 결혼까지 가서 애까지 데리고 오니까 그 친구들이 오히려 저한테 이제 막 정리된 노트도 '야 이거 이거 보고 해' 뭐 약간 이런 식으로 하고 세미나 할 때도 이 아티클을 약간 서머리 한 것들을 제 속도가 좀 느리니까 그런 것들도 품앗이로 많이 도와줘서 근근히 땄습니다.

-(신 기자) 근데 그렇게 열심히 또 보내시고 귀국하셔서도 서울대 이제 농생명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또 수료를 하셨잖아요.

▲(김 의원) 그게 또 사연이 있죠. 네 저희가 제가 이제 빈곤 퇴치를 오래 하면서 이제 공부를 하면서 나의 전공은 뭘로 할까 정말 빈곤 분야로 해야 되나 아동 분야로 해야 되나 여성 분야로 해야 되나 워낙 개발학 쪽에 그런 쪽이 많은데 그때 제가 2007년에 공부를 해서 2008년에 졸업했는데 2008년에 영국에서는 기후 쪽으로 굉장히 드라이브를 많이 걸어서 플라이밋 액트라고 해서 기후법을 만들었고 기후 대응을 굉장히 본격적으로 했습니다. 그게 신문에 매일 나왔거든요.

보다 보니까 아 이게 그 지속가능 개발이랑 기후는 약간 뗄래야 뗄 수가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거기서 제가 '전공을 좀 바꿔봐야겠다' 해서 한국에 돌아가면 기후 관련된 이제 이런 시민단체나 NGO가 있으면 거기서 공부를 하면서 좀 해봐야겠다 하는 생각이 좀 들었고 마침 그때가 이명박 정부가 시작할 때였고 이명박 정부도 녹색 성장이라는 드라이브를 걸어서 글로벌 트렌드가 좀 비슷하게 맞았어요.

그래서 제가 영국에서 이제 서치를 하니까 기후변화 센터라고 있더라고요. 기후 관련된 단체가 있어서 거기에 이제 어플라이 해서 10년부터 이제 다니기 시작했는데 개발학이라는 학문이 정치경제학이거든요.

근데 기후가 단순히 그냥 우리가 아는 이제 오염 물질을 하는 환경 문제가 아니고 정치 경제더라고요. 그래서 모든 기후 문제에 대해서 경제학자들이 만든 그리고 법학자들이 만든 그리고 경제학이 베이스가 된 시장 메커니즘 제도가 메인이더라고요.
그래서 '나 경제학을 좀 공부해 봐야겠다'. 그래서 어쨌든 개발학기 정치 경제라서 그때 들었던 생각을 좀 가지고 경제학을 도전을 했어요.

이제 기후의 그 메커니즘을 좀 알고 싶어서 이거를 어쨌든 경제학에서 시장 실패의 대표적인 사례가 환경 이슈잖아요. 환경 이슈를 이제 경제학적으로 어떻게 풀어낼지 그 해결책이 다 경제학에 있다라고 생각해서 했는데 너무 어렵더라고요.

직장을 다니면서 경제학 박사 과정 8년 만에 수료했습니다. 다니면서 하느라고 실은 도움이 되게 많이 됐습니다. 기후 대응 활동하면서.

-(신 기자) 다양한 분야를 오랫동안 공부 하신 만큼 어린 시절에도 다양하게 관심이 많으셨을 것 같은데 혹시 꿈은 무엇이셨는지.

▲(김 의원) 그게 좀 연결된 것 같긴 한데 저는 약간 파일럿이 꿈이었어요. 이유는 되게 단순합니다. 이제 세계를 돌아다녀보고 싶어 가지고 이제 운전하고 뭐 하는 과정들이 굉장히 어렵더라고요.
그리고 이제 공대를 가야 되고 여러 가지를 했는데 저는 문과적 머리지 이과적 머리는 전혀 아니더라고요. 중간에 포기는 했지만 어쨌든 정말 세계는 많이 돌아다녔습니다. 그 꿈은 계속 쭉 갔던 것 같고 대학교 졸업하고 나서도 일단 나는 우리나라 말고 다른 나라를 좀 돌아다녀 보고 싶다라고 해서 직업 선택도 그렇게 했기 때문에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이런 데 많이 다녔죠 지금 가라고는 못 갈 것 같아요.

그때는 약간 그 뭐에 취한 것처럼 홀린 것처럼 그런 오지를 가고 막 뭐 이제 씻지도 못하고 뭐 이렇게 약간 텐트 치고 자고 그래도 아 이런 데서 사람이 살면서 이렇게 해먹고 있구나라고 그거를 느끼면서 이걸 어떻게 지원해 주지 이런 고민이 들었는데 이제 나이가 들고 나니까 이제 힘들어서 못 갈 것 같습니다.

-(최 교수) 저는 정치인의 정치 심리를 좀 이렇게 보고 있는데요.
아마도 그 세계적으로 다니면서 다양한 그런 체험과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는 그런 어떤 그 마음이 생기게 된 것도 어쩌면 부모님의 역할일지 아니면 어떤 자연스러운 계기가 있어서 어떤 분의 영향을 받았든지 책을 읽었든지 뭔가 있을 것 같은데요.

▲(김 의원) 저는 부모님의 영향이라고 보고 저희 부모님이 어디 돌아다니시는 거 되게 좋아하세요. 여행 가는 거 되게 좋아하시거든요.
그래서 틈만 나면 주말에 이제 차로 이제 진짜 국내를 가시거나 섬을 가시거나 뭐 이렇게 하고 국내 여행을 하면서 그 시간을 보내면서 뭔가 이렇게 어디 돌아다니는 거를 그때 너무 자연스럽게 깨달은 거, 약간 습득한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좀 들고 지금도 여행 다니는 거 굉장히 좋아합니다.

틈나는 대로 어디 그냥 잠깐이라도 뭐 근교라도 기차 타고 하는 거 뭐 이렇게 머리 식히기 위해서 그렇게라도 합니다. 갑자기 이렇게 있다가 그냥 춘천 한번 갔다 올까 그래서 춘천 기차 타고 가서 그 근처에서 이제 카페에서 산 보다가 다시 기차 타고 오고 뭐 그런 것도 종종 합니다. 그게 아주 약간 익숙하게.

-(신 기자) 의원님께서 좀 이전과 비교했을 때 좀 정치 경험을 통해서 스스로 가장 크게 달라졌다고 느끼는 점이 어떤 게 있을지.

▲(김 의원) 저희 의원총회 진짜 많이 하잖아요. 그렇죠 의원총회 하면 '와 이렇게 다양한 생각을 가지신 분들이 계시는구나.' 이제 제가 어떤 정책을 하나 할 때 저는 민주당만 설득하면 될 줄 알았거든요. 아니더라고요. 당 내에서도 우리 다선 의원님들 다선 의원님들의 힘을 빌려야겠다 생각하면 저분은 MBTI가 뭘까 그런 것부터 시작해서 그 사람을 좀 연구하게 되더라고요.

왜 저분은 저런 생각을 하시게 됐을까 저런 상황에서 그게 지역적 특성인가 아니면 공부했던 영향 때문인가 그러면서 이제 나무위키를 의원님들 것 좀 찾아보면서 공부를 하면서 의원님한테 이 법안을 어떻게 설명할 때 가장 와닿으면서 '이 어려운 내용들을 설득시켜서 내 법안을 상임위에 올려주실까' 뭐 이런 내용도 동시에 생각을 하게 되고 '저렇게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설득하는 게 정치겠구나 그리고 싫어도 봐야 되는구나.'

제가 시민단체 때는 저랑 생각이 안 맞거나 아니다 싶으면 그냥 저는 사업도 안 했어요. 사업도 안 하고 솔직히 만나지도 않았고 내가 무슨 아까운 시간을 들여가면서 나랑 생각도 안 맞는 사람을 만나 약간 이랬는데 이쪽은 그게 아니고 이 안에서도 100여 명 안에서도 이렇게 생각이 다르면 정말 우리 국민들 생각이 다 다를 텐데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설득해서 가져가려면 '와 나는 진짜 이 설득과 이거를 이해하는 그 과정에 대한 트레이닝이 필요하겠구나'라는 그런 생각들을 지금 계속하고 있습니다.

-(신 기자) 성향이 조금 많이 달라지셨을 것 같은데

▲(김 의원) 아니 그게 달라지지는 않아요. 그냥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최 교수) 설득을 할 때 잘 안 되시는 분들도 있을 거고 또 마음이 좀 잘 맞아서 같이 또 법안도 같이 내는 분들도 있을 텐데 어떻게 대처하시는지요

▲(김 의원) 생각은 달라도 그냥 인간적으로 친해지면 그래도 조금 영향을 미치더라고요. 그냥 완전 다른 사람이 그 정치적 성향이든 뭐든 다 다른데 그 인간적으로 뭐 어떻게 지내셨어요?

뭐 한 번 더 하고 뭐 의원실 방에도 한 번 더 찾아가고 이렇게 약간 대면으로 이렇게 접촉을 좀 늘려가면 그 인간적인 면이 쌓여가지고 영향을 조금씩 미치는 것 같아요.

지금은 1년이 안 되지만 제가 이렇게 되면 한 2 3년 좀 노력하면 그래서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하는 것 같아요. 왜 의원들이 앞에서는 이제 상임위에서는 막 싸워도 뒤에 가면 "아 왜 이러셨어요?" 하면서 그렇게 친하게 하는 것도 저게 어떻게 가능하지 하는데 국감하다 보니까 가능한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 당 의원님들하고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아요. 한 분 한 분 만나면 다 괜찮으신 분들이세요. 그런데 이제 어떤 굉장히 중요한 사건에 대해서 당신이 살아왔던 경험치가 다르고 당신이 보고 왔던 그런 인생사가 다르니까 그런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정은 저랑 항상 일치할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그거를 이제 다른 측면으로 좀 어떻게 접촉면을 다르게 좀 가져가는 방법밖에는 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안 바꾸세요. 그래도 뭐 싫은 소리를 안 하는 거 그러니까 상임위에서 "이건 절대 안 돼" 이렇게 말씀 안 하시는 것만으로도 저는 도와주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최 교수) 당내 뿐만 아니라 야당 의원들과도 만나서 이렇게 툭 터놓고 얘기하시는 분들도 많이 있으십니까?

▲(김 의원) 오히려 이제 야당 의원들하고 좀 더 친한 의원들은 이제 뭐 이소영 의원이나 박지혜 의원은 워낙 기후 쪽이어 가지고 그냥 여기 이쪽 국회에 들어오기 전부터 좀 친했고요. 젊은 층에 있는 의원님들은 여야 할 것 없이 좀 자주 보는 편입니다. 편한 자리. 우리끼리라도 이제 여야 대통합을 한번 해보자 이런 극단의 정치 말고 우리끼리라도 좀 한번 해보자.

-(신 기자) 국회 입성 전까지 기후변화센터에서 사무총장까지 역임하시고 한국신재생에너지학회에서 또 부회장까지 맡으셨는데 이제 주로 기후 위기 대응과 관련해 활동해 오시면서 가장 중점으로 뒀던 부분이 어느 부분인지

▲(김 의원) 기후변화 문제가 지금은 이제 환경단체들이 이제 북극곰을 보여주고 막 펭귄 보여주고 이제 그런 그런 이슈를 통해서 감성적으로 접근을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기후는 공부하면 할수록 그 기후 변화를 일으키는 원인이 온실가스 잖아요. 온실가스는 우리가 에너지를 태우면서, 화석연료를 태우면서 발생을 하는 거고 그 화석 연료를 태우는 모든 과정은 산업 활동이랑 연관이 돼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이게 그냥 단순히 이제 환경을 보호하는 그런 차원의 문제는 아닌 거예요.

기후 대응은 한 나라가 성장을 하려면 공장을 돌리든 뭘 하든 에너지를 써서 경제 성장을 해야 되는데 이 경제 성장을 하면 필연적으로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밖에 없는. 국가의 리더로서는 우리는 계속 성장할 겁니다 하는데 그러면 온실가스는 어떻게 줄이지? 뭐 이런 부분이 계속 교차되는 굉장히 복잡다단한 이슈인데 이걸 너무 단순하게 감성적으로만 접근하는 거 아닌가 하는 그런 그런 고민들이 되게 많았고요.

그래서 이 과정들을 좀 에너지 문제나 뭐 이런 경제 산업 전반에 걸쳐서 좀 얘기하고자 얘기하고 싶었고요. 단순히 이제 뭐 물 오염, 토양 오염 하고는 기후 변화는 원인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접근을 해야 되고 기후변화 문제야말로 글로벌 이슈인데 글로벌 차원에서 우리나라가 국력과 국익과 이걸 지키면서 국격을 동시에 어떻게 지킬 수 있느냐 그 밸런스를 어떻게 찾아가느냐 이게 진짜 고민해야 될 지점이더라고요.

환경단체가 왜 이걸 온실가스를 안 줄입니까? 뭐 이렇게 단순히 요구하는 거랑은 정말 다른 차원의 문제인데 그걸 앤서니 기든스라는 사회학자가 굉장히 중요하게 얘기했는데 그런 부분들을 전달하고 싶었는데 이게 좀 어렵더라고요. 근데 그 전달하는 목소리를 내는 거를 14년 동안 했는데 잘 안 되더라고요.

-(최 교수) 뭐가 안 됐다는 말씀이시죠?

▲(김 의원) 국민들한테 인식시키는 거. 이 기후변화 문제가 다 중요하다고 지금은 아시지만 이게 지금 당장의 내 삶을 바꾸려고 행동을 액션으로 옮기는 그 인식과 액션의 갭을 줄이는 거 그것도 좀 어렵고 국가 차원에서 정책을 마련해가지고 기후 대응에 예산을 좀 더 쓰게끔 해야 되는데 그게 아니라 예전 거에 그냥 화석연료 기반의 그런 산업에 아직 더 그쪽은 지금 아직도 수익이 나오니까 거기에 투자를 해서 그냥 그 현상을 유지하려고 하는 그 심리 그거를 이렇게 시프트 하려는 뭐라고 해야 되지 유도해야 되는 그 목소리를, 그거를 바꾸려고 하는 시도가 시민단체로서는 한계가 좀 있더라고요.

-(최 교수) 그것이 어떻게 보면 시민들이 인식의 부재입니까? 아니면 교육의 부재일까요?

▲(김 의원)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는 거는 소득 수준이 2만 불이 넘어가면 관심을 갖는 이 경제학에서 분석이 된 그 쿠츠네츠의 곡선이 있습니다. 그 전에는 환경 문제에 관심이 없습니다. 먹고 사는 거에 관심이 더 많고요.

그때는 오염 물질을 배출하든 말든 내가 지금 당장 먹고 사는 게 훨씬 더 중요해 그래서 우리가 예전에 돌이켜 보면 1960 70년대 80년대 막 할 때는 그냥 공장에서 매연 다 뗐습니다.

그 회색 연기가 나와도 '우리가 이걸로 잘 먹고 잘 살 수 있으니까 괜찮아' 그때는 '사람이 목숨을 잃어서라도 우리가 성장을 하면 다행이야' 뭐 이렇게 했는데 그게 소득 수준이 2만 불이 넘어가면 나의 삶의 질에 대해서 환경 서비스 더 나은 환경 서비스 더 괜찮은 공기질 더 깨끗한 물 뭐 이런 거에 대한 인식이 바뀌거든요.

근데 그런 인식의 변화 그러니까 선진국으로 갈수록 기후나 환경 문제에 더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되는 그런 지점도 있고요. 동시에 예전의 환경을 보존해야 되는 환경 교육과 기후변화 문제가 에너지, 산업, 경제랑 연결돼 있다는 이런 교육의 문제의 그 계리의 차이도 좀 있는 것 같고 정책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화석연료 베이스로 아직도 우리는 성장하고 싶은 생각이 더 드는데 그 화석 연료 베이스로 지금도 잘 먹고 잘 사는데 이거를 좀 저탄소로 옮기는 데 비용도 많이 들고 뭐 노력도 많이 해야 되고 약간 그거에 주저주저하는 이 터닝 포인트를 만들어내는 그 한 방. 근데 그거는 시민들의 요구가 더 있거나 아니면 정치권이 더 움직여주거나 뭐 이런 부분들이 다 합이 맞아야 되는데 그게 아직 없는 거. 뭐 이런 여러 가지 삼박자들이 좀 가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예전보다는 10년 전보다는 기후변화 문제에 국민들의 관심이 지대해진 건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국민의 힘이 저를 뽑지 않았겠습니까?

allpass@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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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문의 화랑담배] 제2회 광복군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1940년 9월 17일 중국 중경 가릉호텔에서 성대한 행사가 열렸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창설식이었다. 미국 한인 동포들이 보내온 돈 4만원으로 조직한 군대였다.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20억 원 정도 된다. 총사령관 이청천 장군, 참모장 이범석 장군, 제1지대장 이준식, 제2지대장 고운기, 제3지대장 김학규, 제5지대장에 나월환을 임명했다. 지대장은 지금의 사단장에 해당한다. 모두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를 비롯하여 남북 만주에서 전개된 항일무장투쟁에 직접 참여하여 활동한 독립군 출신이었다. 한국광복군 훈련반 제1기 졸업사진. [사진= 독립기념관] 임시정부 주석 김구는 포고문을 통해 "국내외 동포들에게 알립니다. 1940년 9월 17일부로 대한민국 광복군을 창설하였습니다. 광복군은 1907년 8월 1일 일제가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한 날이 바로 광복군 창설일임을 선언합니다. 광복군은 구 한국군의 후신으로 33년간에 걸친 의병과 독립군의 항일무장투쟁을 계승한 전통 무장 조직입니다"라고 했다. 대한제국 국군-의병-독립군의 군맥(軍脈)과 군혼(軍魂)을 분명하게 잇고 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부대 편성은 소대, 중대, 대대, 연대, 여단, 사단 6단으로 편성하였다. 총 3개 사단을 조직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인원이 적은 상황에서 우선 지대를 만들고, 각 지대를 구대와 분대로 연계한 전투부대를 구성했다. 임시정부에서 1940년 9월 19일 중국 국민당 정부에 통보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직원 명단'에 의하면, 부대 규모가 총사령부와 4개 단위부대, 여기에다 조선혁명군 부대까지 포함하여 5000여 명이었다. 임시정부에서는 1941년 12월 연합국의 일원으로 일본에 선전포고했다. 1942년에는 미국 측에 "미국이 제주도를 해방 시켜 주면, 중경에 있는 임시정부를 제주도로 옮긴 후, 광복군이 미군과 함께 한반도 상륙작전을 전개하겠다."라고 제안하였다. 이 제안은 실제로 미국 OSS 부대(지금의 CIA)와 1945년 4월부터 8월까지 강도 높은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했다. 주요 훈련은 3개월 기간에 고공낙하, 암살법(권총에 특수장치를 하여 소리 없이 암살하는 방법), 통신(암호의 작성 및 해독법, 무전기 조작 및 수리), 교란 행동, 정보수집, 폭파 등 이었다. 일과는 07:00∼12:00 오전 훈련, 13:00∼18:00 오후 훈련, 19:00∼22:00 야간 훈련이었다. 주요 임무는 대한민국으로 낙하산과 잠수함으로 침투하여 미 공군 공습에 필요한 지형 등의 정보를 제공하고 일본군 군사시설 탐지 및 파괴 지하 유격대를 조직하여 연합군 상륙작전 시 제2선에서 연결하는 작전이었다. 마침내 1945년 8월 7일 모든 훈련을 마치고 국내진공작전 출정식을 개최했다. 개시일은 8월 10일이었다. 출정식 때 장준하 경기도 공작 반장은 "나는 조국광복을 위해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내가 나의 죽음을 지불하면, 내 능력껏 그 대가가 조국을 위해서 결제될 것입니다. 나의 각오는 한 장의 정수표입니다. 발생인은 장준하, 결제인은 조국입니다"라는 유서까지 작성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2025-09-0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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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이시바' 누구?...고이즈미·다카이치 선두 [서울=뉴스핌] 오영상 기자 =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자민당 총재직 사임을 공식화하면서, 일본 정국의 관심은 차기 자민당 총재 선거로 쏠리고 있다. 집권당 총재가 곧 총리직을 맡는 일본 정치 구조상 이번 총재 선거는 사실상 다음 총리를 뽑는 절차다. 자민당은 조만간 새로운 총재 선거 일정을 확정할 예정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지난 2024년 9월 총재 선거에서 이시바 총리와 경합했던 주요 인사들이 다시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담당상,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 모테기 도시미쓰 전 간사장,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담당상 등이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정국 운영이 소수 여당이라는 제약 속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차기 총재가 야당과 어떻게 연대할지, 어떤 연립 구도를 짤지가 최대 쟁점으로 꼽힌다. '포스트 이시바' 후보로 꼽히고 있는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농림수산상 [사진=로이터 뉴스핌] ◆ 고이즈미·다카이치 선두권 현재 여론조사에서는 고이즈미 농림수산상과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이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지난달 29~3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차기 총리에 적합한 인물로 다카이치가 23%, 고이즈미가 22%를 기록했다. 나란히 1, 2위다. 자민당 지지층으로 한정하면 고이즈미가 32%로, 다카이치(17%)를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카이치는 2024년 총재 선거에서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으나 결선에서 이시바에게 역전패했다. 고이즈미 역시 의원 표에서 선두에 올랐지만 당원 표에서 밀리며 결선에 오르지 못했다. 두 사람 모두 당내 기반과 대중적 인지도를 겸비해 차기 선거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주자들이다.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1981년생(44세)으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차남이다. 2009년 중의원 첫 당선 이후 줄곧 '포스트 아베', '차세대 리더'로 주목받았다. 환경상, 농림수산상을 거쳤으며 개혁 성향과 젊은 이미지로 지지층을 넓혔다. 2024년 총선에서 당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으나 참패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이후 농림수산상으로 복귀해 쌀 유통 개혁 등 농정 개혁에 매진했다. 대중적 인지도와 '고이즈미 브랜드'라는 정치 자산이 최대 강점으로 꼽힌다.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은 1961년생(64세)으로 보수 강경파로 분류되는 여성 정치인이다. 2021년 총재 선거에 첫 도전해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전폭적 지원을 받으며 3위를 기록했다. 2024년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최다 득표(의원 72표, 당원 109표)를 얻었으나 결선에서 이시바 총리에게 역전 당했다. 유일한 여성 후보로서 '보수의 아이콘' 이미지를 갖고 있으며, 아베 전 총리와 가까웠던 의원 그룹이 주된 지지 기반이다. 이시바 정권에서 당직 제안을 거절하며 독자 노선을 유지해 왔다. '포스트 이시바' 후보로 꼽히는 다카이치 사나에 전 일본 경제안보담당상 [사진=로이터 뉴스핌] ◆ 하야시·모테기 등 잠룡도 주목 고이즈미와 다카이치 두 선두 주자 외에 잠룡들의 행보도 주목된다.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옛 기시다파 일부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이시바 정권의 2인자로서 존재감을 키워왔다. 모테기 도시미쓰 전 간사장은 당내 경험과 풍부한 인맥을 강점으로 삼고, 아소 다로 전 부총리와 교류를 통해 지지 기반을 다지고 있다.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담당상은 5선 의원으로, 동기 의원들과 옛 니카이파의 지원을 받으며 출마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 총재 선거 이후에도 정국 '안갯속' 자민당 총재 선거는 국회의원 표와 당원·당우 표를 합산하는 방식이 원칙이지만, 긴급 시에는 국회의원과 지방 지부 대표만 투표하는 '양원 의원 총회' 방식으로 대체될 수 있다. 이 경우 의원 표의 비중이 커져 파벌 역학이 중요해진다. 차기 총재가 선출되더라도 곧바로 정권 안정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일본 헌법상 총리는 국회에서 지명되는데, 자민·공명 양당은 현재 중의원과 참의원 모두에서 과반을 잃은 상태다. 따라서 야당이 단일 후보를 세워 결집할 경우, 자민당 총재가 총리로 지명되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자민당 총재가 총리에 오르더라도, 예산안·세제 개혁 법안 등 국정 운영은 야당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차기 총재는 곧바로 '연립 확대'나 '정책 연대'를 추진할 수밖에 없고, 총재 선거 과정에서도 어떤 야당과 손을 잡을지가 핵심 화두가 된다. 결국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는 단순히 차기 지도자를 뽑는 절차를 넘어, 일본 정치가 다당제 속에서 어떤 연립 구도를 구축할지 시험대가 되는 분기점으로 평가된다. goldendog@newspim.com 2025-09-08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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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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