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조민교 기자 = "이번 일이 일어나기 직전에 홈플러스에서 대규모 희망퇴직을 받았대요. 엄마가 그때 나갈까 고민하시다가 그냥 남기로 했다는데 이번에 사태 터지고 집에서 울고불고 난리가 나셨더라구요. 이러다가 짤리면 어떡하냐고...그냥 그때 그만둘걸...그러시면서요"
홈플러스 사태를 취재하다보면 작년 티메프 사태가 자꾸 떠오른다. 최고온도가 37도를 찍은 여름날, 티몬 본사 앞에는 울며 불며 '내 돈 내놔'를 외치는 시민들이 운집했다. '언제 돈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느냐'고 그들에게 물으면서도 밀린 환불, 지연된 정산 대금은 절대 지급되지 않을 것 같았고, 그 생각은 현실이 됐다.
용산 전자상가 업체들은 티메프 사태로 줄도산을 했다고 한다. 피해 업체를 취재하기 위해 들렀던 여름날 용산 전자상가가 아직도 생생하다. 문짝도 없이 가리개로 나뉘어진 매장 안에서 사장님들의 꺾인 머리가 불쑥 불쑥 솟아있었다. 하나같이 꺼질 듯한 한숨을 쉬며 땅만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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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부 조민교 기자 |
바람이 불고, 계절이 바뀌고, 티메프는 잊혀졌다. 나 또한 쏟아지는 다른 이슈들 속에서 후속 기사를 챙길 여력이 없었다. 한때 정부가 '정산 대금 기간 조정', '에스크로(제3자 금융 예치제)' 도입을 논의했지만 흐지부지됐다. 이슈 때만 모이는 나같은 사람들이 우르르 지나간 자리에는 돈을 받지 못해 망한 이들의 울음소리만 남았다.
홈플러스 사태는 시작이 '소문'이라는 점에서 티메프와 닮았다. '기업회생'이라는 단어 하나에 실체 없는 불안이 빠르게 퍼졌다. 가장 먼저 발을 뺀 건 대형 협력사였다. 굵직한 식품업체들이 줄줄이 거래를 중단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이틀이었다.
피해는 또 아래에서부터였다. 점포가 매각될까 우려하는 소비자들, 고용 불안을 느끼는 직원들, 대금 지연으로 흔들리는 중소상공인들.
중소상공인들은 대기업처럼 쉽게 발을 뺄 수도 없다. 홈플러스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취재 중 만났던 한 빵집 사장님의 눈빛이 떠오른다. "대금을 못 받았다"는 말은 했지만, 속사정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지는 못했다. 당장 장사는 잘되지만, 받지 못한 돈이 있어 마음을 놓을 수도 없는 혼란스러움이 가득한 눈빛이었다.
티메프 때와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납품업체들은 홈플러스의 납품 대금 정산 주기가 길어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홈플러스는 대금을 포함한 상거래채권 지급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당장 홈플런이 끝나고 현금이 줄어 유동성이 악화되면 상황은 급속도로 악화될 수 있다. 오아시스 인수 소식에도 '돈 줄거라는 기대도 없다'는 티몬 셀러들의 현실이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
왜 정부는 진작 대금 주기를 손보지 않았을까. 이제 와서 목소리를 높여봐야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지금은 책임 소재조차 불분명하다. 정치적 이슈가 휘몰아치는 상황에서 대금 정산 단축 입법이 이뤄지기는 어렵다. 이 소용돌이가 지나가고 나면, 또다시 잊혀질 것이 뻔하다.
희망퇴직 기회를 놓친 어머니, 대금을 받지 못한 빵집 사장님은 어쩌면 티메프 때처럼 땡전 한 푼 못받고 버려질 수 있다. 흔들리는 기업 앞에서 발 붙일 힘이 없어 가장 먼저 나가떨어지는 이들. 그들을 위해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지 돌이켜봐야 할 때다.
mkyo@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