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HBM4 12단 샘플 선 공개...주도권 이어간다
삼성전자, 과거 실수 반복 않겠다며 하반기 양산에 사활
엔비디아 차세대 AI칩에 HBM4 활용 전망...양사 경쟁 심화
[서울=뉴스핌] 서영욱 기자 = 자존심 회복에 나선 삼성전자와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SK하이닉스가 차세대 고대역폭 메모리(HBM) 시장을 놓고 다시 한 번 격돌한다.
SK하이닉스가 세계 최초로 'HBM4' 12단 샘플을 고객사에 공급하며 시장을 선점하려는 가운데, 삼성전자는 '과오를 반복하지 않겠다'며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엔비디아가 최근 공개한 차세대 인공지능(AI) 칩 '루빈(Rubin)'이 본격적으로 HBM4를 활용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양사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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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차세대 고대역폭 메모리(HBM) 시장을 놓고 다시 한 번 격돌한다. [사진=AI 제작] |
◆SK하이닉스, HBM4 먼저 공개...칼 갈고 있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지난 19일 "세계 최초로 HBM4 12단 샘플을 고객사에 공급했다"고 발표했다. HBM3 대비 대역폭과 용량을 크게 늘린 차세대 메모리로, AI 연산 성능을 한층 더 강화할 수 있는 제품이다.
하반기 내 양산 준비를 마무리해 차세대 AI 메모리 시장에서의 입지를 굳건히 하겠다는 전략이다. SK하이닉스의 HBM4는 FHD급 영화(5GB) 400편 이상 분량의 데이터를 1초 만에 처리하는 수준으로, HBM3E 대비 속도가 60% 이상 빨라졌다.
SK하이닉스는 지난 HBM3 시장에서 50% 이상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엔비디아를 비롯한 주요 AI 반도체 업체들의 신뢰를 얻었다. 반면 삼성전자는 현재 엔비디아에 HBM3E 8단과 12단 제품의 품질검증(퀄테스트)을 진행 중이다. 올 2분기나 늦어도 하반기에는 엔비디아에 납품이 가능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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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 HBM4 12단 샘플 [사진=SK하이닉스] |
전영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은 지난 19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올해 빠르면 2분기, 늦어도 하반기부터 HBM3E 12단 제품으로 빠르게 AI D램 시장을 전환시켜 고객 수요에 맞춰 램프업(생산량 확대) 시킬 예정"이라고 말했다.
HBM3와 별개로 삼성전자도 차세대 제품인 HBM4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전영현 부회장은 "작년에 있었던 HBM3와 같은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계획대로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며 올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철저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 부회장은 "특히 AI 반도체 시장에서 초기 대응이 늦어지면서 주력 메모리 제품의 수익성 개선이 더딘 점이 주가 부진의 주요 원인"이라며 "예상되는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내부 제품 완성도를 강화하고 그다음에 작년 말에 있었던 조직 개편들을 통해서 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올 초부터 진행된 임원 교육에서 '사즉생(死卽生·죽기로 마음먹으면 산다는 뜻)' 각오를 강조한 직후로 의미를 더했다. 이재용 회장은 임원 교육에서 "모든 분야에서 기술 경쟁력이 훼손됐다"며 특히 "메모리 사업부는 AI 시대 대응이 늦었다"고 질책했다.
이재용 회장은 지난해 말 사장단 인사에서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장인 전영현 부회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하면서 HBM을 개발하는 메모리사업부장까지 맡겨, 사실상 HBM 부활에 대표이사직을 걸었다.
◆엔비디아, 차세대 AI칩 '블랙웰 울트라·베라 루빈' 공개
엔비디아는 지난 17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산호세에서 개최된 'GTC 2025'에서 차세대 AI 칩 계획을 발표했다. 올 하반기 출시 예정인 '블랙웰 울트라(Blackwell Ultra)'를 비롯해 내년 출시 예정인 '베라 루빈(Vera Rubin)', 내후년 출시 예정인 '루빈 울트라(Rubin Ultra)'를 각각 공개했다.
'블랙웰 울트라'에 HBM3E가 탑재되고 루빈에는 HBM4가 탑재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HBM 공급 경쟁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가 올 2분기나 하반기 HBM3E를 공급하면 '블랙웰 울트라'에 탑재될 가능성이 높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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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C 2025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는 젠슨 황 CEO [사진=엔비디아] |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19일(현지시간) 'GTC 2025' 기자간담회에서 블랙웰 울트라에 삼성전자 HBM3E가 탑재될 가능성에 대해 "삼성의 참여를 기대하고 있다"며 "삼성은 베이스다이(Base Die·HBM 맨 아래 탑재되는 핵심 부품)에서 ASIC(맞춤형 칩)와 메모리를 결합하는 능력이 있다"고 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엔비디아가 SK하이닉스에 집중돼 있는 공급망을 삼성전자나 마이크론으로 분산시켜 가격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길 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업계 관계자는 "HBM4는 AI 반도체 시장에서 필수적인 요소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기술력과 공급망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며 "결국 품질과 공급 안정성이 승패를 가르는 핵심 요소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syu@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