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오상용 기자 = 전국시대(戰國時代)다. 유라시아의 화약고로 인식돼 왔던 지역에서 분쟁과 전쟁이 끊이지 않는다. 교전 7일째로 접어든 이스라엘과 이란의 충돌 또한 그 연장선이다.
미국 일극체제에서 다극체제로 분화하는 'G-제로'의 공간 안에서 세계는 지정학적 충돌이 일상이 되는 '전란의 뉴노멀'에 다가서고 있다.
이는 '정치와 외교, 경제·산업·통상 분야의 토대와 전제도 거기에 맞게 수정돼 나가야 할 필요성'을 가리킨다. 계산에 넣지 않았던 사회적, 경제적 비용이 수반될 것임은 자명하다. 방심하다 허를 찔리는 일 또한 빈발하기 쉽다.
[중동 대격변] 글싣는 순서
1. 최악은 지구촌 대공황, 3가지 시나리오와 계산서
2. 21세기판 전국(戰國)시대, 유라시아를 휘감은 화염
3. 월가의 '3-3-15 법칙' 재현? 이번엔 '양극'으로 가라
◆ 키이우에서 테헤란까지...유라시아 전쟁 벨트
2022년 2월 베이징 올리핌의 폐막과 함께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후대 사가들에 의해 21세기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첫 장으로 기록될지 모른다.
설마하던 유럽은 제대로 허를 찔렸다. 당초 1주일 혹은 열흘이면 결판날 것이라던 러·우 전쟁은 3년 넘게 현재 진행형이다. 유럽은 블라디미르 푸틴(러시아 대통령)의 야심을 얕잡아 봤고 푸틴은 우크라이나와 서방의 항전 의지를 가벼이 여겼다.
그 파장은 자산시장과 유럽 경제, 유럽 정치를 뒤흔들었다. 나비효과의 정점은 1·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이던 독일의 '재무장 선언'이다. 나아가 유럽 전체가 자주국방을 외치는 이정표가 됐는데, 국제 정치가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무대로 변모하는 상황에서 유럽 또한 무엇부터 해야할지 자각했다.
우크라이나 전선이 채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2023년 가을(10월7일) 세계는 중동 가자지구에서 벌어진 또 하나의 충돌을 목도했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습격으로 시작된 이 전쟁은 가지지구내 숱한 참상을 낳았다.
개전 당시 이스라엘과 하마스간 전쟁에 대해 국제정치 전문가들이 우려했던 (당시로는 낮은 확률의) 최악의 시나리오는 이란과 이스라엘로 화염이 번지는 '중동 확전' 양상이었다.
그로부터 1년 8개월이 흘러 그 시나리오는 현실이 됐다. '13일의 금요일'에 시작된 이란과 이스라엘의 군사 총돌은 이제 1주일을 꼬박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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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국기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일러스트 이미지. [사진=로이터 뉴스핌] |
◆ 상상 그 이상의 세계...다음 순번은
상상했던 극단적 시나리오가 구현되고 마는 세상 안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확률이 낮다는 이유로 '지정학적 테일 리스크'를 무시할 수 없게 됐다.
전쟁은 한 국가가 대외적으로 취할 수 있는 가장 극적인 정치 행위로, 그 결행은 지도자들의 자신감과 오판, 혹은 내적 동기와 조바심에 의해 빈번해지고 있다. 엄연한 현실 앞에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 역시 중국과 대만의 양안관계, 러시아와 북한의 움직임 등에서 눈을 뗄 수 없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미사일이 테헤란과 텔아비브 상공을 가르던 시점에 "중국이 5년내 괌과 일본을 잇는 2도련선을 돌파할 것"이라는 중국 내부 관측이 등장한 것은 예사롭지 않다.
모든 이목이 중동으로 향해 있는 동안에도 중국의 해양진출은 부단하다. 태평양의 물리적 광활함과 달리, 전략적 공간은 진출하려는 중국과 막아서려는 미국을 모두 품기에 넉넉하지 않다.
중국은 이번 이스라엘-이란 충돌 과정에서 미국이 보여주는 움직임, 그리고 향후 행마를 누구보다 열심히 살피고, 살필 나라다. 내심 중동 모래 구덩이에 발이 빠져 트럼프의 대(對) 중국 전략이 공회전하기를 바라면서.
백악관 입성 즉시 우크라이나와 중동의 포염을 잠재우겠다던 트럼프의 호언장담은 허언이 됐고 모든 총구를 중국으로 향하려던 트럼프의 생각은 계속 꼬이고 있다. 덕분에 중국은 시간을 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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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 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양자 회담 자리를 떠나는 모습. [사진=로이터 뉴스핌] |
◆ 트럼프 변수와 한계...이자비용이 방위비 예산을 넘어설 때는
전장(戰場)은 살아움직이는 생물이다. 어디로 튈지 예측불허다. 당초 이 정도 선까지라고 설정했던 작계는 시시각각 급변하는 전황 앞에서 무의미해지기 쉽다.
가뜩이나 트럼프 대통령은 큰 밑그림 하에서 일을 추진하는 인물이 아니다.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혹은 상황 급변을 촉발해서라도 가장 유리한 위치를 점하려는 인물이다.
지난 15일 로이터를 비롯한 외신들은 이란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를 암살하려는 이스라엘의 계획을 트럼프가 막았다고 관리들을 인용해 전한 바 있다. 보도 하루만에 트럼프의 입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왔다.
트럼프는 하메네이가 어디에 숨어있는지 다 파악했으며 그는 손 쉬운 타깃이라 했다. 그리고 "무조건 항복하라"고 엄포를 놓았다. 그렇지 않으면 목숨 보전이 어렵다는 경고였다. G7 정상회담을 끝내고 돌아가는 전용기 안에서는 "휴전 보다 더 큰 것이 있다"고 했고 "진정한 종식을 원한다"고도 했다.
하루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내보인 카드(완전한 종식)가 구미를 당겼을 수 있다.
그렇게 중동전에 발을 내딛는 순간, 상당 기간 모래 폭풍 속에서 허우적댈 위험 또한 커진다. 전임자(조 바이든)를 향해 "남의 전쟁에 국민 세금을 탕진했다"고 비난하던 그가 비슷한 결정을 내려야할 순간을 맞은 것이다.
18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을 겨냥한 공습 계획을 승인했다면서도 최종 명령은 보류한 상태라고 전했다. 참전이냐 협상이냐는 이란의 대답(핵 프로그램 포기 여부)을 확인하고 결정한다는 방침이라는 것.
트럼프의 결심을 어렵게 하는 가장 큰 걸림돌은 아무래도 비용 문제일 것이다.
이제 천조국 미국은 한 해 정부 부채 이자 지급에 드는 비용이 1년 방위비 예산에 맞먹는 나라가 됐다. 미국의 곳간은 대규모 군사작전을 전개할 만큼 넉넉하지 않다.
경제사학자 닐 퍼거슨의 혜안대로면 국가 부채의 이자비용이 국방 예산 규모를 넘어서는 순간, 제국의 몰락은 시작된다. 트럼프에겐 2003년 이라크 전쟁의 기억도 선명할 게다. 별 소득 없이 미국에 천문학적인 비용만 남겼던 중동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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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공군의 스텔스 전략 폭격기 B-2 스피릿 [사진=미 공군 뉴스핌] |
◆ G-제로의 공간
이란의 핵시설만 완전히 제거하고 발을 빼겠노라 마음 먹더라도, 전술했듯 전장은 당초 계획한 대로만 굴러가진 않는다 - 푸틴의 우크라이나 전쟁은 좋은 본보기다.
장고 끝에 트럼프가 외교적 해법을 택한다면 미국의 전쟁수행 능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수군거림 또한 커질 수 있다. 대규모 군사작전을 전개하기에는 미국의 재정 상태가 녹록치 않다는 현실, 더 이상 세계 경찰 노릇을 원하지 않는 미국 내 여론은 적성국들의 용기와 오판을 부추길 위험을 상시적으로 지닌다.
지난 1월초 유라시아그룹은 '2025년 10대 리스크' 보고서에서 트럼프의 독선적인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정책보다 'G-제로(G-Zero)'상황이 올 한 해 전 세계를 뒤흔들 최대 위험 요소라고 했다. G-제로 리스크는 글로벌 리더의 부재, 즉 힘의 공백 상태에서 지정학적 충돌이 빈발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유라시아그룹의 분석에 따르면 세계 경찰을 자청하던 미국은 점점 더 고립주의(내향주의)로 향하고 있다. 트럼프가 이번 중동사태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던 이 흐름은 크게 바뀌기 어렵다 - 한없이 오지랖을 부리기엔 체력(곳간)이 받쳐주지 않아서다.
그러한 힘의 공백 상태에서는 여기저기 크고 작은 충돌이 반복된다. 유라시아그룹은 "세대를 초월하는 세계적 위기, 심지어 새로운 세계 대전(3차 대전)의 위험은 우리 생애 어느 때보다 높다"고 했다.
osy75@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