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속 건설현장선 작업 중지·체감온도 확인 등 각종 대책 쏟아져
열사병으로 인한 사망자 발생 시 중대재해 해당
업계 "정부 차원의 폭염 대책 예산 투입과 정책 개선 요해"
[서울=뉴스핌] 정영희 기자 = 예년보다 일찍 폭염이 찾아오면서 더위에 취약한 건설현장엔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각 기업별로 온열질환 예방 대책을 수립하는 등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고 있지만, 이미 사망사고가 여러건 발생한 만큼 예방책 마련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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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현장 온열질환 산업재해 승인 추이. [그래픽=김아랑 미술기자] |
◆ 온열질환 산업재해 절반이 건설업…"특정 공종, 폭염에 더욱 취약"
10일 소방본부에 따르면 최근 경북 구미시 구미국가산업단지 내 공동주택 지하 1층 공사장에서 베트남 국적의 20대 하청업체 근로자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는 앉은 채 의식을 잃은 상태로 발견됐으나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보건 당국은 발견 당시 A씨의 체온이 40.2도였던 점으로 볼 때 온열질환에 의한 사망 사고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은 이날 부검을 실시하는 한편, 사업자인 대광건영 측의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에 대해 조사 중이다. 고용노동부는 사고 사업장의 온열대책 수립 여부를 살피고 있다.
온열질환 중에서 가장 치사율이 높은 질환은 체온을 조절하는 신경계(체온조절중추)가 열 자극을 견디지 못해 그 기능을 상실하는 열사병이다. 고용부는 2022년부터 열사병이 중대재해처벌 대상에 포함했다. 상시근로자 50인 이상 또는 공사금액 50억원 이상인 사업장에서 1년에 3명 이상 열사병 환자가 생기거나 1명이라도 사망하면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는 1년 이상의 징역이나 10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지난달 노동자 열사병 사망에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된 첫 판례도 나왔다. 2022년 7월 대전의 한 신축건물 공사 현장에서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하던 하청업체 근로자가 열사병으로 숨졌다. 당시 해당 근로자의 체온은 40도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전지방법원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기소된 원청업체 대표이사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무더위 또한 현장의 유해·위험 요인임에도 중대 산업재해 매뉴얼이 없었던 데다 근로자들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혐의를 받았다.
건설현장은 특히 온열질환에 취약하다.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2020년 1월부터 올해 4월까지 온열질환 산업재해로 승인받은 업종은 건설업(48%)이 최다였다. 지난해 고용부가 조사한 온열질환 산업재해자는 총 58명으로, 이 중 건설현장 근로자는 53.4%(31명)를 차지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건설현장은 대부분 실외 작업으로 폭염에 취약한 탓에 실제로 온열질환 사고가 다수 발생한다"며 "공종 중에선 콘크리트 타설이나 도로 확·포장 및 지반정리, 철근 작업 등이 상대적으로 큰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2016~2022년 산업재해로 승인받은 건설업 온열질환 사고 가운데 재해자 수가 가장 많았던 공종은 거푸집 조립·해체(20명)였으며, 이어 ▲조경작업(15명) ▲자재 조립·운반(10명) ▲철근 조립(9명) ▲콘크리트 타설(8명) 순이었다.
이창욱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는 "이상고온과 함께 고령 근로자의 비율이 증가하고 있어 온열질환으로 인한 중대산업재해 발생의 위험성은 점점 높아지는 추세"라며 "기업의 경우 온열질환과 관련한 중대재해처벌법상 안전·보건확보의무에 특별히 관심을 갖고 관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 건설사별 폭염 대응 방안에도 현장 불안은 여전… 근본 해결책 없나
지난달 고용부는 삼성물산·현대건설·포스코이앤씨 등 10대 건설사와 함께 '폭염 대비 온열질환 예방 간담회'를 가졌다. 물·그늘·휴식의 '3대 기본 수칙' 준수와 단계별 작업 조정, 응급상황 대응 체계 마련을 요청했다. 체감온도 31℃ 이상에서 장시간 작업 시 필수적으로 건강장해 예방 조치를 해야 하고 온습도 기록도 보관해야 한다.
기업별 폭염 대응책도 마련됐다. 포스코이앤씨는 안전보건센터 안에 '혹서기 비상대응반'을 구성, 현장별 온열질환 예방 시설 구축 상태를 점검한다. 전국 현장의 일일 단위 기상 모니터링을 바탕으로 폭염 단계별 작업 주의 사항을 안내하는 동시에 휴식 시간을 부여한다. DL이앤씨는 자체 온열질환 예방관리 지침을 수립했다. 체감온도가 35℃ 이상이면 1시간에 15분 이상 휴식하고, 하루 중 가장 기온이 높은 오후 2~5시에는 옥외작업을 자제한다.
한화 건설부문은 6~9월을 폭염 특별관리기관으로 지정하고, 근로자를 위해 식염 포도당을 비치하거나 고령자 근로시간 조정 등을 통해 사고를 예방한다. 현대건설은 '마시 고(GO)! 가리 고! 식히 고!'라는 슬로건을 기반으로 물 공급·차광 조치·휴식 제공의 3대 작업관리 수칙을 세웠다.
대우건설은 여름철 동료 근로자의 건강상태를 수시로 확인하고, 이상 징후 발생 시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캠페인을 전개한다. HDC현대산업개발은 관리감독자마다 담당 근로자를 지정하고, 휴식 이행 여부와 냉방 물품 보급 상황을 실시간 보고받는 근로자 밀착관리제도를 도입했다.
건설 근로자 사이에서는 최근 개정을 마친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개정안에 '체감온도 33도 이상인 환경에서 2시간 이상 작업 시 20분 이상 휴식시간 부여' 조항이 포함돼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에 고용부는 올 1월 이 내용을 포함한 해당 법령 시행규칙을 입법예고했다. 4개월 뒤 규제개혁위원회(규개위)는 이를 반려했다. 모든 사업장에 이를 일률적으로 적용하면 영세업체에 과도한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고용부는 대안으로 지난달 23일부터 9월 30일까지 건설현장에서 '2시간마다 20분 이상 휴식 부여' 수칙을 준수하는지 여부를 감독하기로 했다. 그러나 여름 초입부터 폭염으로 인한 건설현장 사망사고가 발생하자 즉시 규개위에 재심사를 요청하기로 결정했다. 민주노총 측의 "노동부와 규개위의 무책임이 불러온 참사"라며 "폭염 대응을 위한 규칙 개정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는 촉구를 일정 부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노동계에선 고용부가 본격적인 폭염이 시작되기 전 전체적인 대응 가이드라인 수립을 완료했어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온열질환을 경시하고 과도한 업무에 나서는 일부 현장의 실태도 꼬집었다.
유경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노무사는 "고용부가 2022년부터 모든 사업장에 휴게시설 설치를 의무화하겠다고 했음에도 아직 현장에서는 권고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며 "고용부 또한 사업장 특수성에 맞게 직종별로 대책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건설현장의 경우 이동식 에어컨 등 냉방기기 설치나 작업중지권 실행 보장 등을 꼼꼼히 관리해야 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문길주 전남노동권익센터장은 "폭염이 근로자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실태 조사를 연령과 지역, 업종 등으로 세분해 진행해야 한다"며 "현재 근로자 안전을 담당하는 이들은 각기 지방자치단체의 부서에 소속돼 있어 실질적 개선대책을 만들기 어렵기에 건설 직종만 전담할 부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chulsoofriend@newspim.com